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탓? 러 해커 공격?” 스페인 ‘대정전’ 미스터리
입력 2025.04.29 (16:50)
수정 2025.04.2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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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이 구분되지 않는 그야말로 '암흑 천지'입니다. 기차 운행이 멈춰 수많은 승객의 발이 묶이고, 신호등이 꺼진 거리에선 교통 대란이 벌어졌습니다. 한낮에도 캄캄한 실내에선 손전등에 의지해 장을 보고 손으로 더듬어가며 식사를 합니다. 현지 시각 28일 낮부터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한 스페인 전역 곳곳에서 벌어진 모습입니다.
■ "단 5초 만에" …뚝 떨어진 전력량, 대정전 불러
스페인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정도의 초유의 '블랙아웃'은 단 5초 동안 벌어진 전력량 급감으로 시작됐습니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에 따르면 28일 낮 12시 33분, 스페인 전력 공급 시스템에서 5초 동안 15기가와트(GW) 규모의 전력 공급이 갑자기 끊겼습니다. 이는 당시 스페인 전기 생산량의 60%에 해당하는데, 이 갑작스런 발전 중단이 전체 시스템 마비로 이어졌다는 겁니다.
엘파이스는 당시 전력망에서 '매우 강력한 전력 흐름의 변동'이 감지됐고 이는 발전량 급감, 즉 원자력과 수력, 태양력과 풍력, 복합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 생산량이 감소한 데 따른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스페인 국가전력공사(REE) 관계자는 "지금까지 스페인에서 이런 정전 사태가 발생한 적 없다"면서 예외적인 단절 상황의 원인을 조사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 '극심한 기온' 탓? "희귀한 대기 현상에 이상 진동"
전력 소비량이 폭증하는 한여름도 아닌 '4월 대정전'의 미스터리, 먼저 실마리를 제기하고 나선 건 이웃나라 포르투갈입니다.
포르투갈 역시 리스본 등 주요 도시에서 정전 사태가 잇따랐는데, 이 문제가 "스페인에서 시작됐다" 면서 루이스 몬테네그로 포르투갈 총리는 추정되는 한 가지 원인을 지적했습니다.
포르투갈 국가 전력망을 담당하는 국가에너지네트워크(REN)는 정전 사태의 출발이 "희귀한 대기 현상으로 인한 기온 불균형"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스페인 내륙에서 극심한 기온 변화로 400킬로볼트(kV) 고압선에 '유도 대기 진동'이라 불리는 이상 진동이 발생했고, 이 진동이 전기 시스템의 동기화 장애를 촉발시키면서 서로 연결된 유럽 전력망 전반에 교란을 일으켰다는 겁니다.
이에 영국 가디언은 에너지 공급 업계 종사자를 인용해 '온도 변화로 인한 주파수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대기 온도의 큰 변화로 전기 시스템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업계에선 알려진 내용이란 겁니다.
브뤼셀의 싱크탱크 브뤼겔 분석에 따르면 당시 전력망 주파수가 유럽 표준인 50헤르츠(Hz) 이하로 떨어지면서 '프랑스의 한 발전소를 포함해 발전소의 연쇄적인 단선'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가디언은 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정도 규모의 정전이 실제로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다' 고 짚었습니다.

■ '러시아 해커 개입설'까지…사이버 공격 탓?
월요일 한낮에 일제히 발생한 정전 사태를 놓고 초반부터 '사이버 공격' 가능성도 제기됐습니다.
특히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서 '러시아 해커 공격설'도 나왔는데, 2015년 러시아 해커들이 우크라이나의 지역 전력공급 회사를 공격해 150만 가구 전기가 끊겼던 사례 등이 거론됐습니다.
실제 에너지 인프라망은 매우 복잡하고, 취약점이 많아 사이버 공격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은 편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합니다.
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나라의 전력을 동시에 차단하는 규모의 사이버 공격, '특히 분할된 여러 개의 전력망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 정도 규모의 정전을 초래할 사이버 공격을 조직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사이버 안보 전문가를 인용해 엘파이스는 분석했습니다.
스페인 국가정보센터와 국방부 산하 합동사이버사령부가 사이버 공격 가능성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힌 가운데, 전 포르투갈 총리인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이사회 의장은 "사이버 공격이란 증거는 없다"면서도 정전의 궁극적인 원인은 불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대규모 정전 사태의 원인을 예단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어떠한 가설도 배제하지 않는다" 고만 밝혔습니다.

