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저항’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힘”…제6회 제주4·3평화상 수상자 알렉시예비치 작가
입력 2025.04.30 (13:37)
수정 2025.04.3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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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제6회 제주4·3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녀는 전쟁과 재난, 사회적 억압 속에서 침묵 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해 온 작가입니다. 1948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벨라루스 국립대 언론학과를 졸업한 후 기자로 활동하며, 제2차 세계대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체르노빌 원전 사고 등 격동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이들의 증언을 수집했습니다. 그녀의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등은 이러한 증언을 바탕으로 한 '목소리 소설'로, 개인의 고통과 기억을 문학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렉시예비치는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보여주는 자성적 작품을 써왔다"는 스웨덴 한림원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35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 독자들에게 감동을 줬고, 수많은 연극과 다큐멘터리의 원작으로도 사용됐습니다. 제주 4·3평화상은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과 국가폭력의 진실을 알리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제정된 상입니다. 알렉시예비치의 수상은 그녀가 오랜 시간 동안 침묵 속에 있던 고통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고, 이를 통해 인류의 기억과 평화를 지켜온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알렉시예비치는 제주4·3평화상 수상에 대해 "잊혀진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것은 작가로서의 사명이자 인간으로서의 책임"이라며, "제주의 아픔을 세계와 공유하고,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녀의 수상은 제주 4·3의 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며, 문학과 예술이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제주4·3평화상 시상식 직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가의 답변을 정리했습니다. |
■ "제주는 적극적인 저항의 정신을 추구하는 신화의 섬"
Q. 작가님께서 다양한 역사적 비극의 목소리를 문학으로 기록해 오셨습니다. 제주 4·3 역시 오랫동안 침묵과 왜곡 속에 있었던 민중의 고통이자 기억이 아닌가 싶습니다. 질문은 세 가지인데요. 첫 번째는 제주 4·3이라는 걸 언제 어떤 계기로 처음 접하셨는지, 둘째는 그걸 접하셨을 때 어떤 점이 가장 인상 깊었는지, 세 번째는 그것이 작가님의 문학적 시선과 어떻게 맞닿아 있다고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예. 3개의 질문을 주셨는데 사실상은 하나의 질문인 것 같습니다. 작가가 예술적 영감을 어떻게 어디서 얻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짧게도 할 수 있고 길게도 할 수 있는데요. 저는 우선 벨라루스라는 나라에서 온 사람입니다. 벨라루스라는 나라는 지금도 자유를 위해서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는 나라입니다. 여러분께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2020년에 벨라루스에서는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와 혁명이 일어났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시민들이 100만 명에 달하는데, 그 사람들이 지금 조국을 떠나서 해외에서 거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사실은 그때 혁명이 실패할 것이라는 직감은 저희가 30여 년 동안 독재 치하 하에 살면서 계속해서 느껴왔던 것입니다. 제가 이번 방문까지 포함하면 한국에 세 차례 방문했는데요. 한국에 첫 번째 방문했을 당시에 <레드 아일랜드> 즉 붉은 섬이라는 제주도에 대해서 제가 처음 듣게 되었고 그때 그 사건들을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관련한 영화도 봤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굉장히 강렬하게 남아 있던 이유는 저는 인간이 겪고 있는 역사의 비극적 사건들에 대해 굉장히 깊은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 제가 한국을 다시 방문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최근 몇 년간 세계 지도를 펼쳐보면 안전하다, 보호받고 있다고 느낄 만한 나라가 별로 없다는 것, 우리 모두 자각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한가운데 있는 우크라이나마저도 지금 전쟁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도 그러한 상황이 있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이런 상황을 봤을 때 역사적 비극을 보면서 저와 같은 작가들은 이런 역사에서 어떤 정신을 어떤 교훈을 우리가 가져가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제 제가 제주공항에 도착해서 문이 열리자마자 야자수를 보았습니다. 