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야구 표 팔아요”-중고사기 ‘함정’

입력 2025.07.06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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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응원하는 것도 너무 행복하고 좋아서 매일매일 오고 싶어요."

그토록 보고 싶은 야구 경기지만 입장권 구하기는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

예매 전쟁이 이젠 예삿일이 됐습니다.

암표가 기승을 부리면서 이젠 입장권 거래 사기까지 들끓고 있습니다.

그저 응원하는 팀의 야구 경기를 보고 싶을 뿐인데,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프로야구 천만 관중 시대, 올 시즌 그 중심엔 한화 이글스가 있습니다.

신 구장 효과에 좋은 성적까지, 팬들이 찾아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정은, 조효정/한화이글스 팬
일단 구장이 새로 생기기도 했고, 같이 응원하는 것도 너무 행복하고 좋아서 매일매일 오고 싶어요. 한화가 지금 잘하기도 하고 더 잘할 거라 믿기 때문에 더 자주 오고 싶습니다.

연이은 매진 행렬에 예매는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됐습니다.

시간에 맞춰 예매 사이트에 접속해도 한참 기다려야 하고, 그런다고 입장권을 꼭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공식 예매 사이트엔 입장권이 동난 지 오래, 그런 입장권을 사고파는 거래 ‘앱’에는 예매 시작 10여 분 만에 웃돈을 얹어 판다는 글이 300건 넘게 올라옵니다.

암표 등 불법 거래도 성행하다 보니 인기 경기의 경우, 값이 대여섯 배까지 오르기도 합니다.


암표 판매상
없어서 못 팔아요. 게 눈 감추듯이…. 부자 아빠들이 애들이 하는데 뭐 그거는 큰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1년에 한 번이니까….

충남 천안에 사는 한화 이글스 팬 김 모 씨.

최근 한 소셜미디어에서 프로야구 입장권을 판다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구하기 힘든 '내야 중앙 테이블석'을 정가 수준에 양도한다는 내용에, 서둘러 판매자에게 구매 의사를 전했습니다.

김00/입장권 사기 피해자
다들 막 3만 원 4만 원 이렇게 더 받는데, 티켓00랑 다르게 이제 팬들끼리 하는 거니까 자기는 원가에 하겠다. 근데 수고비로 1만 원 정도만 더 받겠다. 그것도 중앙 테이블 석이었어요.


‘믿어도 될까’하는 의심에 김 씨가 구매 결정을 망설이자, 판매자는 박 모 씨 명의의 계좌번호와 함께 신분증까지 사진으로 찍어 김 씨에게 보냈습니다.

김 씨는 금융 사기 방지 서비스 앱에서 해당 계좌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스마트폰용 입장권을 경기 4시간 전에 맞춰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은 뒤에야, 입장권 석 장값, 19만 8천 원을 송금했습니다.

하지만 경기 당일, 김 씨는 입장권을 받지 못했고, 판매자와의 대화마저 차단됐습니다.

김00/입장권 사기 피해자
"경기 날이 됐는데, 4시간 전에 저 입장권 좀 보내주실래요? 하니까 무슨 경기였죠?
라고 물어보더라고요. 무슨 경기예요. 라고 말하자마자 차단을 한 거예요. 그래서 아, 사기당했구나. 그때 이제 깨달은 거죠.

이 판매자에게 피해를 본 건 김 씨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서울 고척돔과 부산 사직구장 등 다른 구장의 입장권도 같은 방식의 사기에 이용됐습니다.

판매자는 소셜미디어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중고거래 앱과 카페 등 각종 플랫폼을 넘나들었습니다.

품목도 공연 입장권과 백화점 상품권 등으로 다양했습니다.


두 달 전, 뮤지컬 관람권을 구하려던 이 모 씨.

중고00 사이트에서 김 씨와 같은 박00 명의의 판매자와 관람권을 거래했습니다.

판매자는 가격 흥정까지 받아줬습니다.

이 씨는 해당 플랫폼의 자체 안전 거래로 결제하려 했지만, 판매자는 계좌 이체를 요구했습니다.

