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통화로 미리 보는 ‘실용 외교’…대통령 메시지 분석해보니
입력 2025.06.10 (17:17)
수정 2025.06.10 (17:1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한반도 정세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3개 나라 정상과의 통화를 완료했습니다. 지난 6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했고, 어제(9일) 일본 이시바 총리와, 오늘(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를 마쳤습니다.
대통령 취임 직후 외국 정상과의 통화는 상견례 성격이 강하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향후 양자 외교의 방향을 전망할 수 있는 가늠자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 '통화 순서'도 중요한 메시지…일본과 먼저 통화해 친중 이미지 탈피 시도
어느 나라 정상과 먼저 통화하느냐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대부분 대통령은 미국, 일본, 중국 순서로 정상 간 통화를 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미국 다음으로 중국 정상과 통화했습니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중국 정상과 먼저 통화한 건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건 한중 관계 복원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취임 당시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과 갈등이 극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문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의 조기 소통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또 당시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밀접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과의 접촉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재검토하려고 했던 점도 일본 정상과의 통화를 뒷순위로 미루는 요인이었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 문재인 정부의 외교 기조를 이어가서 일본보다는 중국 정상과 먼저 통화할 것이란 예상도 있었는데, 이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중국보다는 일본 정상과 하루 먼저 통화했는데, 이는 여러 가지 외교 환경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안보 비용 분담 등으로 동맹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공조가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이른바 '트럼프 스톰'에 맞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게 양국의 '국익'에 더 부합할 거라고 판단한 겁니다. 과거사 문제를 완전히 양보한 건 아니지만, 과거사 문제는 투트랙으로 분리하고 일단 현안에서 미뤄둘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또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줄었다는 점도 영향을 끼친 거로 보입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 이후 중국보다는 러시아와 완전히 밀착한 상황이기 때문에, 중국과의 공조를 다급한 우선순위로 보지 않는 겁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과거 이른바 '셰셰' 발언 등으로 이른바 '친중' 이미지가 부각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사회에 '친중' 이미지가 알려진 만큼, 일본보다 중국과 먼저 통화해 이런 이미지를 부각할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이재명 정부 '실용 외교'의 기조가 '중국과의 협력' 보다는 '한미, 한미일 협력'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분명히 하려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 일단 트럼프와의 '케미 형성'에 집중…'불확실성' 대응은 숙제
정상 통화 직후 우리 정부가 내놓은 메시지를 보면, 정부가 생각하는 양자 외교의 방향이 보입니다.
일단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를 살펴보면, 개인적인 내용이 꽤 많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암살 위협 경험을 공유하고, 골프 실력을 소개하며 동맹을 위한 라운딩을 약속한 점 등입니다. 또 이 대통령이 마가(MAGA)가 새겨진 빨간 모자를 선물 받은 일화를 이야기하는 등 이른바 '케미 형성'을 위한 대화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이건 트럼프 대통령의 특성 때문으로 보입니다. 외교 관례보다는 개인적인 친분을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에 맞춰 대화를 이어간 겁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전통적인 '한미동맹'의 시각에서 양자 관계에 접근하기보다는 이른바 '트럼프 스타일'로 외교를 바라보는 만큼, 굳이 첫 전화 통화에서 우리의 카드를 노출할 필요성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케미 형성' 이외에 주로 나눈 대화는 역시 '관세'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대대적인 '관세 전쟁'을 예고한 이후 명확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도 압박하려 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밖에 '안보 비용 분담'이나 '주한미군 이전' 등의 문제는 짧은 통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리 측도 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정상 간 호감을 형성한 이후 차차 나올 현안들을 차분히 대응하겠다는 기조로 읽힙니다.
■ '트럼프 스톰' 대비해 일본과 협력 필수…'과거사' 일방 양보 없다는 경고도
일본 이시바 총리와의 통화에서 우리 정부가 내놓은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국익을 위한 협력'입니다. 강유정 대변인은 이시바 총리와의 통화 직후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이 " 전략적 환경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이 더욱 증대되고 있다"며 " 상호 국익의 관점에서 미래의 도전 과제에 같이 대응하자"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강 대변인이 말하는 '전략적 환경 변화'는 심화하는 미·중 갈등과 미국이 패권국에서 벗어나는 '다극화' 현상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과의 동맹을 외교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입장은 비슷합니다. 두 국가가 마주한 '전략적 환경' 속에서 양국이 한뜻을 모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는 게 이른바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의 방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일본에 내놓은 두 번째 메시지는 '상호 존중과 신뢰'입니다. 강유정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 상호 존중과 신뢰, 책임 있는 자세"를 이 대통령이 강조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는 과거사와 관련된 우리 정부의 스탠스로 풀이됩니다.
