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원가는 얼마? 국고 투입 반대하는 정부의 ‘모럴 해저드’ [다시 연금 개혁]③

입력 2025.02.27 (15:00) 수정 2025.02.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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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원가를 파악하기에 앞서 걱정이 앞선다. 공적연금은 사적연금과 달라 적립식 연금이 아니다. 내가 낸 보험료에 이자가 붙어 은퇴 후 연금급여로 돌려받는 게 아니라, 정부가 정한 계산식에 맞춰 보험료를 내고 법적으로 정해진 연금(현행 소득대체율 40%)을 받는 '확정급여형'이기 때문이다. 같은 돈을 냈더라도 일찍 사망한 사람과 100세 이상 장수한 사람의 연금 차이는 수억 원의 차이가 날 수도 있다.

공적연금을 적립식처럼 이해하고 계산하려고 하는 건 맞지 않다. 모든 사람이 득실을 따지기 시작하면 이 제도는 존재하기 힘들다. 그래서 정부가 직접 운영하고 가입을 강제하는 사회보험인 것이다. 일반 국민들이 국민연금에 대해 불만을 갖는 여러 문제도 공적 연금인 국민연금을 사적 연금보험처럼 해석해 빚어지는 경우가 많다.

■ 소득대체율 40%짜리 국민연금의 적정 보험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고 투입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국민연금의 원가는 얼마고 적정 보험료는 얼마일까 한번 계산해 보기로 하자. 현행 국민연금은 자기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서 40년간 납입하면 만 65세부터 생애 평균소득의 40%(소득대체율)를 연금으로 받게 된다. 5차 재정추계까지는 기금운용수익률을 4.5%로 설정했다. 이럴 경우 내는 돈보다 받는 돈이 많은 게 사실이다. 받은 보험료보다 미래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돌려주기로 한 돈이 더 많은데 이를 '미적립 부채'라고 부른다.

그럼 40% 소득대체율을 전제로 내는 돈과 받는 돈이 같아지는 손익분기점 보험료는 얼마일까? 이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기금운용수익률이 또 중요한데, 5차 재정추계는 4.5%, 정부 개혁안은 5.5%,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의 416 개혁안은 6% 수익률을 목표로 한다. 국민연금이 공표하는 2023년 말 기금운용수익률은 5.92%. 최근 미국 증시 호조로 2024년 말 기준 누적 수익률은 약 6.4%를 기록하고 있다.

기금운용수익률 4.5%를 가정한 국민연금의 손익분기 보험료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보고서 중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KDI 이강구·신승룡 연구원은 완적적립식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현재 국민연금의 '미적립부채'는 정부가 떠안고, 2006년생 가입자부터는 완전적립식인 신연금제도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2006년생부터 이른바 '제로 세팅'을 해 새로운 연금을 시작하자는 건데 이때 계산한 보험료가 15.5% 였다.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는 또 지난해 출간한 '국민을 위한 국민연금은 없다.'라는 책에서 기금운용수익률을 5.5%와 6.0%일 때를 가정해 적정 보험료를 계산했는데, 각각 12.1%와 10.1%가 손익분기를 이루는 적정 보험료라고 밝혔다. 김우창 교수가 지난 21대 국회 연금특위에 3115 개혁안을 보고하면서 보험료를 12%로 올리자고 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한다.

기금 수익률을 5.5%로 계산해도 적정 보험료가 12%인데, 현재 합의에 근접하고 있는 보험료율은 13%이다. 그럼 받을 돈보다 내는 돈이 커지는 셈인데, 그렇다면 소득대체율을 45% (기금 영원히 유지) 또는 50%(기금 75년 유지)로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현재까지 쌓여 있는 미적립 부채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데, 이는 법적으로 국민연금 사업을 관장하는 정부(보건복지부 장관)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국민연금에 국고를 써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한 가지이다. KDI도 미적립부채를 정부 책임으로 보고 있다.