야자수를 보면 오래된 잎이 밑에 있고 또 새로운 잎이 그 위에 자라나는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요. 그걸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과거로부터 받은 그런 어떤 덮개, 그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오늘 우리가 새롭게 취득하는 덮개는 무엇일까?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사실상 우리가 켜켜이 쌓아온 이런 관계들이 기억이라는 것이고, 이러한 기억은 고통을 통해 굉장히 잘 전달된다, 안타깝지만 그렇게 전달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달되는 기억을 가져가야 하는 것은, 과거로부터 가져가야 하는 것은 어떤 ‘악’을 목도하고 있을 때 혼자서 외롭게 맞서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한민족도 그렇고요. 벨라루스 민족도 아주 아름다운 기억, 굉장히 선한 사건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의 경탄을 자아낼 만한 그런 성과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악’이 이런 선한 풍경을 덮어버리고 있고, 그렇게 나타난 ‘악’은 매우 많은 얼굴, 다층적인 구조를 갖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제가 유튜브에서 뭔가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푸틴 대통령의 연설을 보게 됐습니다. 굉장히 놀랍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왜냐하면 ‘선’에 대해서 연설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그 본질은 ‘악’이었습니다. 그래서 ‘악’에 대해 말하면서 ‘선’과 같은 포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하나의 물음표를 달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악’에 대응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명확한 ‘악’에 맞서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제가 제주도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는 사실은 굉장한 신화의 섬이라고 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어떤 신화냐 하면요. 적극적인 저항의 정신을 추구하는 신화의 섬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오늘날 적극적인 저항 정신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저는 작가로서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더 발전시킬 수 있을지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
Q. 한국 첫 방문 때 붉은 섬 얘기를 듣고 나서 제주를 기억한다고 하셨는데, 그 당시에 어떤 상황에서 그 얘기를 들었는지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A. 시간이 많이 흘러서 정확히는 기억을 못 하는데, 한국에 방문했을 때 작가들과 만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간담회에서 어떤 작가분이 저를 가리켜서 ‘재난 작가’라고 말씀을 하길래 “아니다. 나는 재난을 쓰는 작가가 아니다. 나는 저항하기 위해 힘을 축적하고, 어떤 혼과 정신을 축적하는 것을 기록하는 사람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대답하자 그 작가분께서 한국에도 ‘저항의 섬’이 있다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

■ "한국이 내란 사태에서 '시민 저항'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힘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Q. 한국은 지난 4개월 동안 내란 사태로 굉장히 혹독한 시기를 보냈는데요. 지금도 말씀하셨지만, 시민들의 끈질긴 저항을 평소 중요하게 강조하셨는데, 이번 한국 상황을 어떻게 보셨는지. 그리고 인상 깊었던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또, 지금 곳곳에서 전쟁과 폭력이 벌어지고 있고 또 이런 가운데 극우 세력이 선동하는 혐오도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짙어지고 있는데요. 자칫 회의감에 빠지기 쉬운 이런 시대에 이 시대를 견딜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좋은 질문입니다. 저희가 모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죠. 한국에서 일어난 사태에 대해 제가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계속 추적했습니다. 그걸 보면서 오늘날에는 굉장히 낯설 수밖에 없는 그런 감정을 갖게 됐는데요. 바로 “민주주의를 믿어야 했다. 민주주의가 괜히 당황했었구나. 사실은 민주주의는 이런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저항의 힘이 있었는데, 그걸 바라고 있었으면 되는데, 당황할 필요가 없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관련해서 한국의 사태를 조명했던 어떤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정치인들도 갈 길을 잃은 상황, 그리고 실상은 민주주의가 저항할 힘도 없었던 것이냐고 생각하던 차에, 악이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가 생각하던 차에, 한국의 사태를 보면서 “사실은 그게 아니었구나. 