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뉴스 “하루 만에 20㎝ 넘는 습기 많은 눈이 내리면서 축사와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내렸고..." 피해 농민 “눈이 이 정도로 와서 하우스가 무너질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정말로요” |
2025.1.25 “오늘은 포근함마저 감도는 하루였습니다” 2025.1.29 “내일 서울의 아침 기온은 영하 9도까지 내려가겠고 체감온도는 더 낮겠습니다” 김백민 /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날씨들이 일상화되고 있는 게 굉장히 중요한 특징이죠" |
잦은 폭설과 갑작스런 한파, 변동성 큰 기후변화의 시대
에너지 가격 상승에 ‘난방비 대란’까지...
누군가에겐 ‘죽고 사는 문제’
“난방비를 아끼려고 보일러 대신 난방용 매트 두 장을 겹쳐서 사용한 게 화재의 원인이었던 걸로 보고 있습니다” |
정부의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 해마다 큰 폭 증가
수혜 대상, 월등한 ‘노인 비중’…수급자는 ‘증가세’
취약계층의 ‘따뜻할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는가?

Q. 여기 한 몇 년 된 집이죠, 여기? A. 26년, 내가 여기서 26년. Q. 연탄불로 (장사) 하시는 이유가 있으세요? A. 연탄불로 고기 구우면 맛있다고 해서 그냥 시작했어요. 손님들이 연탄(구이)가 맛있다고 이렇게 찾아오시니까 |

불 관리가 쉽지 않지만, 손님들이 찾는 맛을 고집하며 ‘연탄불구이’ 맛집으로 소문난 노포입니다.
김성철(50대) / 손님 "(저희는) 모든 음식을 연탄불에 해 먹던 세대라, 그 향을 아직도 못 잊는 거죠." |
예전 대한민국 대다수 가정의 월동 연료였던 연탄.
이제는 이런 음식점이 아니면 일상에선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서울 서초구의 한 마을.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대부분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동네입니다.
위현진 팀장 / 서울 연탄은행 "저는 오늘 연탄 나눔 활동을 같이 하게 된 서울 연탄은행의 위현진 팀장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
주민 대부분은 저소득층 노인.
정부 지원과 민간 단체의 후원이 없으면 겨울나기가 쉽지 않은 곳입니다.
이날 모인 자원봉사자는 20여 명, 저도 한몫 거들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코스가 그나마 좀 가까운 쪽이라서 1시간 넘어가면 끝날 것 같아요. 각오는 되셨나요?" 임주현 / 취재기자 "예, 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
주민들한테 전달할 연탄은 모두 천 장.
세 가구의 몫이지만, 사실 겨우내 한 가구가 쓰기에도 넉넉지 않은 양입니다.

마을 주민 "바람 휙 불면은 연탄이 금방 타 버려요. 그래서 하루에 막 10장 내지는 12장씩도 들어가요." |
배달료까지 더하면 이미 연탄 한 장에 천 원을 웃도는 게 현실.
어느새 연탄은 저소득층에도 부담스러운 연료가 됐습니다.
허기복 / 밥상공동체·연탄은행 대표 "연탄 사용하는 분들의 평균 연령이 80이 넘습니다. 월 소득이 35만 원에서 50만 원 미만이에요. 이분들이 또 자가가 아니고 월세를 냅니다. 연탄을 제때 돈이 없어서 구입을 못 하니까 이렇게 자원봉사나 후원을 같이해서 할 수밖에 없어서..." |
더욱이 열악한 주거 환경에 에너지 효율은 더 떨어집니다.
난방비가 더 들어가는 악순환이 빚어집니다.

