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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단순한 수식으로 이해 가능하다
‘보다 간결한 편지를 쓰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그러지 못했소’라는 유명한 대사처럼, 몇 페이지에 걸쳐 엉성한 코드로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것보다는 같은 프로그램을 한 페이지로 작성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다. 엉성한 버전은 더 느리게 실행되고 더 많은 메모리를 잡아먹는다. -빌 게이츠 자서전 [소스 코드]에서 |
'더욱 간결하게 만들 것. 효율적이고 흡족할 정도로 단순해 보일 것. 그리하여 어떤 코드보다 훌륭한, 최고의 코드를 만들 것.'
대가는 어려워도 '단순하고 우아하고 우월한 것'을 추구한다. 그렇게 할 때 세상의 본질이 선명하게 드러나니까.
즉, 세상은 이해 가능하다. 빌 게이츠의 자서전 ‘소스코드’에는 세상에 대한 확신이 있다. 수학과 과학, 즉 이성의 힘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놀라운 기쁨을 준다. 게이츠는 그 '무언가 알아내는 즐거움'을 느끼며 미래와 혁신에 다가섰고, 부수적으로 경제적 보상을 받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경제라는 세상' 역시 이해 가능하고 예측 가능하다. 기준금리를 0.25% 낮추면 GDP 성장률은 0.07%p 올라간다. 금융정책의 GDP 효과다. 재정정책도 마찬가지다. 추경을 15~20조 규모로 하면 GDP가 0.2%p 올라간다. 정부가 (재정/금융) 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하면 경제는 부양된다. 수학적 모델이다. 경제도, 정책의 효과도 '단순하고 우아하고 정교하게' 예측할 수 있다.
올해 성장률 역시 같은 방식으로 예측한다. 1.5%다. 너무 낮아졌다. 그러면 자연히 따라붙는 질문, 정부가 부양하면 되지 않나? 재정, 금융정책의 효과를 더하자!
■ 진통제 처방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이 총재 답은 단순명료하다. "안 된다". 국가의 역할은 어떤 선에서 멈춰야 한다. 딱 적절한 선. 그 선을 넘어서면 부작용이 생긴다. 정부 역할은 ‘진통제’나 ‘스테로이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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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처방이 과도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 이를테면, 기준금리를 너무 많이 낮추면(금융정책) 부동산이 과열된다. 과열되면 자금이 그쪽으로만 쏠린다. 부동산 가격이 부풀어 오른다. 진짜 생산적인 투자는 일어나지 않고 아파트값만 오른다.
정부가 돈을 너무 많이 풀어도(재정정책)안된다. 멈출 수 없다. 그다음 해는 더 많이 풀어야 경제에 플러스(+)가 된다. 아니면 GDP를 깎아 먹는다. 더, 더, 더... 하다가 빵 터진다. 재정중독이다. 기축통화국도 아닌데 정부가 돈 찍어내서 혹은 빌려서 계속 쓰면 IMF 위기 같은 경제 위기가 온다. 그에게는 명료한 인과다.
그러면 딱 적절한 선은 어디인가? ‘잠재 성장률’이다. 우리 경제가 가진 가능성에 딱 맞는 선. 그 선이 어느 수준이냐? 이 총재는 2025년부터 약 3년 기준으로 1.8% 정도라고 했다. 그 수준보다 높으면 과열이고, 낮으면 침체다. 정부의 외부적 개입은 그 정도를 유지하는 노력에 그쳐야 한다.
애걔걔…. 너무 낮지 않은가... 맞다. 낮다. 그런데 현실이다. 무리하면 탈 난다. 이게 이 총재가 이해한 한국경제다. 그리고 일침을 날린다.
