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픽] “이번에 또”…희대의 사기꾼 장영자, 5번째 철창행
입력 2025.02.03 (18:16)
수정 2025.02.03 (18:3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어서 이슈픽입니다.
혹시 이 얼굴 기억하십니까.
1980년대 건국 이후 최대 어음 사기의 주범으로 이름을 알린 장영자 씹니다.
처음 구속될 당시만 해도 38살 한창 나이였지만 어느덧 여든 한 살 할머니가 됐습니다.
환갑(還甲) 진갑(進甲) 모두 감옥에서 맞이한 그녀의 이름이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
["종국에는 파탄에 이르고 만 건국 이래 최대의 사기 사건입니다."]
1982년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 사기 사건.
숙대 메이퀸 출신의 장영자 씨는 화려한 미모와 함께 남다른 인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남편은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낸 이철희, 형부는 당시 이순자 여사의 삼촌 이규광이었습니다.
장 씨가 벌인 어음 사기 피해액은 6천4백억 원. 그때로 치면 정부 예산의 10% 수준이었으니 희대의 사기라 할만했습니다.
이순자 여사는 자서전에서 “남편이 자신감을 얻고 있던 시점에서 날벼락같이 찾아온 사건”이라고 당시를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KBS 9시 뉴스/1982년 5월 : "애써 침착해 보이려는 듯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가끔은 엷은 웃음을 띄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더욱이 하루 천만 원씩 펑펑 써댄 호화 생활이 알려지며 민심이 들끓었고 결국 남편 이 씨와 함께 15년 형을 선고받습니다.
[KBS 9시 뉴스/1992년 3월 : "거액 어음 사기 사건으로 10년째 복역해 온 장영자 씨가 일반 가석방으로 오늘 청주교도소에서 석방됐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전형적인 폰지 사기인데 당시 장 씨는 “경제는 유통이다, 난 경제 활동을 한 것 뿐"이라는 궤변으로 구설에 올랐습니다.
[1993년 : "15년이라는 형을 멀쩡한 사람들한테 주려면 온갖 끔찍한 일이지 않습니까? 억울하다는 표현 가지고는 곤란하고 원통하죠."]
‘권력형 비리’가 의심됐지만 정작 본인은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라며, 이후 계속된 사기 행각에서 담당 검사를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이철희/장영자 씨 남편/2004년 5월 : "오죽하면 현직 담당 검사를 고소했겠습니까? 얼마나 억울하면. 공범으로 몰렸다고 하소연해도 검찰 같은 데서는 그걸 그냥 무시해 버리고."]
첫 구속 이후에도 4번의 사기죄로 33년을 복역한 그녀가 다섯번 째 철창 신세를 맞게 됐습니다.
농산물 납품 계약을 체결하며 위조 수표를 건네고 3천만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입니다.
남편의 삼성전자 주식 만 주가 담보로 묶여 있어 돈이 필요하다, 비자금이었던 구권 화폐를 바꿔주면 웃돈을 주겠다는 식으로 사기를 쳤습니다.
2022년 네 번째 출소 후 “재심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던 장 씨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그녀는 모두 34년을 철창에서 보낸 기록을 갖게 됩니다.
지금까지 이슈픽이었습니다.
혹시 이 얼굴 기억하십니까.
1980년대 건국 이후 최대 어음 사기의 주범으로 이름을 알린 장영자 씹니다.
처음 구속될 당시만 해도 38살 한창 나이였지만 어느덧 여든 한 살 할머니가 됐습니다.
환갑(還甲) 진갑(進甲) 모두 감옥에서 맞이한 그녀의 이름이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
["종국에는 파탄에 이르고 만 건국 이래 최대의 사기 사건입니다."]
1982년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 사기 사건.
숙대 메이퀸 출신의 장영자 씨는 화려한 미모와 함께 남다른 인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남편은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낸 이철희, 형부는 당시 이순자 여사의 삼촌 이규광이었습니다.
장 씨가 벌인 어음 사기 피해액은 6천4백억 원. 그때로 치면 정부 예산의 10% 수준이었으니 희대의 사기라 할만했습니다.