우리가 이러한 역사적 사건에서 배울 수 있는 하나의 경험·교훈을, 시민 저항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힘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시다시피 공산주의가 모두 무너져서 없어졌다고 우리는 생각했지만, 공산주의에 남은 앙금들이 곳곳에 남아서, 러시아라는 그 세계에 의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시다시피 전 세계로 흩뿌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붙잡을 것은 시민 저항의 경험과 그것을 공유하는 것, 또 그것을 한국 사회가 너무나도 탁월하게 전 세계에 보여주고 증명해 줬다는 것을 제가 깨달았습니다. 오늘날의 악의 특징에 대하여서 생각을 해보면 악이 가진 위험성이 무엇일까요? 저는 그런 결론을 내립니다. 바로 악이 총체성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트럼프, 푸틴이 함께 힘을 합친 이두 마차처럼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려고 하고 있는데 저는 그런 상황을 보면서 마치 이 악이 총체적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면서 나아가고 있다는 그런 최면에 자꾸 걸립니다. 우리가 이 ‘악의 총체성’을 마주하면서 너무나도 빨리 뒷걸음질 치면서 포기하는 것은 아니냐는 생각을 해봅니다. ‘악의 총체성’의 근원은 무엇일까를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에는 소심한 어떤 작은 인간이 가진 공포심, 그 공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요새 뉴스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전 지구적으로 곳곳에서 우리는 실패와 좌절감을 맛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 왔던 그런 사상들, 사실은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 같았던 그런 것들이 계속해서 취약함을 드러내고, 위험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대자연이 보여주는 악의 총체성, 그러니까 그 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 이 두 개가 상쇄됐을 때, 마치 그 앞에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구나”라는 공포 때문에 온몸이 마비되는 것을 저는 느낍니다. 저는 작가로서 그리고 아마 다른 예술가들도 그럴 텐데요. 우리가 현재 선택할 수 있는 돌파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총체적인 악’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공포심 앞에서 놀라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군중에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좀 떨어져서 세상을 지켜보면서 아직은 합류하지 않고 판단하고 생각하는 그런 힘을 길러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돌파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신이 허락하신다면, 절대 평범하지 않은 해결책을 우리가 함께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답을 굉장히 어렵게 드리는 것 같아서 죄송스러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쉬운 답을 말하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 "집단이란 혼자 외롭게 싸워야 하지 않음을 의미"
Q. 작가님이 쓰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에 보면 작가님이 전쟁을 통해서 가족들을 다 잃었다고 그렇게 표현했는데요. 제주 4·3 때도 그렇게 온 가족이 희생당하는 그런 사례가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작가님이 어렸을 때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그 슬픔을 이겨내는지 궁금하고요. 또 하나는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셨다면 어떤 부분에서 공감하는지 궁금합니다.
A. 두 번째 질문에 먼저 답변드리면 안타깝게도 제가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러시아어로 번역이 돼 있지 않아서요. 제가 꼭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자면 어떻게 보면 평범한 답일 수도 있겠는데요. 제가 쓴 책 중에 <아연 소년들>이라는 라는 책이 있습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전쟁을 다룬 이야기인데, 제가 그것을 쓰면서 자녀를, 가족을 잃은 슬픔, 그리고 그 트라우마는 정말 극복하기가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자녀들이라 할지라도 칼과 총을 들고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러 간 군인들이었지만, 그 군인들마저도 어느 가족에게는 자녀였고 아이였습니다. 국제적인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요? 온 사회 온 나라 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트라우마가 아니라, 그 사회의 일부가 어떤 트라우마를 공유할 때는 참 극복하기가 어렵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고요. 