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힘’ 보여준 광주 공동체
입력 2025.05.14 (19:04)
수정 2025.05.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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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2·3 비상계엄 당일 밤, 광주 시민들은 공포와 불안 속에서도 5·18 민주광장으로, 국회로 향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했습니다.
또 광주 공동체가 보여준 대처 역시 다른 지역과는 달랐습니다.
12·3 비상계엄을 계기로 5·18의 현재적 의미를 추적하는 연속기획, 오늘은 계엄 이후 지역 공동체의 행적을 이성각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5·18 최후항쟁 하루 전인 1980년 5월26일 아침, 광주 외곽으로 물러갔던 계엄군이 탱크를 몰고 도심에 접근하자, 시민 대표들과 종교인 등 수습위원들이 맨몸으로 나섰습니다.
계엄군의 진입을 막기 위한 일명 '죽음의 행진'이었습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해 12월 3일 밤에도 광주시와 시의회, 시민사회와 종교계 대표 등 3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5·18 당시 수습위원회와 같은 연석회의가 긴급하게 열린 겁니다.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이날 밤 민간이 함께한 대책회의는 광주가 유일했습니다.
[강기정/광주시장/지난해 12월 3일 : "시민들의 힘을 믿습니다. 80년 5월을 승리로 이끌었던 광주시민들은 이 작금의 상황에 대해서 결단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슷한 시각 , 옛 전남도청 앞….
["퇴진하라! 퇴진하라!"]
약속이나한듯 5·18 민주광장에 시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오주섭/광주경실련 사무처장/지난해 12월 4일 새벽 : "이제는 아마 시민들이 아마 광장으로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윤석열이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5·18 민주광장은 44년 전처럼 비상계엄 해제와 대통령 탄핵 찬성운동의 항쟁 거점이 됐습니다.
탄핵 국면에서도 누구든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공론의 장이자, 서로 용기를 나누는 상징적 공간이었습니다.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전문가들은 5·18에 대한 부채의식이나 죄책감, 그리고 압도적 무력에 맞섰던 공동체 정신이 이번에도 발현된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최정기/전남대 명예교수 :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라는 것을 보면서 곧바로 정의롭지 못한 권력 행사, 거기에 대해 우리가 피해야 되는 것 아니라 맞서야 된다는 생각으로 나타났습니다."]
1980년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 흩뿌려진 오월 정신은 민주주의 위기의 순간에 되살아나 지난 겨울부터 봄 사이 전국의 광장으로 확장되었습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촬영기자:안재훈
12·3 비상계엄 당일 밤, 광주 시민들은 공포와 불안 속에서도 5·18 민주광장으로, 국회로 향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했습니다.
또 광주 공동체가 보여준 대처 역시 다른 지역과는 달랐습니다.
12·3 비상계엄을 계기로 5·18의 현재적 의미를 추적하는 연속기획, 오늘은 계엄 이후 지역 공동체의 행적을 이성각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5·18 최후항쟁 하루 전인 1980년 5월26일 아침, 광주 외곽으로 물러갔던 계엄군이 탱크를 몰고 도심에 접근하자, 시민 대표들과 종교인 등 수습위원들이 맨몸으로 나섰습니다.
계엄군의 진입을 막기 위한 일명 '죽음의 행진'이었습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해 12월 3일 밤에도 광주시와 시의회, 시민사회와 종교계 대표 등 3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5·18 당시 수습위원회와 같은 연석회의가 긴급하게 열린 겁니다.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이날 밤 민간이 함께한 대책회의는 광주가 유일했습니다.
[강기정/광주시장/지난해 12월 3일 : "시민들의 힘을 믿습니다. 80년 5월을 승리로 이끌었던 광주시민들은 이 작금의 상황에 대해서 결단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슷한 시각 , 옛 전남도청 앞….
["퇴진하라! 퇴진하라!"]
약속이나한듯 5·18 민주광장에 시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오주섭/광주경실련 사무처장/지난해 12월 4일 새벽 : "이제는 아마 시민들이 아마 광장으로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윤석열이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5·18 민주광장은 44년 전처럼 비상계엄 해제와 대통령 탄핵 찬성운동의 항쟁 거점이 됐습니다.
탄핵 국면에서도 누구든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공론의 장이자, 서로 용기를 나누는 상징적 공간이었습니다.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전문가들은 5·18에 대한 부채의식이나 죄책감, 그리고 압도적 무력에 맞섰던 공동체 정신이 이번에도 발현된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최정기/전남대 명예교수 :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라는 것을 보면서 곧바로 정의롭지 못한 권력 행사, 거기에 대해 우리가 피해야 되는 것 아니라 맞서야 된다는 생각으로 나타났습니다."]