이순자 여사는 자서전에서 “남편이 자신감을 얻고 있던 시점에서 날벼락같이 찾아온 사건”이라고 당시를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KBS 9시 뉴스/1982년 5월 : "애써 침착해 보이려는 듯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가끔은 엷은 웃음을 띄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더욱이 하루 천만 원씩 펑펑 써댄 호화 생활이 알려지며 민심이 들끓었고 결국 남편 이 씨와 함께 15년 형을 선고받습니다.
[KBS 9시 뉴스/1992년 3월 : "거액 어음 사기 사건으로 10년째 복역해 온 장영자 씨가 일반 가석방으로 오늘 청주교도소에서 석방됐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전형적인 폰지 사기인데 당시 장 씨는 “경제는 유통이다, 난 경제 활동을 한 것 뿐"이라는 궤변으로 구설에 올랐습니다.
[1993년 : "15년이라는 형을 멀쩡한 사람들한테 주려면 온갖 끔찍한 일이지 않습니까? 억울하다는 표현 가지고는 곤란하고 원통하죠."]
‘권력형 비리’가 의심됐지만 정작 본인은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라며, 이후 계속된 사기 행각에서 담당 검사를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이철희/장영자 씨 남편/2004년 5월 : "오죽하면 현직 담당 검사를 고소했겠습니까? 얼마나 억울하면. 공범으로 몰렸다고 하소연해도 검찰 같은 데서는 그걸 그냥 무시해 버리고."]
첫 구속 이후에도 4번의 사기죄로 33년을 복역한 그녀가 다섯번 째 철창 신세를 맞게 됐습니다.
농산물 납품 계약을 체결하며 위조 수표를 건네고 3천만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입니다.
남편의 삼성전자 주식 만 주가 담보로 묶여 있어 돈이 필요하다, 비자금이었던 구권 화폐를 바꿔주면 웃돈을 주겠다는 식으로 사기를 쳤습니다.
2022년 네 번째 출소 후 “재심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던 장 씨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그녀는 모두 34년을 철창에서 보낸 기록을 갖게 됩니다.
지금까지 이슈픽이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이슈픽] “이번에 또”…희대의 사기꾼 장영자, 5번째 철창행
-
- 입력 2025-02-03 18:16:48
- 수정2025-02-03 18:31:46
이어서 이슈픽입니다.
혹시 이 얼굴 기억하십니까.
1980년대 건국 이후 최대 어음 사기의 주범으로 이름을 알린 장영자 씹니다.
처음 구속될 당시만 해도 38살 한창 나이였지만 어느덧 여든 한 살 할머니가 됐습니다.
환갑(還甲) 진갑(進甲) 모두 감옥에서 맞이한 그녀의 이름이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
["종국에는 파탄에 이르고 만 건국 이래 최대의 사기 사건입니다."]
1982년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 사기 사건.
숙대 메이퀸 출신의 장영자 씨는 화려한 미모와 함께 남다른 인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남편은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낸 이철희, 형부는 당시 이순자 여사의 삼촌 이규광이었습니다.
장 씨가 벌인 어음 사기 피해액은 6천4백억 원. 그때로 치면 정부 예산의 10% 수준이었으니 희대의 사기라 할만했습니다.
이순자 여사는 자서전에서 “남편이 자신감을 얻고 있던 시점에서 날벼락같이 찾아온 사건”이라고 당시를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KBS 9시 뉴스/1982년 5월 : "애써 침착해 보이려는 듯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가끔은 엷은 웃음을 띄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더욱이 하루 천만 원씩 펑펑 써댄 호화 생활이 알려지며 민심이 들끓었고 결국 남편 이 씨와 함께 15년 형을 선고받습니다.
[KBS 9시 뉴스/1992년 3월 : "거액 어음 사기 사건으로 10년째 복역해 온 장영자 씨가 일반 가석방으로 오늘 청주교도소에서 석방됐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전형적인 폰지 사기인데 당시 장 씨는 “경제는 유통이다, 난 경제 활동을 한 것 뿐"이라는 궤변으로 구설에 올랐습니다.
[1993년 : "15년이라는 형을 멀쩡한 사람들한테 주려면 온갖 끔찍한 일이지 않습니까? 억울하다는 표현 가지고는 곤란하고 원통하죠."]