이춘자(82) / 마을 주민 여기가...여기 같은데 임주현 / 취재기자 Q. 수도관이요? A. 네, 여기서 이렇게 묻혔어요. Q. 땅바닥 밑으로? A. 네, 시멘트를 발랐지 이번에. 이거 한 번 동파했어. 이거 터져 가지고 Q. 언제요? A. 한 3년 전에 Q. 이렇게 담요 깔아 놓으면 확실히 좀 효과가 있나 보죠? A. 그러고부터는 안 얼었어. 한 4년, 4년을 이러고 살아. 그래서 여기까지는 항상 깔아야 해. |

허기복 / 밥상공동체·연탄은행 대표 "(연탄 난방 규모가) 7만 4천 가구가 조금 넘었습니다. 주거 환경이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든지, 또 고지대 달동네라든지 이렇다 보니까 결국에는 다른 대체 에너지를 못 쓰고 연탄을 땔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현실과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다..." |
에너지 빈곤층.
소득의 10% 이상을 연료비로 지불해야 하는 에너지 취약계층을 가리키는 말인데요. 전국에 150만 가구가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겨울철 매서운 한파에 고령이나 장애가 있는 에너지 빈곤층에게 난방비는 그야말로 ‘죽고 사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KBS 뉴스 "온수매트 위에 전기장판까지 올려놓았다가 과열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난방비를 아끼려고 켜 놓았던 낚시용 버너에 불이 붙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

난방비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때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2배 가까이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연구진은 난방비에 부담을 느낀 사람들이 난방기 사용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에너지를 보편적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법이 규정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입니다.
박광수 박사 / 숭실대 에너지스쿨 (전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에너지가 필수재이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의 에너지 소비를 국가가 보장해 주는 거는 국가의 의무로 볼 수가 있는 거죠. 저소득 취약계층 같은 경우는 겨울철에 오히려 소득이 감소하는 특성을 보이거든요." |
이에 따라 정부는 다양한 에너지복지 사업을 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게 바로 에너지바우처입니다.
에너지 취약계층의 냉난방 비용을 보조하는 제도로, 시행된 지 올해로 10년째입니다.
지원액이 담긴 카드로 연료를 직접 구입하거나, 요금 고지서에서 지원액이 자동 차감되는 방식입니다.

특히 3년 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에너지바우처 예산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지원 범위도 확대됐는데, 수혜자의 78%는 노인과 장애인 가구입니다.
김도헌 /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효율지원팀장 "폭염이나 한파와 같은 이상기후가 일상화되고 있고, 에너지 요금이 또 단계적으로 인상되면서 기후 위기로부터 취약계층을 두텁고 폭넓게 보호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지원 대상과 지원 단가를 확대해 왔습니다." |
에너지바우처가 확대된 만큼 혜택이 구석구석 돌아가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볼까요?
우선, 지은 지 50년이 넘은 낡은 쪽방입니다.

임주현 / 취재기자 Q. 여기 날씨 추울 때는 굉장히 차갑겠는데요? 바닥이. 김국웅(84) / 에너지바우처 지급 대상 A. 난방 트는 건 뭐 없어요. 이거 전기장판만 (틀어요) Q. 아, 난방은 아예 없고 이 전기장판 하나로만 하시는 거예요? A. 예. 어제 같은 날(영하 2도)은 방이 굉장히 차가웠어요. 어제같이 추우면 방에 들어가기가 좀 힘들죠. Q. 영하 10도 넘어가고 그러면 (실내) 공기가 차갑지 않아요? A. 영하 10도 넘어가면 차갑지. 그러면 전기장판 이걸 좀 (온도 조절을) 높게 해요. |
이번엔 20년 된 임대아파트 단지입니다.