1980년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 흩뿌려진 오월 정신은 민주주의 위기의 순간에 되살아나 지난 겨울부터 봄 사이 전국의 광장으로 확장되었습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촬영기자:안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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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5-05-14 20:24:08

[앵커]
12·3 비상계엄 당일 밤, 광주 시민들은 공포와 불안 속에서도 5·18 민주광장으로, 국회로 향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했습니다.
또 광주 공동체가 보여준 대처 역시 다른 지역과는 달랐습니다.
12·3 비상계엄을 계기로 5·18의 현재적 의미를 추적하는 연속기획, 오늘은 계엄 이후 지역 공동체의 행적을 이성각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5·18 최후항쟁 하루 전인 1980년 5월26일 아침, 광주 외곽으로 물러갔던 계엄군이 탱크를 몰고 도심에 접근하자, 시민 대표들과 종교인 등 수습위원들이 맨몸으로 나섰습니다.
계엄군의 진입을 막기 위한 일명 '죽음의 행진'이었습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해 12월 3일 밤에도 광주시와 시의회, 시민사회와 종교계 대표 등 3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5·18 당시 수습위원회와 같은 연석회의가 긴급하게 열린 겁니다.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이날 밤 민간이 함께한 대책회의는 광주가 유일했습니다.
[강기정/광주시장/지난해 12월 3일 : "시민들의 힘을 믿습니다. 80년 5월을 승리로 이끌었던 광주시민들은 이 작금의 상황에 대해서 결단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슷한 시각 , 옛 전남도청 앞….
["퇴진하라! 퇴진하라!"]
약속이나한듯 5·18 민주광장에 시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오주섭/광주경실련 사무처장/지난해 12월 4일 새벽 : "이제는 아마 시민들이 아마 광장으로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윤석열이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5·18 민주광장은 44년 전처럼 비상계엄 해제와 대통령 탄핵 찬성운동의 항쟁 거점이 됐습니다.
탄핵 국면에서도 누구든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공론의 장이자, 서로 용기를 나누는 상징적 공간이었습니다.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전문가들은 5·18에 대한 부채의식이나 죄책감, 그리고 압도적 무력에 맞섰던 공동체 정신이 이번에도 발현된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최정기/전남대 명예교수 :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라는 것을 보면서 곧바로 정의롭지 못한 권력 행사, 거기에 대해 우리가 피해야 되는 것 아니라 맞서야 된다는 생각으로 나타났습니다."]
1980년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 흩뿌려진 오월 정신은 민주주의 위기의 순간에 되살아나 지난 겨울부터 봄 사이 전국의 광장으로 확장되었습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촬영기자:안재훈
12·3 비상계엄 당일 밤, 광주 시민들은 공포와 불안 속에서도 5·18 민주광장으로, 국회로 향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했습니다.
또 광주 공동체가 보여준 대처 역시 다른 지역과는 달랐습니다.
12·3 비상계엄을 계기로 5·18의 현재적 의미를 추적하는 연속기획, 오늘은 계엄 이후 지역 공동체의 행적을 이성각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5·18 최후항쟁 하루 전인 1980년 5월26일 아침, 광주 외곽으로 물러갔던 계엄군이 탱크를 몰고 도심에 접근하자, 시민 대표들과 종교인 등 수습위원들이 맨몸으로 나섰습니다.
계엄군의 진입을 막기 위한 일명 '죽음의 행진'이었습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해 12월 3일 밤에도 광주시와 시의회, 시민사회와 종교계 대표 등 3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5·18 당시 수습위원회와 같은 연석회의가 긴급하게 열린 겁니다.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이날 밤 민간이 함께한 대책회의는 광주가 유일했습니다.
[강기정/광주시장/지난해 12월 3일 : "시민들의 힘을 믿습니다. 80년 5월을 승리로 이끌었던 광주시민들은 이 작금의 상황에 대해서 결단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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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진하라! 퇴진하라!"]
약속이나한듯 5·18 민주광장에 시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오주섭/광주경실련 사무처장/지난해 12월 4일 새벽 : "이제는 아마 시민들이 아마 광장으로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윤석열이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5·18 민주광장은 44년 전처럼 비상계엄 해제와 대통령 탄핵 찬성운동의 항쟁 거점이 됐습니다.
탄핵 국면에서도 누구든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공론의 장이자, 서로 용기를 나누는 상징적 공간이었습니다.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전문가들은 5·18에 대한 부채의식이나 죄책감, 그리고 압도적 무력에 맞섰던 공동체 정신이 이번에도 발현된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최정기/전남대 명예교수 :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라는 것을 보면서 곧바로 정의롭지 못한 권력 행사, 거기에 대해 우리가 피해야 되는 것 아니라 맞서야 된다는 생각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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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각 기자 dril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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