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입양’ 빼고 가족

입력 2025.05.11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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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12세) / 생후 4개월 때 입양
- 나를 낳아준 엄마는 왜 나를 왜 입양 보냈어?

윤이 엄마
= 모든 사람은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다 기를 수 있는 환경이지가 않아. 어떤 엄마는 되게 열심히 돈을 벌고 아이한테 물질적으로나 모든 걸 해줄 수 있도록 열심히 살지만 그걸 못 해주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엄마는 너무 혼자라서...근데 윤이 낳아주신 분이 그랬대. 진짜로 윤이 주변에 가족이 없었대. 내가 이 아이를 출산은 했지만 잘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줘야 하겠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래서 입양을 보내셨대.

- 그러면 나를 낳아준 엄마를 만날 수 있어?
= 어...윤이가 만나고 싶어?
(고개 젓는 아이)
= 진짜 안 만나고 싶어?
- 모르겠어.
= 윤이가 만나고 싶다고 그래도 엄마 아빠한테 미안한 거 아니야 솔직히 얘기해도 돼.
(고개 젓는 아이)
= 근데 엄마는 윤이랑 같이 만나고 싶기는 해. 왜 만나고 싶을까?
- 몰라.
= 고맙다고 그래야지~ 감사합니다, 조윤이 엄마한테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야지~

"엄마 사랑해요~!"

가정이 필요한 아이와,
아이가 필요한 가정이 만나 ‘가족’이 되는 입양.

‘행복’이라는 집에,
‘축복’이라는 아이가 더해진 가족을 지금, 만나러 갑니다.


My name is Lene Wul Soon, Yang. I'm born here in this area and I've been at the Yangju Orphan house here in Dongducheon. I was adopted to Denmark in 1970 and I was presumably born in 1968.
"제 이름은 리나, 양을순(한국 이름)입니다. 저는 이 지역에서 태어났고 동두천에 있는 양주 영아원에 있었어요. 1970년에 덴마크로 입양됐고, 제 추정 출생년도는 1968년이에요."

My name is Melina and I was named MA Yong Bun in Korea.
I was born in March 1970 and after two days I was placed at the Yangju Baby Home.
"제 이름은 멜리나입니다. 한국 이름은 마용분이에요.. 1970년 3월에 태어났고, 이틀 후에 양주 영아원에 맡겨졌습니다."


50여 년 전 기저귀도 떼지 못한 채 비행기로 13시간 거리의 먼 타국으로 보내진 이들.
엄마 품에서 떼어져 잠시 머물렀던 영아원은 서류상이지만, 유일한 ‘고향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상가와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현실, 과거 모습과 비슷한 담장만 봐도 가슴이 떨립니다.

This wall, looks... It could be...
"이 벽, 어쩌면..."
It looks similar to this one.
"이 벽이 옛날 (영아원) 사진에 찍힌 벽과 닮았네요."

두 사람은 같은 영아원 출신, 덴마크 입양인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며 50대 후반에 ‘뿌리’를 찾기 위한 여정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양을순(Lene) / 덴마크 입양인
but then I started having this feeling or longing for Korea and my Korean mother. So I went back to Korea in 2000 and I visited Dongdujhong and I was looking for the orphan house and the orphan house was no more there.
"(20대 이후) 어느 순간부터 한국과 한국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게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2000년에 처음 한국으로 돌아와 동두천을 방문했고, 제가 있었던 영아원을 찾아갔는데 더는 존재하지 않더라고요."

2년 연속 한국을 방문해 영아원과 생모에 대한 단서를 찾고 있지만, 남은 기록이 별로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마용분(Malene) / 덴마크 입양인
I don't know much about my adoption, which is a thing, so I have only very few papers.
"제 입양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어요. 가지고 있는 기록도 얼마 안 되거든요."

그래서 이들에겐 남아있을지 모를 작은 흔적, 주민들의 기억 파편 하나하나가 매우 소중합니다.

