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려면?”…4·3이 5·18에 묻다

입력 2025.05.20 (18:13) 수정 2025.05.2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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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5·18기념재단 오월지기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시된 사진을 바라보며 그날의 참상을 설명하는 모습.김용철 5·18기념재단 오월지기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시된 사진을 바라보며 그날의 참상을 설명하는 모습.


"여러분,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습니다. 우리는 그걸 12·3으로 확인했습니다."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만난 김용철 5·18기념재단 오월지기는 "12·3 불법 계엄을 막아낼 수 있었던 건 45년 전 5·18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습니다.

작가 한강이 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해 던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45년이 흘렀지만, 우리가 5·18의 아픔과 의미를 기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2011년 5·18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5·18은 광주만이 아닌 세계가 기억해야 할 역사가 됐고, 기억을 잇기 위해 2015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건립됐습니다.


■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는 무엇이 담겼나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시된 계엄군의 총탄이 관통했던 광주은행 옛 본점의 유리창.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시된 계엄군의 총탄이 관통했던 광주은행 옛 본점의 유리창.


5·18민주화운동 전야제 준비가 한창인 지난 15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 위치한 5·18기록관을 찾았습니다.

옛 전남도청 앞 광장부터 직선으로 2km 정도 뻗어있는 금남로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인해 희생된 시민들의 피가 물든 곳입니다.

현재 총소리는 사라졌지만, 곳곳엔 여전히 그날의 충격적인 장면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옛 가톨릭센터에 자리한 기록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계엄군의 총탄이 관통했던 광주은행 옛 본점의 유리창이었습니다. 당시 무자비하게 날아든 총탄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둔 겁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시된 시민들의 일기장과 편지, 취재수첩 등.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시된 시민들의 일기장과 편지, 취재수첩 등.


다음으로 눈길을 잡아끈 건 당시의 참상을 담은 사진들이었습니다.

시민들이 작성한 성명서부터 선언문, 일기, 증언자료, 그리고 기자의 취재 수첩에는 긴박했던 당시의 면면과 '시민이 주인'이라는 절박한 외침이 담겨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시민군에게 나눠주기 위해 만든 주먹밥을 담았던 '양은 함지박'을 통해서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광주의 '공동체 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광주 동구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에 있는 전일빌딩245.광주 동구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에 있는 전일빌딩245.


5·18기록관에서 200여m 떨어진 '전일빌딩245'에도 5·18기념공간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이곳은 5·18 당시 헬기 사격의 증거인 탄환 245개가 발견된 곳입니다.

이곳에서 눈에 띄었던 건 헬기 사격의 증거를 조목조목 풀어내고, 원형 그대로 보존된 탄흔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전일빌딩245에 전시된 가짜뉴스 소개 섹션.전일빌딩245에 전시된 가짜뉴스 소개 섹션.


또 과거 전일빌딩에서 사용했던 문짝 위에 5·18을 왜곡하는 가짜 뉴스를 소개 하고, 을 열면 진실이 무엇인지 설명한 부 도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 4·3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그 후, 5·18에 길을 묻다

제주에서 광주를 찾은 이유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이후 가야 할 길을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 4월 제주 4·3 기록물이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의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제주에서도 4·3 기록물의 가치를 미래 세대에 전승하기 위한 기록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일빌딩245에서 해설가가 관람객들에게 헬기 사격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전일빌딩245에서 해설가가 관람객들에게 헬기 사격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김호균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단지 '보관'하고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기억'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과 해석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김 관장은 "가치 있는 기록물을 수장고에 묻어 놓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면서 "기록물의 가치를 재해석하고 현재화시켜야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김 관장은 특히 "자기가 살고 있는 현재의 5·18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고, 자기 삶에 적용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기록물은 '현재와 대화하는 도구'가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4층에 마련된 <소년이 온다> 특별전.5·18민주화운동기록관 4층에 마련된 <소년이 온다> 특별전.


소설 <소년이 온다> 속 내용과 기록물을 연결해 특별전을 열고, 가짜뉴스를 바로잡기 위한 전시를 진행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느껴졌습니다.