■ "지난 10년간 새 산업이 도입되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우리 정부가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지난 10년간 새 산업이 도입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산업이 들어서지 않고서는 성장의 정체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창조적인 파괴, 누군가는 고통을 겪는 구조조정... 이걸 감내하기 어려워서 피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2월 금통위 기자회견 당시 발언- |
'새 산업이 없어서'라는 설명에 좀 더 부연할 수 있다. 트럼프의 미국은 지금 관세 정책 등으로 우리나라 수출이 어려워지게 한다. 트럼프만 그런 게 아니고 지난 수년간 계속 그랬다. 중국은 우리가 주도하던 산업을 하나씩 잡아먹는다. 조선, 화학, 그리고 스마트폰과 반도체…. 거기에 더해 새로 생겨나는 산업(로봇청소기, 드론, AI, 전기차)은 아예 한국이 건드릴 수도 없게 한다. 다 중국 차지다. 우리 설 땅은 없다. 그래서 우리 수출은 제자리걸음 했다.
그 결과 ‘수출에 의존’한다던 우리 경제가 더 이상 수출에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역시 수학적으로 증명된다. 이 총재는 지난 3~4년간 순수출의 GDP 성장 기여도가 ‘거의 0%’이라고 했다. 수출이 안 중요해서가 아니고, 이미 우리 경쟁력이 많이 낮아져서 수출로 낙수효과 보던 시대가 지났단 거다.
새 산업이 도입되지 않아 우리 경제는 성장의 정체 국면에 들어섰다. 근본 원인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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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상징이 삼성전자다
11년간 성장이 없다. 달러 기준으로, 매출을 추적해 보면 삼성은 성장이 없는 회사가 되었다. 이미. 스마트폰은 2013년을 정점으로 하고 내려와 있다. 갤럭시 S25가 역대급 실적을 거둘 거라는 이야기가 또 나오지만, 매년 반복된 이야기다. 하드웨어에만 기대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메모리는 백척간두 위기에 있다. 기술의 본원적 경쟁력을 잃어서 SK하이닉스에 뒤처지고 있다. 영업이익으로는 이미 추월당했다. 다음 세대 HBM은 정말 내놓을 수 있을까? 회의하는 전문가가 늘고 있다. 원래 세계 최고이던 분야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다.
새 성장 동력 삼았던 ‘파운드리’는 실패했다. 100조 원을 투자해서 세계 1위 만들겠다고 이재용 회장이 직접 선언했지만, 오히려 후퇴했다. 세계 최초로 GAA 3나노 공정에 들어섰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했지만, 새로 들인 ‘큰 손님’은 0이다. 원래 있던 큰 손님 ‘퀄컴’도 TSMC에 뺏겼다. 점유율은 추락했고 TSMC와의 격차는 한참 벌어졌다.
그래서 삼성이 성장하지 않는다. 기술적으로 뒤처지고, 중국은 쫓아오고, 미국은 아시아를 견제한다. 그 결과 수출이 늘지 않는다. 국내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파급효과(분수효과)는 점점 사라진다. 삼성과 대한민국의 성장엔진이 함께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다.
미래는 물론 아직 열려있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를 기반으로 예측하면 칠흑같이 어둡다.
■삼성을 무너뜨릴 ‘자만·욕심·회피’
왜 이렇게 됐을까. 지금까지 부문별로, 또 혁신에 대한 자세로 다각도로 살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짐 콜린스를 소환해 점검해 본다.
![짐 콜린스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data/fckeditor/new/image/2025/02/27/299931740632103377.png)
짐 콜린스는 ‘거대 기업의 몰락’을 다루며 단계론을 내놨다.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 How the Mighty Fall’에서 내놓은 5단계론이다. 삼성에게선 1~3단계가 보인다. 삼성이 보이면서, 우리 경제도 보일 것이다.
①단계 자만
한때 휴대전화 시장을 장악했던 모토로라는 어떻게 망했나? 아날로그 시대에 취해 디지털이 다가오는데 알아채지 못했다. 1996년 미국 시장 60%를 차지했다가 3년 만에 17%가 된다. 짐 콜린스는 ‘기고만장했다’고 표현한다. ‘디지털이 걱정된다’는 내부 보고가 올라오자 ‘4,300만 명이나 되는 아날로그 고객이 틀렸다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걱정 시늉도 안 했다.