문태인 / 애신아동복지센터 원장
2천 년도 들면서 시스템화되면서 자료들이 좀 많이 있고 그전에는 자료들이 별로 없고요. (양주 영아원처럼) 없어진 시설들은 자료를 찾기가 참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결국, 이들은 자치단체의 협조를 받아 같은 영아원 출신 입양인들과 지역 주민을 연결해 ‘뿌리’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양을순(Lene) / 덴마크 입양인
So we need to know more about our orphan house, this is our starting point...
"저희가 머물렀던 영아원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해요. 그게 우리 활동의 출발점이거든요."

박형덕 / 동두천시장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가 조금만 관심을 갖고 노력을 하면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그 시대에 계셨던 분들이 여기 아직 많이 살고 계세요.

이들이 이렇게까지 애써 ‘뿌리’를 찾으려는 이유는 뭘까.

마용분(Malene) / 덴마크 입양인
but I would just like to look into their eyes and see just like when I look at my kids, I see it's race of me in them and of their father.
"그저 친생 가족의 눈을 들여다보고 싶어요. 제가 제 아이들의 눈을 볼 때, 그 안에서 제 모습과 아이들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요."

양을순(Lene) / 덴마크 입양인
Yeah, I would really like to find my parents or even some families. Yeah of course, I would like to know their story but the important thing I think is just to reconnect... sorry...
"정말 제 친생 부모나 가족을 찾고 싶어요. 물론 가족의 사연을 듣고 싶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시 가족과 연결되는 것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눈물) 미안해요..."


어쩔 수 없이 딸을 해외로 떠나보내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도 애달프긴 마찬가지입니다. 김봉호 씨는 47년 전, 19살 여자 친구와의 사이에서 딸을 얻었지만 키울 형편이 못 돼 입양을 결정했습니다.

김봉호(70) / 해외 입양아 생부
1978년 한 5~6월 정도로 내가 기억을 해요. 그때 (딸을) 낳아서 병원 측에서 ‘해외로 입양 간다’ 그 얘기만 잠깐 들은 것으로 기억하고, 병원 이름은 대흥동 사거리 천주교(대흥동 성당) 바로 옆에 ‘박원상 산부인과’라고 있었어요.

지난해부터 김 씨는 가슴 한편에 묻어뒀던 딸을 찾아 나섰습니다.
하지만 딸이 태어난 병원은 오래전 사라졌고, 남은 기록도 찾기 힘든 상황.

텔레비전에 나온 입양 여성이 혹시 딸일까 싶어 DNA 검사도 해봤습니다.

김봉호(70) / 해외 입양아 생부
(한국 온 입양인) 30명 중에 여자 한 명이 꼭 내가 봐도 나하고 닮았어. 나이도 40대고 1978년도에 낳았다가 보내졌다고 그러고. 그래서 거기를 한번 이렇게 연결을 해서 그쪽에 (내) 유전자 보내고 해서, 한 달 조금 넘어서 연락이 왔더라고. 다르다고, 유전자가 다르다고.

임주현 / 취재기자
지금 따님을 꼭 찾고 싶으세요?

김봉호(70) / 해외 입양아 생부
찾는 데까지는, 내가 죽을 때까지 찾고는 싶다는 얘기죠.

김 씨는, 딸이 이국땅이 아닌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면 끝내 못 찾더라도 한결 마음은 편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김봉호(70) / 해외 입양아 생부
해외에 가면 말도 안 통할 테고 그렇잖아요. 운 나쁜 애들은 그냥 부모한테 멸시받고 살았던 애들도 있고, 진짜 좋은 부모 만나서 훌륭하게 큰 애들도 있고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차라리 그냥 국내에서 입양돼서 살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2천년대 들어 입양 정보는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다지만,
국내 입양과 달리 정체성 혼란과 인종차별 등에 취약한 해외 입양아의 현실은 여전하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박현선 / 세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내 부모가 나를 버렸을 뿐만 아니라 내 국가도 나를 포기했다’라는 이중의 아픔과 상실감에 아이들이 커갈수록 부닥칠 수밖에 없고, 인종 간 입양이 된다면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기 쉬운데 물론 잘 적응하고 넘어가는 입양 아동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심각한 정신 건강 문제나 자살률도 굉장히 높다’라고 얘기하는 게 그런 어려움들 때문이 아닐까라고 이야기합니다.

