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가격표’ 때린 트럼프…하지만 관세 물가는 현실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5.05.03 (09:24) 수정 2025.05.0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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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시각 지난달 29일,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이 기자회견장에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사진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맹공격이 시작됐습니다.

"아마존의 적대적이고 정치적인 행위입니다. 바이든 행정부 시설 물가상승률이 4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을 때는 왜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로이터가 최근에 보도했듯이 아마존이 중국 선전 기관과 제휴를 맺었기 때문에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덧붙이고 싶습니다."

이렇게 아마존을 비난한 건, 아마존이 일부 상품 가격에 관세에 따른 가격 인상분을 표시하려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백악관의 직접 나서자 아마존은 "검토만 했을 뿐 구현되지 않았다"며 해당 방침을 철회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제프 베이조스가 문제를 아주 빨리 해결했고, 옳은 일을 했으며 그는 좋은 사람"이라고 화답했습니다.

아마존이 이런 방침을 검토했던 건 20달러 아래의 저가 상품을 파는 '아마존 홀(Amazon Haul)'이 대상이었습니다.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는 물품의 비중이 높다 보니 가격을 그냥 올릴 순 없고, 소비자에게 알려야겠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 하지만 '관세 물가'는 현실

백악관의 이런 대응은 관세로 인한 물가 영향이 겉으로 드러나는 걸 막기 위한 것으로 미국민들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은 없다"를 반복해 온 터입니다.

뉴욕에 사는 케이틀린 맥두걸 씨는 AP 통신에 "백악관이 하고 있는 것을 미국민들로부터 숨기려고 하는 게 분명하다"고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4월 23일부터 계산서에 4%의 관세 추가 비용을 더하겠다는 수입 업체의 이메일4월 23일부터 계산서에 4%의 관세 추가 비용을 더하겠다는 수입 업체의 이메일

실제 현장에선 어떨까요? 관세가 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수입업체와 슈퍼마켓 등을 찾아가 봤습니다.

취재진이 찾아간 수입업체는 중국으로부터 장바구니와 모자 등을 직접 수입하기도 하지만, 의류 등을 수입상으로부터 받기도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가격을 올리겠다는 이메일이 수입상으로부터 잇따르고 있다는 게 해당 업체의 말이었습니다. 이메일을 확인해 보니 "가격 인상 이유는 관세 때문"이라고 해당 이메일에 분명히 밝히고 있었습니다.

■ 물가는 이미 '들썩'

다만 4% 정도는 중간에서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위 업체의 말이었습니다.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없다는 설명입니다. 일부 미리 확보해 둔 재고도 있으니 얼마 동안 버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일이나 채소와 같은 신선식품은 좀 다릅니다. 저장할 수 있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으니, 관세의 영향을 더 빨리 받습니다. 취재진이 슈퍼를 찾아간 이유입니다.

소비자가 슈퍼마켓에서 채소를 고르고 있다. 중남미에서 들여온 채소 가격이 10%가량 올랐다.소비자가 슈퍼마켓에서 채소를 고르고 있다. 중남미에서 들여온 채소 가격이 10%가량 올랐다.

뉴욕 퀸스의 한 슈퍼마켓은 판매하는 채소의 약 70%를 중남미에서 들여옵니다. 이 슈퍼마켓의 대표는 관세 시행 이후 일부 품목의 가격이 10% 정도 올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5월, 6월로 넘어갈수록 날이 따뜻해지면서 캐나다에서 들여오는 채소의 비중이 높아지는데, 캐나다에 대한 관세는 25%이기 때문입니다.

■ 덩달아 오르는 '공산품값'

가격 상승은 관세의 영향을 당장 받는 신선 식품만이 아닙니다. 공산품 가격도 오르고 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공산품은 주로 중국에서 들여오는 저가 상품들입니다. 그런데 이게 최근 10~15%가량 올랐다고 합니다.

판매대 상단에 중국에서 들여온 음식 용기들이 진열돼 있다. 관세 부과 이후에 10~15%가량 가격이 올랐다는 게 슈퍼마켓의 설명이다.판매대 상단에 중국에서 들여온 음식 용기들이 진열돼 있다. 관세 부과 이후에 10~15%가량 가격이 올랐다는 게 슈퍼마켓의 설명이다.

이 물건들이 상호 관세 부과 이전에 들여온 것인지, 이후에 들여온 것인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상호 관세 시행 이후에 중국에서 선적된 물건들은 이제 미국에 도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물건들은 상호 관세 부과 이전에 들여온 물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도 이미 물건값을 올리기 시작한 겁니다. "사업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당연한 수순"이라는 게 업계의 전언입니다.

