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군 험담’ 태국 총리 직무 정지…‘첫 유출자’ 훈센은?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5.07.02 (16:09) 수정 2025.07.0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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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안경을 착용한 인물이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 오른쪽 보호대를 착용한 인물이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 지난해 탁신이 훈센을 찾았을 때 찍은 사진이다. '30년 절친'의 우애를 보여주고 있지만, 훈센은 이 사진으로 탁신을 공격하고 있다.(사진 출처 : 방콕포스트)왼쪽 안경을 착용한 인물이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 오른쪽 보호대를 착용한 인물이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 지난해 탁신이 훈센을 찾았을 때 찍은 사진이다. '30년 절친'의 우애를 보여주고 있지만, 훈센은 이 사진으로 탁신을 공격하고 있다.(사진 출처 : 방콕포스트)

■ "30년 신뢰 깨졌다"…훈센의 탁신 일가 맹공

절친한 사이로 보이는 사진입니다. 왼쪽 안경 낀 인물은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 그리고 오른쪽 목과 팔에 보호대를 착용한 인물은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입니다.

지난해 2월, 부패 혐의와 군부와의 갈등 등으로 15년 가까이 해외 도피 생활을 하고 있던 탁신 전 총리가 캄보디아를 찾아 '30년 절친' 훈센 전 총리를 만났을 때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 훈센의 탁신 일가에 대한 공격 수단이 됐습니다.

훈센은 지난달 말 "당시 탁신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사진 촬영 직전 목과 팔 보호대를 착용하면서 불편해 보이는 모습을 보이려 했고, 사진 촬영 직후 보호대를 빼고 식사를 하러 갔다. 이건 아픈 게 아니라 연극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왼쪽 안경 착용 인물이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 가운데 분홍색 옷차림의 인물이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 지난해 초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 사진으로, 최근 훈센이 이 사진 등 여러 장을 SNS에 올리며 왼쪽 안경 착용 인물이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 가운데 분홍색 옷차림의 인물이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 지난해 초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 사진으로, 최근 훈센이 이 사진 등 여러 장을 SNS에 올리며

미소를 짓고 있는 훈센 전 총리, 환하게 웃고 있는 가운데 분홍색 옷차림의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 역시 두 사람의 친분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입니다.

지난 4월, 패통탄 총리가 캄보디아 방문 당시 훈센의 집을 찾았을 때 사진입니다. 당시 훈센은 패통탄 총리의 부친 탁신과 고모 잉락이 머물렀던 방을 보여주며 '탁신방' '잉락방'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친분을 과시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말, 훈센은 이 사진을 포함해 당시 찍었던 여러 장의 사진을 SNS에 올리며 "30년 신뢰가 깨졌다"고 썼습니다. 역시 탁신과 패통탄 부녀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훈센은 38년 동안 캄보디아를 철권 통치한 뒤, 2023년 아들 훈 마넷에게 총리직을 물려주고 자신은 상원의장으로 앉은 인물입니다. 지금도 캄보디아의 실권자인 훈센이 태국 전·현직 총리 부녀를 맹공하는 이유는 모두 지난 5월 28일, 국경 지역에서의 소규모 총격전 이후 이어진 갈등 때문입니다.

■ '통화 녹음' 첫 유출자는 훈센…사실상 내정간섭?

지난 5월 말 국경 분쟁 이후 태국은 캄보디아로 향하는 전기와 인터넷 공급을 일부 중단했고, 캄보디아는 태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 금지하는 등 신경전만 이어왔습니다. 그러다 태국 정국을 뒤흔드는 사건이 터집니다.

바로 패통탄과 훈센 간의 통화 녹음 유출 사건입니다.

지난달 15일, 패통탄 총리는 국경 분쟁 상황을 논의하기 위해 훈센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위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전화 상대 훈센은 아버지 탁신과 절친, 그래서인지 '삼촌'으로 부르며 대화를 이어갑니다.