양을순(Lene) / 덴마크 입양인
So I think the hard thing with adoption is that you, it's like your ties with your culture and everything that you, what's well known in a sense is broken. So...
"해외 입양이 힘든 건, 자신이 속했던 문화나 익숙했던 모든 것과 연결이 끊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국제사회는 아이를 위해 가능한 한 국내 입양을 권고합니다.
우리 정부도 오래전부터 국내 입양 활성화를 표방하긴 했지만, 2006년까지만 해도 해외 입양이 국내 입양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박현선 / 세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국가의 아동보호 체계가 친생 가정에서 잘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초기 상담을 보다 적극적으로 했다면 해외 입양은 지금보다 훨씬 더 줄어들었을 거예요. 굉장히 정책적 의지가 큽니다. 해외 입양을 보내고 안 보내는 거는.

2년 전에야 비로소 한 해 해외 입양아가 100명 밑으로 떨어졌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해외 입양을 많이 보내는 나라로 꼽힙니다.


이유리 / 복지부 입양제도개편팀장
5개월 이상 국내에서 가정을 찾는 노력을 하다가 그것이 어려우면 해외 입양이 고려되는데, 국내에서 오랜 기간 양부모님을 찾지 못하는 아이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에 해외 입양이 남아 있다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정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국내에서 다 품지 못한다는 건데,
실제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여건이 허락되면 입양하고 싶다’고 답한 사람들의 비율이 지난해 기준 9%로, 줄어드는 추셉니다.
‘친자 여부’, ‘사회적 편견’ 등 부정적 인식이 입양을 꺼리게 만드는 걸림돌로 꼽혔습니다.

정영란 / 한국입양홍보회 부장
입양에 대한 편견이 우리나라에 생각보다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가족’이라고 하면 일단 ‘혈연’ 중심이거든요. 입양하면 일단 남의 핏줄, 이런 생각을 갖고 있어서. 그런데 (입양아처럼) 부부는 혈연이 아니잖아요. 남남이잖아요.

과거 국가가 묵인했던 불법적 입양의 폐해나, 어쩌다 터져 나오는 입양아 학대 사건도 대중의 뇌리에 부정적 편견을 커지게 했습니다.

정영란 / 한국입양홍보회 부장
(일반적인) 어떤 학대나, 아니면 안타까운 일로 사망에 이르는 이런 사건들이 일어난 것을 조금 시각을 달리 봤으면 좋겠다... 그런 사건들은 대부분 입양 때문에 생긴 게 아니거든요.


국내 입양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인 변화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민간 주도였던 입양 시스템을 ‘국가 주도’로 바꾸고, 아동 중심 입양과 해외 입양 최소화 원칙을 명확히 한 입양법이 개정돼 오는 7월 시행됩니다.

이제 과제는, 국내 입양의 걸림돌인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겁니다.

이유리 / 복지부 입양제도개편팀장
이러한 공적 입양 체계를 통해서 보다 아동의 이익을 가장 우선으로 한 입양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 아이의 엄마 전성신 씨.
12년 전 막내, 별이를 입양했습니다.

전성신 / 별이 엄마
그 당시 별이는 사실 생후 2개월이 채 안 된 굉장히 갓난아기였어요. (입양기관) 접견실에 복지사 선생님께서 아이를 데리고 오셨는데, 아이를 딱 보자마자 너무 예쁘고 ‘정말 이 아이다’ 이런 느낌이 보자마자 들었거든요.

다복한 가정을 바랐던 부부지만, 처음부터 입양에 선뜻 마음을 연 건 아니었습니다.