■국제 공급망이 원인?…"일부 기술적 문제"
유럽 내 국제 전력공급망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도 나왔습니다. 영국 BBC 방송은 유럽 전기산업협회(EURELECTRIC) 사무총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 당일 아침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 에너지 연결 시설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전했습니다.
크리스티안 루비 사무총장은 "두 나라 간 연결망에 기술적 문제가 생겨 스페인 전력망이 유럽 전체 네트워크에서 분리됐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정전이 "50년 아니 100년 만에 일어날 만한 일"이라면서도 연결망 문제 때문만은 아니고, 다른 원인이 겹쳐 이베리아반도 전체의 정전으로 번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대정전에 원전 '비상 전환' … 옆 나라 전기 '품앗이'
예상치 못한 대정전으로 가동 중이던 원자력 발전소 원자로는 자동으로 정지되고, 디젤 발전기로 전환됐다고 스페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밝혔습니다.
또 옆 나라 프랑스, 모로코 등에서 전기 '품앗이'로 비상 전력을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공영 프랑스 앵포에 따르면, 프랑스와 국경을 잇는 스페인령 바스크 지방의 전력 공급선을 통해 어제(28일) 저녁까지 7백 메가와트(MW)를 지원했고 최대 2천 메가와트까지 규모를 늘릴 계획입니다. 이는 평균 원자력 발전소 2개의 발전량에 해당한다고 프랑스 전력공급공사(RTE)는 발표했습니다.

밤과 같은 낮, 어둠이 지배한 밤을 보낸 스페인은 날이 밝으면서 대정전의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모습입니다.
스페인 국가전력공사(REE)는 현지 시각 29일 오전 6시 기준으로 국가 전력 공급의 99% 이상이 복구됐고, 모든 변전소가 가동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승객들이 역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던 철도 운영도 재개됐지만, 전체 절반 수준만 운행되고 있습니다.
전력 복구에 지역별 편차도 커서 수도 마드리드는 지하철 운행이 1개 노선을 제외하고 재개됐지만, 바르셀로나는 3개 노선 운영이 여전히 중단됐습니다. 스페인 대부분 학교엔 휴교령이 내려진 상태입니다.
(사진 출처: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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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5-04-29 16:52:22

낮과 밤이 구분되지 않는 그야말로 '암흑 천지'입니다. 기차 운행이 멈춰 수많은 승객의 발이 묶이고, 신호등이 꺼진 거리에선 교통 대란이 벌어졌습니다. 한낮에도 캄캄한 실내에선 손전등에 의지해 장을 보고 손으로 더듬어가며 식사를 합니다. 현지 시각 28일 낮부터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한 스페인 전역 곳곳에서 벌어진 모습입니다.
■ "단 5초 만에" …뚝 떨어진 전력량, 대정전 불러
스페인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정도의 초유의 '블랙아웃'은 단 5초 동안 벌어진 전력량 급감으로 시작됐습니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에 따르면 28일 낮 12시 33분, 스페인 전력 공급 시스템에서 5초 동안 15기가와트(GW) 규모의 전력 공급이 갑자기 끊겼습니다. 이는 당시 스페인 전기 생산량의 60%에 해당하는데, 이 갑작스런 발전 중단이 전체 시스템 마비로 이어졌다는 겁니다.
엘파이스는 당시 전력망에서 '매우 강력한 전력 흐름의 변동'이 감지됐고 이는 발전량 급감, 즉 원자력과 수력, 태양력과 풍력, 복합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 생산량이 감소한 데 따른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스페인 국가전력공사(REE) 관계자는 "지금까지 스페인에서 이런 정전 사태가 발생한 적 없다"면서 예외적인 단절 상황의 원인을 조사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 '극심한 기온' 탓? "희귀한 대기 현상에 이상 진동"
전력 소비량이 폭증하는 한여름도 아닌 '4월 대정전'의 미스터리, 먼저 실마리를 제기하고 나선 건 이웃나라 포르투갈입니다.
포르투갈 역시 리스본 등 주요 도시에서 정전 사태가 잇따랐는데, 이 문제가 "스페인에서 시작됐다" 면서 루이스 몬테네그로 포르투갈 총리는 추정되는 한 가지 원인을 지적했습니다.
포르투갈 국가 전력망을 담당하는 국가에너지네트워크(REN)는 정전 사태의 출발이 "희귀한 대기 현상으로 인한 기온 불균형"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스페인 내륙에서 극심한 기온 변화로 400킬로볼트(kV) 고압선에 '유도 대기 진동'이라 불리는 이상 진동이 발생했고, 이 진동이 전기 시스템의 동기화 장애를 촉발시키면서 서로 연결된 유럽 전력망 전반에 교란을 일으켰다는 겁니다.
이에 영국 가디언은 에너지 공급 업계 종사자를 인용해 '온도 변화로 인한 주파수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대기 온도의 큰 변화로 전기 시스템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업계에선 알려진 내용이란 겁니다.
브뤼셀의 싱크탱크 브뤼겔 분석에 따르면 당시 전력망 주파수가 유럽 표준인 50헤르츠(Hz) 이하로 떨어지면서 '프랑스의 한 발전소를 포함해 발전소의 연쇄적인 단선'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가디언은 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정도 규모의 정전이 실제로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다' 고 짚었습니다.