왜냐하면 일부만 지옥에 빠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2차 세계대전과 같은 큰 트라우마는 예를 들어서 벨라루스 같은 경우에는 4명당 한 명이 죽었기 때문에, 매우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었던 집단적인 트라우마입니다. 집단이란 혼자 외롭게 싸워야 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래서 집단 트라우마를 회복하기가, 개인 트라우마보다는 훨씬 더 쉽겠다는 생각을 제가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경우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일부만 전쟁에 나가서 싸우고 있습니다. 누구는 돈을 벌러 우크라이나에 갔을 것이고 누구는 비자발적으로 참전을 했겠지만, 그런 국지적인 트라우마보다는 집단 트라우마가 훨씬 더 상처를 치유하기가 수월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모계가 우크라이나 쪽이라서, 반은 우크라이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우크라이나 쪽 친지분들이 지금도 전쟁 때문에 죽어가신 분들도 있고, 또 참전하시는 분들도 있고, 또 러시아에도 저의 친구들 또 친한 작가들이 있습니다. 근데 러시아에 사는 친한 작가 중에서 한 분이 “나는 우크라이나 놈들이라고 낮춰 부르면서 욕을 사용하면서, 우크라이나 놈들이 정말 싫어. 러시아는 위대해야 해”라고 하는 말을 제가 전해 들으면, 정말 무섭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의 벨라루스, 하나의 러시아는 없습니다. 벨라루스 안에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고, 러시아 안에서도 푸틴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통합되지 않은 사회에서 트라우마를 헤쳐 나가는 건 더군다나 힘듭니다. |
■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이 자체가 우리 인류가 보편적으로 힘을 얻는 원천이다"
Q. 저술 활동 외에도 민주화 운동 같은 실천적으로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계시는데요. 80살을 향해 가는 나이인데도 이렇게 누구보다 실천적인 저항의 삶을 사실 수 있는 원동력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개인적으로 본인의 소소한 일상에서 즐거움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도 여쭙고 싶습니다.
A. 예. 나이를 언급해 주셨는데, 나이는 사실은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지요. 피로해지지 않는 것은 너무 힘든 일입니다. 제가 더더군다나 평생 악에 맞서서 싸우려고 노력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면 아마 이것일 텐데요. “나는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4대에 걸쳐서 저희 집안이 농촌 지역에서 시골 지역에서 계속 교사를 했던 분들입니다. 저는 그분들의 정신, 그분들의 힘이 계속 축적돼서 저한테까지 내려온 것이 아닐까, 그게 나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그렇게 말하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우리는 심지어 전쟁에도 적응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TV를 켜고 컴퓨터를 켜면서 모닝커피 한 잔을 타서 앉으면, 우크라이나에서 오늘도 폭격이 있어서 19명이 사망을 했고 그중 5명이 아이들이라는 소식을 봅니다. 보면서 커피를 마시죠. 굉장히 어울리지 않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인격이기 때문에, 그런데도 계속해서 “아니지. 이건 아니지”라는 저항 정신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여기서 저항은 내면적 저항과 외면적 저항으로 구분할 수가 있는데요. ‘외면적 저항’이라 함은 우리가 실시간으로 듣는 끔찍한 정보들, 예를 들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지금 화해를 하려고 한다. 이미 우크라이나 국민 3명 중 1명은 푸틴에 의해서 장악을 당한 상태다. 매료된 상태다.” 이런 끔찍한 얘기들을 저는 들으면서 저런 불공정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는 “맞서야 해”라고 하면서 맞서는 것, 그게 외면적 저항이고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제는 이 끔찍한 소식을 들으면서 끔찍해 했던 내가, 오늘 이 끔찍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렇게 끔찍해하지 않는 이 모습에 벌써 적응된 모습을 보면서 “그러면 안 되지. 내가 누구였는지,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나 자신을 보존해야 해” 그런 저항,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약간 철학적인 질문을 주셨는데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아침에 해가 뜨는 걸 보고 저녁에 해가 지는 걸 보고, 제주도에도 정말 예쁜 것들이 많더라고요. 꽃과 나무를 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이 자체가 우리 인류가 보편적으로 힘을 얻는 원천이라고 생각하고요. 두 번째로는 저마다 인간은 자신이 힘을 회복시킬 수 있는 비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근데 그거는요 제 개인 소유라서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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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 저항’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힘”…제6회 제주4·3평화상 수상자 알렉시예비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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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4-30 13:37:55