전성신 / 별이 엄마
제가 입양 부모가 되기 전에는 아마 편견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직접 육아를 해보고 나니까 내가 이 아이를 얻는 방법이 출산이냐 입양이냐 이게 달랐지, 그 시작 때문에 키우는 과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별이는 테니스 선수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운동에 소질을 보였고 여러 대회에서 수상도 했습니다.

별이 엄마는 매일 땡볕에서 훈련하는 딸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합니다.


김별 / 딸
(제가) 막내이기도 하면서 뭔가 좀 특별한 것 같아요. 사랑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대회 같은 데 나가서 잘해서 부모님께, 여태까지 부모님이 제게 해주신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별이는 6살 때 엄마로부터 자신의 입양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마음으로 낳은 딸’ 별이는 그 사실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였고, 엄마의 바람대로 당당한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김별 / 딸
처음에는 제가 친구들한테 알려줬는데 친구들도 이해를 다 하더라고요 입양이라는 단어를. 그런 거 보면 저도 기분이 뿌듯했고, 친구들도 입양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임주현 / 취재기자
입양이 뭐라고 생각해요?

김별 / 딸
입양은 출산하지 않고도 가족이 되는 또 하나의 방법인 것 같아요.


KBS 보도(2025.3.31)
"출생아 10명 중 1명이 난임 시술로 태어나는데, 한 해 시술 건수가 20만 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난임으로 고통 받다 입양을 택한 예인이네 가족.


유보연‧김우석 / 예인이 엄마‧아빠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다 보니까 사실 허니문 베이비가 찾아왔었는데 7주 만에 먼저 하늘나라 보냈거든요. 그리고
시험관 시술도 여러 번 했는데 ‘아이가 잘 찾아오지 않아서 어떻게 할까’ 남편하고 고민하다가 입양을 하게 됐죠.

돌도 안 지났던 예인이는 이들 부부를 만나 가족이 됐습니다.


유보연 / 예인이 엄마
(입양) 결정을 하고 나니까, 그 결정한 순간부터 내 아이가 되더라고요. 마음속에. 신기했어요. 그 경험이 너무 신비로운데, 이 아이가 시설에서 지내고 있다라는 게 너무 속상한 거예요.

보연 씨 부부는 예인이를 기쁘게 맞이하면서도, 사회적 편견 때문에 딸이 상처 입지 않을까 걱정도 했습니다.


김우석 / 예인이 아빠
저희를 보는 사람들의 선입견 때문에 약간 두려움이 있었죠. 뭐 아닌 말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 그런 얘기도 그전에 뭐 어떻게든 들었던 말들이라서, 우리 아이가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될까 그게 되게 조심스러웠어요.

엄마: 안녕, 예인이는? 예인아~ 안녕히 계세요, 인사하자.
예인: 태권! 감사합니다!

예인: 엄마도, 아~ 줄까 말까 줄까 말까, 주지 마! (웃음)

장난꾸러기 딸과 친구 같은 엄마, 그리고 ‘딸바보’ 아빠까지.

아빠: 이리 와!
예인: 아, 깜짝이야.. 아빠!


보연 씨 부부는 동생을 원하는 예인이를 위해, 더 큰 행복을 위해 ‘한 명 더’ 입양하기로 했습니다.

유보연‧김우석 / 예인이 엄마‧아빠
입양을 한다 그러면 뭐 ‘대단하시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멋지십니다’라고 말을 하는데 사실은요. 그게 저희가 칭찬받을 그럴 일이 아니라 저희에게 좋은 일이더라고요. 아이의 세상도 바뀌지만 부모의 세상도 바뀌고요. 정말 행복과 커다란 축복인 것 같아요.

혈연이 아닌 인연으로 맺어진 이들.
모두, 평범한 가족입니다


예인: 하나~ 둘~ 셋!
가족: We are family! 빰빰빰~

#입양의날 #입양 #가족 #가정의달 #인구 #저출생 #저출산 #대한민국 #베이비박스 #보호아동 #복지

취재:임주현
촬영:조선기, 강우용, 오광택, 신봉승
편집:최정연
그래픽:장수현
리서처:채희주
조연출:심은별, 이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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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보다] ‘입양’ 빼고 가족
    • 입력 2025-05-11 23:12:09
    사회


조윤(12세) / 생후 4개월 때 입양
- 나를 낳아준 엄마는 왜 나를 왜 입양 보냈어?