임주현 / 취재기자 Q. 여기가 지역난방인가요? 공정희(89) / 에너지바우처 지급 대상 A. 가스, 도시가스요. Q. 여기 겨울에 춥진 않으세요? A. 전기장판 안 쓰면 궁둥이가 시려서 안 돼. Q. 아, 여기 난방하셔도 조금 추우니까? A. 추우니까. 항상 전기장판을 켜놓고 살아요 Q. 아니, 그런데 지금 (전기장판) 켜놓으신 거예요? A. 앞쪽만 조금 약하게, 아주 약하게 |
쪽방에서 사는 할아버지와 임대아파트에서 사는 할머니.
에너지바우처 금액을 어느 쪽이 더 많이 받을까요?
냉·난방비를 합쳐 1년에 31만 200원.
거주 환경이 크게 차이가 나지만 지원액은 같습니다.
또 하나 들여다보겠습니다.
월 소득 120만 원인 ‘생계급여 수급자’와 중증질환자가 생활하는 2인 가구,
그리고, 월 소득 250만 원에 ‘교육급여’를 받으며 임산부를 둔 3인 가구가 있습니다.
이번엔 어떨까요?
교육급여를 받는 3인 가구가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더 많은 지원을 받습니다.
왜 그럴까요?
지원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면 세대원 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소득의 절반을 월세로 지출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고 해도 에너지바우처를 못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65살 미만 1인 가구라면 말이죠.
에너지 바우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는 ‘소득 기준’ 외에 노인, 영유아, 장애인 등 ‘세대원 특성 기준’도 충족해야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지원 조건 때문일까요?
소득 기준을 통과하고도 2020년과 2021년엔 반 이상이, 지난해에도 30% 이상이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누군가는 지원이 없거나 부족하고, 다른 누군가는 지원액을 다 쓰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집니다.
‘사각지대’가 생겨나는 겁니다.
홍혜란 /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총장 "(에너지 빈곤층이면) 못 받는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미 책정된 예산, 남으면 오히려 문제가 될 수가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빈곤 가구를 지원하기로 했으면 정책이 잘 실현돼서 받을 수 있게끔 다 지원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
더욱이 난방비의 경우 연료별 차이도 지원액 수준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연탄이든 도시가스든 가격이 급등해 부담이 늘어도 지원액은 같습니다. 반대로, 연료 가격이 떨어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지역 간 에너지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농촌은 도시보다 지역난방이나 도시가스 기반 시설이 부족해 등유나 연탄, LPG 이용 비율이 높은데 유효열량 대비 단가가 상대적으로 비싸 부담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민 /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왜 도시가스가 공급되고 있지 않느냐를 보면, 여기에는 땅이 넓고 주민의 수가 적으면 도시가스 공사 금액이 더 올라가요. 그런데도 억지로 도시가스를 공사해야 된다? 이건 비효율적이잖아요. 에너지바우처 가격을 도시가스 공급 지역보다 더 높게 더 많이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인 거죠." |
에너지바우처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에너지바우처를 받고도 실제 사용하지 않는 금액이 최근 2년 연속으로 천억 원을 넘었고, 4년 새 10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국고로 반납하는 예산이 40%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대상자 가운데 사용 방법을 잘 모르는 노인과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많아 바우처 사용이 쉽지 않기 때문으로 추정되는데요.
정부는 아직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도헌 /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효율지원팀장 "저희도 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긴 합니다. 먼저 에너지바우처 수급 가구의 상당 부분이 노인가구와 장애인 가구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가구원별로 사용하는 에너지 사용 환경(주거 환경)의 차이, 이것도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미사용률이 나타나는 걸로 보이고 있는데..." |
이 때문에 정부가 예산과 지원 범위만 확대할 게 아니라 맞춤형 지원을 통해 덜 줘도 될 곳은 덜 주고, 더 줘야 할 곳에 더 주는 등 복지 예산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박광수 박사 / 숭실대 에너지스쿨 "이제 그 부분이 참 아쉬운 부분 중에 하나인데요. 지금 에너지바우처가 도입된 지 10년이 가까워 오는데, 아직 지원 기준 산정할 때 적용하는 원칙이나 기준이 제대로 정립이 돼 있지 않습니다." |
문제는 누가 더 절실한 지원 대상인지를 파악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겁니다.
우선 에너지 빈곤 실태를 면밀히 파악해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관련 조사가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이와는 달리, 일부 국가에선 이른바 ‘에너지 빈곤 지표’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2013년부터 소득과 에너지 지출 규모, 주거환경평가 등을 고려한 ‘에너지 빈곤 지표’를 채택했고 유럽연합도 관련 지표를 개발해 배포하고 있습니다.
홍혜란 /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총장 "지금은 에너지 전략, 에너지 문제가 기후 문제하고 바로 연결이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에너지 빈곤 지표에 에너지 효율 쪽이 우선 들어가고 지표를 좀 다르게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에너지 빈곤 지표라는 것이 좀 만들어지고, 이후에 정책 설계가 좀 새롭게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 같은 지적이 잇따르자, 우리나라도 내년부터 실태조사를 실시할 전망입니다.
김도헌 /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 효율지원팀장 "현재로서는 에너지 빈곤을 파악하거나 구체적으로 차등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기초적인 자료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2026년부터 에너지복지 실태조사를 실시할 예정인데요. 이러한 전국 단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서 에너지 빈곤에 따른 차등 지원 여부에 대해서도 검토를 해 나갈 예정입니다." |