이 통화에서 패통탄은 캄보디아에 강경 대응을 요구한 국경 지역 자국군 지휘관을 '반대편'이라고 부르며, '삼촌'이 이런 반대편의 말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훈센이 "싸울 준비가 돼 있다"는 해당 지휘관의 말을 듣고 '격노'했다는 얘기가 전해진 이후였습니다.

6월 18일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의 SNS. 훈센이 패통탄 총리와의 통화 녹음 전체 파일을 공개했다.(사진 출처: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 페이스북)6월 18일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의 SNS. 훈센이 패통탄 총리와의 통화 녹음 전체 파일을 공개했다.(사진 출처: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 페이스북)

이 통화 녹음이 유출돼 온라인에 공개된 건 지난달 18일, 태국 정가에 파문이 일자 훈센은 전체 음성 파일을 SNS에 올리며 "오해를 피하기 위한 관례에 따라 캄보디아 인사 80여 명과 공유했다"고 썼습니다.

이 파일을 '공유'받은 인물 중 한 명이 유출한 것이 명확해 보이지만 '첫 유출자'가 자신임을 인정한 셈입니다.

이후 훈센은 강경한 발언을 이어갑니다. 심지어 패통탄 총리에 대한 사임 요구가 거세지자 "국경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총리가 나오길 기대한다"는 말까지 쏟아냈습니다. '내정간섭'으로까지 비칠 수 있는 발언들입니다. 그러면서 군복을 입고 국경 지역을 방문하는 등 태국과의 갈등에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최근 군복을 입고 국경 지역을 방문해 군부대 격려에 나선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사진출처 : 캄보디아 크메르 타임스)최근 군복을 입고 국경 지역을 방문해 군부대 격려에 나선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사진출처 : 캄보디아 크메르 타임스)

■ 방콕 도심 대규모 '반정부' 집회…결국 '직무 정지'된 태국 총리

태국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습니다. 지난달 28일, 태국 방콕에 있는 전승기념탑 광장에는 주최 측 추산 최대 1만 명의 시민이 모였습니다. 패통탄 총리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였습니다. 패통탄이 대국민 사과까지 했지만 효과가 없었던 겁니다.

지난달 28일, 태국 방콕 전승기념탑 앞 광장에는 최대 1만 명이 모여 패통탄 총리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사진 출처 : 로이터)지난달 28일, 태국 방콕 전승기념탑 앞 광장에는 최대 1만 명이 모여 패통탄 총리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사진 출처 : 로이터)

지난 1일, 태국 헌법재판소는 패통탄 태국 총리에 대해 직무 정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통화 유출 파문 직후 상원의원 36명이 제출한 해임 청원에 대해 재판 개시를 선언하며 내린 조치입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 직무가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이 진행되는 우리와 비슷한 시스템입니다.

패통탄 총리는 헌재 결정을 받아들인다며 거듭 사과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통화는 개인적인 의도가 없었다. 국경 갈등으로 인한 혼란과 전쟁을 예방하고, 이를 통해 우리 군인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항변하며 이후 재판에 충실히 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태국 헌법재판소의 직무 정지 결정 후 기자회견을 하는 패통탄 총리. (사진 출처 : 태국 아마린TV)태국 헌법재판소의 직무 정지 결정 후 기자회견을 하는 패통탄 총리. (사진 출처 : 태국 아마린TV)

태국 여론은 패통탄 총리에게 냉담합니다. 특파원이 만나본 태국인 상당수는 패통탄 총리의 해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의 '내정간섭'과 '배신행위'에 대한 분노도 적지 않았지만, 통화 녹음 내용 그대로를 들어본 태국인들에겐 패통탄에 대한 감정이 더 좋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태국 정가는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에 눈과 귀가 쏠려 있습니다. 패통탄 총리는 지난해 8월, 전임 세타 타위신 총리가 역시 헌재에 의해 해임된 이후 총리직에 올랐습니다.