다만 김 관장은 기록물을 이관받는 데 있어 여전히 과제가 남아있다고 토로했습니다.

김 관장은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새롭게 발굴하고 작성한 5·18 조사기록물이 광주로 이관되지 않고 국가기록원으로 넘어가 버렸다"며 "절차 없이 가져와 활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국이 어수선하다 보니 유야무야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4·3기록물과 관련해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인 만큼, 4·3특별법 개정 과정에서도 유념해야 할 부분입니다.

광주 동구 금남로에 위치한 5·18민주화운동기록관.광주 동구 금남로에 위치한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안종철 전 5·18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추진단장은 '기록관의 접근성'을 강조했습니다.

안 전 추진단장은 "5·18기록관은 역사적으로 상징적인 장소이자 접근성이 뛰어난 곳에 있기 때문에 광주를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들리는 곳이 됐다"며 "현재 제주에 4·3평화기념관이 있지만 접근성이 불편한 곳에 있기 때문에 기록관은 쉽게 갈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의미가 있는 장소일지라도, 사람이 와야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4·3의 도화선이 됐던 관덕정 일대나, 한강 작가가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언급한 4·3 당시 최대 학살터인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 인근 등을 후보지로 떠올려봤습니다.

과거 정부기록보존소에 근무하면서 4·3 수형인 명부를 최초로 발견한 김재순 전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장에게도 4·3기록관이 나아갈 방향을 물었습니다.

김 전 관장은 "기록관을 만들어도 공공기록물법상 중앙정부에서 생산한 기록물을 지자체 차원에서 보존할 수 없기 때문에 사본이나 복제본만 전시할 수 있다"면서 " 제주에 국가기록원 분원 시설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습니다.

김 전 관장은 또 "과거에는 종이문서를 스캔하는 방식으로 디지털화가 이뤄졌다면, 현재 선진 각국에선 증언과 사진, 영상, 인명 등 기록을 종합적으로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며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선 선진 모델로 제작해서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5·18 오월지기부터 학계 전문가들까지, 이들이 한목소리로 말하는 가치는 하나였습니다.
바로 제주 4·3의 기록은 단지 과거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로 가기 위한 '기억의 지도'가 돼야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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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려면?”…4·3이 5·18에 묻다
    • 입력 2025-05-20 18:13:30
    • 수정2025-05-20 18:16:14
    제주
김용철  5·18기념재단 오월지기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시된 사진을 바라보며 그날의 참상을 설명하는 모습.

"여러분,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습니다. 우리는 그걸 12·3으로 확인했습니다."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만난 김용철 5·18기념재단 오월지기는 "12·3 불법 계엄을 막아낼 수 있었던 건 45년 전 5·18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습니다.

작가 한강이 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해 던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45년이 흘렀지만, 우리가 5·18의 아픔과 의미를 기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2011년 5·18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5·18은 광주만이 아닌 세계가 기억해야 할 역사가 됐고, 기억을 잇기 위해 2015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건립됐습니다.


■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는 무엇이 담겼나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시된 계엄군의 총탄이 관통했던 광주은행 옛 본점의 유리창.

5·18민주화운동 전야제 준비가 한창인 지난 15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 위치한 5·18기록관을 찾았습니다.

옛 전남도청 앞 광장부터 직선으로 2km 정도 뻗어있는 금남로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인해 희생된 시민들의 피가 물든 곳입니다.

현재 총소리는 사라졌지만, 곳곳엔 여전히 그날의 충격적인 장면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옛 가톨릭센터에 자리한 기록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계엄군의 총탄이 관통했던 광주은행 옛 본점의 유리창이었습니다. 당시 무자비하게 날아든 총탄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둔 겁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시된 시민들의 일기장과 편지, 취재수첩 등.

다음으로 눈길을 잡아끈 건 당시의 참상을 담은 사진들이었습니다.