전문가들은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중·장기적인 대책도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박광수 박사 / 숭실대 에너지스쿨 "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큰 축의 하나인 탄소중립 정책과도 일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는 우리가 효율 개선 지원을 보다 좀 강조해야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상민 /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은 단기적으로는 비용 지출처럼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효율 개선을 통해서 얻어지는 에너지 절감 효과가 더 좋은 에너지 가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굉장히 필요한 거죠." |
지난 10년간, 에너지 빈곤층의 큰 버팀목이 돼 온 에너지바우처.
권옥녀(62) / 남태령 전원마을 주민 "제가 여기 올 때는 냉골에서 그냥 사시는 분들이 엄청 많았어요. 근데 지금은 이제 연탄을 주시니까 그나마도 겨울에 냉골이다 할 정도는 아니니까 감사하죠." |
하지만 기후 변동성이 커지면서, 에너지 비용은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KBS 뉴스 "하루 만에 기온이 15도 이상 뚝 떨어졌습니다." "이런 기후 변동성이 큰 날씨는 매년 잦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
그래서 에너지복지 제도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이 어느 때보다 시급한 상황.
에너지 경쟁력을 높이면서, 지속 가능한 에너지복지를 실현할 ‘고차방정식’이 우리 사회의 숙제로 남았습니다.
홍혜란 /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총장 "예전에는 교육만 백년지대계라고 했는데, 에너지 정책도 정말로 그렇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더더욱 중요성이 느껴지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이 듭니다." |
#난방비 #냉방비 #에너지바우처 #에너지 #기후변화 #복지 #기초생활 #취약계층 #날씨
취재: 임주현
촬영감독: 강우용
촬영기자: 김대원, 김성현
편집: 김태형
그래픽: 장수현
리서처: 한혜민
조연출: 유화영 심은별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더 보다] 따뜻할 권리-‘에너지 빈곤층’을 지켜라
-
- 입력 2025-02-16 23:13:21
KBS 뉴스 “하루 만에 20㎝ 넘는 습기 많은 눈이 내리면서 축사와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내렸고..." 피해 농민 “눈이 이 정도로 와서 하우스가 무너질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정말로요” |
2025.1.25 “오늘은 포근함마저 감도는 하루였습니다” 2025.1.29 “내일 서울의 아침 기온은 영하 9도까지 내려가겠고 체감온도는 더 낮겠습니다” 김백민 /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날씨들이 일상화되고 있는 게 굉장히 중요한 특징이죠" |
잦은 폭설과 갑작스런 한파, 변동성 큰 기후변화의 시대
에너지 가격 상승에 ‘난방비 대란’까지...
누군가에겐 ‘죽고 사는 문제’
“난방비를 아끼려고 보일러 대신 난방용 매트 두 장을 겹쳐서 사용한 게 화재의 원인이었던 걸로 보고 있습니다” |
정부의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 해마다 큰 폭 증가
수혜 대상, 월등한 ‘노인 비중’…수급자는 ‘증가세’
취약계층의 ‘따뜻할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는가?

Q. 여기 한 몇 년 된 집이죠, 여기? A. 26년, 내가 여기서 26년. Q. 연탄불로 (장사) 하시는 이유가 있으세요? A. 연탄불로 고기 구우면 맛있다고 해서 그냥 시작했어요. 손님들이 연탄(구이)가 맛있다고 이렇게 찾아오시니까 |