이 씨는 관람권 값으로 38만 원을 보냈지만, 30분 뒤 해당 판매자의 계정은 사라졌습니다.

이00/사기 피해자
그분한테 연락을 이제 다시 한번 해봐야겠다. 이게(예매 내용) 정확한지 해서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더라고요. 어? 이상하다 싶어서 전화했는데. 없는 번호라고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뭐지? 아, 당했구나.

‘박 모 씨’ 명의를 쓰는 판매자에게 사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소통했습니다.

한화이글스 입장권을 사기당했다, 돈만 챙긴 채 명품 가방은 주지 않았다, 배달 상품권에 속았다
등의 글이 줄줄이 올라왔습니다.

불과 며칠 새, 여러 플랫폼에서 박 씨 명의로 수십 건의 사기 행각이 확인됐습니다.

이00/사기 피해자
이분 조심하라고 글을 올렸는데 어느 분이 이런 단체(대화)방이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물품 종류도 되게 다양하고, 뭐 오토바이도 있고 아기용품도 있고 이제 야구 입장권이 제일 많았고요.

이 판매자가 이용한 계좌 명의만 박 씨를 포함해 9명.

이들 명의의 계좌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범죄에 악용됐습니다.

계좌 명의 대여자
알바 같은 거 하면 돈을 좀 벌 수 있다. 아기용품 판매한 대금이 있는데, 그 대금을 저희한테 다시 보내주는 일이라고 얘기를 하셨거든요. 적금 계좌에 돈이 들어오는 것까지는 확인이 됐었는데, 누구한테 들어왔다. 이런 것까지 찍히지는 않았어요.

경찰은 전문적인 ‘계좌 공급책’이 이들 이름의 계좌 수십 개를 만들어, ‘사기 실행자’들에게
나눠준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신분증도 전담 조직원이 같은 사진에 이름이나 주소만 바꿔 다수의 사기 실행자에게 배포한 거로 보입니다.

플랫폼 계정 역시 같은 방법으로 공급됐는데, 범죄 재료를 만든 핵심 그룹은 사기 실행자들에게
수수료 명목으로 사기 금액의 40%가량을 받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일반 중고 거래 사기처럼 '예금주' 기준으로 수사해서는 진범을 잡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곽대경/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범죄 조직이 여러 가지 역할들을 나눠서 담당을 하도록 한 다음에 피해자인 개인을 대상으로 이제 사기 범죄를 저지른 이런 형태이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개인 대 개인 간의 중고 거래 물품 사기와는 다르다.

지금은 피해자들이 가까운 경찰서에 '예금주'를 각각 신고하면, 경찰은 '예금주'의 주소지를 추적해
관할 경찰서로 사건을 넘깁니다.

수사를 진행하다가 같은 명의의 예금주 사건이 50건을 넘으면, 시·도 경찰청으로 이관합니다.
그사이 3주 이상이 지납니다.

수사는 시간 싸움인데,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될 때쯤이면 사기 조직은 이미 계좌 명의를 바꿨거나,
판매 계정 등을 삭제할 시점입니다.

더욱이 사기에 사용된 계정이 해외 소셜미디어라면, 아동 성 착취물 등이 아닌 이상 수사 자료를 받아보기도 어렵습니다.

현재 수사 체제로는 핵심 그룹은커녕 사기 실행자인 판매자조차 잡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곽대경/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범죄가 진화하면, 또 그걸 수사할 수 있는 수사 기법도 보다 더 발 빠르게 개발하는 게 필요한 거죠. 사기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전담 수사 기구를 만드는 것도 이제 필요하고, 상응하는 예산도 지원해 줘야죠.

이들이 사기 행각에 이용한 ‘수금 창구’는 ‘자유 적금 계좌’입니다.
보이스피싱 등에 사용되던 ‘대포통장’, 즉 ‘일반 입출금 통장’은 구식이 된 지 오랩니다.

한 번 적발되면 통장 개설이 제한되고 거래까지 정지되던 '일반 입출금' 통장과 달리, '자유 적금 계좌'는 누구나 계좌 수 제한 없이 비대면으로 손쉽게 개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 수사를 받는 안 모 씨의 경우, 농협의 적금 계좌 30여 개가 범죄에 악용됐습니다.