‘권력형 비리’가 의심됐지만 정작 본인은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라며, 이후 계속된 사기 행각에서 담당 검사를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이철희/장영자 씨 남편/2004년 5월 : "오죽하면 현직 담당 검사를 고소했겠습니까? 얼마나 억울하면. 공범으로 몰렸다고 하소연해도 검찰 같은 데서는 그걸 그냥 무시해 버리고."]
첫 구속 이후에도 4번의 사기죄로 33년을 복역한 그녀가 다섯번 째 철창 신세를 맞게 됐습니다.
농산물 납품 계약을 체결하며 위조 수표를 건네고 3천만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입니다.
남편의 삼성전자 주식 만 주가 담보로 묶여 있어 돈이 필요하다, 비자금이었던 구권 화폐를 바꿔주면 웃돈을 주겠다는 식으로 사기를 쳤습니다.
2022년 네 번째 출소 후 “재심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던 장 씨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그녀는 모두 34년을 철창에서 보낸 기록을 갖게 됩니다.
지금까지 이슈픽이었습니다.
혹시 이 얼굴 기억하십니까.
1980년대 건국 이후 최대 어음 사기의 주범으로 이름을 알린 장영자 씹니다.
처음 구속될 당시만 해도 38살 한창 나이였지만 어느덧 여든 한 살 할머니가 됐습니다.
환갑(還甲) 진갑(進甲) 모두 감옥에서 맞이한 그녀의 이름이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
["종국에는 파탄에 이르고 만 건국 이래 최대의 사기 사건입니다."]
1982년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 사기 사건.
숙대 메이퀸 출신의 장영자 씨는 화려한 미모와 함께 남다른 인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남편은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낸 이철희, 형부는 당시 이순자 여사의 삼촌 이규광이었습니다.
장 씨가 벌인 어음 사기 피해액은 6천4백억 원. 그때로 치면 정부 예산의 10% 수준이었으니 희대의 사기라 할만했습니다.
이순자 여사는 자서전에서 “남편이 자신감을 얻고 있던 시점에서 날벼락같이 찾아온 사건”이라고 당시를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KBS 9시 뉴스/1982년 5월 : "애써 침착해 보이려는 듯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가끔은 엷은 웃음을 띄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더욱이 하루 천만 원씩 펑펑 써댄 호화 생활이 알려지며 민심이 들끓었고 결국 남편 이 씨와 함께 15년 형을 선고받습니다.
[KBS 9시 뉴스/1992년 3월 : "거액 어음 사기 사건으로 10년째 복역해 온 장영자 씨가 일반 가석방으로 오늘 청주교도소에서 석방됐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전형적인 폰지 사기인데 당시 장 씨는 “경제는 유통이다, 난 경제 활동을 한 것 뿐"이라는 궤변으로 구설에 올랐습니다.
[1993년 : "15년이라는 형을 멀쩡한 사람들한테 주려면 온갖 끔찍한 일이지 않습니까? 억울하다는 표현 가지고는 곤란하고 원통하죠."]
‘권력형 비리’가 의심됐지만 정작 본인은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라며, 이후 계속된 사기 행각에서 담당 검사를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이철희/장영자 씨 남편/2004년 5월 : "오죽하면 현직 담당 검사를 고소했겠습니까? 얼마나 억울하면. 공범으로 몰렸다고 하소연해도 검찰 같은 데서는 그걸 그냥 무시해 버리고."]
첫 구속 이후에도 4번의 사기죄로 33년을 복역한 그녀가 다섯번 째 철창 신세를 맞게 됐습니다.
농산물 납품 계약을 체결하며 위조 수표를 건네고 3천만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입니다.
남편의 삼성전자 주식 만 주가 담보로 묶여 있어 돈이 필요하다, 비자금이었던 구권 화폐를 바꿔주면 웃돈을 주겠다는 식으로 사기를 쳤습니다.
2022년 네 번째 출소 후 “재심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던 장 씨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그녀는 모두 34년을 철창에서 보낸 기록을 갖게 됩니다.
지금까지 이슈픽이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