불 관리가 쉽지 않지만, 손님들이 찾는 맛을 고집하며 ‘연탄불구이’ 맛집으로 소문난 노포입니다.
김성철(50대) / 손님 "(저희는) 모든 음식을 연탄불에 해 먹던 세대라, 그 향을 아직도 못 잊는 거죠." |
예전 대한민국 대다수 가정의 월동 연료였던 연탄.
이제는 이런 음식점이 아니면 일상에선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서울 서초구의 한 마을.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대부분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동네입니다.
위현진 팀장 / 서울 연탄은행 "저는 오늘 연탄 나눔 활동을 같이 하게 된 서울 연탄은행의 위현진 팀장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
주민 대부분은 저소득층 노인.
정부 지원과 민간 단체의 후원이 없으면 겨울나기가 쉽지 않은 곳입니다.
이날 모인 자원봉사자는 20여 명, 저도 한몫 거들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코스가 그나마 좀 가까운 쪽이라서 1시간 넘어가면 끝날 것 같아요. 각오는 되셨나요?" 임주현 / 취재기자 "예, 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
주민들한테 전달할 연탄은 모두 천 장.
세 가구의 몫이지만, 사실 겨우내 한 가구가 쓰기에도 넉넉지 않은 양입니다.

마을 주민 "바람 휙 불면은 연탄이 금방 타 버려요. 그래서 하루에 막 10장 내지는 12장씩도 들어가요." |
배달료까지 더하면 이미 연탄 한 장에 천 원을 웃도는 게 현실.
어느새 연탄은 저소득층에도 부담스러운 연료가 됐습니다.
허기복 / 밥상공동체·연탄은행 대표 "연탄 사용하는 분들의 평균 연령이 80이 넘습니다. 월 소득이 35만 원에서 50만 원 미만이에요. 이분들이 또 자가가 아니고 월세를 냅니다. 연탄을 제때 돈이 없어서 구입을 못 하니까 이렇게 자원봉사나 후원을 같이해서 할 수밖에 없어서..." |
더욱이 열악한 주거 환경에 에너지 효율은 더 떨어집니다.
난방비가 더 들어가는 악순환이 빚어집니다.

이춘자(82) / 마을 주민 여기가...여기 같은데 임주현 / 취재기자 Q. 수도관이요? A. 네, 여기서 이렇게 묻혔어요. Q. 땅바닥 밑으로? A. 네, 시멘트를 발랐지 이번에. 이거 한 번 동파했어. 이거 터져 가지고 Q. 언제요? A. 한 3년 전에 Q. 이렇게 담요 깔아 놓으면 확실히 좀 효과가 있나 보죠? A. 그러고부터는 안 얼었어. 한 4년, 4년을 이러고 살아. 그래서 여기까지는 항상 깔아야 해. |

허기복 / 밥상공동체·연탄은행 대표 "(연탄 난방 규모가) 7만 4천 가구가 조금 넘었습니다. 주거 환경이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든지, 또 고지대 달동네라든지 이렇다 보니까 결국에는 다른 대체 에너지를 못 쓰고 연탄을 땔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현실과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다..." |
에너지 빈곤층.
소득의 10% 이상을 연료비로 지불해야 하는 에너지 취약계층을 가리키는 말인데요. 전국에 150만 가구가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겨울철 매서운 한파에 고령이나 장애가 있는 에너지 빈곤층에게 난방비는 그야말로 ‘죽고 사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KBS 뉴스 "온수매트 위에 전기장판까지 올려놓았다가 과열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난방비를 아끼려고 켜 놓았던 낚시용 버너에 불이 붙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

난방비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때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2배 가까이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연구진은 난방비에 부담을 느낀 사람들이 난방기 사용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에너지를 보편적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법이 규정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입니다.
박광수 박사 / 숭실대 에너지스쿨 (전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에너지가 필수재이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의 에너지 소비를 국가가 보장해 주는 거는 국가의 의무로 볼 수가 있는 거죠. 저소득 취약계층 같은 경우는 겨울철에 오히려 소득이 감소하는 특성을 보이거든요." |
이에 따라 정부는 다양한 에너지복지 사업을 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게 바로 에너지바우처입니다.
에너지 취약계층의 냉난방 비용을 보조하는 제도로, 시행된 지 올해로 10년째입니다.
지원액이 담긴 카드로 연료를 직접 구입하거나, 요금 고지서에서 지원액이 자동 차감되는 방식입니다.

특히 3년 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에너지바우처 예산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지원 범위도 확대됐는데, 수혜자의 78%는 노인과 장애인 가구입니다.
김도헌 /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효율지원팀장 "폭염이나 한파와 같은 이상기후가 일상화되고 있고, 에너지 요금이 또 단계적으로 인상되면서 기후 위기로부터 취약계층을 두텁고 폭넓게 보호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지원 대상과 지원 단가를 확대해 왔습니다." |
에너지바우처가 확대된 만큼 혜택이 구석구석 돌아가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볼까요?
우선, 지은 지 50년이 넘은 낡은 쪽방입니다.