삼성도 오랜 성공에 취했다. 메모리에서 너무 오랜 시간 1위의 자리를 지켰다. 새로운 가능성을 경계하기보다 ‘현재의 고객이 확고히 지켜지면 우리의 지위는 문제없다’는 자만에 취했다. 즉, 당장의 수익성을 보다가 HBM을 놓쳤다.
② 단계 원칙 없는 욕심
삼성의 설비투자는 매년 50조 원 수준이다. 연구개발 투자도 2~30조 원 수준이다. 특허 출원도 끝없이 한다.
그러나 위대한 기업은 투자를 안 해서 위기에 이르지 않는다. 모토로라도, HP도, 제약기업 머크도 마찬가지다. 크게 투자해 특허와 신기술을 대량으로 획득하다 갑자기 몰락의 길로 갔다.
투자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능력을 확실히 갖추지 못한 채 새 분야에 지나치게 투자하거나 규모에 집착하는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원칙 없는 사업 확장이다.
'새로운 성장'을 위해 100조 원을 쓰겠다고 한 파운드리 투자 계획이 그렇다. '큰돈 들여서 기술 개발하고, 공장 증설하면 된다'고 판단했다. 파운드리라는 업이 어떤 산업인지, 고객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협력할지보다 '더 큰 이윤을 어떻게 거둘지'에 집중하고 '기존의 성공방정식'을 어설프게 반복하려 했다.
핵심 목적에 대한 통찰력을 잃었다. 과도한 욕심을 부렸다.
메모리로 성장한 삼성이 '새로운 성장 사업'에 성공한 과거를 살펴봐도 오류는 또렷이 보인다. LCD 디스플레이로 세상을 장악할 때, 처음에는 수많은 가능성을 타진했다. 평면 브라운관, PDP, LCD... 일단은 다 만들어 팔아봤고, 시장의 흐름을 살피다가 확신이 들었을 때 LCD로 기울었다.
플래시 메모리에서도 그랬다. 처음부터 차세대 저장 장치로서의 가능성을 확신하지는 않았다. 모바일 세상이 오고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는 시장 상황을 면밀히 살핀 뒤 큰 투자로 이어졌다. 기술원조인 일본 도시바와의 협력을 거절할 정도로 기술에 대한 확신도 분명했다. 황창규 회장 시절의 리더십이었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고, 면밀히 분석한 뒤 확신을 가지고 도전했다. '핵심 목적에 대한 통찰'을 잃고, '선언부터 하고, 가시적 성과에 무모하게 매달린' 파운드리와는 달랐다.
③ 단계 문제를 직시하는가?
GOS 논란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대응이다. 처음에는 GOS 앱을 끄지 못하게 한 것이 ‘고객 안전에 타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가, 반발이 거세지자 조금씩 물러났다. 노트7 발화 당시에도 처음에는 문제 가능성을 부인하다가, 문제가 커지자 ‘리콜’만 하고 판매는 강행하려 했다. 미 정부 당국과 통신업체들이 강경 대응에 나선 뒤에야 단종을 선택한다. 삼성은 이렇게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이를 축소하고, 부인하는 방식의 대응을 했다.
큰 문제가 아닐 때는 넘어갈 수 있었지만, GOS는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 뒤에 나온 그룹 부회장의 사과도 표면적인 사과였다. '게임에 지장 없는 한도까지만 제한하려 했다.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파운드리 제조 기술의 문제나 낮은 수율, 고객(퀄컴)을 잃은 부분은 즉답을 피했다. 작은 사과로 지나가며, 근본적인 기술 문제를 외면했다.
솔직히 인정하고 절치부심을 공개적으로 다짐했다면, 그리고 본원적 위기라고 스스로 인정했다면 더 빨리 새롭게 시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서둘러 해법을 찾는 대신 2년을 허비했고, 그다음에는 본진, 메모리에서 위기를 맞이했다.