당시 세타 총리는 과거 범죄 전력이 있는 인물을 장관으로 임명한 게 헌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해임됐습니다. 다만 당시 재판 개시를 선언할 때 총리의 직무 정지 명령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때와 비교하면 이번 패통탄 총리에 대한 직무 정지 명령은 보다 강경한 입장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 '최대 위기' 탁신 일가, 그러나…

패통탄 총리에게 직무 정지 명령이 내려진 지난 1일, 탁신 전 총리에 대한 재판도 시작됐습니다. 과거 한국 매체와 한 인터뷰가 문제가 됐습니다.

해외 도피 중이었지만 태국 빼놓고는 어디든 자유롭게 다녔던 탁신, 2015년 한국을 찾아 해당 매체의 행사에 참석한 뒤 한 인터뷰에서 왕실을 비판했다는 겁니다. 2014년 군부 쿠데타로 동생인 잉락이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이 배경에 왕실 자문회의 격인 '추밀원'이 있었다는 취지의 주장이었습니다.

태국의 형법 제112조는 이른바 '왕실 모독죄'로 불립니다. 왕과 왕비 등 왕실 구성원은 물론 왕가 업적을 모독하거나 왕가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등의 경우 최고 징역 15년 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2023년 자신의 딸이 이끄는 당에서 총리가 나오자 5년의 도피 생활을 마치고 화려하게(?) 귀국했지만, 결국 법정에 서게 된 겁니다.

탁신 전 총리와 패통탄 총리. 지난해 태국 국왕 앞에서 선서식을 마친 뒤 정부 청사로 이동하는 모습.(사진 출처 : 방콕포스트)탁신 전 총리와 패통탄 총리. 지난해 태국 국왕 앞에서 선서식을 마친 뒤 정부 청사로 이동하는 모습.(사진 출처 : 방콕포스트)

현직 총리의 아버지와 고모도 한때 총리, 태국 정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오던 탁신 가문이 최대 위기에 직면한 모양샙니다. 탁신 가문이 이대로 물러날지,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이 쉽지는 않습니다.

헌재의 결정 직전인 당일 아침, 태국 국왕이 새 내각 구성안을 승인했습니다. 패통탄 총리가 '통화 녹음 유출' 파문 이후 여권 제2당이 연립정부에서 탈퇴하면서 공석이 된 장관에 새 인물들을 앉혀 왕실에 제출한 내각 명단입니다. 이 명단에 패통탄 총리는 스스로 문화부 장관 겸직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다시 말해, 헌재 결정으로 패통탄 입장에서 총리직은 직무가 정지됐지만, 문화부 장관 자격으로 내각에 참여해 여전히 국정 운영에 관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래서 일각에선 헌재 결정을 예상하고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포석이었단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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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국군 험담’ 태국 총리 직무 정지…‘첫 유출자’ 훈센은? [특파원 리포트]
    • 입력 2025-07-02 16:09:46
    • 수정2025-07-02 16: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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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안경을 착용한 인물이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 오른쪽 보호대를 착용한 인물이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 지난해 탁신이 훈센을 찾았을 때 찍은 사진이다. '30년 절친'의 우애를 보여주고 있지만, 훈센은 이 사진으로 탁신을 공격하고 있다.(사진 출처 : 방콕포스트)
■ "30년 신뢰 깨졌다"…훈센의 탁신 일가 맹공

절친한 사이로 보이는 사진입니다. 왼쪽 안경 낀 인물은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 그리고 오른쪽 목과 팔에 보호대를 착용한 인물은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입니다.

지난해 2월, 부패 혐의와 군부와의 갈등 등으로 15년 가까이 해외 도피 생활을 하고 있던 탁신 전 총리가 캄보디아를 찾아 '30년 절친' 훈센 전 총리를 만났을 때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 훈센의 탁신 일가에 대한 공격 수단이 됐습니다.