■ 조규홍 복지부 장관, "지속 가능한 국민연금 만들려면 보험료 18.1% 내야"

국회 대정부질문 중에서 (2025.2.14)

◯안상훈 의원: 장관님, 우리나라 연기금이 선진국들처럼 적어도 70년 유지되게끔 하려면 소득대체율 40%를 상정할 때 보험료를 몇 %까지 올려야 됩니까?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적립 배율 1배 유지가 필요하고요. 그를 위해서는 일시에 18.1%까지 인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상훈 의원: 장관님, 국민연금에 무차별적으로 국고 투입하자는 이런 발상 어떻게 보십니까?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국고 투입을 하자는 것은 당장 현세대의 보험료 부담은 낮출 수가 있지만... (중략)... 국고 투입은 역진적인 면이 있어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연금도 사회보험이기 때문에 보험 원리에 맞춰서 보험료율과 급여 수준 조정으로 풀어 나가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지난 2월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소득대체율 40%짜리 국민연금을 70년 이상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보험료를 18.1%로 즉시 올려야 한다고 답했다. 기금운용수익률 4.5%를 가정해서 한 대답이다. 그렇다면 KDI가 계산한 보험료보다 3%나 더 많은 돈을 보험료로 내라는 뜻이다. 조 장관은 아마도 현재의 국민연금 미적립부채를 가입자가 보험료를 더 내서 갚으라는 뜻으로 말한 것 같다.

국민연금이 도입된 1988년 이후 켜켜이 쌓인 앞 세대의 부채를 현재와 미래 가입자에게 갚으라는 셈이다. 그런데 조규홍 장관은 이어진 질의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국고 투입을 반대한다면서, 국민연금도 사회보험이기 때문에 보험의 일반 원칙인 보험료율과 급여를 조정해 풀어가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사업을 주관하는 장관이 국민연금을 일반 사보험처럼 생각하는 인식도 우려되는 부분이지만, 결국 조 장관은 '원가보다 높은 보험료'로 앞 세대가 덜 낸 보험료를 현재 이후 세대가 부담하라는 것이어서, 보험의 일반 원칙을 무너트리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 가입자인 국민은 지금껏 보건복지부가 정한 보험료를 냈고, 그에 따른 소득대체율을 미래 연금으로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연금 책임자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의 미적립 부채에 대해 정부 책임(국고 투입)을 배제하고, 가입자들끼리 해결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복지부는 또 한편으로는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 연금급여를 더 깎겠다는 개혁안을 내놓고 있다. 노인 빈곤이나 사각지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경제를 전공하고 기획재정부 출신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의 '적정 소득'보다 기금의 '재정 안정'을 훨씬 더 걱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 1,185조원....국고 투입 안 하는 정부, 연기금은 정부 마음대로?

국회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 중 (2024.10.18)

◯이주영 위원: 국고 투입에 대한 논의 자체가 지금 이번 개혁안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겁니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우리가 부실기업을 정리할 때 채권단이 들어옵니다. 채권단이 들어오면 그냥 돈을 주지 않습니다. 자구노력이 있어야 돈을 줍니다.
◯이주영 위원: 지금 부실기업은 어디고 채권단은 어디라고 지금 생각하시는 거예요?
◯김태현 국민연금공단이사장: 연금개혁을 하고 있습니다. (중략) 지금 급여를 받아 갈 분들이 어느 정도 수준의 보험료를 부담했을 때 그 모자라는 부분을 국고가……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역시 경영을 전공한 기재부와 금융위 관료 출신이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고 투입 의지를 묻는 국회의원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국민연금과 가입자를 부실기업, 정부를 채권단에 비유하는 듯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국가 사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국민연금공단의 운영비, 각종 크레딧 비용을 국민연금 기금에 떠넘기고 있다. 저소득층의 보험료 지원에도 인색해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1200만 명을 넘고 있다. 국민연금을 부실하게 만든 건 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한 정부의 탓이 제일 크다. 국민은 잘못한 게 없다.

