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전기철도교량…통일로 달린다
입력 2025.06.09 (19:27)
수정 2025.06.09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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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 '강원유산지도'는 광복 80주년의 의미를 따라가 봅니다.
철원에는 금강산까지 이어졌었던 '금강산 전기철도'가 있었던 사실을 아십니까?
100년 전 개통됐던 철도가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채 국가 등록 문화유산으로 남아있습니다.
김문영 기자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국토 최북단을 흐르는 한탄강 최상류.
높은 다리 위로 철로가 있습니다.
철길은 오랜 세월에 붉게 녹슬었고, 군데군데 망가진 곳은 나무로 덧대 놓았습니다.
이내 마주하는 '지뢰 매설' 경고문.
철길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관광철도인 금강산 전기철도가 다니던 다리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일본회사인 철춘철도주식회사가 철원역에서 내금강역까지 116km 구간을 기차로 운행했습니다.
서울에서 경원선을 타고 철원으로 와, 이 기차를 다시 갈아타야 내금강역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시속 30km로 달리면 철원역에서 4시간 반이 걸립니다.
요금으로 쌀 한 가마 값이 들었다지만, 한해 15만 명이 탔을 정도로 인기 있는 관광상품이었습니다.
[이영길/철원군 갈말읍/1941년생 : "양복 입고 모자도 좀 멋쟁이 모자 쓰고 그러고 금강산 관광 가는 사람들이지. 지나가면 우리는 그 사람들 보고 손 흔들어주면 그 사람들도 손 흔들어 주고. (아버지가) 내가 신선이 되어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슬슬 날아다니는 기분이 들더라 그래, 그래서 내가 야 금강산이 참 무지하게 좋긴 좋구나! 그렇게 감명을 받았어."]
철원 김화읍은 이 철도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관광객이 많아 숙박업소가 잘 돼, 10만 명 넘는 인구가 살았습니다.
일제강점기 철도는 수탈한 광산물 수송에 쓰였습니다.
해방 후 한국전쟁 시기에는 북한 군수물자 수송에 활용됐습니다.
[김영규/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 : "인민군에 끌려가는 열차가 되기도 했고요. 전쟁 때는 또 전쟁물자가 실려 갔던 열차이기도 하고…. 때때마다 다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열차였기 때문에 철원 지역 주민들 또 김화 지역 주민들한테는 기쁨 혹은 슬픔 이별 아주 많은 역사적 의미가 담긴 열차가 금강산 전기철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제 치하부터 남북 분단까지 고된 세월을 버텨낸 교량에는 총탄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우리 역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품고 있어 2004년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됐습니다.
'금강산 가는 길'은 이제, 주민들의 기억에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이 철길이 남북과 동서를 관통하는 날이 오기를 주민들은 꿈꿔봅니다.
["국민들 다 소원이 통일 아냐, 통일되면 금강산 제일 먼저 가고 싶겠지."]
KBS 뉴스 김문영입니다.
촬영기자:최중호
오늘 '강원유산지도'는 광복 80주년의 의미를 따라가 봅니다.
철원에는 금강산까지 이어졌었던 '금강산 전기철도'가 있었던 사실을 아십니까?
100년 전 개통됐던 철도가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채 국가 등록 문화유산으로 남아있습니다.
김문영 기자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국토 최북단을 흐르는 한탄강 최상류.
높은 다리 위로 철로가 있습니다.
철길은 오랜 세월에 붉게 녹슬었고, 군데군데 망가진 곳은 나무로 덧대 놓았습니다.
이내 마주하는 '지뢰 매설' 경고문.
철길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관광철도인 금강산 전기철도가 다니던 다리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일본회사인 철춘철도주식회사가 철원역에서 내금강역까지 116km 구간을 기차로 운행했습니다.
서울에서 경원선을 타고 철원으로 와, 이 기차를 다시 갈아타야 내금강역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시속 30km로 달리면 철원역에서 4시간 반이 걸립니다.
요금으로 쌀 한 가마 값이 들었다지만, 한해 15만 명이 탔을 정도로 인기 있는 관광상품이었습니다.
[이영길/철원군 갈말읍/1941년생 : "양복 입고 모자도 좀 멋쟁이 모자 쓰고 그러고 금강산 관광 가는 사람들이지. 지나가면 우리는 그 사람들 보고 손 흔들어주면 그 사람들도 손 흔들어 주고. (아버지가) 내가 신선이 되어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슬슬 날아다니는 기분이 들더라 그래, 그래서 내가 야 금강산이 참 무지하게 좋긴 좋구나! 그렇게 감명을 받았어."]
철원 김화읍은 이 철도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관광객이 많아 숙박업소가 잘 돼, 10만 명 넘는 인구가 살았습니다.
일제강점기 철도는 수탈한 광산물 수송에 쓰였습니다.
해방 후 한국전쟁 시기에는 북한 군수물자 수송에 활용됐습니다.
[김영규/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 : "인민군에 끌려가는 열차가 되기도 했고요. 전쟁 때는 또 전쟁물자가 실려 갔던 열차이기도 하고…. 때때마다 다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열차였기 때문에 철원 지역 주민들 또 김화 지역 주민들한테는 기쁨 혹은 슬픔 이별 아주 많은 역사적 의미가 담긴 열차가 금강산 전기철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제 치하부터 남북 분단까지 고된 세월을 버텨낸 교량에는 총탄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우리 역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품고 있어 2004년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됐습니다.
'금강산 가는 길'은 이제, 주민들의 기억에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이 철길이 남북과 동서를 관통하는 날이 오기를 주민들은 꿈꿔봅니다.
["국민들 다 소원이 통일 아냐, 통일되면 금강산 제일 먼저 가고 싶겠지."]