안 씨 명의를 사용한 소셜미디어 판매자에게만 국민은행과 우리은행 등에서 90개 넘는 적금 계좌가
흘러 들어갔습니다.

금융 사기 방지 목적의 민간 사이트에 등록되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새 계좌를 계속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모임 운영진
이건 조직 사기고 한 명당 계좌가 10개에서 많으면 80개까지 봤거든요. 그렇게 계속 새로운 계좌들이 생기다 보니까 피해자들은 검색해도 더치트에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믿고 돈을 보내는 거기 때문에…

특정 예금주의 '자유 적금 계좌'가 단기간 대량 생산되고, 이 계좌에 예금주가 아닌 다양한 명의의 사람들이 입금하는 '상식 밖' 거래가 이어지는 상황.

누가 봐도 수상한 거래지만, 은행들은 감시를 강화하기보다는 외부 탓만 한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입니다.

피해자 모임 운영진
입금 내용을 보면 하루에 몇천만 원에서 몇억까지도 그게 여러 명에 의해서 입금이 돼요. 근데 그거를 은행에서 제대로 보지를 않고, 감시를 하거나 그런 시스템이 전혀 없고 그냥 개인과 개인 간의 거래로 보고 방치하기 때문에.

한 시중 은행은 "은행에서 개설할 수 있는 적금 계좌 수를 제한하면 이용자들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며, "법령이나 당국의 지침 없이 은행 자체 판단으로 적금 계좌 신설을 제한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결국 참다못한 피해자들이 사기 조직의 범죄 수법과 피해 현황, 계좌 등을 직접 확인해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들이 지난해 3월부터 수집한 사기 관련 예금주는 천 백여 명, 계좌는 6천 개가 넘습니다.

금융 소비자단체는 금융기관들이 불법 행위를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강형구/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
금융사들의 거래 시스템이라든지, 제도의 맹점을 이용해서 사기를 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 묵인하거나 방조하는 거거든요. 제도를 개선해서 소비자 보호를 할 필요성이 있고요.

1년 전 금융감독원은 적금 계좌를 악용한 중고거래 사기 사건이 빈발하자, 은행권 '이상 거래 탐지시스템', FDS를 도입했습니다.

범죄에 악용된 계좌를 사전에 탐지하고, 사고 물품의 대금 지급을 막겠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1년 넘게 관련 범죄가 계속되는 상황.

금감원은 FDS를 도입하기는 했지만, 은행마다 거래 특성이 달라 직접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며,
사기 사건이 계속되는 만큼, 은행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중고 사기 범죄에 억제력을 가지려면 이상 거래 기준을 실효성 있게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

시민들은 은행권이 나서서 근절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강형구/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
사기 치는 걸 도와주는 거 아닙니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조처해야죠. 조치 취하는 거는 자기 입출금 통장에 넣어서 이체하게끔 하면 되거든요, 본인이. 다 표시돼서 자금 추적이 쉽거든요? 아니면 입금을 차단하면 돼요.

범인을 잡으면 경찰서 앞에서 단체로 춤을 추기로 했다는 피해자들.

피해자 모임 운영진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에 김미영 팀장도 2년인가 걸려서 잡혔잖아요.
잡히면 피해자분들이랑 다 같이 경찰서 앞에 가서 춤추기로 했거든요.

다시 일상에서, 사기 걱정 없이 소소한 '직관'의 행복을 누리길 바랍니다.

"암표 거래나 중고 사기 때문에 표 구하기가 더 어려워진 거 같아서 그런 부분들이 근절됐으면 좋겠습니다."

"그 정도 드셨으면 이제 그만할 때 됐습니다. 이제는 저희에게 티켓을 양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정가양도 #티켓 사기 #공연사기 #중고사기 #자유 적금 계좌 #보이스피싱

취재:박연선
촬영기자: 이정태, 안성복
촬영:박주영
영상편집:이기승
그래픽:장수현
리서처:채희주
AD:이민철, 심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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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보다] “야구 표 팔아요”-중고사기 ‘함정’
    • 입력 2025-07-06 23:22:50
    사회

"같이 응원하는 것도 너무 행복하고 좋아서 매일매일 오고 싶어요."