- 수정2025-04-30 13:39:48

벨라루스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제6회 제주4·3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녀는 전쟁과 재난, 사회적 억압 속에서 침묵 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해 온 작가입니다. 1948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벨라루스 국립대 언론학과를 졸업한 후 기자로 활동하며, 제2차 세계대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체르노빌 원전 사고 등 격동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이들의 증언을 수집했습니다. 그녀의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등은 이러한 증언을 바탕으로 한 '목소리 소설'로, 개인의 고통과 기억을 문학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렉시예비치는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보여주는 자성적 작품을 써왔다"는 스웨덴 한림원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35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 독자들에게 감동을 줬고, 수많은 연극과 다큐멘터리의 원작으로도 사용됐습니다. 제주 4·3평화상은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과 국가폭력의 진실을 알리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제정된 상입니다. 알렉시예비치의 수상은 그녀가 오랜 시간 동안 침묵 속에 있던 고통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고, 이를 통해 인류의 기억과 평화를 지켜온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알렉시예비치는 제주4·3평화상 수상에 대해 "잊혀진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것은 작가로서의 사명이자 인간으로서의 책임"이라며, "제주의 아픔을 세계와 공유하고,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녀의 수상은 제주 4·3의 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며, 문학과 예술이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제주4·3평화상 시상식 직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가의 답변을 정리했습니다. |
■ "제주는 적극적인 저항의 정신을 추구하는 신화의 섬"
Q. 작가님께서 다양한 역사적 비극의 목소리를 문학으로 기록해 오셨습니다. 제주 4·3 역시 오랫동안 침묵과 왜곡 속에 있었던 민중의 고통이자 기억이 아닌가 싶습니다. 질문은 세 가지인데요. 첫 번째는 제주 4·3이라는 걸 언제 어떤 계기로 처음 접하셨는지, 둘째는 그걸 접하셨을 때 어떤 점이 가장 인상 깊었는지, 세 번째는 그것이 작가님의 문학적 시선과 어떻게 맞닿아 있다고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예. 3개의 질문을 주셨는데 사실상은 하나의 질문인 것 같습니다. 작가가 예술적 영감을 어떻게 어디서 얻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짧게도 할 수 있고 길게도 할 수 있는데요. 저는 우선 벨라루스라는 나라에서 온 사람입니다. 벨라루스라는 나라는 지금도 자유를 위해서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는 나라입니다. 여러분께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2020년에 벨라루스에서는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와 혁명이 일어났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시민들이 100만 명에 달하는데, 그 사람들이 지금 조국을 떠나서 해외에서 거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사실은 그때 혁명이 실패할 것이라는 직감은 저희가 30여 년 동안 독재 치하 하에 살면서 계속해서 느껴왔던 것입니다. 제가 이번 방문까지 포함하면 한국에 세 차례 방문했는데요. 한국에 첫 번째 방문했을 당시에 <레드 아일랜드> 즉 붉은 섬이라는 제주도에 대해서 제가 처음 듣게 되었고 그때 그 사건들을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관련한 영화도 봤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굉장히 강렬하게 남아 있던 이유는 저는 인간이 겪고 있는 역사의 비극적 사건들에 대해 굉장히 깊은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 제가 한국을 다시 방문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최근 몇 년간 세계 지도를 펼쳐보면 안전하다, 보호받고 있다고 느낄 만한 나라가 별로 없다는 것, 우리 모두 자각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한가운데 있는 우크라이나마저도 지금 전쟁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도 그러한 상황이 있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이런 상황을 봤을 때 역사적 비극을 보면서 저와 같은 작가들은 이런 역사에서 어떤 정신을 어떤 교훈을 우리가 가져가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제 제가 제주공항에 도착해서 문이 열리자마자 야자수를 보았습니다. 