테스형은 마지막까지 폼났다…“가수는 가도 노래는 영원히”

입력 2025.01.1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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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황'은 마지막에도 '역사'를 썼습니다.

58년 가수 인생을 정리하는 단 사흘의 공연. 6만 명이 몰렸고, 표는 채 5분도 안 돼 동이 났습니다.

정치권을 향했던 그의 쓴소리에 가황이 남긴 마지막 '예술'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아쉬움을 담아 그의 마지막 무대, 그리고 그를 보내는 팬들의 얘기를 담았습니다.

■ "나훈아 노래는 '위로'·'희로애락'"

영하의 날씨도 팬심에 녹아내린 하루였습니다.

취재진이 공연장에 도착한 것은 공연 시작 4시간 반 전. 평일 오후 3시였지만, 팬들은 이미 그를 볼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공연장 외벽에 걸린 현수막 앞에서 연신 사진을 찍는 흰머리의 팬들. 현수막 속 나훈아의 손을 잡아보는 팬도 눈에 띕니다. 이들에게 '나훈아'는 어떤 의미였을까?

이날 만난 팬들은 입을 모아 '위로'라고 했습니다.

엄혹했던 세상, 배고팠던 그 시절, 나훈아의 노래는 고단한 삶의 작은 위로였고, 친구라고 했습니다.

이제 황혼을 맞고 있는 김성부 씨. 58년을 한결같이 그의 팬이었다고 했습니다. 그의 최애 곡은 '남자의 인생', 김 씨의 '인생곡'이기도 합니다.

김성부(나훈아 팬) 씨 인터뷰 中

"가슴에 참 많이 와닿고, 서민들이 부르기 딱 좋은 노래야."

"가사를 가만히 되새겨 보면 서민들이 회사에 출근하고, 또 퇴근하면서 버스를 탈 때 운이 좋으면 앉을 수 있고, 운이 나쁘면 서서 가지 않느냐. 그 노래가 그런 내용이거든."

어린 시절 우연히 들었던 노래에 빠져 평생을 나훈아의 팬으로 살았다는 한유섭 씨.

나사모(나훈아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서경지회장까지 맡을 정도로 나훈아에 진심입니다. 그가 나훈아를 사랑하는 이유, 그의 노래에는 '희로애락이 담겨있기 때문'이었습니다.


■ '가황의 클래스'…2시간 반 동안 펼쳐진 '파격'

'가황'은 '가황'이었습니다.

이미 4회차 공연을 마쳤지만, 나훈아는, 그의 노래는, 또 그의 눈빛은 지치지 않았습니다.

2시간 반의 공연. 79세인 나훈아는 23곡을 게스트 없이 홀로 무대를 채웠습니다.


'고향역'을 시작으로 '체인지', '고향으로 가는 배', '남자의 인생', '물레방아 도는데', '18세 순이'까지 6곡을 쉬지 않고 불렀습니다.

'18세 순이'에서는 분홍색 상의에 치마를 입고 무대에 올랐고, 흥에 겨워 무대 아래로 뛰어 내려와 팬들과 일일이 눈을 맞췄습니다.

나훈아 공연 멘트 中

"여러분의 '입맛' 말고, '귓맛'이 웬만큼 까다로운 게 아니지. 내가 술 마시고 놀았다면 '홍시'나 '테스형' 같은 노래가 절대 나올 수 없었어. 그래서 여러분이 내게는 스승입니다."


세대를 아우르는 명곡 '홍시'를 부를 때는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곡. "어머니의 실제 성씨가 홍 씨"라고도 했습니다. 객석도 각자의 어머니를 회상하며 촉촉이 젖어 들었습니다.

나훈아의 노래와 팬들은 그렇게 어느새 하나가 돼 있었습니다.

■ 드론에 날려 보낸 '마이크'…"이제 땅 위를 걷겠습니다"

나훈아는 울지 않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가수 인생 58년,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굴곡도 있었죠. 200장의 앨범과 1,200곡의 자작곡, 2,600곡의 노래로 팬들과 만났습니다.