그토록 보고 싶은 야구 경기지만 입장권 구하기는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

예매 전쟁이 이젠 예삿일이 됐습니다.

암표가 기승을 부리면서 이젠 입장권 거래 사기까지 들끓고 있습니다.

그저 응원하는 팀의 야구 경기를 보고 싶을 뿐인데,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프로야구 천만 관중 시대, 올 시즌 그 중심엔 한화 이글스가 있습니다.

신 구장 효과에 좋은 성적까지, 팬들이 찾아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정은, 조효정/한화이글스 팬
일단 구장이 새로 생기기도 했고, 같이 응원하는 것도 너무 행복하고 좋아서 매일매일 오고 싶어요. 한화가 지금 잘하기도 하고 더 잘할 거라 믿기 때문에 더 자주 오고 싶습니다.

연이은 매진 행렬에 예매는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됐습니다.

시간에 맞춰 예매 사이트에 접속해도 한참 기다려야 하고, 그런다고 입장권을 꼭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공식 예매 사이트엔 입장권이 동난 지 오래, 그런 입장권을 사고파는 거래 ‘앱’에는 예매 시작 10여 분 만에 웃돈을 얹어 판다는 글이 300건 넘게 올라옵니다.

암표 등 불법 거래도 성행하다 보니 인기 경기의 경우, 값이 대여섯 배까지 오르기도 합니다.


암표 판매상
없어서 못 팔아요. 게 눈 감추듯이…. 부자 아빠들이 애들이 하는데 뭐 그거는 큰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1년에 한 번이니까….

충남 천안에 사는 한화 이글스 팬 김 모 씨.

최근 한 소셜미디어에서 프로야구 입장권을 판다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구하기 힘든 '내야 중앙 테이블석'을 정가 수준에 양도한다는 내용에, 서둘러 판매자에게 구매 의사를 전했습니다.

김00/입장권 사기 피해자
다들 막 3만 원 4만 원 이렇게 더 받는데, 티켓00랑 다르게 이제 팬들끼리 하는 거니까 자기는 원가에 하겠다. 근데 수고비로 1만 원 정도만 더 받겠다. 그것도 중앙 테이블 석이었어요.


‘믿어도 될까’하는 의심에 김 씨가 구매 결정을 망설이자, 판매자는 박 모 씨 명의의 계좌번호와 함께 신분증까지 사진으로 찍어 김 씨에게 보냈습니다.

김 씨는 금융 사기 방지 서비스 앱에서 해당 계좌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스마트폰용 입장권을 경기 4시간 전에 맞춰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은 뒤에야, 입장권 석 장값, 19만 8천 원을 송금했습니다.

하지만 경기 당일, 김 씨는 입장권을 받지 못했고, 판매자와의 대화마저 차단됐습니다.

김00/입장권 사기 피해자
"경기 날이 됐는데, 4시간 전에 저 입장권 좀 보내주실래요? 하니까 무슨 경기였죠?
라고 물어보더라고요. 무슨 경기예요. 라고 말하자마자 차단을 한 거예요. 그래서 아, 사기당했구나. 그때 이제 깨달은 거죠.

이 판매자에게 피해를 본 건 김 씨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서울 고척돔과 부산 사직구장 등 다른 구장의 입장권도 같은 방식의 사기에 이용됐습니다.

판매자는 소셜미디어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중고거래 앱과 카페 등 각종 플랫폼을 넘나들었습니다.

품목도 공연 입장권과 백화점 상품권 등으로 다양했습니다.


두 달 전, 뮤지컬 관람권을 구하려던 이 모 씨.

중고00 사이트에서 김 씨와 같은 박00 명의의 판매자와 관람권을 거래했습니다.

판매자는 가격 흥정까지 받아줬습니다.

이 씨는 해당 플랫폼의 자체 안전 거래로 결제하려 했지만, 판매자는 계좌 이체를 요구했습니다.