당장 올해도 사도 광산 추도식이 열려야 하는데, 지난해 일본이 추도사와 행사의 성격을 약속과 다르게 준비해, 결국 양국 주도의 행사는 파행을 빚었고 한국은 한국대로, 일본을 일본대로 행사를 치렀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전략적 환경에 대비하기 위해 일본과 협력을 강화하더라도, 당면하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쉽게 양보할 뜻이 없음을 명확히 밝힌 것으로 풀이됩니다. 문재인 정부 때처럼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는 등의 큰 변화는 당장 없겠지만, 일본이 신뢰를 저버리는 모습을 보일 경우 윤석열 정부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 거라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 "문화·인적 교류 희망"…고위급 교류·'한한령' 해제 요청 메시지
강유정 대변인은 한중 정상 통화 이후 브리핑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경제, 안보, 문화, 인적 교류 등 여러 방면에서 활발한 교류와 협력을 추진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브리핑에서는 '인적‧문화 교류'란 표현이 한 번 더 등장합니다. 그만큼 우리 정부가 중국 측에 강조하고 있는 메시지란 뜻입니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인적‧문화 교류'는 '한한령(한류 콘텐츠 금지령)'과 관련이 있습니다. 2017년 사드 배치 이후 시행된 한한령으로 중국 내 한국 문화 교류가 사실상 멈췄는데, 2025년부터는 한한령을 해제하고 한중 간 문화 교류가 재개되어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뜻을 피력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한한령 해제를 검토 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습니다.
2017년 이후 얼어붙은 한중 관계를 획기적으로 되돌릴 외교 일정은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입니다. 중국이 내년 APEC 의장국인 만큼, 이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을 경주에 초청했습니다. 올해 안 시진핑 주석 방한과 한중 정상회담 개최가 유력해진 겁니다.
시 주석은 2014년 7월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한 적이 있으며, 이후 방한은 없었습니다. 시 주석이 한국을 찾는다면, 11년 만의 방한이 됩니다.

■ 미국·일본 ·중국이 이 대통령에게 강조한 메시지는?
양자 정상 간 통화는 양측이 내놓은 메시지를 대조해 봐야 퍼즐이 맞춰집니다.
미국의 경우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이후 아직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 백악관은 정상 간 통화가 이뤄지면 핵심 내용을 담아 보도자료를 냈는데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며, 대부분의 정상 통화를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고 있는 경향입니다.
가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SNS인 트루스소셜에 내용을 올릴 때가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한미 정상 통화는 내용은 전혀 알리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한국 대통령실과 비슷한 시간에 입장을 내놨습니다. 이시바 총리는 " 양국 정부가 구축해 온 기반 위에서 관계를 진전시키고 싶다"고 했는데, 이는 기존에 이뤄진 양국간 합의를 뒤엎지 않고 이어가길 바란다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이시바 총리는 '전략적 환경'에 따른 한일, 한미일 연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는 한국 정부와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중국 외교부는 한국 정부의 발표보다 빠르게 통화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시 주석이 이 대통령에게 혼란이 얽힌 지역 및 국제 정세에 더 많은 확실성을 주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습니다. 또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공동으로 유지하며, 글로벌 및 지역 산업 및 공급망의 안정성과 원활함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격화하는 미·중 전략 경쟁과 관세 전쟁 속에서 한국이 보다 명확한 입장을 보여주길 압박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시 주석은 또 "인문 교류를 심화하고 상호 이해를 심화하자"고 했는데, 이는 한한령 등과 관련해 중국이 단계적, 점층적으로 해제할 의향이 없지 않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 이 대통령,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는 통화할까?
그렇다면 이재명 대통령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도 전화 통화를 할까요?
역대 모든 대통령이 러시아 정상과 상견례 전화 통화를 한 건 아닙니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냉전이 와해된 흐름 속에 러시아가 전략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에, 1994년 6월 양국 정상 간 핫라인을 개설하고 첫 통화를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전화 통화를 하지 않고 취임 약 8개월 만인 2003년 10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자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 직후 러시아 정상과 통화를 하진 않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2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취임 축하 통화를 했습니다. 미국(10일), 중국, 일본(11일)과 통화한 뒤 4번째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통화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러시아는 과거와 다르게 우크라이나 전쟁을 하고 있고, 우리나라가 서방의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만큼 이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상견례 통화를 할 가능성은 작아 보입니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 기조에 따라 러시아와의 관계도 무시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외교 관계가 활발히 복원되긴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픽 : 권세라)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정상 통화로 미리 보는 ‘실용 외교’…대통령 메시지 분석해보니
-
- 입력 2025-06-10 17:17:01
- 수정2025-06-10 17:17:28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한반도 정세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3개 나라 정상과의 통화를 완료했습니다. 지난 6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했고, 어제(9일) 일본 이시바 총리와, 오늘(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를 마쳤습니다.