마지막 공연, 마지막 곡. 나훈아는 '사내'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결심이 제 인생에서 최고로 잘한 결정"이라고 했습니다. 남은 인생 안 해본 거 해보고, 안 먹어 본 거 먹어 보고, 안 가본 데 가보겠다고 했습니다.

'가황'이 가장 돌아가고 싶었던 곳은 어쩌면 아주 평범한 '일상'이었을지 모릅니다.

나훈아 공연 멘트 中

"제일 먼저 가보고 싶은 게 장 서는 날 가서 막걸리하고 빈대떡 먹는 겁니다"

"구름 위를 걷는 스타로 사는 게 좋을 것 같아도, 사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이젠 땅 위를 걷겠습니다."

'가황'은 작별을 고했습니다.

들고 있던 마이크를 가리키며 자신의 몸과 같은, 제 분신과 같은 마이크라고 운을 띄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마이크를 내려놓겠다"고 말했습니다. 들고 있던 마이크는 훨훨 나는 드론에 실어 객석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이제 자신의 노래를 여러분이 불러달라며.

윤심례(나훈아 팬) 씨 인터뷰 中

"박수 칠 때 떠난다고 했지만 그래도 팬들 마음에는 계속 (가수 생활을) 하셨으면 하는 마음이죠. 그래도 꼭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염순자(나훈아 팬) 씨 인터뷰 中

"가시는 뒷모습이 아름답도록 저희 팬들도 멋지고 아름답게 보내드리려고요. 마이크는 내려놓으셔도 언제 기회가 된다면 건강한 모습 한 번 보여주시면, 토크쇼라도 한 번 나와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17살 소녀 시절부터, 또 누군가는 인생의 무게를 느낀 순간부터.

58년, 팬들은 나훈아와 함께 걸었고, 지금이라는 시간에 함께 도달해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들이 '가황 나훈아'를 아직 보낼 수 없는 이유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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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스형은 마지막까지 폼났다…“가수는 가도 노래는 영원히”
    • 입력 2025-01-14 08: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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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황'은 마지막에도 '역사'를 썼습니다.

58년 가수 인생을 정리하는 단 사흘의 공연. 6만 명이 몰렸고, 표는 채 5분도 안 돼 동이 났습니다.

정치권을 향했던 그의 쓴소리에 가황이 남긴 마지막 '예술'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아쉬움을 담아 그의 마지막 무대, 그리고 그를 보내는 팬들의 얘기를 담았습니다.

■ "나훈아 노래는 '위로'·'희로애락'"

영하의 날씨도 팬심에 녹아내린 하루였습니다.

취재진이 공연장에 도착한 것은 공연 시작 4시간 반 전. 평일 오후 3시였지만, 팬들은 이미 그를 볼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공연장 외벽에 걸린 현수막 앞에서 연신 사진을 찍는 흰머리의 팬들. 현수막 속 나훈아의 손을 잡아보는 팬도 눈에 띕니다. 이들에게 '나훈아'는 어떤 의미였을까?

이날 만난 팬들은 입을 모아 '위로'라고 했습니다.

엄혹했던 세상, 배고팠던 그 시절, 나훈아의 노래는 고단한 삶의 작은 위로였고, 친구라고 했습니다.

이제 황혼을 맞고 있는 김성부 씨. 58년을 한결같이 그의 팬이었다고 했습니다. 그의 최애 곡은 '남자의 인생', 김 씨의 '인생곡'이기도 합니다.

김성부(나훈아 팬) 씨 인터뷰 中

"가슴에 참 많이 와닿고, 서민들이 부르기 딱 좋은 노래야."

"가사를 가만히 되새겨 보면 서민들이 회사에 출근하고, 또 퇴근하면서 버스를 탈 때 운이 좋으면 앉을 수 있고, 운이 나쁘면 서서 가지 않느냐. 그 노래가 그런 내용이거든."