시민들이 작성한 성명서부터 선언문, 일기, 증언자료, 그리고 기자의 취재 수첩에는 긴박했던 당시의 면면과 '시민이 주인'이라는 절박한 외침이 담겨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시민군에게 나눠주기 위해 만든 주먹밥을 담았던 '양은 함지박'을 통해서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광주의 '공동체 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광주 동구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에 있는 전일빌딩245.

5·18기록관에서 200여m 떨어진 '전일빌딩245'에도 5·18기념공간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이곳은 5·18 당시 헬기 사격의 증거인 탄환 245개가 발견된 곳입니다.

이곳에서 눈에 띄었던 건 헬기 사격의 증거를 조목조목 풀어내고, 원형 그대로 보존된 탄흔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전일빌딩245에 전시된 가짜뉴스 소개 섹션.

또 과거 전일빌딩에서 사용했던 문짝 위에 5·18을 왜곡하는 가짜 뉴스를 소개 하고, 을 열면 진실이 무엇인지 설명한 부 도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 4·3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그 후, 5·18에 길을 묻다

제주에서 광주를 찾은 이유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이후 가야 할 길을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 4월 제주 4·3 기록물이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의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제주에서도 4·3 기록물의 가치를 미래 세대에 전승하기 위한 기록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일빌딩245에서 해설가가 관람객들에게 헬기 사격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김호균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단지 '보관'하고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기억'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과 해석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김 관장은 "가치 있는 기록물을 수장고에 묻어 놓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면서 "기록물의 가치를 재해석하고 현재화시켜야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김 관장은 특히 "자기가 살고 있는 현재의 5·18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고, 자기 삶에 적용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기록물은 '현재와 대화하는 도구'가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4층에 마련된 <소년이 온다> 특별전.

소설 <소년이 온다> 속 내용과 기록물을 연결해 특별전을 열고, 가짜뉴스를 바로잡기 위한 전시를 진행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느껴졌습니다.

다만 김 관장은 기록물을 이관받는 데 있어 여전히 과제가 남아있다고 토로했습니다.

김 관장은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새롭게 발굴하고 작성한 5·18 조사기록물이 광주로 이관되지 않고 국가기록원으로 넘어가 버렸다"며 "절차 없이 가져와 활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국이 어수선하다 보니 유야무야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4·3기록물과 관련해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인 만큼, 4·3특별법 개정 과정에서도 유념해야 할 부분입니다.

광주 동구 금남로에 위치한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안종철 전 5·18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추진단장은 '기록관의 접근성'을 강조했습니다.

안 전 추진단장은 "5·18기록관은 역사적으로 상징적인 장소이자 접근성이 뛰어난 곳에 있기 때문에 광주를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들리는 곳이 됐다"며 "현재 제주에 4·3평화기념관이 있지만 접근성이 불편한 곳에 있기 때문에 기록관은 쉽게 갈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의미가 있는 장소일지라도, 사람이 와야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4·3의 도화선이 됐던 관덕정 일대나, 한강 작가가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언급한 4·3 당시 최대 학살터인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 인근 등을 후보지로 떠올려봤습니다.

과거 정부기록보존소에 근무하면서 4·3 수형인 명부를 최초로 발견한 김재순 전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장에게도 4·3기록관이 나아갈 방향을 물었습니다.

김 전 관장은 "기록관을 만들어도 공공기록물법상 중앙정부에서 생산한 기록물을 지자체 차원에서 보존할 수 없기 때문에 사본이나 복제본만 전시할 수 있다"면서 " 제주에 국가기록원 분원 시설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습니다.

김 전 관장은 또 "과거에는 종이문서를 스캔하는 방식으로 디지털화가 이뤄졌다면, 현재 선진 각국에선 증언과 사진, 영상, 인명 등 기록을 종합적으로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며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선 선진 모델로 제작해서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5·18 오월지기부터 학계 전문가들까지, 이들이 한목소리로 말하는 가치는 하나였습니다.
바로 제주 4·3의 기록은 단지 과거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로 가기 위한 '기억의 지도'가 돼야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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