HBM에서도 같은 문제는 반복됐다. 기술의 본원적 위기를 바라보면서도 'HBM을 만드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고, 시작하면 빠르게 쫓아갈 수 있다'며 잘못된 신호를 줬다. 1년 반 동안 엔비디아 납품 실패가 지속됐고, 시장은 삼성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그러니 지금의 위기는 관료화된 조직이 내부 경고를 무시하고, 외부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문제점을 직시하지 않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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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물로는 삼성이 일어서게 할 수 없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을 약물로는 치유할 수 없다. 진통제는 잠시 고통을 잊게 할 수는 있지만, 근원을 치유하지 못한다. 이 총재의 고견에 동의한다.
삼성도 마찬가지다. 약물로는 치유할 수 없다. 52시간 규제 완화나 정부의 세제 지원은 최선의 경우에도 대응할 시간을 조금 연장할 뿐이고, 대개 그 효과는 회의적이다.
극복은 오직 삼성이 스스로 해내야 한다.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내부의 무사안일과 재무 중심 경영의 덫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리하여 혁신의 대열로 복귀해야 한다. 이 혁신은 결코 그 어떤 외부의 자극도 대신할 수 없다.
그리하여 D램에서 다시 기술 수월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성장 산업에서 분명한 성과를 내보일 때 삼성의 위기는 극복될 수 있다.
① [D램] 젠슨, 삼성이 왜 HBM을 새로 설계해야 하죠? ② [모바일] 애플과 삼성의 격차, 이제는 17배 ③ [파운드리] 삼성도 TSMC처럼 망하던 기업 '세계 1위' 만들 수 있나 ④ [세 번째 사과] 축제인 하이닉스, 세 번째 사과가 두려운 삼성 ⑤ [딥시크와 삼성] 딥시크가 준 AI 희망, 삼성의 희망과 무관하다 ⑥ [불닭볶음면과 삼성] 삼성전자도 불닭볶음면을 내놓을 수 있을까 ⑦ [삼성과 대한민국] 약물로는 삼성의 부활을 못 끌어낸다 (추후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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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통제 처방하면 삼성이 부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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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2-28 11: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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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단순한 수식으로 이해 가능하다
‘보다 간결한 편지를 쓰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그러지 못했소’라는 유명한 대사처럼, 몇 페이지에 걸쳐 엉성한 코드로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것보다는 같은 프로그램을 한 페이지로 작성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다. 엉성한 버전은 더 느리게 실행되고 더 많은 메모리를 잡아먹는다. -빌 게이츠 자서전 [소스 코드]에서 |
'더욱 간결하게 만들 것. 효율적이고 흡족할 정도로 단순해 보일 것. 그리하여 어떤 코드보다 훌륭한, 최고의 코드를 만들 것.'
대가는 어려워도 '단순하고 우아하고 우월한 것'을 추구한다. 그렇게 할 때 세상의 본질이 선명하게 드러나니까.
즉, 세상은 이해 가능하다. 빌 게이츠의 자서전 ‘소스코드’에는 세상에 대한 확신이 있다. 수학과 과학, 즉 이성의 힘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놀라운 기쁨을 준다. 게이츠는 그 '무언가 알아내는 즐거움'을 느끼며 미래와 혁신에 다가섰고, 부수적으로 경제적 보상을 받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경제라는 세상' 역시 이해 가능하고 예측 가능하다. 기준금리를 0.25% 낮추면 GDP 성장률은 0.07%p 올라간다. 금융정책의 GDP 효과다. 재정정책도 마찬가지다. 추경을 15~20조 규모로 하면 GDP가 0.2%p 올라간다. 정부가 (재정/금융) 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하면 경제는 부양된다. 수학적 모델이다. 경제도, 정책의 효과도 '단순하고 우아하고 정교하게' 예측할 수 있다.
올해 성장률 역시 같은 방식으로 예측한다. 1.5%다. 너무 낮아졌다. 그러면 자연히 따라붙는 질문, 정부가 부양하면 되지 않나? 재정, 금융정책의 효과를 더하자!
