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돌봄 있어도 못 써”…루게릭병 가족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취재후]
입력 2025.06.20 (17:00)
수정 2025.06.2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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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돌봄을 조건 없이 허용하라!"
지난 19일, '세계 루게릭병 환자의 날'을 맞아 휠체어를 탄 환자들이 서울 청계광장에 모였습니다.
정부가 시범적으로 '가족 간 돌봄'을 허용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성토가 이어졌습니다. 왜일까요?
[연관기사] 거리로 나온 루게릭병 환자들…“가족 돌봄 지원 확대해야” (2025.06.19 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83153
■ 한순간도 홀로 못 두는 루게릭병… "환자도, 가족도 고통"

이날 루게릭병 환자들의 행진 때 현수막을 들고 앞장섰던 오해용 씨는 루게릭병에 걸린 아내를 17년째 돌보고 있습니다.
오 씨의 아내는 행사에 오지 못했습니다. 온몸이 마비돼 집에 누워있는 처지라 이동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2009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뒤 점차 증세가 악화됐고, 2016년부터는 스스로 호흡하는 것도 음식을 삼키는 것도 어려워 인공호흡기를 달고 음식 삽관을 했습니다.
그녀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쌕쌕' 숨소리를 내거나 눈동자를 움직여 신호를 보내는 것뿐입니다.
"진짜 매일을 고통 속에 살아요. 자기도 고통이고 나도 고통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지독한 병이라는데 왜 하필이면 이렇게 착한 사람이 걸렸는지…." (루게릭병 환자 남편 오해용 씨) |
아내의 발병 이후 오 씨는 간병을 위해 일을 그만뒀습니다. 지금은 공공근로 일자리에 취업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하루 15시간씩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를 받고 있는데, 낮에는 활동지원사가 집으로 오고 밤에는 퇴근한 오 씨가 돌보는 식입니다.
그나마 오 씨는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루게릭병 환자 같은 최중증 장애인들은 활동지원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중환자실 환자처럼 호스도 많이 꽂혀 있고 딱 봐도 중증이다 보니 두렵죠. 혹시 내가 뭘 잘못해서 잘못되면 어떡할까 불안하고…. 처음에는 소통도 어려웠어요. 몇 년 지나니까 지금은 70~80%는 알아듣는데 아직도 다는 이해 못 해요." (루게릭병 환자 활동지원사) |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루게릭병 환자들은 결국 가족들이 돌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활동지원사가 있더라도 가래 흡입, 위루관을 통한 식이 투여 같은 의료 행위를 하는 걸 꺼리기 때문에 가족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 '가족 간 돌봄' 예외적 허용…"활동지원사 아예 못 써"
하지만 환자 가족은 활동지원사 자격증이 있어도 정부가 주는 급여는 받을 수 없습니다. 원칙적으로 활동 지원 대상에 가족은 제외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예외적으로 '가족 간 돌봄'을 허용했습니다. 대상은 ▲60일 이상 활동지원사를 연계받지 못한 ▲최중증 발달장애인과 희귀난치성 질환자. 가족이 활동 지원을 하면 급여는 50% 감액해서 받고, 2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한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환자 가족들은 '현실성 없는 제도'라고 토로합니다. 외부 활동지원사를 아예 쓰지 않아야만 가족이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됩니다. 즉 '가족이 돌보냐, 활동지원사가 돌보냐' 중 하나만 택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한 달에 100시간(활동지원 서비스)을 받는다고 하면 50시간은 제가, 50시간은 외부 활동지원사 선생님이 돌보는 거예요. 지금도 두 분이 교대로 오시는데 가족이 혼자 간병을 하게 되면 24시간 아예 밖에 못 나가고 계속 집에만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잖아요." (루게릭병 환자 남편 오해용 씨) |
루게릭병에 걸린 어머니를 직접 돌보기 위해 활동지원사 자격을 딴 또 다른 보호자는 "단 하루라도 활동지원사를 이용하면 가족 활동 지원을 신청할 수 없고, 가족 활동 지원을 신청하면 24시간 외출을 할 수도 없다"면서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제도냐"고 지적했습니다.

한국루게릭병협회장을 맡고 있는 성정준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활동지원사 급여도 최저시급에 가까운 현실에서 50% 삭감된 급여로 경제적 어려움은 지속되면서 가족은 쉬지 말고 희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라며 " 제도 시행 후 실제 이용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 이 제도의 모순을 증명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일단 시범 운영을 해보고 대상자 및 기준 조정을 검토한다는 입장입니다. 활동 지원 서비스 제도 취지를 고려하면 가족의 돌봄을 무한정 허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는 겁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수급권이 있어도 활동지원사 자체를 못 구하는 분들에게만 우선적으로 가족 돌봄을 허용한 것"이라면서 "장애계에선 가족 돌봄 부담을 늘린단 측면에서 가족 급여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어 시범 운영 결과를 토대로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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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돌봄 있어도 못 써”…루게릭병 가족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취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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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6-20 17:00:42
- 수정2025-06-20 17:01:04