훈센은 지난달 말 "당시 탁신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사진 촬영 직전 목과 팔 보호대를 착용하면서 불편해 보이는 모습을 보이려 했고, 사진 촬영 직후 보호대를 빼고 식사를 하러 갔다. 이건 아픈 게 아니라 연극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왼쪽 안경 착용 인물이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 가운데 분홍색 옷차림의 인물이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 지난해 초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 사진으로, 최근 훈센이 이 사진 등 여러 장을 SNS에 올리며
미소를 짓고 있는 훈센 전 총리, 환하게 웃고 있는 가운데 분홍색 옷차림의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 역시 두 사람의 친분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입니다.

지난 4월, 패통탄 총리가 캄보디아 방문 당시 훈센의 집을 찾았을 때 사진입니다. 당시 훈센은 패통탄 총리의 부친 탁신과 고모 잉락이 머물렀던 방을 보여주며 '탁신방' '잉락방'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친분을 과시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말, 훈센은 이 사진을 포함해 당시 찍었던 여러 장의 사진을 SNS에 올리며 "30년 신뢰가 깨졌다"고 썼습니다. 역시 탁신과 패통탄 부녀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훈센은 38년 동안 캄보디아를 철권 통치한 뒤, 2023년 아들 훈 마넷에게 총리직을 물려주고 자신은 상원의장으로 앉은 인물입니다. 지금도 캄보디아의 실권자인 훈센이 태국 전·현직 총리 부녀를 맹공하는 이유는 모두 지난 5월 28일, 국경 지역에서의 소규모 총격전 이후 이어진 갈등 때문입니다.

■ '통화 녹음' 첫 유출자는 훈센…사실상 내정간섭?

지난 5월 말 국경 분쟁 이후 태국은 캄보디아로 향하는 전기와 인터넷 공급을 일부 중단했고, 캄보디아는 태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 금지하는 등 신경전만 이어왔습니다. 그러다 태국 정국을 뒤흔드는 사건이 터집니다.

바로 패통탄과 훈센 간의 통화 녹음 유출 사건입니다.

지난달 15일, 패통탄 총리는 국경 분쟁 상황을 논의하기 위해 훈센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위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전화 상대 훈센은 아버지 탁신과 절친, 그래서인지 '삼촌'으로 부르며 대화를 이어갑니다.

이 통화에서 패통탄은 캄보디아에 강경 대응을 요구한 국경 지역 자국군 지휘관을 '반대편'이라고 부르며, '삼촌'이 이런 반대편의 말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훈센이 "싸울 준비가 돼 있다"는 해당 지휘관의 말을 듣고 '격노'했다는 얘기가 전해진 이후였습니다.

6월 18일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의 SNS. 훈센이 패통탄 총리와의 통화 녹음 전체 파일을 공개했다.(사진 출처: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 페이스북)
이 통화 녹음이 유출돼 온라인에 공개된 건 지난달 18일, 태국 정가에 파문이 일자 훈센은 전체 음성 파일을 SNS에 올리며 "오해를 피하기 위한 관례에 따라 캄보디아 인사 80여 명과 공유했다"고 썼습니다.

이 파일을 '공유'받은 인물 중 한 명이 유출한 것이 명확해 보이지만 '첫 유출자'가 자신임을 인정한 셈입니다.

이후 훈센은 강경한 발언을 이어갑니다. 심지어 패통탄 총리에 대한 사임 요구가 거세지자 "국경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총리가 나오길 기대한다"는 말까지 쏟아냈습니다. '내정간섭'으로까지 비칠 수 있는 발언들입니다. 그러면서 군복을 입고 국경 지역을 방문하는 등 태국과의 갈등에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최근 군복을 입고 국경 지역을 방문해 군부대 격려에 나선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사진출처 : 캄보디아 크메르 타임스)
■ 방콕 도심 대규모 '반정부' 집회…결국 '직무 정지'된 태국 총리

태국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습니다. 지난달 28일, 태국 방콕에 있는 전승기념탑 광장에는 주최 측 추산 최대 1만 명의 시민이 모였습니다. 패통탄 총리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였습니다. 패통탄이 대국민 사과까지 했지만 효과가 없었던 겁니다.