이 씨는 관람권 값으로 38만 원을 보냈지만, 30분 뒤 해당 판매자의 계정은 사라졌습니다.

이00/사기 피해자
그분한테 연락을 이제 다시 한번 해봐야겠다. 이게(예매 내용) 정확한지 해서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더라고요. 어? 이상하다 싶어서 전화했는데. 없는 번호라고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뭐지? 아, 당했구나.

‘박 모 씨’ 명의를 쓰는 판매자에게 사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소통했습니다.

한화이글스 입장권을 사기당했다, 돈만 챙긴 채 명품 가방은 주지 않았다, 배달 상품권에 속았다
등의 글이 줄줄이 올라왔습니다.

불과 며칠 새, 여러 플랫폼에서 박 씨 명의로 수십 건의 사기 행각이 확인됐습니다.

이00/사기 피해자
이분 조심하라고 글을 올렸는데 어느 분이 이런 단체(대화)방이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물품 종류도 되게 다양하고, 뭐 오토바이도 있고 아기용품도 있고 이제 야구 입장권이 제일 많았고요.

이 판매자가 이용한 계좌 명의만 박 씨를 포함해 9명.

이들 명의의 계좌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범죄에 악용됐습니다.

계좌 명의 대여자
알바 같은 거 하면 돈을 좀 벌 수 있다. 아기용품 판매한 대금이 있는데, 그 대금을 저희한테 다시 보내주는 일이라고 얘기를 하셨거든요. 적금 계좌에 돈이 들어오는 것까지는 확인이 됐었는데, 누구한테 들어왔다. 이런 것까지 찍히지는 않았어요.

경찰은 전문적인 ‘계좌 공급책’이 이들 이름의 계좌 수십 개를 만들어, ‘사기 실행자’들에게
나눠준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신분증도 전담 조직원이 같은 사진에 이름이나 주소만 바꿔 다수의 사기 실행자에게 배포한 거로 보입니다.

플랫폼 계정 역시 같은 방법으로 공급됐는데, 범죄 재료를 만든 핵심 그룹은 사기 실행자들에게
수수료 명목으로 사기 금액의 40%가량을 받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일반 중고 거래 사기처럼 '예금주' 기준으로 수사해서는 진범을 잡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곽대경/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범죄 조직이 여러 가지 역할들을 나눠서 담당을 하도록 한 다음에 피해자인 개인을 대상으로 이제 사기 범죄를 저지른 이런 형태이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개인 대 개인 간의 중고 거래 물품 사기와는 다르다.

지금은 피해자들이 가까운 경찰서에 '예금주'를 각각 신고하면, 경찰은 '예금주'의 주소지를 추적해
관할 경찰서로 사건을 넘깁니다.

수사를 진행하다가 같은 명의의 예금주 사건이 50건을 넘으면, 시·도 경찰청으로 이관합니다.
그사이 3주 이상이 지납니다.

수사는 시간 싸움인데,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될 때쯤이면 사기 조직은 이미 계좌 명의를 바꿨거나,
판매 계정 등을 삭제할 시점입니다.

더욱이 사기에 사용된 계정이 해외 소셜미디어라면, 아동 성 착취물 등이 아닌 이상 수사 자료를 받아보기도 어렵습니다.

현재 수사 체제로는 핵심 그룹은커녕 사기 실행자인 판매자조차 잡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곽대경/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범죄가 진화하면, 또 그걸 수사할 수 있는 수사 기법도 보다 더 발 빠르게 개발하는 게 필요한 거죠. 사기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전담 수사 기구를 만드는 것도 이제 필요하고, 상응하는 예산도 지원해 줘야죠.

이들이 사기 행각에 이용한 ‘수금 창구’는 ‘자유 적금 계좌’입니다.
보이스피싱 등에 사용되던 ‘대포통장’, 즉 ‘일반 입출금 통장’은 구식이 된 지 오랩니다.

한 번 적발되면 통장 개설이 제한되고 거래까지 정지되던 '일반 입출금' 통장과 달리, '자유 적금 계좌'는 누구나 계좌 수 제한 없이 비대면으로 손쉽게 개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 수사를 받는 안 모 씨의 경우, 농협의 적금 계좌 30여 개가 범죄에 악용됐습니다.

