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싱’ 우려 덜었지만 ‘정상외교’ 한계 뚜렷…트럼프는 바쁘고 권한대행은 힘이 없다

입력 2025.02.17 (16:27) 수정 2025.02.1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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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고 약 한 달 만에 한미 외교장관이 처음 만났습니다. 외교부는 늦어도 이달 초에는 미국에 건너가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진행하려고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뮌헨안보회의 참석을 계기로 겨우 한미 외교장관이 마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외교가의 가장 큰 불안은 북핵 문제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부터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가지겠다며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지칭했고, 피터 헤그세스 신임 국방장관 후보자도 청문회에서 북한을 핵보유국(status as a nuclear power)이라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한국을 '패싱'한 채 북한과 빠른 속도로 대화를 시작하거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 동결 수준의 '스몰 딜'을 할 가능성이 우려됐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고위급 협의를 진행하고 싶었지만 갓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는 너무 바빴고, 권한대행 체제의 한국은 힘이 없었습니다.

한미 현지시각 회담 (현지시각 15일, 독일 뮌헨)한미 현지시각 회담 (현지시각 15일, 독일 뮌헨)

■ 북한 비핵화·확장억제 강화 확인…'패싱' 우려는 덜었다

현지시각 15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양국 장관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양국의 목표임을 재확인했습니다. 이는 이어진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의 공동성명에서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공식화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미국 측이 몇 번이나 강조했다면서 "이 정도면 믿어야 한다는 인식이 들 정도로 확고하게 얘기했다"고도 말했습니다. 이는 향후 미국이 앞으로 몇달 간 대북 정책의 틀을 짤 때 한국을 패싱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미국은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 공동성명에서 "핵 역량을 포함한 필적할 수 없는 미국의 군사력으로 뒷받침되는 대한민국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방위 공약이 철통같음을 재강조했다"고 적었습니다. 이 같은 표현은 기존에 나왔던 외교적 수사보다 더 강도가 높은 것입니다. 방위 공약이 철통 같다는 표현은 관용적으로 많이 사용됐지만 '필적할 수 없는 미국의 군사력'이란 표현은 잘 사용되지 않던 표현입니다. 그만큼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미국이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미국은 확장 억제 협력을 강화하겠단 의지를 재확인했는데, 이 표현도 주목할 만합니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는 '워싱턴 선언'을 통해 확장 억제를 통한 대북 억제력을 약속하고 그 산물로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만들어 4차례 넘게 운용을 논의해 왔습니다. 트럼프 2기 들어 기껏 만들어놓은 NCG도 무력화되고 워싱턴 선언 또한 힘을 잃는 것 아니냔 우려가 컸는데, 이런 우려를 어느 정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 (현지시각 15일, 독일 뮌헨)한미일 외교장관 회의 (현지시각 15일, 독일 뮌헨)

■ '중국 견제' 동참 수위는 더 커져…고민 깊어지는 한국

미국은 대신 한국에 '중국 견제'에 더 선명하게 동참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한미일 외교장관은 회의 직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대만의 적절한 국제기구에의 의미 있는 참여에 대한 지지"를 처음 표명했습니다.

한국은 이 표현에 '적절한'이 들어갈 수 있도록 공을 들인 거로 전해집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양안 문제와 관련해 '하나의 중국' 입장을 존중한다는 점이 바뀐 것은 아니라며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는 국제기구에 대해 참여 가능성을 거론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 정부로선 한미동맹이나 북핵처럼 당면한 현안이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받아낼 건 받아내고 또 줄 수 있는 건 주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다른 국가가 타이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민감해하기 때문에, 이 공동성명을 두고 중국이 반발할 수 있습니다. 최근 중국과의 관계 개선 모멘텀을 이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는 우리 정부로선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올해 11월 APEC 정상회의 때 시진핑 주석 방한과 한중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 정부로서는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미중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독일에서 돌아온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곧바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로 가서 G20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하는데 이때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을 가질지 주목됩니다.


■ 루비오 "최 권한대행 체제 신뢰"…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는 언제?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이고 트럼프 2기 행정부 인사들은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사태와 그 이후의 탄핵 진행 절차와 구속 등 상황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미 외교장관이 처음으로 통화를 했을 때도 입장을 내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던 전임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은 '대단히 잘못된 오판'이라고 공공연히 말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민주주의 가치를 우선시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던 거로 분석됩니다.

그러던 미국이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의 상황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조 장관과의 양자 회담에서 "미국으로서는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으며, 각국 국내 상황과 무관하게 신뢰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국무부도 보도자료를 통해 "루비오 장관은 한국의 최상목 권한대행과 한미 동맹의 강인함에 대한 신뢰를 재차 밝혔다"고 강조했습니다.

조태열 장관은 루비오 장관에게 최상목 권한대행과 트럼프 장관과의 첫 통화 및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 거로 전해졌습니다.

외교 소식통은 "통화를 준비 중이긴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측이 워낙 일정이 많아서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17년 트럼프 1기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취임 9일 만에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지만, 최상목 권한대행은 취임 한 달이 다 되도록 아직 전화 통화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상목 대행이 '대행의 대행'이라는 위치이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트럼프 1기 때 황교안 권한대행도 전화 통화는 했지만, 정상회담을 하지 못했고, 당시 한미 정상 간에 중요한 의사 정책 결정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은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뒤 미국에 건너가 처음 이뤄졌습니다.