■ 진통제 처방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이 총재 답은 단순명료하다. "안 된다". 국가의 역할은 어떤 선에서 멈춰야 한다. 딱 적절한 선. 그 선을 넘어서면 부작용이 생긴다. 정부 역할은 ‘진통제’나 ‘스테로이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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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처방이 과도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 이를테면, 기준금리를 너무 많이 낮추면(금융정책) 부동산이 과열된다. 과열되면 자금이 그쪽으로만 쏠린다. 부동산 가격이 부풀어 오른다. 진짜 생산적인 투자는 일어나지 않고 아파트값만 오른다.
정부가 돈을 너무 많이 풀어도(재정정책)안된다. 멈출 수 없다. 그다음 해는 더 많이 풀어야 경제에 플러스(+)가 된다. 아니면 GDP를 깎아 먹는다. 더, 더, 더... 하다가 빵 터진다. 재정중독이다. 기축통화국도 아닌데 정부가 돈 찍어내서 혹은 빌려서 계속 쓰면 IMF 위기 같은 경제 위기가 온다. 그에게는 명료한 인과다.
그러면 딱 적절한 선은 어디인가? ‘잠재 성장률’이다. 우리 경제가 가진 가능성에 딱 맞는 선. 그 선이 어느 수준이냐? 이 총재는 2025년부터 약 3년 기준으로 1.8% 정도라고 했다. 그 수준보다 높으면 과열이고, 낮으면 침체다. 정부의 외부적 개입은 그 정도를 유지하는 노력에 그쳐야 한다.
애걔걔…. 너무 낮지 않은가... 맞다. 낮다. 그런데 현실이다. 무리하면 탈 난다. 이게 이 총재가 이해한 한국경제다. 그리고 일침을 날린다.
■ "지난 10년간 새 산업이 도입되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우리 정부가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지난 10년간 새 산업이 도입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산업이 들어서지 않고서는 성장의 정체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창조적인 파괴, 누군가는 고통을 겪는 구조조정... 이걸 감내하기 어려워서 피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2월 금통위 기자회견 당시 발언- |
'새 산업이 없어서'라는 설명에 좀 더 부연할 수 있다. 트럼프의 미국은 지금 관세 정책 등으로 우리나라 수출이 어려워지게 한다. 트럼프만 그런 게 아니고 지난 수년간 계속 그랬다. 중국은 우리가 주도하던 산업을 하나씩 잡아먹는다. 조선, 화학, 그리고 스마트폰과 반도체…. 거기에 더해 새로 생겨나는 산업(로봇청소기, 드론, AI, 전기차)은 아예 한국이 건드릴 수도 없게 한다. 다 중국 차지다. 우리 설 땅은 없다. 그래서 우리 수출은 제자리걸음 했다.
그 결과 ‘수출에 의존’한다던 우리 경제가 더 이상 수출에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역시 수학적으로 증명된다. 이 총재는 지난 3~4년간 순수출의 GDP 성장 기여도가 ‘거의 0%’이라고 했다. 수출이 안 중요해서가 아니고, 이미 우리 경쟁력이 많이 낮아져서 수출로 낙수효과 보던 시대가 지났단 거다.
새 산업이 도입되지 않아 우리 경제는 성장의 정체 국면에 들어섰다. 근본 원인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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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상징이 삼성전자다
11년간 성장이 없다. 달러 기준으로, 매출을 추적해 보면 삼성은 성장이 없는 회사가 되었다. 이미. 스마트폰은 2013년을 정점으로 하고 내려와 있다. 갤럭시 S25가 역대급 실적을 거둘 거라는 이야기가 또 나오지만, 매년 반복된 이야기다. 하드웨어에만 기대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메모리는 백척간두 위기에 있다. 기술의 본원적 경쟁력을 잃어서 SK하이닉스에 뒤처지고 있다. 영업이익으로는 이미 추월당했다. 다음 세대 HBM은 정말 내놓을 수 있을까? 회의하는 전문가가 늘고 있다. 원래 세계 최고이던 분야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다.