주로 재정을 담당하던 관료들이 복지 업무를 맡으면서 국민연금의 본질이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높이거나 미적립 부채를 해소하는 문제는 가입자인 국민의 몫이라고 하면서도, 가입자들이 보험료로 모은 연기금은 정부 맘대로 쓰려고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소득보장과 재정안정의 균형을 추구’하는 국민연금의 표어‘소득보장과 재정안정의 균형을 추구’하는 국민연금의 표어

과거 IMF 이전까지 정부는 연기금을 정부의 공공사업에 투자하도록 하고 낮은 이자율로 보상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때는 국민연금 의결권을 허투루 써서 국민연금에 직접적인 손해를 입히기도 했다. 이런 불법, 편법적인 연기금 사용 뿐이 아니다. 정부는 1,000조 원이 넘는 연기금은 마음껏 정부 시책을 위해 사용하면서, 정부의 '지급 보장'이나 '국고 투입' 같은 책임에는 선을 긋고 있다.

지난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의 여파로 외환시장이 크게 동요하자, 정부는 곧바로 국민연금을 이용해 환율 방어에 나섰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수익률이나 배당이 저조한 국내 주식시장에 거액을 투자해 낮은 수익률에 만족해야 했다. 또 해마다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 상당량을 사줌으로써 정부가 낮은 이자율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모두 관료가 장악하고 있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즉 정부가 한 일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한국 정부는 국민연금에 대한 국고 투입을 세계에서 가장 적게 하고, 국민연금의 부실은 모두 가입자인 국민 책임으로 돌리면서, 1,000조 원 넘는 연기금만큼은 소중하게 지켜 계속 정책적으로 쓰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정부가 국민연금 부실 책임을 지지 않겠다면, 연기금에서도 손을 떼야 하는 게 경제의 일반 원칙이지 않을까? <끝>

2025년 대한민국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그러나 연금 개혁 논의는 18년째 제자리걸음입니다. 노인 빈곤과 미래 세대 부담 문제가 똑같이 중요하지만 이를 함께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령화와 저출산, 저성장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연금 개혁 방안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시리즈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다시 연금 개혁] 청년과 노인이 함께 신나는 국민연금

① 국고 GDP 1% 쓰면 기금 고갈 없이 45% 소득대체율 가능
② 416 개혁...연금 사각지대 없애고 청년세대에 더 유리
③ 국민연금 원가는 얼마? 국고 투입 반대하는 정부의 '모럴 해저드'
④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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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연금 원가는 얼마? 국고 투입 반대하는 정부의 ‘모럴 해저드’ [다시 연금 개혁]③
    • 입력 2025-02-27 15:00:04
    • 수정2025-02-27 15: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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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원가를 파악하기에 앞서 걱정이 앞선다. 공적연금은 사적연금과 달라 적립식 연금이 아니다. 내가 낸 보험료에 이자가 붙어 은퇴 후 연금급여로 돌려받는 게 아니라, 정부가 정한 계산식에 맞춰 보험료를 내고 법적으로 정해진 연금(현행 소득대체율 40%)을 받는 '확정급여형'이기 때문이다. 같은 돈을 냈더라도 일찍 사망한 사람과 100세 이상 장수한 사람의 연금 차이는 수억 원의 차이가 날 수도 있다.

공적연금을 적립식처럼 이해하고 계산하려고 하는 건 맞지 않다. 모든 사람이 득실을 따지기 시작하면 이 제도는 존재하기 힘들다. 그래서 정부가 직접 운영하고 가입을 강제하는 사회보험인 것이다. 일반 국민들이 국민연금에 대해 불만을 갖는 여러 문제도 공적 연금인 국민연금을 사적 연금보험처럼 해석해 빚어지는 경우가 많다.

■ 소득대체율 40%짜리 국민연금의 적정 보험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고 투입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국민연금의 원가는 얼마고 적정 보험료는 얼마일까 한번 계산해 보기로 하자. 현행 국민연금은 자기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서 40년간 납입하면 만 65세부터 생애 평균소득의 40%(소득대체율)를 연금으로 받게 된다. 5차 재정추계까지는 기금운용수익률을 4.5%로 설정했다. 이럴 경우 내는 돈보다 받는 돈이 많은 게 사실이다. 받은 보험료보다 미래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돌려주기로 한 돈이 더 많은데 이를 '미적립 부채'라고 부른다.