■ '러시아 해커 개입설'까지…사이버 공격 탓?
월요일 한낮에 일제히 발생한 정전 사태를 놓고 초반부터 '사이버 공격' 가능성도 제기됐습니다.
특히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서 '러시아 해커 공격설'도 나왔는데, 2015년 러시아 해커들이 우크라이나의 지역 전력공급 회사를 공격해 150만 가구 전기가 끊겼던 사례 등이 거론됐습니다.
실제 에너지 인프라망은 매우 복잡하고, 취약점이 많아 사이버 공격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은 편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합니다.
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나라의 전력을 동시에 차단하는 규모의 사이버 공격, '특히 분할된 여러 개의 전력망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 정도 규모의 정전을 초래할 사이버 공격을 조직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사이버 안보 전문가를 인용해 엘파이스는 분석했습니다.
스페인 국가정보센터와 국방부 산하 합동사이버사령부가 사이버 공격 가능성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힌 가운데, 전 포르투갈 총리인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이사회 의장은 "사이버 공격이란 증거는 없다"면서도 정전의 궁극적인 원인은 불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대규모 정전 사태의 원인을 예단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어떠한 가설도 배제하지 않는다" 고만 밝혔습니다.

■국제 공급망이 원인?…"일부 기술적 문제"
유럽 내 국제 전력공급망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도 나왔습니다. 영국 BBC 방송은 유럽 전기산업협회(EURELECTRIC) 사무총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 당일 아침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 에너지 연결 시설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전했습니다.
크리스티안 루비 사무총장은 "두 나라 간 연결망에 기술적 문제가 생겨 스페인 전력망이 유럽 전체 네트워크에서 분리됐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정전이 "50년 아니 100년 만에 일어날 만한 일"이라면서도 연결망 문제 때문만은 아니고, 다른 원인이 겹쳐 이베리아반도 전체의 정전으로 번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대정전에 원전 '비상 전환' … 옆 나라 전기 '품앗이'
예상치 못한 대정전으로 가동 중이던 원자력 발전소 원자로는 자동으로 정지되고, 디젤 발전기로 전환됐다고 스페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밝혔습니다.
또 옆 나라 프랑스, 모로코 등에서 전기 '품앗이'로 비상 전력을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공영 프랑스 앵포에 따르면, 프랑스와 국경을 잇는 스페인령 바스크 지방의 전력 공급선을 통해 어제(28일) 저녁까지 7백 메가와트(MW)를 지원했고 최대 2천 메가와트까지 규모를 늘릴 계획입니다. 이는 평균 원자력 발전소 2개의 발전량에 해당한다고 프랑스 전력공급공사(RTE)는 발표했습니다.

밤과 같은 낮, 어둠이 지배한 밤을 보낸 스페인은 날이 밝으면서 대정전의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모습입니다.
스페인 국가전력공사(REE)는 현지 시각 29일 오전 6시 기준으로 국가 전력 공급의 99% 이상이 복구됐고, 모든 변전소가 가동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승객들이 역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던 철도 운영도 재개됐지만, 전체 절반 수준만 운행되고 있습니다.
전력 복구에 지역별 편차도 커서 수도 마드리드는 지하철 운행이 1개 노선을 제외하고 재개됐지만, 바르셀로나는 3개 노선 운영이 여전히 중단됐습니다. 스페인 대부분 학교엔 휴교령이 내려진 상태입니다.
(사진 출처: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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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효 기자 gongga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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