야자수를 보면 오래된 잎이 밑에 있고 또 새로운 잎이 그 위에 자라나는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요. 그걸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과거로부터 받은 그런 어떤 덮개, 그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오늘 우리가 새롭게 취득하는 덮개는 무엇일까?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사실상 우리가 켜켜이 쌓아온 이런 관계들이 기억이라는 것이고, 이러한 기억은 고통을 통해 굉장히 잘 전달된다, 안타깝지만 그렇게 전달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달되는 기억을 가져가야 하는 것은, 과거로부터 가져가야 하는 것은 어떤 ‘악’을 목도하고 있을 때 혼자서 외롭게 맞서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한민족도 그렇고요. 벨라루스 민족도 아주 아름다운 기억, 굉장히 선한 사건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의 경탄을 자아낼 만한 그런 성과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악’이 이런 선한 풍경을 덮어버리고 있고, 그렇게 나타난 ‘악’은 매우 많은 얼굴, 다층적인 구조를 갖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제가 유튜브에서 뭔가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푸틴 대통령의 연설을 보게 됐습니다. 굉장히 놀랍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왜냐하면 ‘선’에 대해서 연설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그 본질은 ‘악’이었습니다. 그래서 ‘악’에 대해 말하면서 ‘선’과 같은 포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하나의 물음표를 달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악’에 대응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명확한 ‘악’에 맞서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제가 제주도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는 사실은 굉장한 신화의 섬이라고 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어떤 신화냐 하면요. 적극적인 저항의 정신을 추구하는 신화의 섬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오늘날 적극적인 저항 정신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저는 작가로서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더 발전시킬 수 있을지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
Q. 한국 첫 방문 때 붉은 섬 얘기를 듣고 나서 제주를 기억한다고 하셨는데, 그 당시에 어떤 상황에서 그 얘기를 들었는지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A. 시간이 많이 흘러서 정확히는 기억을 못 하는데, 한국에 방문했을 때 작가들과 만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간담회에서 어떤 작가분이 저를 가리켜서 ‘재난 작가’라고 말씀을 하길래 “아니다. 나는 재난을 쓰는 작가가 아니다. 나는 저항하기 위해 힘을 축적하고, 어떤 혼과 정신을 축적하는 것을 기록하는 사람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대답하자 그 작가분께서 한국에도 ‘저항의 섬’이 있다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

■ "한국이 내란 사태에서 '시민 저항'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힘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Q. 한국은 지난 4개월 동안 내란 사태로 굉장히 혹독한 시기를 보냈는데요. 지금도 말씀하셨지만, 시민들의 끈질긴 저항을 평소 중요하게 강조하셨는데, 이번 한국 상황을 어떻게 보셨는지. 그리고 인상 깊었던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또, 지금 곳곳에서 전쟁과 폭력이 벌어지고 있고 또 이런 가운데 극우 세력이 선동하는 혐오도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짙어지고 있는데요. 자칫 회의감에 빠지기 쉬운 이런 시대에 이 시대를 견딜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좋은 질문입니다. 저희가 모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죠. 한국에서 일어난 사태에 대해 제가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계속 추적했습니다. 그걸 보면서 오늘날에는 굉장히 낯설 수밖에 없는 그런 감정을 갖게 됐는데요. 바로 “민주주의를 믿어야 했다. 민주주의가 괜히 당황했었구나. 사실은 민주주의는 이런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저항의 힘이 있었는데, 그걸 바라고 있었으면 되는데, 당황할 필요가 없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관련해서 한국의 사태를 조명했던 어떤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정치인들도 갈 길을 잃은 상황, 그리고 실상은 민주주의가 저항할 힘도 없었던 것이냐고 생각하던 차에, 악이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가 생각하던 차에, 한국의 사태를 보면서 “사실은 그게 아니었구나. 