대통령 취임 직후 외국 정상과의 통화는 상견례 성격이 강하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향후 양자 외교의 방향을 전망할 수 있는 가늠자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 '통화 순서'도 중요한 메시지…일본과 먼저 통화해 친중 이미지 탈피 시도
어느 나라 정상과 먼저 통화하느냐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대부분 대통령은 미국, 일본, 중국 순서로 정상 간 통화를 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미국 다음으로 중국 정상과 통화했습니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중국 정상과 먼저 통화한 건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건 한중 관계 복원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취임 당시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과 갈등이 극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문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의 조기 소통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또 당시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밀접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과의 접촉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재검토하려고 했던 점도 일본 정상과의 통화를 뒷순위로 미루는 요인이었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 문재인 정부의 외교 기조를 이어가서 일본보다는 중국 정상과 먼저 통화할 것이란 예상도 있었는데, 이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중국보다는 일본 정상과 하루 먼저 통화했는데, 이는 여러 가지 외교 환경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안보 비용 분담 등으로 동맹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공조가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이른바 '트럼프 스톰'에 맞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게 양국의 '국익'에 더 부합할 거라고 판단한 겁니다. 과거사 문제를 완전히 양보한 건 아니지만, 과거사 문제는 투트랙으로 분리하고 일단 현안에서 미뤄둘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또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줄었다는 점도 영향을 끼친 거로 보입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 이후 중국보다는 러시아와 완전히 밀착한 상황이기 때문에, 중국과의 공조를 다급한 우선순위로 보지 않는 겁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과거 이른바 '셰셰' 발언 등으로 이른바 '친중' 이미지가 부각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사회에 '친중' 이미지가 알려진 만큼, 일본보다 중국과 먼저 통화해 이런 이미지를 부각할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이재명 정부 '실용 외교'의 기조가 '중국과의 협력' 보다는 '한미, 한미일 협력'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분명히 하려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 일단 트럼프와의 '케미 형성'에 집중…'불확실성' 대응은 숙제
정상 통화 직후 우리 정부가 내놓은 메시지를 보면, 정부가 생각하는 양자 외교의 방향이 보입니다.
일단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를 살펴보면, 개인적인 내용이 꽤 많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암살 위협 경험을 공유하고, 골프 실력을 소개하며 동맹을 위한 라운딩을 약속한 점 등입니다. 또 이 대통령이 마가(MAGA)가 새겨진 빨간 모자를 선물 받은 일화를 이야기하는 등 이른바 '케미 형성'을 위한 대화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이건 트럼프 대통령의 특성 때문으로 보입니다. 외교 관례보다는 개인적인 친분을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에 맞춰 대화를 이어간 겁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전통적인 '한미동맹'의 시각에서 양자 관계에 접근하기보다는 이른바 '트럼프 스타일'로 외교를 바라보는 만큼, 굳이 첫 전화 통화에서 우리의 카드를 노출할 필요성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케미 형성' 이외에 주로 나눈 대화는 역시 '관세'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대대적인 '관세 전쟁'을 예고한 이후 명확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도 압박하려 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밖에 '안보 비용 분담'이나 '주한미군 이전' 등의 문제는 짧은 통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리 측도 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정상 간 호감을 형성한 이후 차차 나올 현안들을 차분히 대응하겠다는 기조로 읽힙니다.
■ '트럼프 스톰' 대비해 일본과 협력 필수…'과거사' 일방 양보 없다는 경고도
일본 이시바 총리와의 통화에서 우리 정부가 내놓은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국익을 위한 협력'입니다. 강유정 대변인은 이시바 총리와의 통화 직후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이 " 전략적 환경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이 더욱 증대되고 있다"며 " 상호 국익의 관점에서 미래의 도전 과제에 같이 대응하자"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강 대변인이 말하는 '전략적 환경 변화'는 심화하는 미·중 갈등과 미국이 패권국에서 벗어나는 '다극화' 현상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과의 동맹을 외교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입장은 비슷합니다. 두 국가가 마주한 '전략적 환경' 속에서 양국이 한뜻을 모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는 게 이른바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의 방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일본에 내놓은 두 번째 메시지는 '상호 존중과 신뢰'입니다. 강유정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 상호 존중과 신뢰, 책임 있는 자세"를 이 대통령이 강조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는 과거사와 관련된 우리 정부의 스탠스로 풀이됩니다.