윤이 엄마
= 모든 사람은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다 기를 수 있는 환경이지가 않아. 어떤 엄마는 되게 열심히 돈을 벌고 아이한테 물질적으로나 모든 걸 해줄 수 있도록 열심히 살지만 그걸 못 해주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엄마는 너무 혼자라서...근데 윤이 낳아주신 분이 그랬대. 진짜로 윤이 주변에 가족이 없었대. 내가 이 아이를 출산은 했지만 잘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줘야 하겠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래서 입양을 보내셨대.

- 그러면 나를 낳아준 엄마를 만날 수 있어?
= 어...윤이가 만나고 싶어?
(고개 젓는 아이)
= 진짜 안 만나고 싶어?
- 모르겠어.
= 윤이가 만나고 싶다고 그래도 엄마 아빠한테 미안한 거 아니야 솔직히 얘기해도 돼.
(고개 젓는 아이)
= 근데 엄마는 윤이랑 같이 만나고 싶기는 해. 왜 만나고 싶을까?
- 몰라.
= 고맙다고 그래야지~ 감사합니다, 조윤이 엄마한테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야지~

"엄마 사랑해요~!"

가정이 필요한 아이와,
아이가 필요한 가정이 만나 ‘가족’이 되는 입양.

‘행복’이라는 집에,
‘축복’이라는 아이가 더해진 가족을 지금, 만나러 갑니다.


My name is Lene Wul Soon, Yang. I'm born here in this area and I've been at the Yangju Orphan house here in Dongducheon. I was adopted to Denmark in 1970 and I was presumably born in 1968.
"제 이름은 리나, 양을순(한국 이름)입니다. 저는 이 지역에서 태어났고 동두천에 있는 양주 영아원에 있었어요. 1970년에 덴마크로 입양됐고, 제 추정 출생년도는 1968년이에요."

My name is Melina and I was named MA Yong Bun in Korea.
I was born in March 1970 and after two days I was placed at the Yangju Baby Home.
"제 이름은 멜리나입니다. 한국 이름은 마용분이에요.. 1970년 3월에 태어났고, 이틀 후에 양주 영아원에 맡겨졌습니다."


50여 년 전 기저귀도 떼지 못한 채 비행기로 13시간 거리의 먼 타국으로 보내진 이들.
엄마 품에서 떼어져 잠시 머물렀던 영아원은 서류상이지만, 유일한 ‘고향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상가와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현실, 과거 모습과 비슷한 담장만 봐도 가슴이 떨립니다.

This wall, looks... It could be...
"이 벽, 어쩌면..."
It looks similar to this one.
"이 벽이 옛날 (영아원) 사진에 찍힌 벽과 닮았네요."

두 사람은 같은 영아원 출신, 덴마크 입양인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며 50대 후반에 ‘뿌리’를 찾기 위한 여정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양을순(Lene) / 덴마크 입양인
but then I started having this feeling or longing for Korea and my Korean mother. So I went back to Korea in 2000 and I visited Dongdujhong and I was looking for the orphan house and the orphan house was no more there.
"(20대 이후) 어느 순간부터 한국과 한국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게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2000년에 처음 한국으로 돌아와 동두천을 방문했고, 제가 있었던 영아원을 찾아갔는데 더는 존재하지 않더라고요."

2년 연속 한국을 방문해 영아원과 생모에 대한 단서를 찾고 있지만, 남은 기록이 별로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마용분(Malene) / 덴마크 입양인
I don't know much about my adoption, which is a thing, so I have only very few papers.
"제 입양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어요. 가지고 있는 기록도 얼마 안 되거든요."

그래서 이들에겐 남아있을지 모를 작은 흔적, 주민들의 기억 파편 하나하나가 매우 소중합니다.