어린 시절 우연히 들었던 노래에 빠져 평생을 나훈아의 팬으로 살았다는 한유섭 씨.

나사모(나훈아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서경지회장까지 맡을 정도로 나훈아에 진심입니다. 그가 나훈아를 사랑하는 이유, 그의 노래에는 '희로애락이 담겨있기 때문'이었습니다.


■ '가황의 클래스'…2시간 반 동안 펼쳐진 '파격'

'가황'은 '가황'이었습니다.

이미 4회차 공연을 마쳤지만, 나훈아는, 그의 노래는, 또 그의 눈빛은 지치지 않았습니다.

2시간 반의 공연. 79세인 나훈아는 23곡을 게스트 없이 홀로 무대를 채웠습니다.


'고향역'을 시작으로 '체인지', '고향으로 가는 배', '남자의 인생', '물레방아 도는데', '18세 순이'까지 6곡을 쉬지 않고 불렀습니다.

'18세 순이'에서는 분홍색 상의에 치마를 입고 무대에 올랐고, 흥에 겨워 무대 아래로 뛰어 내려와 팬들과 일일이 눈을 맞췄습니다.

나훈아 공연 멘트 中

"여러분의 '입맛' 말고, '귓맛'이 웬만큼 까다로운 게 아니지. 내가 술 마시고 놀았다면 '홍시'나 '테스형' 같은 노래가 절대 나올 수 없었어. 그래서 여러분이 내게는 스승입니다."


세대를 아우르는 명곡 '홍시'를 부를 때는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곡. "어머니의 실제 성씨가 홍 씨"라고도 했습니다. 객석도 각자의 어머니를 회상하며 촉촉이 젖어 들었습니다.

나훈아의 노래와 팬들은 그렇게 어느새 하나가 돼 있었습니다.

■ 드론에 날려 보낸 '마이크'…"이제 땅 위를 걷겠습니다"

나훈아는 울지 않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가수 인생 58년,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굴곡도 있었죠. 200장의 앨범과 1,200곡의 자작곡, 2,600곡의 노래로 팬들과 만났습니다.

마지막 공연, 마지막 곡. 나훈아는 '사내'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결심이 제 인생에서 최고로 잘한 결정"이라고 했습니다. 남은 인생 안 해본 거 해보고, 안 먹어 본 거 먹어 보고, 안 가본 데 가보겠다고 했습니다.

'가황'이 가장 돌아가고 싶었던 곳은 어쩌면 아주 평범한 '일상'이었을지 모릅니다.

나훈아 공연 멘트 中

"제일 먼저 가보고 싶은 게 장 서는 날 가서 막걸리하고 빈대떡 먹는 겁니다"

"구름 위를 걷는 스타로 사는 게 좋을 것 같아도, 사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이젠 땅 위를 걷겠습니다."

'가황'은 작별을 고했습니다.

들고 있던 마이크를 가리키며 자신의 몸과 같은, 제 분신과 같은 마이크라고 운을 띄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마이크를 내려놓겠다"고 말했습니다. 들고 있던 마이크는 훨훨 나는 드론에 실어 객석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이제 자신의 노래를 여러분이 불러달라며.

윤심례(나훈아 팬) 씨 인터뷰 中

"박수 칠 때 떠난다고 했지만 그래도 팬들 마음에는 계속 (가수 생활을) 하셨으면 하는 마음이죠. 그래도 꼭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염순자(나훈아 팬) 씨 인터뷰 中

"가시는 뒷모습이 아름답도록 저희 팬들도 멋지고 아름답게 보내드리려고요. 마이크는 내려놓으셔도 언제 기회가 된다면 건강한 모습 한 번 보여주시면, 토크쇼라도 한 번 나와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17살 소녀 시절부터, 또 누군가는 인생의 무게를 느낀 순간부터.

58년, 팬들은 나훈아와 함께 걸었고, 지금이라는 시간에 함께 도달해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들이 '가황 나훈아'를 아직 보낼 수 없는 이유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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