사업가 기질이 강한 트럼프 대통령은 불확실한 상황의 권한대행보다는 불확실성이 거둬진 이후의 리더십과 직접 소통하려 할 거란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일단 한미 외교장관이 만나 나누어야 할 큰 틀의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의 물꼬를 텄지만, 리더십 부재의 상황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정상 간 외교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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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고 약 한 달 만에 한미 외교장관이 처음 만났습니다. 외교부는 늦어도 이달 초에는 미국에 건너가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진행하려고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뮌헨안보회의 참석을 계기로 겨우 한미 외교장관이 마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외교가의 가장 큰 불안은 북핵 문제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부터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가지겠다며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지칭했고, 피터 헤그세스 신임 국방장관 후보자도 청문회에서 북한을 핵보유국(status as a nuclear power)이라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한국을 '패싱'한 채 북한과 빠른 속도로 대화를 시작하거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 동결 수준의 '스몰 딜'을 할 가능성이 우려됐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고위급 협의를 진행하고 싶었지만 갓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는 너무 바빴고, 권한대행 체제의 한국은 힘이 없었습니다.

한미 현지시각 회담 (현지시각 15일, 독일 뮌헨)
■ 북한 비핵화·확장억제 강화 확인…'패싱' 우려는 덜었다

현지시각 15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양국 장관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양국의 목표임을 재확인했습니다. 이는 이어진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의 공동성명에서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공식화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미국 측이 몇 번이나 강조했다면서 "이 정도면 믿어야 한다는 인식이 들 정도로 확고하게 얘기했다"고도 말했습니다. 이는 향후 미국이 앞으로 몇달 간 대북 정책의 틀을 짤 때 한국을 패싱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미국은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 공동성명에서 "핵 역량을 포함한 필적할 수 없는 미국의 군사력으로 뒷받침되는 대한민국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방위 공약이 철통같음을 재강조했다"고 적었습니다. 이 같은 표현은 기존에 나왔던 외교적 수사보다 더 강도가 높은 것입니다. 방위 공약이 철통 같다는 표현은 관용적으로 많이 사용됐지만 '필적할 수 없는 미국의 군사력'이란 표현은 잘 사용되지 않던 표현입니다. 그만큼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미국이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미국은 확장 억제 협력을 강화하겠단 의지를 재확인했는데, 이 표현도 주목할 만합니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는 '워싱턴 선언'을 통해 확장 억제를 통한 대북 억제력을 약속하고 그 산물로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만들어 4차례 넘게 운용을 논의해 왔습니다. 트럼프 2기 들어 기껏 만들어놓은 NCG도 무력화되고 워싱턴 선언 또한 힘을 잃는 것 아니냔 우려가 컸는데, 이런 우려를 어느 정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 (현지시각 15일, 독일 뮌헨)
■ '중국 견제' 동참 수위는 더 커져…고민 깊어지는 한국

미국은 대신 한국에 '중국 견제'에 더 선명하게 동참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한미일 외교장관은 회의 직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대만의 적절한 국제기구에의 의미 있는 참여에 대한 지지"를 처음 표명했습니다.

한국은 이 표현에 '적절한'이 들어갈 수 있도록 공을 들인 거로 전해집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양안 문제와 관련해 '하나의 중국' 입장을 존중한다는 점이 바뀐 것은 아니라며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는 국제기구에 대해 참여 가능성을 거론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 정부로선 한미동맹이나 북핵처럼 당면한 현안이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받아낼 건 받아내고 또 줄 수 있는 건 주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다른 국가가 타이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민감해하기 때문에, 이 공동성명을 두고 중국이 반발할 수 있습니다. 최근 중국과의 관계 개선 모멘텀을 이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는 우리 정부로선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올해 11월 APEC 정상회의 때 시진핑 주석 방한과 한중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 정부로서는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미중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독일에서 돌아온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곧바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로 가서 G20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하는데 이때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을 가질지 주목됩니다.


■ 루비오 "최 권한대행 체제 신뢰"…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는 언제?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이고 트럼프 2기 행정부 인사들은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사태와 그 이후의 탄핵 진행 절차와 구속 등 상황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미 외교장관이 처음으로 통화를 했을 때도 입장을 내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던 전임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은 '대단히 잘못된 오판'이라고 공공연히 말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민주주의 가치를 우선시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던 거로 분석됩니다.

그러던 미국이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의 상황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조 장관과의 양자 회담에서 "미국으로서는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으며, 각국 국내 상황과 무관하게 신뢰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국무부도 보도자료를 통해 "루비오 장관은 한국의 최상목 권한대행과 한미 동맹의 강인함에 대한 신뢰를 재차 밝혔다"고 강조했습니다.

조태열 장관은 루비오 장관에게 최상목 권한대행과 트럼프 장관과의 첫 통화 및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 거로 전해졌습니다.

외교 소식통은 "통화를 준비 중이긴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측이 워낙 일정이 많아서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17년 트럼프 1기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취임 9일 만에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지만, 최상목 권한대행은 취임 한 달이 다 되도록 아직 전화 통화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상목 대행이 '대행의 대행'이라는 위치이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트럼프 1기 때 황교안 권한대행도 전화 통화는 했지만, 정상회담을 하지 못했고, 당시 한미 정상 간에 중요한 의사 정책 결정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은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뒤 미국에 건너가 처음 이뤄졌습니다.

사업가 기질이 강한 트럼프 대통령은 불확실한 상황의 권한대행보다는 불확실성이 거둬진 이후의 리더십과 직접 소통하려 할 거란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일단 한미 외교장관이 만나 나누어야 할 큰 틀의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의 물꼬를 텄지만, 리더십 부재의 상황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정상 간 외교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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