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권 발칵 뒤집은 트럼프의 제안 [지금 중동은]

입력 2025.01.27 (18:04) 수정 2025.01.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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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25일 마이애미로 향하는 에어포스원에서 질문하는 기자들을 쳐다보고 있다.트럼프 대통령이 25일 마이애미로 향하는 에어포스원에서 질문하는 기자들을 쳐다보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자 주민 이주” 제안을 아랍권이 “인종 청소”라며 맹비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 시각 25일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의 통화에서 팔레스타인인을 더 많이 받아들이라고 요청했으며,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도 이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금 가자 지구 전체를 보고 있는데, 완전히 엉망입니다. 정말 엉망진창이에요."
(기자: 요르단이 사람들을 수용하길 원하십니까?)

"그가 사람들을 받아들이길 원합니다. 이집트도 사람들을 받아들이길 원합니다. 내일 엘시시 대통령과 만날 예정이고, 얘기할 겁니다. 조금 늦었지만요."

"이집트가 사람들을 받아들이길 원하고, 요르단도 받아들이길 원합니다. 약 150만 명 정도를 말하는 겁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정리(clean out)하고 싶습니다. 그곳은 수 세기 동안 수많은 갈등이 있었던 곳입니다."

"뭔가 조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그곳은 말 그대로 철거 현장입니다.
거의 모든 것이 파괴됐고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저는 아랍 국가들과 협력해 다른 지역에 주택을 지어서 그곳에서 사람들이 아마도 평화롭게 살 수 있길 바랍니다."

남부로 피신했던 가자 주민들이 27일 해안길을 따라 북부로 돌아가고 있다.남부로 피신했던 가자 주민들이 27일 해안길을 따라 북부로 돌아가고 있다.

■ 팔레스타인, "우리 땅을 떠나지 않을 것"

'가자 주민 이주' 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상당한 구체성을 띤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리(clean out), 철거 현장 (demolition site), 150만 명(probably a million and a half people) 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그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가자지구를 장악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측은 현지 언론을 통해 "또 다른 고향을 만들어주겠다는 그들의 계획은 수십 년간 좌초됐다"며 “이번에도 좌초시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마스 고위급 인사 모함메드 나잘은 “트럼프의 발언이 매우 이상하다. 피의 대가를 치른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가자 지구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땅에 굳건히 남아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이 24일 서안지구 제닌 난민캠프에 대한 군사작전을 벌이고 있다.이스라엘군이 24일 서안지구 제닌 난민캠프에 대한 군사작전을 벌이고 있다.

서안지구를 관할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아바스 수반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성명에서 아바스는 “우리 주민을 가자지구에서 이주시키는 어떤 계획도 강력히 거부하고 규탄한다”고 밝혔습니다.

■ "가자 주민 이전" 1948년 '나크바' 연상시켜

팔레스타인이 이렇게 펄쩍 뛰며 거세게 반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크바’를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나크바는 아랍어로 대재앙을 의미하는데, 지금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에 대한 대규모 강제 이주와 그로 인한 사회적, 정치적 영향까지 포함하는 용어로 굳어졌습니다.

1947년 유엔이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승인한 이후,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유대인 민병대와 아랍 민병대 간의 충돌이 거세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70만 명이 강제로 이주하거나 도피했습니다.

당시 고향을 떠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요르단과 레바논, 시리아 등에서 살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발언은 팔레스타인에 제2의 나크바를 받아들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팔레스타인 난민이 23일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을 피해 서안지구 제닌 난민캠프를 떠나고 있다.팔레스타인 난민이 23일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을 피해 서안지구 제닌 난민캠프를 떠나고 있다.

■ 아랍권, "강제 이주와 퇴거는 인종청소"

트럼프 대통령이 ‘이주 지역’으로 지목된 요르단과 이집트도 손사래를 치며 그의 제안에 대한 강력한 반대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22개 아랍국가로 구성된 아랍연맹은 강제 이주와 퇴거를 “인종청소”라고 규정하며 트럼프의 제안을 깎아내렸습니다.

미국이슬람관계협의회(CAIR)도 비판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협의회는 “망상적이고 위험한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자를 포기할 의사가 없으며 주변 국가들도 이스라엘의 인종 청소를 도울 의사가 없다”며 거센 어조로 비판했습니다.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장관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장관

■ 이스라엘 극우 진영 "환영"

반면 이스라엘 극우 진영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상을 환영하고 나섰습니다.

이스라엘 극우 성향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은 "지난 76년간 가자지구 인구 대부분이 이스라엘 국가를 파괴하려는 뜻을 품고 혹독한 환경에서 지내야만 했다"며 "그들이 새롭고 더 나은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다른 터전을 찾도록 돕자는 것은 훌륭한 견해"라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 노골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을 견지했습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미국 대사관을 이전하는 등 아랍권의 반발을 샀습니다.