안 씨 명의를 사용한 소셜미디어 판매자에게만 국민은행과 우리은행 등에서 90개 넘는 적금 계좌가
흘러 들어갔습니다.

금융 사기 방지 목적의 민간 사이트에 등록되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새 계좌를 계속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모임 운영진
이건 조직 사기고 한 명당 계좌가 10개에서 많으면 80개까지 봤거든요. 그렇게 계속 새로운 계좌들이 생기다 보니까 피해자들은 검색해도 더치트에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믿고 돈을 보내는 거기 때문에…

특정 예금주의 '자유 적금 계좌'가 단기간 대량 생산되고, 이 계좌에 예금주가 아닌 다양한 명의의 사람들이 입금하는 '상식 밖' 거래가 이어지는 상황.

누가 봐도 수상한 거래지만, 은행들은 감시를 강화하기보다는 외부 탓만 한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입니다.

피해자 모임 운영진
입금 내용을 보면 하루에 몇천만 원에서 몇억까지도 그게 여러 명에 의해서 입금이 돼요. 근데 그거를 은행에서 제대로 보지를 않고, 감시를 하거나 그런 시스템이 전혀 없고 그냥 개인과 개인 간의 거래로 보고 방치하기 때문에.

한 시중 은행은 "은행에서 개설할 수 있는 적금 계좌 수를 제한하면 이용자들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며, "법령이나 당국의 지침 없이 은행 자체 판단으로 적금 계좌 신설을 제한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결국 참다못한 피해자들이 사기 조직의 범죄 수법과 피해 현황, 계좌 등을 직접 확인해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들이 지난해 3월부터 수집한 사기 관련 예금주는 천 백여 명, 계좌는 6천 개가 넘습니다.

금융 소비자단체는 금융기관들이 불법 행위를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강형구/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
금융사들의 거래 시스템이라든지, 제도의 맹점을 이용해서 사기를 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 묵인하거나 방조하는 거거든요. 제도를 개선해서 소비자 보호를 할 필요성이 있고요.

1년 전 금융감독원은 적금 계좌를 악용한 중고거래 사기 사건이 빈발하자, 은행권 '이상 거래 탐지시스템', FDS를 도입했습니다.

범죄에 악용된 계좌를 사전에 탐지하고, 사고 물품의 대금 지급을 막겠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1년 넘게 관련 범죄가 계속되는 상황.

금감원은 FDS를 도입하기는 했지만, 은행마다 거래 특성이 달라 직접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며,
사기 사건이 계속되는 만큼, 은행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중고 사기 범죄에 억제력을 가지려면 이상 거래 기준을 실효성 있게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

시민들은 은행권이 나서서 근절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강형구/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
사기 치는 걸 도와주는 거 아닙니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조처해야죠. 조치 취하는 거는 자기 입출금 통장에 넣어서 이체하게끔 하면 되거든요, 본인이. 다 표시돼서 자금 추적이 쉽거든요? 아니면 입금을 차단하면 돼요.

범인을 잡으면 경찰서 앞에서 단체로 춤을 추기로 했다는 피해자들.

피해자 모임 운영진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에 김미영 팀장도 2년인가 걸려서 잡혔잖아요.
잡히면 피해자분들이랑 다 같이 경찰서 앞에 가서 춤추기로 했거든요.

다시 일상에서, 사기 걱정 없이 소소한 '직관'의 행복을 누리길 바랍니다.

"암표 거래나 중고 사기 때문에 표 구하기가 더 어려워진 거 같아서 그런 부분들이 근절됐으면 좋겠습니다."

"그 정도 드셨으면 이제 그만할 때 됐습니다. 이제는 저희에게 티켓을 양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정가양도 #티켓 사기 #공연사기 #중고사기 #자유 적금 계좌 #보이스피싱

취재:박연선
촬영기자: 이정태, 안성복
촬영:박주영
영상편집:이기승
그래픽:장수현
리서처:채희주
AD:이민철, 심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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