KBS 뉴스 김문영입니다.
촬영기자:최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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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5-06-09 19:4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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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원유산지도'는 광복 80주년의 의미를 따라가 봅니다.
철원에는 금강산까지 이어졌었던 '금강산 전기철도'가 있었던 사실을 아십니까?
100년 전 개통됐던 철도가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채 국가 등록 문화유산으로 남아있습니다.
김문영 기자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국토 최북단을 흐르는 한탄강 최상류.
높은 다리 위로 철로가 있습니다.
철길은 오랜 세월에 붉게 녹슬었고, 군데군데 망가진 곳은 나무로 덧대 놓았습니다.
이내 마주하는 '지뢰 매설' 경고문.
철길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관광철도인 금강산 전기철도가 다니던 다리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일본회사인 철춘철도주식회사가 철원역에서 내금강역까지 116km 구간을 기차로 운행했습니다.
서울에서 경원선을 타고 철원으로 와, 이 기차를 다시 갈아타야 내금강역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시속 30km로 달리면 철원역에서 4시간 반이 걸립니다.
요금으로 쌀 한 가마 값이 들었다지만, 한해 15만 명이 탔을 정도로 인기 있는 관광상품이었습니다.
[이영길/철원군 갈말읍/1941년생 : "양복 입고 모자도 좀 멋쟁이 모자 쓰고 그러고 금강산 관광 가는 사람들이지. 지나가면 우리는 그 사람들 보고 손 흔들어주면 그 사람들도 손 흔들어 주고. (아버지가) 내가 신선이 되어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슬슬 날아다니는 기분이 들더라 그래, 그래서 내가 야 금강산이 참 무지하게 좋긴 좋구나! 그렇게 감명을 받았어."]
철원 김화읍은 이 철도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관광객이 많아 숙박업소가 잘 돼, 10만 명 넘는 인구가 살았습니다.
일제강점기 철도는 수탈한 광산물 수송에 쓰였습니다.
해방 후 한국전쟁 시기에는 북한 군수물자 수송에 활용됐습니다.
[김영규/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 : "인민군에 끌려가는 열차가 되기도 했고요. 전쟁 때는 또 전쟁물자가 실려 갔던 열차이기도 하고…. 때때마다 다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열차였기 때문에 철원 지역 주민들 또 김화 지역 주민들한테는 기쁨 혹은 슬픔 이별 아주 많은 역사적 의미가 담긴 열차가 금강산 전기철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제 치하부터 남북 분단까지 고된 세월을 버텨낸 교량에는 총탄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우리 역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품고 있어 2004년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됐습니다.
'금강산 가는 길'은 이제, 주민들의 기억에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이 철길이 남북과 동서를 관통하는 날이 오기를 주민들은 꿈꿔봅니다.
["국민들 다 소원이 통일 아냐, 통일되면 금강산 제일 먼저 가고 싶겠지."]
KBS 뉴스 김문영입니다.
촬영기자:최중호
오늘 '강원유산지도'는 광복 80주년의 의미를 따라가 봅니다.
철원에는 금강산까지 이어졌었던 '금강산 전기철도'가 있었던 사실을 아십니까?
100년 전 개통됐던 철도가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채 국가 등록 문화유산으로 남아있습니다.
김문영 기자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국토 최북단을 흐르는 한탄강 최상류.
높은 다리 위로 철로가 있습니다.
철길은 오랜 세월에 붉게 녹슬었고, 군데군데 망가진 곳은 나무로 덧대 놓았습니다.
이내 마주하는 '지뢰 매설' 경고문.
철길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관광철도인 금강산 전기철도가 다니던 다리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일본회사인 철춘철도주식회사가 철원역에서 내금강역까지 116km 구간을 기차로 운행했습니다.
서울에서 경원선을 타고 철원으로 와, 이 기차를 다시 갈아타야 내금강역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시속 30km로 달리면 철원역에서 4시간 반이 걸립니다.
요금으로 쌀 한 가마 값이 들었다지만, 한해 15만 명이 탔을 정도로 인기 있는 관광상품이었습니다.
[이영길/철원군 갈말읍/1941년생 : "양복 입고 모자도 좀 멋쟁이 모자 쓰고 그러고 금강산 관광 가는 사람들이지. 지나가면 우리는 그 사람들 보고 손 흔들어주면 그 사람들도 손 흔들어 주고. (아버지가) 내가 신선이 되어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슬슬 날아다니는 기분이 들더라 그래, 그래서 내가 야 금강산이 참 무지하게 좋긴 좋구나! 그렇게 감명을 받았어."]
철원 김화읍은 이 철도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관광객이 많아 숙박업소가 잘 돼, 10만 명 넘는 인구가 살았습니다.
일제강점기 철도는 수탈한 광산물 수송에 쓰였습니다.
해방 후 한국전쟁 시기에는 북한 군수물자 수송에 활용됐습니다.
[김영규/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 : "인민군에 끌려가는 열차가 되기도 했고요. 전쟁 때는 또 전쟁물자가 실려 갔던 열차이기도 하고…. 때때마다 다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열차였기 때문에 철원 지역 주민들 또 김화 지역 주민들한테는 기쁨 혹은 슬픔 이별 아주 많은 역사적 의미가 담긴 열차가 금강산 전기철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제 치하부터 남북 분단까지 고된 세월을 버텨낸 교량에는 총탄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우리 역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품고 있어 2004년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됐습니다.
'금강산 가는 길'은 이제, 주민들의 기억에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이 철길이 남북과 동서를 관통하는 날이 오기를 주민들은 꿈꿔봅니다.
["국민들 다 소원이 통일 아냐, 통일되면 금강산 제일 먼저 가고 싶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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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영 기자 my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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