그럼 40% 소득대체율을 전제로 내는 돈과 받는 돈이 같아지는 손익분기점 보험료는 얼마일까? 이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기금운용수익률이 또 중요한데, 5차 재정추계는 4.5%, 정부 개혁안은 5.5%,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의 416 개혁안은 6% 수익률을 목표로 한다. 국민연금이 공표하는 2023년 말 기금운용수익률은 5.92%. 최근 미국 증시 호조로 2024년 말 기준 누적 수익률은 약 6.4%를 기록하고 있다.

기금운용수익률 4.5%를 가정한 국민연금의 손익분기 보험료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보고서 중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KDI 이강구·신승룡 연구원은 완적적립식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현재 국민연금의 '미적립부채'는 정부가 떠안고, 2006년생 가입자부터는 완전적립식인 신연금제도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2006년생부터 이른바 '제로 세팅'을 해 새로운 연금을 시작하자는 건데 이때 계산한 보험료가 15.5% 였다.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는 또 지난해 출간한 '국민을 위한 국민연금은 없다.'라는 책에서 기금운용수익률을 5.5%와 6.0%일 때를 가정해 적정 보험료를 계산했는데, 각각 12.1%와 10.1%가 손익분기를 이루는 적정 보험료라고 밝혔다. 김우창 교수가 지난 21대 국회 연금특위에 3115 개혁안을 보고하면서 보험료를 12%로 올리자고 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한다.

기금 수익률을 5.5%로 계산해도 적정 보험료가 12%인데, 현재 합의에 근접하고 있는 보험료율은 13%이다. 그럼 받을 돈보다 내는 돈이 커지는 셈인데, 그렇다면 소득대체율을 45% (기금 영원히 유지) 또는 50%(기금 75년 유지)로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현재까지 쌓여 있는 미적립 부채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데, 이는 법적으로 국민연금 사업을 관장하는 정부(보건복지부 장관)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국민연금에 국고를 써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한 가지이다. KDI도 미적립부채를 정부 책임으로 보고 있다.

■ 조규홍 복지부 장관, "지속 가능한 국민연금 만들려면 보험료 18.1% 내야"

국회 대정부질문 중에서 (2025.2.14)

◯안상훈 의원: 장관님, 우리나라 연기금이 선진국들처럼 적어도 70년 유지되게끔 하려면 소득대체율 40%를 상정할 때 보험료를 몇 %까지 올려야 됩니까?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적립 배율 1배 유지가 필요하고요. 그를 위해서는 일시에 18.1%까지 인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상훈 의원: 장관님, 국민연금에 무차별적으로 국고 투입하자는 이런 발상 어떻게 보십니까?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국고 투입을 하자는 것은 당장 현세대의 보험료 부담은 낮출 수가 있지만... (중략)... 국고 투입은 역진적인 면이 있어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연금도 사회보험이기 때문에 보험 원리에 맞춰서 보험료율과 급여 수준 조정으로 풀어 나가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지난 2월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소득대체율 40%짜리 국민연금을 70년 이상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보험료를 18.1%로 즉시 올려야 한다고 답했다. 기금운용수익률 4.5%를 가정해서 한 대답이다. 그렇다면 KDI가 계산한 보험료보다 3%나 더 많은 돈을 보험료로 내라는 뜻이다. 조 장관은 아마도 현재의 국민연금 미적립부채를 가입자가 보험료를 더 내서 갚으라는 뜻으로 말한 것 같다.

국민연금이 도입된 1988년 이후 켜켜이 쌓인 앞 세대의 부채를 현재와 미래 가입자에게 갚으라는 셈이다. 그런데 조규홍 장관은 이어진 질의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국고 투입을 반대한다면서, 국민연금도 사회보험이기 때문에 보험의 일반 원칙인 보험료율과 급여를 조정해 풀어가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사업을 주관하는 장관이 국민연금을 일반 사보험처럼 생각하는 인식도 우려되는 부분이지만, 결국 조 장관은 '원가보다 높은 보험료'로 앞 세대가 덜 낸 보험료를 현재 이후 세대가 부담하라는 것이어서, 보험의 일반 원칙을 무너트리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 가입자인 국민은 지금껏 보건복지부가 정한 보험료를 냈고, 그에 따른 소득대체율을 미래 연금으로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연금 책임자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의 미적립 부채에 대해 정부 책임(국고 투입)을 배제하고, 가입자들끼리 해결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복지부는 또 한편으로는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 연금급여를 더 깎겠다는 개혁안을 내놓고 있다. 노인 빈곤이나 사각지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경제를 전공하고 기획재정부 출신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의 '적정 소득'보다 기금의 '재정 안정'을 훨씬 더 걱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 1,185조원....국고 투입 안 하는 정부, 연기금은 정부 마음대로?