문태인 / 애신아동복지센터 원장
2천 년도 들면서 시스템화되면서 자료들이 좀 많이 있고 그전에는 자료들이 별로 없고요. (양주 영아원처럼) 없어진 시설들은 자료를 찾기가 참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결국, 이들은 자치단체의 협조를 받아 같은 영아원 출신 입양인들과 지역 주민을 연결해 ‘뿌리’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양을순(Lene) / 덴마크 입양인
So we need to know more about our orphan house, this is our starting point...
"저희가 머물렀던 영아원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해요. 그게 우리 활동의 출발점이거든요."

박형덕 / 동두천시장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가 조금만 관심을 갖고 노력을 하면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그 시대에 계셨던 분들이 여기 아직 많이 살고 계세요.

이들이 이렇게까지 애써 ‘뿌리’를 찾으려는 이유는 뭘까.

마용분(Malene) / 덴마크 입양인
but I would just like to look into their eyes and see just like when I look at my kids, I see it's race of me in them and of their father.
"그저 친생 가족의 눈을 들여다보고 싶어요. 제가 제 아이들의 눈을 볼 때, 그 안에서 제 모습과 아이들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요."

양을순(Lene) / 덴마크 입양인
Yeah, I would really like to find my parents or even some families. Yeah of course, I would like to know their story but the important thing I think is just to reconnect... sorry...
"정말 제 친생 부모나 가족을 찾고 싶어요. 물론 가족의 사연을 듣고 싶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시 가족과 연결되는 것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눈물) 미안해요..."


어쩔 수 없이 딸을 해외로 떠나보내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도 애달프긴 마찬가지입니다. 김봉호 씨는 47년 전, 19살 여자 친구와의 사이에서 딸을 얻었지만 키울 형편이 못 돼 입양을 결정했습니다.

김봉호(70) / 해외 입양아 생부
1978년 한 5~6월 정도로 내가 기억을 해요. 그때 (딸을) 낳아서 병원 측에서 ‘해외로 입양 간다’ 그 얘기만 잠깐 들은 것으로 기억하고, 병원 이름은 대흥동 사거리 천주교(대흥동 성당) 바로 옆에 ‘박원상 산부인과’라고 있었어요.

지난해부터 김 씨는 가슴 한편에 묻어뒀던 딸을 찾아 나섰습니다.
하지만 딸이 태어난 병원은 오래전 사라졌고, 남은 기록도 찾기 힘든 상황.

텔레비전에 나온 입양 여성이 혹시 딸일까 싶어 DNA 검사도 해봤습니다.

김봉호(70) / 해외 입양아 생부
(한국 온 입양인) 30명 중에 여자 한 명이 꼭 내가 봐도 나하고 닮았어. 나이도 40대고 1978년도에 낳았다가 보내졌다고 그러고. 그래서 거기를 한번 이렇게 연결을 해서 그쪽에 (내) 유전자 보내고 해서, 한 달 조금 넘어서 연락이 왔더라고. 다르다고, 유전자가 다르다고.

임주현 / 취재기자
지금 따님을 꼭 찾고 싶으세요?

김봉호(70) / 해외 입양아 생부
찾는 데까지는, 내가 죽을 때까지 찾고는 싶다는 얘기죠.

김 씨는, 딸이 이국땅이 아닌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면 끝내 못 찾더라도 한결 마음은 편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김봉호(70) / 해외 입양아 생부
해외에 가면 말도 안 통할 테고 그렇잖아요. 운 나쁜 애들은 그냥 부모한테 멸시받고 살았던 애들도 있고, 진짜 좋은 부모 만나서 훌륭하게 큰 애들도 있고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차라리 그냥 국내에서 입양돼서 살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2천년대 들어 입양 정보는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다지만,
국내 입양과 달리 정체성 혼란과 인종차별 등에 취약한 해외 입양아의 현실은 여전하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박현선 / 세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내 부모가 나를 버렸을 뿐만 아니라 내 국가도 나를 포기했다’라는 이중의 아픔과 상실감에 아이들이 커갈수록 부닥칠 수밖에 없고, 인종 간 입양이 된다면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기 쉬운데 물론 잘 적응하고 넘어가는 입양 아동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심각한 정신 건강 문제나 자살률도 굉장히 높다’라고 얘기하는 게 그런 어려움들 때문이 아닐까라고 이야기합니다.