수입상들은 물량 조절도 하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찾은 다른 슈퍼마켓에선 물건을 주문해도 수입업체에서 원하는 수량만큼 주지 않는다고 증언했습니다.

■ 재고는 석 달에서 여섯 달 추정...그 이후는?

미국의 상품 수지 적자는 3월에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관세 시행을 앞두고 미리 재고를 쌓아두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쌓아 둔 재고가 품목 별로 석 달에서 여섯 달 분량 정도로 추정됩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물건값이 점차 오르기는 하겠지만 당장 큰 충격은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재고가 다 떨어지고 나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 서부 오클랜드항에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던 트럭들이 물량 감소로 주차장에 그대로 서 있다.미국 서부 오클랜드항에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던 트럭들이 물량 감소로 주차장에 그대로 서 있다.

월마트와 코스트코 대표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만나 "가격 상승도 상승이지만 매대가 아예 빌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확보해 둔 재고가 떨어지면 이 말이 어느 정도 현실화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조짐은 미국의 서부 항구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4월 물동량이 전보다 3분의 1 이상 줄어든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4월 중국으로부터의 선적 계약이 최소 40%에서 최대 60%까지 취소됐다는 추정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찾아갔던 수입업체도 관세를 다 물고 들여와 봐야 미국에서 팔 방법이 없다며, 이미 생산된 물건들을 그대로 중국에 쌓아 둔 상태였습니다.

물건이 줄어들면 가격은 더 오를 수 있습니다. 이미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물가 폭등을 경험해 온 소비자들, 특히 저소득층은 특히 물가에 민감합니다. 그러잖아도 근근이 버티는데 먹는 걸 더 줄이긴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에 응한 신디 씨는 "가족 다섯 명 한 끼 식사에 20~25달러 정도를 쓴다"며 "이제 한 식료품점에서 장을 다 볼 수 없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할인 상품들을 구매해야 예산에 맞출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패트리샤 씨는 "필요한 걸 사는 게 아니라 휴대전화를 들고 50센트나 1달러라도 할인하는 곳을 찾아 살 수 있는 걸 산다"고 했습니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가장 나쁜 점은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먹을 것을 빼앗아 간다"

1년 반 전, 미국 뉴욕에 있는 포덤 대학 경제학과의 지아코보 산탄젤로 교수의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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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세 가격표’ 때린 트럼프…하지만 관세 물가는 현실 [특파원 리포트]
    • 입력 2025-05-03 09:24:41
    • 수정2025-05-03 09: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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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시각 지난달 29일,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이 기자회견장에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사진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맹공격이 시작됐습니다.

"아마존의 적대적이고 정치적인 행위입니다. 바이든 행정부 시설 물가상승률이 4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을 때는 왜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로이터가 최근에 보도했듯이 아마존이 중국 선전 기관과 제휴를 맺었기 때문에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덧붙이고 싶습니다."

이렇게 아마존을 비난한 건, 아마존이 일부 상품 가격에 관세에 따른 가격 인상분을 표시하려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백악관의 직접 나서자 아마존은 "검토만 했을 뿐 구현되지 않았다"며 해당 방침을 철회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제프 베이조스가 문제를 아주 빨리 해결했고, 옳은 일을 했으며 그는 좋은 사람"이라고 화답했습니다.

아마존이 이런 방침을 검토했던 건 20달러 아래의 저가 상품을 파는 '아마존 홀(Amazon Haul)'이 대상이었습니다.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는 물품의 비중이 높다 보니 가격을 그냥 올릴 순 없고, 소비자에게 알려야겠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 하지만 '관세 물가'는 현실

백악관의 이런 대응은 관세로 인한 물가 영향이 겉으로 드러나는 걸 막기 위한 것으로 미국민들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은 없다"를 반복해 온 터입니다.

뉴욕에 사는 케이틀린 맥두걸 씨는 AP 통신에 "백악관이 하고 있는 것을 미국민들로부터 숨기려고 하는 게 분명하다"고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4월 23일부터 계산서에 4%의 관세 추가 비용을 더하겠다는 수입 업체의 이메일
실제 현장에선 어떨까요? 관세가 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수입업체와 슈퍼마켓 등을 찾아가 봤습니다.