지난달 28일, 태국 방콕 전승기념탑 앞 광장에는 최대 1만 명이 모여 패통탄 총리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사진 출처 : 로이터)
지난 1일, 태국 헌법재판소는 패통탄 태국 총리에 대해 직무 정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통화 유출 파문 직후 상원의원 36명이 제출한 해임 청원에 대해 재판 개시를 선언하며 내린 조치입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 직무가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이 진행되는 우리와 비슷한 시스템입니다.

패통탄 총리는 헌재 결정을 받아들인다며 거듭 사과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통화는 개인적인 의도가 없었다. 국경 갈등으로 인한 혼란과 전쟁을 예방하고, 이를 통해 우리 군인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항변하며 이후 재판에 충실히 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태국 헌법재판소의 직무 정지 결정 후 기자회견을 하는 패통탄 총리. (사진 출처 : 태국 아마린TV)
태국 여론은 패통탄 총리에게 냉담합니다. 특파원이 만나본 태국인 상당수는 패통탄 총리의 해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의 '내정간섭'과 '배신행위'에 대한 분노도 적지 않았지만, 통화 녹음 내용 그대로를 들어본 태국인들에겐 패통탄에 대한 감정이 더 좋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태국 정가는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에 눈과 귀가 쏠려 있습니다. 패통탄 총리는 지난해 8월, 전임 세타 타위신 총리가 역시 헌재에 의해 해임된 이후 총리직에 올랐습니다.

당시 세타 총리는 과거 범죄 전력이 있는 인물을 장관으로 임명한 게 헌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해임됐습니다. 다만 당시 재판 개시를 선언할 때 총리의 직무 정지 명령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때와 비교하면 이번 패통탄 총리에 대한 직무 정지 명령은 보다 강경한 입장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 '최대 위기' 탁신 일가, 그러나…

패통탄 총리에게 직무 정지 명령이 내려진 지난 1일, 탁신 전 총리에 대한 재판도 시작됐습니다. 과거 한국 매체와 한 인터뷰가 문제가 됐습니다.

해외 도피 중이었지만 태국 빼놓고는 어디든 자유롭게 다녔던 탁신, 2015년 한국을 찾아 해당 매체의 행사에 참석한 뒤 한 인터뷰에서 왕실을 비판했다는 겁니다. 2014년 군부 쿠데타로 동생인 잉락이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이 배경에 왕실 자문회의 격인 '추밀원'이 있었다는 취지의 주장이었습니다.

태국의 형법 제112조는 이른바 '왕실 모독죄'로 불립니다. 왕과 왕비 등 왕실 구성원은 물론 왕가 업적을 모독하거나 왕가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등의 경우 최고 징역 15년 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2023년 자신의 딸이 이끄는 당에서 총리가 나오자 5년의 도피 생활을 마치고 화려하게(?) 귀국했지만, 결국 법정에 서게 된 겁니다.

탁신 전 총리와 패통탄 총리. 지난해 태국 국왕 앞에서 선서식을 마친 뒤 정부 청사로 이동하는 모습.(사진 출처 : 방콕포스트)
현직 총리의 아버지와 고모도 한때 총리, 태국 정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오던 탁신 가문이 최대 위기에 직면한 모양샙니다. 탁신 가문이 이대로 물러날지,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이 쉽지는 않습니다.

헌재의 결정 직전인 당일 아침, 태국 국왕이 새 내각 구성안을 승인했습니다. 패통탄 총리가 '통화 녹음 유출' 파문 이후 여권 제2당이 연립정부에서 탈퇴하면서 공석이 된 장관에 새 인물들을 앉혀 왕실에 제출한 내각 명단입니다. 이 명단에 패통탄 총리는 스스로 문화부 장관 겸직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다시 말해, 헌재 결정으로 패통탄 입장에서 총리직은 직무가 정지됐지만, 문화부 장관 자격으로 내각에 참여해 여전히 국정 운영에 관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래서 일각에선 헌재 결정을 예상하고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포석이었단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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