트럼프 집권 초기에 나온 ‘가자 주민 이주’ 발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트럼프의 이번 발상이 미국의 중동 정책의 하나로 자리 잡을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다른 나라 국민을 또 다른 나라로 이주시키겠다는 발상은 실행 가능성이 작을뿐더러, 자신이 다른 나라에 무엇이든 강요할 수 있다는 오만함까지 내비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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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1-27 18:04:21
    • 수정2025-01-27 18:05:14
    국제
트럼프 대통령이 25일 마이애미로 향하는 에어포스원에서 질문하는 기자들을 쳐다보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자 주민 이주” 제안을 아랍권이 “인종 청소”라며 맹비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 시각 25일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의 통화에서 팔레스타인인을 더 많이 받아들이라고 요청했으며,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도 이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금 가자 지구 전체를 보고 있는데, 완전히 엉망입니다. 정말 엉망진창이에요."
(기자: 요르단이 사람들을 수용하길 원하십니까?)

"그가 사람들을 받아들이길 원합니다. 이집트도 사람들을 받아들이길 원합니다. 내일 엘시시 대통령과 만날 예정이고, 얘기할 겁니다. 조금 늦었지만요."

"이집트가 사람들을 받아들이길 원하고, 요르단도 받아들이길 원합니다. 약 150만 명 정도를 말하는 겁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정리(clean out)하고 싶습니다. 그곳은 수 세기 동안 수많은 갈등이 있었던 곳입니다."

"뭔가 조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그곳은 말 그대로 철거 현장입니다.
거의 모든 것이 파괴됐고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저는 아랍 국가들과 협력해 다른 지역에 주택을 지어서 그곳에서 사람들이 아마도 평화롭게 살 수 있길 바랍니다."

남부로 피신했던 가자 주민들이 27일 해안길을 따라 북부로 돌아가고 있다.
■ 팔레스타인, "우리 땅을 떠나지 않을 것"

'가자 주민 이주' 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상당한 구체성을 띤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리(clean out), 철거 현장 (demolition site), 150만 명(probably a million and a half people) 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그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가자지구를 장악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측은 현지 언론을 통해 "또 다른 고향을 만들어주겠다는 그들의 계획은 수십 년간 좌초됐다"며 “이번에도 좌초시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마스 고위급 인사 모함메드 나잘은 “트럼프의 발언이 매우 이상하다. 피의 대가를 치른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가자 지구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땅에 굳건히 남아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이 24일 서안지구 제닌 난민캠프에 대한 군사작전을 벌이고 있다.
서안지구를 관할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아바스 수반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성명에서 아바스는 “우리 주민을 가자지구에서 이주시키는 어떤 계획도 강력히 거부하고 규탄한다”고 밝혔습니다.

■ "가자 주민 이전" 1948년 '나크바' 연상시켜

팔레스타인이 이렇게 펄쩍 뛰며 거세게 반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크바’를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나크바는 아랍어로 대재앙을 의미하는데, 지금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에 대한 대규모 강제 이주와 그로 인한 사회적, 정치적 영향까지 포함하는 용어로 굳어졌습니다.

1947년 유엔이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승인한 이후,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유대인 민병대와 아랍 민병대 간의 충돌이 거세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70만 명이 강제로 이주하거나 도피했습니다.

당시 고향을 떠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요르단과 레바논, 시리아 등에서 살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발언은 팔레스타인에 제2의 나크바를 받아들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팔레스타인 난민이 23일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을 피해 서안지구 제닌 난민캠프를 떠나고 있다.
■ 아랍권, "강제 이주와 퇴거는 인종청소"

트럼프 대통령이 ‘이주 지역’으로 지목된 요르단과 이집트도 손사래를 치며 그의 제안에 대한 강력한 반대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22개 아랍국가로 구성된 아랍연맹은 강제 이주와 퇴거를 “인종청소”라고 규정하며 트럼프의 제안을 깎아내렸습니다.

미국이슬람관계협의회(CAIR)도 비판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협의회는 “망상적이고 위험한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자를 포기할 의사가 없으며 주변 국가들도 이스라엘의 인종 청소를 도울 의사가 없다”며 거센 어조로 비판했습니다.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장관
■ 이스라엘 극우 진영 "환영"

반면 이스라엘 극우 진영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상을 환영하고 나섰습니다.

이스라엘 극우 성향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은 "지난 76년간 가자지구 인구 대부분이 이스라엘 국가를 파괴하려는 뜻을 품고 혹독한 환경에서 지내야만 했다"며 "그들이 새롭고 더 나은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다른 터전을 찾도록 돕자는 것은 훌륭한 견해"라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 노골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을 견지했습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미국 대사관을 이전하는 등 아랍권의 반발을 샀습니다.

트럼프 집권 초기에 나온 ‘가자 주민 이주’ 발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트럼프의 이번 발상이 미국의 중동 정책의 하나로 자리 잡을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다른 나라 국민을 또 다른 나라로 이주시키겠다는 발상은 실행 가능성이 작을뿐더러, 자신이 다른 나라에 무엇이든 강요할 수 있다는 오만함까지 내비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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