우리가 이러한 역사적 사건에서 배울 수 있는 하나의 경험·교훈을, 시민 저항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힘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시다시피 공산주의가 모두 무너져서 없어졌다고 우리는 생각했지만, 공산주의에 남은 앙금들이 곳곳에 남아서, 러시아라는 그 세계에 의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시다시피 전 세계로 흩뿌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붙잡을 것은 시민 저항의 경험과 그것을 공유하는 것, 또 그것을 한국 사회가 너무나도 탁월하게 전 세계에 보여주고 증명해 줬다는 것을 제가 깨달았습니다. 오늘날의 악의 특징에 대하여서 생각을 해보면 악이 가진 위험성이 무엇일까요? 저는 그런 결론을 내립니다. 바로 악이 총체성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트럼프, 푸틴이 함께 힘을 합친 이두 마차처럼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려고 하고 있는데 저는 그런 상황을 보면서 마치 이 악이 총체적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면서 나아가고 있다는 그런 최면에 자꾸 걸립니다. 우리가 이 ‘악의 총체성’을 마주하면서 너무나도 빨리 뒷걸음질 치면서 포기하는 것은 아니냐는 생각을 해봅니다. ‘악의 총체성’의 근원은 무엇일까를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에는 소심한 어떤 작은 인간이 가진 공포심, 그 공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요새 뉴스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전 지구적으로 곳곳에서 우리는 실패와 좌절감을 맛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 왔던 그런 사상들, 사실은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 같았던 그런 것들이 계속해서 취약함을 드러내고, 위험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대자연이 보여주는 악의 총체성, 그러니까 그 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 이 두 개가 상쇄됐을 때, 마치 그 앞에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구나”라는 공포 때문에 온몸이 마비되는 것을 저는 느낍니다. 저는 작가로서 그리고 아마 다른 예술가들도 그럴 텐데요. 우리가 현재 선택할 수 있는 돌파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총체적인 악’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공포심 앞에서 놀라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군중에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좀 떨어져서 세상을 지켜보면서 아직은 합류하지 않고 판단하고 생각하는 그런 힘을 길러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돌파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신이 허락하신다면, 절대 평범하지 않은 해결책을 우리가 함께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답을 굉장히 어렵게 드리는 것 같아서 죄송스러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쉬운 답을 말하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 "집단이란 혼자 외롭게 싸워야 하지 않음을 의미"
Q. 작가님이 쓰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에 보면 작가님이 전쟁을 통해서 가족들을 다 잃었다고 그렇게 표현했는데요. 제주 4·3 때도 그렇게 온 가족이 희생당하는 그런 사례가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작가님이 어렸을 때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그 슬픔을 이겨내는지 궁금하고요. 또 하나는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셨다면 어떤 부분에서 공감하는지 궁금합니다.
A. 두 번째 질문에 먼저 답변드리면 안타깝게도 제가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러시아어로 번역이 돼 있지 않아서요. 제가 꼭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자면 어떻게 보면 평범한 답일 수도 있겠는데요. 제가 쓴 책 중에 <아연 소년들>이라는 라는 책이 있습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전쟁을 다룬 이야기인데, 제가 그것을 쓰면서 자녀를, 가족을 잃은 슬픔, 그리고 그 트라우마는 정말 극복하기가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자녀들이라 할지라도 칼과 총을 들고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러 간 군인들이었지만, 그 군인들마저도 어느 가족에게는 자녀였고 아이였습니다. 국제적인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요? 온 사회 온 나라 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트라우마가 아니라, 그 사회의 일부가 어떤 트라우마를 공유할 때는 참 극복하기가 어렵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고요. 왜냐하면 일부만 지옥에 빠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2차 세계대전과 같은 큰 트라우마는 예를 들어서 벨라루스 같은 경우에는 4명당 한 명이 죽었기 때문에, 매우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었던 집단적인 트라우마입니다. 