양을순(Lene) / 덴마크 입양인
So I think the hard thing with adoption is that you, it's like your ties with your culture and everything that you, what's well known in a sense is broken. So...
"해외 입양이 힘든 건, 자신이 속했던 문화나 익숙했던 모든 것과 연결이 끊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국제사회는 아이를 위해 가능한 한 국내 입양을 권고합니다.
우리 정부도 오래전부터 국내 입양 활성화를 표방하긴 했지만, 2006년까지만 해도 해외 입양이 국내 입양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박현선 / 세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국가의 아동보호 체계가 친생 가정에서 잘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초기 상담을 보다 적극적으로 했다면 해외 입양은 지금보다 훨씬 더 줄어들었을 거예요. 굉장히 정책적 의지가 큽니다. 해외 입양을 보내고 안 보내는 거는.

2년 전에야 비로소 한 해 해외 입양아가 100명 밑으로 떨어졌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해외 입양을 많이 보내는 나라로 꼽힙니다.


이유리 / 복지부 입양제도개편팀장
5개월 이상 국내에서 가정을 찾는 노력을 하다가 그것이 어려우면 해외 입양이 고려되는데, 국내에서 오랜 기간 양부모님을 찾지 못하는 아이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에 해외 입양이 남아 있다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정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국내에서 다 품지 못한다는 건데,
실제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여건이 허락되면 입양하고 싶다’고 답한 사람들의 비율이 지난해 기준 9%로, 줄어드는 추셉니다.
‘친자 여부’, ‘사회적 편견’ 등 부정적 인식이 입양을 꺼리게 만드는 걸림돌로 꼽혔습니다.

정영란 / 한국입양홍보회 부장
입양에 대한 편견이 우리나라에 생각보다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가족’이라고 하면 일단 ‘혈연’ 중심이거든요. 입양하면 일단 남의 핏줄, 이런 생각을 갖고 있어서. 그런데 (입양아처럼) 부부는 혈연이 아니잖아요. 남남이잖아요.

과거 국가가 묵인했던 불법적 입양의 폐해나, 어쩌다 터져 나오는 입양아 학대 사건도 대중의 뇌리에 부정적 편견을 커지게 했습니다.

정영란 / 한국입양홍보회 부장
(일반적인) 어떤 학대나, 아니면 안타까운 일로 사망에 이르는 이런 사건들이 일어난 것을 조금 시각을 달리 봤으면 좋겠다... 그런 사건들은 대부분 입양 때문에 생긴 게 아니거든요.


국내 입양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인 변화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민간 주도였던 입양 시스템을 ‘국가 주도’로 바꾸고, 아동 중심 입양과 해외 입양 최소화 원칙을 명확히 한 입양법이 개정돼 오는 7월 시행됩니다.

이제 과제는, 국내 입양의 걸림돌인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겁니다.

이유리 / 복지부 입양제도개편팀장
이러한 공적 입양 체계를 통해서 보다 아동의 이익을 가장 우선으로 한 입양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 아이의 엄마 전성신 씨.
12년 전 막내, 별이를 입양했습니다.

전성신 / 별이 엄마
그 당시 별이는 사실 생후 2개월이 채 안 된 굉장히 갓난아기였어요. (입양기관) 접견실에 복지사 선생님께서 아이를 데리고 오셨는데, 아이를 딱 보자마자 너무 예쁘고 ‘정말 이 아이다’ 이런 느낌이 보자마자 들었거든요.

다복한 가정을 바랐던 부부지만, 처음부터 입양에 선뜻 마음을 연 건 아니었습니다.