당장 올해도 사도 광산 추도식이 열려야 하는데, 지난해 일본이 추도사와 행사의 성격을 약속과 다르게 준비해, 결국 양국 주도의 행사는 파행을 빚었고 한국은 한국대로, 일본을 일본대로 행사를 치렀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전략적 환경에 대비하기 위해 일본과 협력을 강화하더라도, 당면하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쉽게 양보할 뜻이 없음을 명확히 밝힌 것으로 풀이됩니다. 문재인 정부 때처럼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는 등의 큰 변화는 당장 없겠지만, 일본이 신뢰를 저버리는 모습을 보일 경우 윤석열 정부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 거라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 "문화·인적 교류 희망"…고위급 교류·'한한령' 해제 요청 메시지
강유정 대변인은 한중 정상 통화 이후 브리핑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경제, 안보, 문화, 인적 교류 등 여러 방면에서 활발한 교류와 협력을 추진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브리핑에서는 '인적‧문화 교류'란 표현이 한 번 더 등장합니다. 그만큼 우리 정부가 중국 측에 강조하고 있는 메시지란 뜻입니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인적‧문화 교류'는 '한한령(한류 콘텐츠 금지령)'과 관련이 있습니다. 2017년 사드 배치 이후 시행된 한한령으로 중국 내 한국 문화 교류가 사실상 멈췄는데, 2025년부터는 한한령을 해제하고 한중 간 문화 교류가 재개되어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뜻을 피력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한한령 해제를 검토 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습니다.
2017년 이후 얼어붙은 한중 관계를 획기적으로 되돌릴 외교 일정은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입니다. 중국이 내년 APEC 의장국인 만큼, 이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을 경주에 초청했습니다. 올해 안 시진핑 주석 방한과 한중 정상회담 개최가 유력해진 겁니다.
시 주석은 2014년 7월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한 적이 있으며, 이후 방한은 없었습니다. 시 주석이 한국을 찾는다면, 11년 만의 방한이 됩니다.

■ 미국·일본 ·중국이 이 대통령에게 강조한 메시지는?
양자 정상 간 통화는 양측이 내놓은 메시지를 대조해 봐야 퍼즐이 맞춰집니다.
미국의 경우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이후 아직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 백악관은 정상 간 통화가 이뤄지면 핵심 내용을 담아 보도자료를 냈는데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며, 대부분의 정상 통화를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고 있는 경향입니다.
가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SNS인 트루스소셜에 내용을 올릴 때가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한미 정상 통화는 내용은 전혀 알리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한국 대통령실과 비슷한 시간에 입장을 내놨습니다. 이시바 총리는 " 양국 정부가 구축해 온 기반 위에서 관계를 진전시키고 싶다"고 했는데, 이는 기존에 이뤄진 양국간 합의를 뒤엎지 않고 이어가길 바란다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이시바 총리는 '전략적 환경'에 따른 한일, 한미일 연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는 한국 정부와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중국 외교부는 한국 정부의 발표보다 빠르게 통화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시 주석이 이 대통령에게 혼란이 얽힌 지역 및 국제 정세에 더 많은 확실성을 주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습니다. 또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공동으로 유지하며, 글로벌 및 지역 산업 및 공급망의 안정성과 원활함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격화하는 미·중 전략 경쟁과 관세 전쟁 속에서 한국이 보다 명확한 입장을 보여주길 압박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시 주석은 또 "인문 교류를 심화하고 상호 이해를 심화하자"고 했는데, 이는 한한령 등과 관련해 중국이 단계적, 점층적으로 해제할 의향이 없지 않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 이 대통령,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는 통화할까?
그렇다면 이재명 대통령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도 전화 통화를 할까요?
역대 모든 대통령이 러시아 정상과 상견례 전화 통화를 한 건 아닙니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냉전이 와해된 흐름 속에 러시아가 전략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에, 1994년 6월 양국 정상 간 핫라인을 개설하고 첫 통화를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전화 통화를 하지 않고 취임 약 8개월 만인 2003년 10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자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 직후 러시아 정상과 통화를 하진 않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2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취임 축하 통화를 했습니다. 미국(10일), 중국, 일본(11일)과 통화한 뒤 4번째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통화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러시아는 과거와 다르게 우크라이나 전쟁을 하고 있고, 우리나라가 서방의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만큼 이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상견례 통화를 할 가능성은 작아 보입니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 기조에 따라 러시아와의 관계도 무시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외교 관계가 활발히 복원되긴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픽 : 권세라)
-
-
김경진 기자 kjkim@kbs.co.kr
김경진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슈
이재명 정부 출범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