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을 떠올린 광주 밖 사람들 [계엄의 기억]③
입력 2025.05.23 (17:00)
수정 2025.05.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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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3 비상계엄 때 1980년 5월을 떠올렸던 것은 광주 사람들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날 밤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은 5.18을 소환했습니다.
KBS의 '12.3 비상계엄 증언 채록 프로젝트 -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에서도 확인됩니다. 증언 채록 프로젝트에 담긴 광주 밖 사람들의 그날 5.18 이야기를 정리해 봅니다.
[바로가기] KBS 12.3 비상계엄 증언 프로젝트-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KBS1203

비상계엄의 공포 속에서도 국회에 모인 사람들은 광주와 5.18을 떠올렸습니다. 무엇보다 공수부대의 모습은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김선영/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장 옛날에 5.18 광주에서 들었던 정말 계엄군 공수부대가 투입되는구나. 그때부터는 좀 '야 진짜 계엄이구나' 공포감이 좀 오긴 하더라고요. |

50살 직장인 최진영 씨는 계엄 당일 국회 경내에 진입하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80년 5월 광주의 비극이 재현되는 걸 막아야 했습니다.
최진영/직장인 광주처럼 시민을 죽일 수 없어요. 정신 차려. 이 명령은 거절해야 돼요. 명령 거부하세요. |

충남 당진에 사는 63살 생산직 노동자 홍원기 씨는 야간 근무 직전에 비상계엄 소식을 듣고 근무를 바꿨습니다. 곧바로 차를 몰고 국회로 향했던 그는 광주를 생각했습니다.
홍원기/노동자 80년대를 경험했던, 그리고 광주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아마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 않았을까. |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생활하던 젊은 세대들의 감정도 특별했습니다. 밴드 '전기뱀장어' 멤버인 39살 황인경 씨는 '80년 광주'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가족과 지역사회에서 들었던 얘기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실시간 소식을 주고받는 12월 3일 밤과 달리 완전히 고립됐던 5.18 광주의 상황을 가늠해 봤다고 했습니다.
황인경/가수 삼촌 같은 경우에도 당시 계엄군에게 구타를 당해서 허리 부상을 입었던 (경험이 있어요.) 저한테 계엄은 되게 큰 폭력이예요. (중략) 5.18 때 광주에서는 어떻게 서로 소식을 주고받고 했을까? (어떻게) 상황 파악을 하고 위험한 상황을 피해 가고 했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까 많이 답답했을 것 같은 거예요. 그때 그 막막한 두려움을 이겨낸 (광주 사람들의) 용기가 참 대단하구나. |

성공회대 대학생 송영경 씨는 5.18 역사 탐방의 경험이 그날 밤 자신을 국회로 이끌었다고 말합니다. 수능이 끝나고 전남대와 5.18묘역 등 사적지를 방문했던 그는 "그때 배웠던 광주와 역사를 안고 저도 국회로 향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말합니다.

인권운동 활동가인 32살 이대선 씨는 5.18에 대한 부채 의식을 안고 산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이 씨의 아버지는 5.18 당시 친척의 권유로 잠시 광주를 피해 있었고, 이후 광주 시민에 대해 늘 미안함을 안고 살았습니다. 이대선 씨는 그래서 이날 국회로 향했습니다.
이대선/국제앰네스티 활동가 이때 내가 나가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고 평생 부채감이나 미안한 마음으로 살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

광주 밖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날 밤, 5.18을 생각하며 민주주의를 향한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연관 기사]
[계엄의 기억]① 45년 만의 계엄…광주는 달랐다(2025. 5. 22)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60884
[계엄의 기억]② 5.18은 12.3을 어떻게 구했나(2025. 5. 23)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6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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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을 떠올린 광주 밖 사람들 [계엄의 기억]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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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5-23 17:00:06
- 수정2025-05-23 17:00:14

2024년 12.3 비상계엄 때 1980년 5월을 떠올렸던 것은 광주 사람들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날 밤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은 5.18을 소환했습니다.
KBS의 '12.3 비상계엄 증언 채록 프로젝트 -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에서도 확인됩니다. 증언 채록 프로젝트에 담긴 광주 밖 사람들의 그날 5.18 이야기를 정리해 봅니다.
[바로가기] KBS 12.3 비상계엄 증언 프로젝트-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KBS1203

비상계엄의 공포 속에서도 국회에 모인 사람들은 광주와 5.18을 떠올렸습니다. 무엇보다 공수부대의 모습은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김선영/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장 옛날에 5.18 광주에서 들었던 정말 계엄군 공수부대가 투입되는구나. 그때부터는 좀 '야 진짜 계엄이구나' 공포감이 좀 오긴 하더라고요. |

50살 직장인 최진영 씨는 계엄 당일 국회 경내에 진입하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80년 5월 광주의 비극이 재현되는 걸 막아야 했습니다.
최진영/직장인 광주처럼 시민을 죽일 수 없어요. 정신 차려. 이 명령은 거절해야 돼요. 명령 거부하세요. |

충남 당진에 사는 63살 생산직 노동자 홍원기 씨는 야간 근무 직전에 비상계엄 소식을 듣고 근무를 바꿨습니다. 곧바로 차를 몰고 국회로 향했던 그는 광주를 생각했습니다.
홍원기/노동자 80년대를 경험했던, 그리고 광주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아마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 않았을까. |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생활하던 젊은 세대들의 감정도 특별했습니다. 밴드 '전기뱀장어' 멤버인 39살 황인경 씨는 '80년 광주'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가족과 지역사회에서 들었던 얘기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실시간 소식을 주고받는 12월 3일 밤과 달리 완전히 고립됐던 5.18 광주의 상황을 가늠해 봤다고 했습니다.
황인경/가수 삼촌 같은 경우에도 당시 계엄군에게 구타를 당해서 허리 부상을 입었던 (경험이 있어요.) 저한테 계엄은 되게 큰 폭력이예요. (중략) 5.18 때 광주에서는 어떻게 서로 소식을 주고받고 했을까? (어떻게) 상황 파악을 하고 위험한 상황을 피해 가고 했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까 많이 답답했을 것 같은 거예요. 그때 그 막막한 두려움을 이겨낸 (광주 사람들의) 용기가 참 대단하구나. |

성공회대 대학생 송영경 씨는 5.18 역사 탐방의 경험이 그날 밤 자신을 국회로 이끌었다고 말합니다. 수능이 끝나고 전남대와 5.18묘역 등 사적지를 방문했던 그는 "그때 배웠던 광주와 역사를 안고 저도 국회로 향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말합니다.

인권운동 활동가인 32살 이대선 씨는 5.18에 대한 부채 의식을 안고 산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이 씨의 아버지는 5.18 당시 친척의 권유로 잠시 광주를 피해 있었고, 이후 광주 시민에 대해 늘 미안함을 안고 살았습니다. 이대선 씨는 그래서 이날 국회로 향했습니다.
이대선/국제앰네스티 활동가 이때 내가 나가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고 평생 부채감이나 미안한 마음으로 살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

광주 밖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날 밤, 5.18을 생각하며 민주주의를 향한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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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의 기억]② 5.18은 12.3을 어떻게 구했나(2025. 5. 23)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6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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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각 기자 dril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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