취재진이 찾아간 수입업체는 중국으로부터 장바구니와 모자 등을 직접 수입하기도 하지만, 의류 등을 수입상으로부터 받기도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가격을 올리겠다는 이메일이 수입상으로부터 잇따르고 있다는 게 해당 업체의 말이었습니다. 이메일을 확인해 보니 "가격 인상 이유는 관세 때문"이라고 해당 이메일에 분명히 밝히고 있었습니다.

■ 물가는 이미 '들썩'

다만 4% 정도는 중간에서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위 업체의 말이었습니다.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없다는 설명입니다. 일부 미리 확보해 둔 재고도 있으니 얼마 동안 버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일이나 채소와 같은 신선식품은 좀 다릅니다. 저장할 수 있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으니, 관세의 영향을 더 빨리 받습니다. 취재진이 슈퍼를 찾아간 이유입니다.

소비자가 슈퍼마켓에서 채소를 고르고 있다. 중남미에서 들여온 채소 가격이 10%가량 올랐다.
뉴욕 퀸스의 한 슈퍼마켓은 판매하는 채소의 약 70%를 중남미에서 들여옵니다. 이 슈퍼마켓의 대표는 관세 시행 이후 일부 품목의 가격이 10% 정도 올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5월, 6월로 넘어갈수록 날이 따뜻해지면서 캐나다에서 들여오는 채소의 비중이 높아지는데, 캐나다에 대한 관세는 25%이기 때문입니다.

■ 덩달아 오르는 '공산품값'

가격 상승은 관세의 영향을 당장 받는 신선 식품만이 아닙니다. 공산품 가격도 오르고 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공산품은 주로 중국에서 들여오는 저가 상품들입니다. 그런데 이게 최근 10~15%가량 올랐다고 합니다.

판매대 상단에 중국에서 들여온 음식 용기들이 진열돼 있다. 관세 부과 이후에 10~15%가량 가격이 올랐다는 게 슈퍼마켓의 설명이다.
이 물건들이 상호 관세 부과 이전에 들여온 것인지, 이후에 들여온 것인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상호 관세 시행 이후에 중국에서 선적된 물건들은 이제 미국에 도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물건들은 상호 관세 부과 이전에 들여온 물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도 이미 물건값을 올리기 시작한 겁니다. "사업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당연한 수순"이라는 게 업계의 전언입니다.

수입상들은 물량 조절도 하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찾은 다른 슈퍼마켓에선 물건을 주문해도 수입업체에서 원하는 수량만큼 주지 않는다고 증언했습니다.

■ 재고는 석 달에서 여섯 달 추정...그 이후는?

미국의 상품 수지 적자는 3월에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관세 시행을 앞두고 미리 재고를 쌓아두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쌓아 둔 재고가 품목 별로 석 달에서 여섯 달 분량 정도로 추정됩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물건값이 점차 오르기는 하겠지만 당장 큰 충격은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재고가 다 떨어지고 나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 서부 오클랜드항에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던 트럭들이 물량 감소로 주차장에 그대로 서 있다.
월마트와 코스트코 대표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만나 "가격 상승도 상승이지만 매대가 아예 빌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확보해 둔 재고가 떨어지면 이 말이 어느 정도 현실화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조짐은 미국의 서부 항구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4월 물동량이 전보다 3분의 1 이상 줄어든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4월 중국으로부터의 선적 계약이 최소 40%에서 최대 60%까지 취소됐다는 추정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찾아갔던 수입업체도 관세를 다 물고 들여와 봐야 미국에서 팔 방법이 없다며, 이미 생산된 물건들을 그대로 중국에 쌓아 둔 상태였습니다.

물건이 줄어들면 가격은 더 오를 수 있습니다. 이미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물가 폭등을 경험해 온 소비자들, 특히 저소득층은 특히 물가에 민감합니다. 그러잖아도 근근이 버티는데 먹는 걸 더 줄이긴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에 응한 신디 씨는 "가족 다섯 명 한 끼 식사에 20~25달러 정도를 쓴다"며 "이제 한 식료품점에서 장을 다 볼 수 없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할인 상품들을 구매해야 예산에 맞출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패트리샤 씨는 "필요한 걸 사는 게 아니라 휴대전화를 들고 50센트나 1달러라도 할인하는 곳을 찾아 살 수 있는 걸 산다"고 했습니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가장 나쁜 점은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먹을 것을 빼앗아 간다"

1년 반 전, 미국 뉴욕에 있는 포덤 대학 경제학과의 지아코보 산탄젤로 교수의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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