새 성장 동력 삼았던 ‘파운드리’는 실패했다. 100조 원을 투자해서 세계 1위 만들겠다고 이재용 회장이 직접 선언했지만, 오히려 후퇴했다. 세계 최초로 GAA 3나노 공정에 들어섰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했지만, 새로 들인 ‘큰 손님’은 0이다. 원래 있던 큰 손님 ‘퀄컴’도 TSMC에 뺏겼다. 점유율은 추락했고 TSMC와의 격차는 한참 벌어졌다.
그래서 삼성이 성장하지 않는다. 기술적으로 뒤처지고, 중국은 쫓아오고, 미국은 아시아를 견제한다. 그 결과 수출이 늘지 않는다. 국내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파급효과(분수효과)는 점점 사라진다. 삼성과 대한민국의 성장엔진이 함께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다.
미래는 물론 아직 열려있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를 기반으로 예측하면 칠흑같이 어둡다.
■삼성을 무너뜨릴 ‘자만·욕심·회피’
왜 이렇게 됐을까. 지금까지 부문별로, 또 혁신에 대한 자세로 다각도로 살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짐 콜린스를 소환해 점검해 본다.
![짐 콜린스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data/fckeditor/new/image/2025/02/27/299931740632103377.png)
짐 콜린스는 ‘거대 기업의 몰락’을 다루며 단계론을 내놨다.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 How the Mighty Fall’에서 내놓은 5단계론이다. 삼성에게선 1~3단계가 보인다. 삼성이 보이면서, 우리 경제도 보일 것이다.
①단계 자만
한때 휴대전화 시장을 장악했던 모토로라는 어떻게 망했나? 아날로그 시대에 취해 디지털이 다가오는데 알아채지 못했다. 1996년 미국 시장 60%를 차지했다가 3년 만에 17%가 된다. 짐 콜린스는 ‘기고만장했다’고 표현한다. ‘디지털이 걱정된다’는 내부 보고가 올라오자 ‘4,300만 명이나 되는 아날로그 고객이 틀렸다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걱정 시늉도 안 했다.
삼성도 오랜 성공에 취했다. 메모리에서 너무 오랜 시간 1위의 자리를 지켰다. 새로운 가능성을 경계하기보다 ‘현재의 고객이 확고히 지켜지면 우리의 지위는 문제없다’는 자만에 취했다. 즉, 당장의 수익성을 보다가 HBM을 놓쳤다.
② 단계 원칙 없는 욕심
삼성의 설비투자는 매년 50조 원 수준이다. 연구개발 투자도 2~30조 원 수준이다. 특허 출원도 끝없이 한다.
그러나 위대한 기업은 투자를 안 해서 위기에 이르지 않는다. 모토로라도, HP도, 제약기업 머크도 마찬가지다. 크게 투자해 특허와 신기술을 대량으로 획득하다 갑자기 몰락의 길로 갔다.
투자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능력을 확실히 갖추지 못한 채 새 분야에 지나치게 투자하거나 규모에 집착하는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원칙 없는 사업 확장이다.
'새로운 성장'을 위해 100조 원을 쓰겠다고 한 파운드리 투자 계획이 그렇다. '큰돈 들여서 기술 개발하고, 공장 증설하면 된다'고 판단했다. 파운드리라는 업이 어떤 산업인지, 고객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협력할지보다 '더 큰 이윤을 어떻게 거둘지'에 집중하고 '기존의 성공방정식'을 어설프게 반복하려 했다.
핵심 목적에 대한 통찰력을 잃었다. 과도한 욕심을 부렸다.
메모리로 성장한 삼성이 '새로운 성장 사업'에 성공한 과거를 살펴봐도 오류는 또렷이 보인다. LCD 디스플레이로 세상을 장악할 때, 처음에는 수많은 가능성을 타진했다. 평면 브라운관, PDP, LCD... 일단은 다 만들어 팔아봤고, 시장의 흐름을 살피다가 확신이 들었을 때 LCD로 기울었다.