전성신 / 별이 엄마
제가 입양 부모가 되기 전에는 아마 편견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직접 육아를 해보고 나니까 내가 이 아이를 얻는 방법이 출산이냐 입양이냐 이게 달랐지, 그 시작 때문에 키우는 과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별이는 테니스 선수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운동에 소질을 보였고 여러 대회에서 수상도 했습니다.

별이 엄마는 매일 땡볕에서 훈련하는 딸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합니다.


김별 / 딸
(제가) 막내이기도 하면서 뭔가 좀 특별한 것 같아요. 사랑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대회 같은 데 나가서 잘해서 부모님께, 여태까지 부모님이 제게 해주신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별이는 6살 때 엄마로부터 자신의 입양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마음으로 낳은 딸’ 별이는 그 사실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였고, 엄마의 바람대로 당당한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김별 / 딸
처음에는 제가 친구들한테 알려줬는데 친구들도 이해를 다 하더라고요 입양이라는 단어를. 그런 거 보면 저도 기분이 뿌듯했고, 친구들도 입양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임주현 / 취재기자
입양이 뭐라고 생각해요?

김별 / 딸
입양은 출산하지 않고도 가족이 되는 또 하나의 방법인 것 같아요.


KBS 보도(2025.3.31)
"출생아 10명 중 1명이 난임 시술로 태어나는데, 한 해 시술 건수가 20만 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난임으로 고통 받다 입양을 택한 예인이네 가족.


유보연‧김우석 / 예인이 엄마‧아빠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다 보니까 사실 허니문 베이비가 찾아왔었는데 7주 만에 먼저 하늘나라 보냈거든요. 그리고
시험관 시술도 여러 번 했는데 ‘아이가 잘 찾아오지 않아서 어떻게 할까’ 남편하고 고민하다가 입양을 하게 됐죠.

돌도 안 지났던 예인이는 이들 부부를 만나 가족이 됐습니다.


유보연 / 예인이 엄마
(입양) 결정을 하고 나니까, 그 결정한 순간부터 내 아이가 되더라고요. 마음속에. 신기했어요. 그 경험이 너무 신비로운데, 이 아이가 시설에서 지내고 있다라는 게 너무 속상한 거예요.

보연 씨 부부는 예인이를 기쁘게 맞이하면서도, 사회적 편견 때문에 딸이 상처 입지 않을까 걱정도 했습니다.


김우석 / 예인이 아빠
저희를 보는 사람들의 선입견 때문에 약간 두려움이 있었죠. 뭐 아닌 말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 그런 얘기도 그전에 뭐 어떻게든 들었던 말들이라서, 우리 아이가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될까 그게 되게 조심스러웠어요.

엄마: 안녕, 예인이는? 예인아~ 안녕히 계세요, 인사하자.
예인: 태권! 감사합니다!

예인: 엄마도, 아~ 줄까 말까 줄까 말까, 주지 마! (웃음)

장난꾸러기 딸과 친구 같은 엄마, 그리고 ‘딸바보’ 아빠까지.

아빠: 이리 와!
예인: 아, 깜짝이야.. 아빠!


보연 씨 부부는 동생을 원하는 예인이를 위해, 더 큰 행복을 위해 ‘한 명 더’ 입양하기로 했습니다.

유보연‧김우석 / 예인이 엄마‧아빠
입양을 한다 그러면 뭐 ‘대단하시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멋지십니다’라고 말을 하는데 사실은요. 그게 저희가 칭찬받을 그럴 일이 아니라 저희에게 좋은 일이더라고요. 아이의 세상도 바뀌지만 부모의 세상도 바뀌고요. 정말 행복과 커다란 축복인 것 같아요.

혈연이 아닌 인연으로 맺어진 이들.
모두, 평범한 가족입니다


예인: 하나~ 둘~ 셋!
가족: We are family! 빰빰빰~

#입양의날 #입양 #가족 #가정의달 #인구 #저출생 #저출산 #대한민국 #베이비박스 #보호아동 #복지

취재:임주현
촬영:조선기, 강우용, 오광택, 신봉승
편집:최정연
그래픽:장수현
리서처:채희주
조연출:심은별, 이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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