집단이란 혼자 외롭게 싸워야 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래서 집단 트라우마를 회복하기가, 개인 트라우마보다는 훨씬 더 쉽겠다는 생각을 제가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경우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일부만 전쟁에 나가서 싸우고 있습니다. 누구는 돈을 벌러 우크라이나에 갔을 것이고 누구는 비자발적으로 참전을 했겠지만, 그런 국지적인 트라우마보다는 집단 트라우마가 훨씬 더 상처를 치유하기가 수월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모계가 우크라이나 쪽이라서, 반은 우크라이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우크라이나 쪽 친지분들이 지금도 전쟁 때문에 죽어가신 분들도 있고, 또 참전하시는 분들도 있고, 또 러시아에도 저의 친구들 또 친한 작가들이 있습니다. 근데 러시아에 사는 친한 작가 중에서 한 분이 “나는 우크라이나 놈들이라고 낮춰 부르면서 욕을 사용하면서, 우크라이나 놈들이 정말 싫어. 러시아는 위대해야 해”라고 하는 말을 제가 전해 들으면, 정말 무섭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의 벨라루스, 하나의 러시아는 없습니다. 벨라루스 안에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고, 러시아 안에서도 푸틴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통합되지 않은 사회에서 트라우마를 헤쳐 나가는 건 더군다나 힘듭니다. |
■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이 자체가 우리 인류가 보편적으로 힘을 얻는 원천이다"
Q. 저술 활동 외에도 민주화 운동 같은 실천적으로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계시는데요. 80살을 향해 가는 나이인데도 이렇게 누구보다 실천적인 저항의 삶을 사실 수 있는 원동력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개인적으로 본인의 소소한 일상에서 즐거움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도 여쭙고 싶습니다.
A. 예. 나이를 언급해 주셨는데, 나이는 사실은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지요. 피로해지지 않는 것은 너무 힘든 일입니다. 제가 더더군다나 평생 악에 맞서서 싸우려고 노력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면 아마 이것일 텐데요. “나는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4대에 걸쳐서 저희 집안이 농촌 지역에서 시골 지역에서 계속 교사를 했던 분들입니다. 저는 그분들의 정신, 그분들의 힘이 계속 축적돼서 저한테까지 내려온 것이 아닐까, 그게 나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그렇게 말하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우리는 심지어 전쟁에도 적응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TV를 켜고 컴퓨터를 켜면서 모닝커피 한 잔을 타서 앉으면, 우크라이나에서 오늘도 폭격이 있어서 19명이 사망을 했고 그중 5명이 아이들이라는 소식을 봅니다. 보면서 커피를 마시죠. 굉장히 어울리지 않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인격이기 때문에, 그런데도 계속해서 “아니지. 이건 아니지”라는 저항 정신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여기서 저항은 내면적 저항과 외면적 저항으로 구분할 수가 있는데요. ‘외면적 저항’이라 함은 우리가 실시간으로 듣는 끔찍한 정보들, 예를 들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지금 화해를 하려고 한다. 이미 우크라이나 국민 3명 중 1명은 푸틴에 의해서 장악을 당한 상태다. 매료된 상태다.” 이런 끔찍한 얘기들을 저는 들으면서 저런 불공정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는 “맞서야 해”라고 하면서 맞서는 것, 그게 외면적 저항이고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제는 이 끔찍한 소식을 들으면서 끔찍해 했던 내가, 오늘 이 끔찍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렇게 끔찍해하지 않는 이 모습에 벌써 적응된 모습을 보면서 “그러면 안 되지. 내가 누구였는지,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나 자신을 보존해야 해” 그런 저항,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약간 철학적인 질문을 주셨는데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아침에 해가 뜨는 걸 보고 저녁에 해가 지는 걸 보고, 제주도에도 정말 예쁜 것들이 많더라고요. 꽃과 나무를 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이 자체가 우리 인류가 보편적으로 힘을 얻는 원천이라고 생각하고요. 두 번째로는 저마다 인간은 자신이 힘을 회복시킬 수 있는 비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근데 그거는요 제 개인 소유라서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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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태 기자 ki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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