플래시 메모리에서도 그랬다. 처음부터 차세대 저장 장치로서의 가능성을 확신하지는 않았다. 모바일 세상이 오고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는 시장 상황을 면밀히 살핀 뒤 큰 투자로 이어졌다. 기술원조인 일본 도시바와의 협력을 거절할 정도로 기술에 대한 확신도 분명했다. 황창규 회장 시절의 리더십이었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고, 면밀히 분석한 뒤 확신을 가지고 도전했다. '핵심 목적에 대한 통찰'을 잃고, '선언부터 하고, 가시적 성과에 무모하게 매달린' 파운드리와는 달랐다.
③ 단계 문제를 직시하는가?
GOS 논란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대응이다. 처음에는 GOS 앱을 끄지 못하게 한 것이 ‘고객 안전에 타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가, 반발이 거세지자 조금씩 물러났다. 노트7 발화 당시에도 처음에는 문제 가능성을 부인하다가, 문제가 커지자 ‘리콜’만 하고 판매는 강행하려 했다. 미 정부 당국과 통신업체들이 강경 대응에 나선 뒤에야 단종을 선택한다. 삼성은 이렇게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이를 축소하고, 부인하는 방식의 대응을 했다.
큰 문제가 아닐 때는 넘어갈 수 있었지만, GOS는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 뒤에 나온 그룹 부회장의 사과도 표면적인 사과였다. '게임에 지장 없는 한도까지만 제한하려 했다.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파운드리 제조 기술의 문제나 낮은 수율, 고객(퀄컴)을 잃은 부분은 즉답을 피했다. 작은 사과로 지나가며, 근본적인 기술 문제를 외면했다.
솔직히 인정하고 절치부심을 공개적으로 다짐했다면, 그리고 본원적 위기라고 스스로 인정했다면 더 빨리 새롭게 시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서둘러 해법을 찾는 대신 2년을 허비했고, 그다음에는 본진, 메모리에서 위기를 맞이했다.
HBM에서도 같은 문제는 반복됐다. 기술의 본원적 위기를 바라보면서도 'HBM을 만드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고, 시작하면 빠르게 쫓아갈 수 있다'며 잘못된 신호를 줬다. 1년 반 동안 엔비디아 납품 실패가 지속됐고, 시장은 삼성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그러니 지금의 위기는 관료화된 조직이 내부 경고를 무시하고, 외부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문제점을 직시하지 않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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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물로는 삼성이 일어서게 할 수 없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을 약물로는 치유할 수 없다. 진통제는 잠시 고통을 잊게 할 수는 있지만, 근원을 치유하지 못한다. 이 총재의 고견에 동의한다.
삼성도 마찬가지다. 약물로는 치유할 수 없다. 52시간 규제 완화나 정부의 세제 지원은 최선의 경우에도 대응할 시간을 조금 연장할 뿐이고, 대개 그 효과는 회의적이다.
극복은 오직 삼성이 스스로 해내야 한다.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내부의 무사안일과 재무 중심 경영의 덫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리하여 혁신의 대열로 복귀해야 한다. 이 혁신은 결코 그 어떤 외부의 자극도 대신할 수 없다.
그리하여 D램에서 다시 기술 수월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성장 산업에서 분명한 성과를 내보일 때 삼성의 위기는 극복될 수 있다.
① [D램] 젠슨, 삼성이 왜 HBM을 새로 설계해야 하죠? ② [모바일] 애플과 삼성의 격차, 이제는 17배 ③ [파운드리] 삼성도 TSMC처럼 망하던 기업 '세계 1위' 만들 수 있나 ④ [세 번째 사과] 축제인 하이닉스, 세 번째 사과가 두려운 삼성 ⑤ [딥시크와 삼성] 딥시크가 준 AI 희망, 삼성의 희망과 무관하다 ⑥ [불닭볶음면과 삼성] 삼성전자도 불닭볶음면을 내놓을 수 있을까 ⑦ [삼성과 대한민국] 약물로는 삼성의 부활을 못 끌어낸다 (추후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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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민 기자 seo01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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