국회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 중 (2024.10.18)

◯이주영 위원: 국고 투입에 대한 논의 자체가 지금 이번 개혁안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겁니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우리가 부실기업을 정리할 때 채권단이 들어옵니다. 채권단이 들어오면 그냥 돈을 주지 않습니다. 자구노력이 있어야 돈을 줍니다.
◯이주영 위원: 지금 부실기업은 어디고 채권단은 어디라고 지금 생각하시는 거예요?
◯김태현 국민연금공단이사장: 연금개혁을 하고 있습니다. (중략) 지금 급여를 받아 갈 분들이 어느 정도 수준의 보험료를 부담했을 때 그 모자라는 부분을 국고가……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역시 경영을 전공한 기재부와 금융위 관료 출신이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고 투입 의지를 묻는 국회의원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국민연금과 가입자를 부실기업, 정부를 채권단에 비유하는 듯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국가 사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국민연금공단의 운영비, 각종 크레딧 비용을 국민연금 기금에 떠넘기고 있다. 저소득층의 보험료 지원에도 인색해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1200만 명을 넘고 있다. 국민연금을 부실하게 만든 건 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한 정부의 탓이 제일 크다. 국민은 잘못한 게 없다.

주로 재정을 담당하던 관료들이 복지 업무를 맡으면서 국민연금의 본질이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높이거나 미적립 부채를 해소하는 문제는 가입자인 국민의 몫이라고 하면서도, 가입자들이 보험료로 모은 연기금은 정부 맘대로 쓰려고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소득보장과 재정안정의 균형을 추구’하는 국민연금의 표어
과거 IMF 이전까지 정부는 연기금을 정부의 공공사업에 투자하도록 하고 낮은 이자율로 보상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때는 국민연금 의결권을 허투루 써서 국민연금에 직접적인 손해를 입히기도 했다. 이런 불법, 편법적인 연기금 사용 뿐이 아니다. 정부는 1,000조 원이 넘는 연기금은 마음껏 정부 시책을 위해 사용하면서, 정부의 '지급 보장'이나 '국고 투입' 같은 책임에는 선을 긋고 있다.

지난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의 여파로 외환시장이 크게 동요하자, 정부는 곧바로 국민연금을 이용해 환율 방어에 나섰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수익률이나 배당이 저조한 국내 주식시장에 거액을 투자해 낮은 수익률에 만족해야 했다. 또 해마다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 상당량을 사줌으로써 정부가 낮은 이자율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모두 관료가 장악하고 있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즉 정부가 한 일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한국 정부는 국민연금에 대한 국고 투입을 세계에서 가장 적게 하고, 국민연금의 부실은 모두 가입자인 국민 책임으로 돌리면서, 1,000조 원 넘는 연기금만큼은 소중하게 지켜 계속 정책적으로 쓰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정부가 국민연금 부실 책임을 지지 않겠다면, 연기금에서도 손을 떼야 하는 게 경제의 일반 원칙이지 않을까? <끝>

2025년 대한민국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그러나 연금 개혁 논의는 18년째 제자리걸음입니다. 노인 빈곤과 미래 세대 부담 문제가 똑같이 중요하지만 이를 함께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령화와 저출산, 저성장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연금 개혁 방안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시리즈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다시 연금 개혁] 청년과 노인이 함께 신나는 국민연금

① 국고 GDP 1% 쓰면 기금 고갈 없이 45% 소득대체율 가능
② 416 개혁...연금 사각지대 없애고 청년세대에 더 유리
③ 국민연금 원가는 얼마? 국고 투입 반대하는 정부의 '모럴 해저드'
④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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