"가족 돌봄을 조건 없이 허용하라!"
지난 19일, '세계 루게릭병 환자의 날'을 맞아 휠체어를 탄 환자들이 서울 청계광장에 모였습니다.
정부가 시범적으로 '가족 간 돌봄'을 허용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성토가 이어졌습니다. 왜일까요?
[연관기사] 거리로 나온 루게릭병 환자들…“가족 돌봄 지원 확대해야” (2025.06.19 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83153
■ 한순간도 홀로 못 두는 루게릭병… "환자도, 가족도 고통"

이날 루게릭병 환자들의 행진 때 현수막을 들고 앞장섰던 오해용 씨는 루게릭병에 걸린 아내를 17년째 돌보고 있습니다.
오 씨의 아내는 행사에 오지 못했습니다. 온몸이 마비돼 집에 누워있는 처지라 이동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2009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뒤 점차 증세가 악화됐고, 2016년부터는 스스로 호흡하는 것도 음식을 삼키는 것도 어려워 인공호흡기를 달고 음식 삽관을 했습니다.
그녀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쌕쌕' 숨소리를 내거나 눈동자를 움직여 신호를 보내는 것뿐입니다.
"진짜 매일을 고통 속에 살아요. 자기도 고통이고 나도 고통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지독한 병이라는데 왜 하필이면 이렇게 착한 사람이 걸렸는지…." (루게릭병 환자 남편 오해용 씨) |
아내의 발병 이후 오 씨는 간병을 위해 일을 그만뒀습니다. 지금은 공공근로 일자리에 취업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하루 15시간씩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를 받고 있는데, 낮에는 활동지원사가 집으로 오고 밤에는 퇴근한 오 씨가 돌보는 식입니다.
그나마 오 씨는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루게릭병 환자 같은 최중증 장애인들은 활동지원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중환자실 환자처럼 호스도 많이 꽂혀 있고 딱 봐도 중증이다 보니 두렵죠. 혹시 내가 뭘 잘못해서 잘못되면 어떡할까 불안하고…. 처음에는 소통도 어려웠어요. 몇 년 지나니까 지금은 70~80%는 알아듣는데 아직도 다는 이해 못 해요." (루게릭병 환자 활동지원사) |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루게릭병 환자들은 결국 가족들이 돌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활동지원사가 있더라도 가래 흡입, 위루관을 통한 식이 투여 같은 의료 행위를 하는 걸 꺼리기 때문에 가족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 '가족 간 돌봄' 예외적 허용…"활동지원사 아예 못 써"
하지만 환자 가족은 활동지원사 자격증이 있어도 정부가 주는 급여는 받을 수 없습니다. 원칙적으로 활동 지원 대상에 가족은 제외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예외적으로 '가족 간 돌봄'을 허용했습니다. 대상은 ▲60일 이상 활동지원사를 연계받지 못한 ▲최중증 발달장애인과 희귀난치성 질환자. 가족이 활동 지원을 하면 급여는 50% 감액해서 받고, 2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한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환자 가족들은 '현실성 없는 제도'라고 토로합니다. 외부 활동지원사를 아예 쓰지 않아야만 가족이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됩니다. 즉 '가족이 돌보냐, 활동지원사가 돌보냐' 중 하나만 택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한 달에 100시간(활동지원 서비스)을 받는다고 하면 50시간은 제가, 50시간은 외부 활동지원사 선생님이 돌보는 거예요. 지금도 두 분이 교대로 오시는데 가족이 혼자 간병을 하게 되면 24시간 아예 밖에 못 나가고 계속 집에만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잖아요." (루게릭병 환자 남편 오해용 씨) |
루게릭병에 걸린 어머니를 직접 돌보기 위해 활동지원사 자격을 딴 또 다른 보호자는 "단 하루라도 활동지원사를 이용하면 가족 활동 지원을 신청할 수 없고, 가족 활동 지원을 신청하면 24시간 외출을 할 수도 없다"면서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제도냐"고 지적했습니다.

한국루게릭병협회장을 맡고 있는 성정준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활동지원사 급여도 최저시급에 가까운 현실에서 50% 삭감된 급여로 경제적 어려움은 지속되면서 가족은 쉬지 말고 희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라며 " 제도 시행 후 실제 이용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 이 제도의 모순을 증명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일단 시범 운영을 해보고 대상자 및 기준 조정을 검토한다는 입장입니다. 활동 지원 서비스 제도 취지를 고려하면 가족의 돌봄을 무한정 허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는 겁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수급권이 있어도 활동지원사 자체를 못 구하는 분들에게만 우선적으로 가족 돌봄을 허용한 것"이라면서 "장애계에선 가족 돌봄 부담을 늘린단 측면에서 가족 급여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어 시범 운영 결과를 토대로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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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민 기자 js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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