임주현 / 취재기자 Q. 여기 날씨 추울 때는 굉장히 차갑겠는데요? 바닥이. 김국웅(84) / 에너지바우처 지급 대상 A. 난방 트는 건 뭐 없어요. 이거 전기장판만 (틀어요) Q. 아, 난방은 아예 없고 이 전기장판 하나로만 하시는 거예요? A. 예. 어제 같은 날(영하 2도)은 방이 굉장히 차가웠어요. 어제같이 추우면 방에 들어가기가 좀 힘들죠. Q. 영하 10도 넘어가고 그러면 (실내) 공기가 차갑지 않아요? A. 영하 10도 넘어가면 차갑지. 그러면 전기장판 이걸 좀 (온도 조절을) 높게 해요. |
이번엔 20년 된 임대아파트 단지입니다.

임주현 / 취재기자 Q. 여기가 지역난방인가요? 공정희(89) / 에너지바우처 지급 대상 A. 가스, 도시가스요. Q. 여기 겨울에 춥진 않으세요? A. 전기장판 안 쓰면 궁둥이가 시려서 안 돼. Q. 아, 여기 난방하셔도 조금 추우니까? A. 추우니까. 항상 전기장판을 켜놓고 살아요 Q. 아니, 그런데 지금 (전기장판) 켜놓으신 거예요? A. 앞쪽만 조금 약하게, 아주 약하게 |
쪽방에서 사는 할아버지와 임대아파트에서 사는 할머니.
에너지바우처 금액을 어느 쪽이 더 많이 받을까요?
냉·난방비를 합쳐 1년에 31만 200원.
거주 환경이 크게 차이가 나지만 지원액은 같습니다.
또 하나 들여다보겠습니다.
월 소득 120만 원인 ‘생계급여 수급자’와 중증질환자가 생활하는 2인 가구,
그리고, 월 소득 250만 원에 ‘교육급여’를 받으며 임산부를 둔 3인 가구가 있습니다.
이번엔 어떨까요?
교육급여를 받는 3인 가구가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더 많은 지원을 받습니다.
왜 그럴까요?
지원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면 세대원 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소득의 절반을 월세로 지출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고 해도 에너지바우처를 못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65살 미만 1인 가구라면 말이죠.
에너지 바우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는 ‘소득 기준’ 외에 노인, 영유아, 장애인 등 ‘세대원 특성 기준’도 충족해야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지원 조건 때문일까요?
소득 기준을 통과하고도 2020년과 2021년엔 반 이상이, 지난해에도 30% 이상이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누군가는 지원이 없거나 부족하고, 다른 누군가는 지원액을 다 쓰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집니다.
‘사각지대’가 생겨나는 겁니다.
홍혜란 /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총장 "(에너지 빈곤층이면) 못 받는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미 책정된 예산, 남으면 오히려 문제가 될 수가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빈곤 가구를 지원하기로 했으면 정책이 잘 실현돼서 받을 수 있게끔 다 지원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
더욱이 난방비의 경우 연료별 차이도 지원액 수준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연탄이든 도시가스든 가격이 급등해 부담이 늘어도 지원액은 같습니다. 반대로, 연료 가격이 떨어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지역 간 에너지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농촌은 도시보다 지역난방이나 도시가스 기반 시설이 부족해 등유나 연탄, LPG 이용 비율이 높은데 유효열량 대비 단가가 상대적으로 비싸 부담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민 /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왜 도시가스가 공급되고 있지 않느냐를 보면, 여기에는 땅이 넓고 주민의 수가 적으면 도시가스 공사 금액이 더 올라가요. 그런데도 억지로 도시가스를 공사해야 된다? 이건 비효율적이잖아요. 에너지바우처 가격을 도시가스 공급 지역보다 더 높게 더 많이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인 거죠." |
에너지바우처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에너지바우처를 받고도 실제 사용하지 않는 금액이 최근 2년 연속으로 천억 원을 넘었고, 4년 새 10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국고로 반납하는 예산이 40%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대상자 가운데 사용 방법을 잘 모르는 노인과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많아 바우처 사용이 쉽지 않기 때문으로 추정되는데요.
정부는 아직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도헌 /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효율지원팀장 "저희도 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긴 합니다. 먼저 에너지바우처 수급 가구의 상당 부분이 노인가구와 장애인 가구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가구원별로 사용하는 에너지 사용 환경(주거 환경)의 차이, 이것도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미사용률이 나타나는 걸로 보이고 있는데..." |
이 때문에 정부가 예산과 지원 범위만 확대할 게 아니라 맞춤형 지원을 통해 덜 줘도 될 곳은 덜 주고, 더 줘야 할 곳에 더 주는 등 복지 예산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박광수 박사 / 숭실대 에너지스쿨 "이제 그 부분이 참 아쉬운 부분 중에 하나인데요. 지금 에너지바우처가 도입된 지 10년이 가까워 오는데, 아직 지원 기준 산정할 때 적용하는 원칙이나 기준이 제대로 정립이 돼 있지 않습니다." |
문제는 누가 더 절실한 지원 대상인지를 파악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겁니다.
우선 에너지 빈곤 실태를 면밀히 파악해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관련 조사가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이와는 달리, 일부 국가에선 이른바 ‘에너지 빈곤 지표’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2013년부터 소득과 에너지 지출 규모, 주거환경평가 등을 고려한 ‘에너지 빈곤 지표’를 채택했고 유럽연합도 관련 지표를 개발해 배포하고 있습니다.
홍혜란 /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총장 "지금은 에너지 전략, 에너지 문제가 기후 문제하고 바로 연결이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에너지 빈곤 지표에 에너지 효율 쪽이 우선 들어가고 지표를 좀 다르게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에너지 빈곤 지표라는 것이 좀 만들어지고, 이후에 정책 설계가 좀 새롭게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 같은 지적이 잇따르자, 우리나라도 내년부터 실태조사를 실시할 전망입니다.
김도헌 /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 효율지원팀장 "현재로서는 에너지 빈곤을 파악하거나 구체적으로 차등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기초적인 자료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2026년부터 에너지복지 실태조사를 실시할 예정인데요. 이러한 전국 단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서 에너지 빈곤에 따른 차등 지원 여부에 대해서도 검토를 해 나갈 예정입니다." |

전문가들은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중·장기적인 대책도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박광수 박사 / 숭실대 에너지스쿨 "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큰 축의 하나인 탄소중립 정책과도 일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는 우리가 효율 개선 지원을 보다 좀 강조해야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상민 /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은 단기적으로는 비용 지출처럼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효율 개선을 통해서 얻어지는 에너지 절감 효과가 더 좋은 에너지 가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굉장히 필요한 거죠." |
지난 10년간, 에너지 빈곤층의 큰 버팀목이 돼 온 에너지바우처.
권옥녀(62) / 남태령 전원마을 주민 "제가 여기 올 때는 냉골에서 그냥 사시는 분들이 엄청 많았어요. 근데 지금은 이제 연탄을 주시니까 그나마도 겨울에 냉골이다 할 정도는 아니니까 감사하죠." |
하지만 기후 변동성이 커지면서, 에너지 비용은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KBS 뉴스 "하루 만에 기온이 15도 이상 뚝 떨어졌습니다." "이런 기후 변동성이 큰 날씨는 매년 잦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
그래서 에너지복지 제도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이 어느 때보다 시급한 상황.
에너지 경쟁력을 높이면서, 지속 가능한 에너지복지를 실현할 ‘고차방정식’이 우리 사회의 숙제로 남았습니다.
홍혜란 /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총장 "예전에는 교육만 백년지대계라고 했는데, 에너지 정책도 정말로 그렇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더더욱 중요성이 느껴지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이 듭니다." |
#난방비 #냉방비 #에너지바우처 #에너지 #기후변화 #복지 #기초생활 #취약계층 #날씨
취재: 임주현
촬영감독: 강우용
촬영기자: 김대원, 김성현
편집: 김태형
그래픽: 장수현
리서처: 한혜민
조연출: 유화영 심은별
-
-
임주현 기자 leg@kbs.co.kr
임주현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