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천국”은 옛말…국경 빗장 걸어잠근 독일

입력 2025.07.12 (22:12) 수정 2025.07.12 (22:1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난민에게 한없이 관대하던 유럽 국가들이 이제는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한때 "난민 천국"으로 불린 독일에서는 반난민 여론, 반이민 정서가 퍼지면서 올해 초 정권이 교체되기도 했지요.

새로 출범한 독일 보수 연정은 공약한 대로 국경 통제를 강화하면서 이웃 국가들과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또, 난민 인정의 문턱을 대폭 올리고 자격이 안 되는 난민을 추방하려는 분위기입니다.

독일 사회가 왜…이렇게 변했는지, 송영석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독일과 폴란드, 두 나라를 잇는 다리.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독일 국경 경비 대원들이 한 대씩 세워 꼼꼼하게 심사합니다.

불법 체류자의 유입을 막기 위해섭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곳 건너편이 독일입니다.

다리를 지나는 모든 차량을 일일이 검사하다 보니까 보시다시피 독일 쪽 방향은 온종일 긴 차량 행렬이 줄지어 있습니다.

지난 2007년 폴란드도 솅겐 협정에 가입한 이후 이 다리로 하루 평균 5천여 대의 차량이 자유롭게 오갔습니다.

그러나 맞은편 독일이 국경 검문을 하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국경 인근 독일 주민 : "(폴란드에 가려면) 신분증이나 여권이 있어야 해요. 여권 없이는 못가요. 과거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 국경을 건너갔는데 요즘은 한주에 한 번만 가요."]

지난 7일부턴 폴란드도 독일 국경 52군데에서 출입국 심사를 시작했습니다.

독일이 국경에서 적발한 무단 입국 난민들을 폴란드 쪽으로 밀어내자 맞대응에 나선 겁니다.

폴란드는 리투아니아 국경에도 검문소 13곳을 설치해 벨라루스를 통해 넘어오는 난민들을 추방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지난해 9월부터 이웃 9개 나라와의 접경지역에서 밀입국 시도자들을 적발해 현장에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하이코 테가츠/독일 연방경찰 노조 위원장 : "과거 국경 검문이 없었을 때는 범죄율을 줄이지 못했습니다. 국경 강화는 명확히 독일을 더 안전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에서야 경찰이 제대로 일하고 있고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임 올라프 숄츠 총리는 지난해 난민의 잔혹한 범죄가 끊이지 않자, 지난 10년간 유지되던 난민 포용 정책을 폐기했습니다.

최근 경찰관을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힌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 신청자가 경찰에 사살됐다는 소식을 다룬 기사의 댓글들입니다.

가해자에 대한 연민은 더 이상 없다.

'질렸다. 우리 국민을 위한 정치만 원할 뿐', '정치인들이 왜 그런 사람들을 우리나라에 데려올까' 등등 난민에 대한 반감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습니다.

지난 2월 총선을 앞두고 반(反)난민 여론이 비등했습니다.

결국, 연정 붕괴로 이어지면서 조기 총선에서도 승패를 갈랐습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당시 기독민주당 대표/지난 2월 총선 TV 토론 : "주로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에서 온 난민 중 500여 명이 위험한 인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체포하거나 추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습니다."]

지난 5월 출범한 메르츠 내각은 선거 때 공약한 정책에 따라 난민 기준을 바꾸었습니다.

이제는 엄격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난민 신청자는 국경에서 입국이 거부되고 있습니다.

난민 심사에서 탈락하면 즉시 추방될 수도 있습니다.

또, 난민 출신 국가의 치안이 불안해도 남은 가족을 독일로 데려오기도 어렵습니다.

[알렉산더 도브린트/독일 내무부 장관 : "(독일은) 더 이상의 난민 신청자와 난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거부는 계속될 것입니다."]

난민 신청자가 머무는 수용시설.

최대 2,500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그보다 많은 난민이 밀려들어 공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빈방이 늘고 있습니다.

이란에서 건너와 난민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하이다리 씨, 요즘 하루하루가 불안합니다.

[파리 하이다리/난민 신청자 : "우리가 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아니면 다시 우리를 돌려보낼지. 이런 스트레스가 많은 문제들이 있어요."]

시민단체 회원들이 난민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한 편지 낭독 행사.

냉담해진 독일 인심에 절망하고 "도와달라."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로에저/'난민 하산의 편지' 낭독 : "당신이 하는 일은 단순히 국경을 통제하는 것 이상입니다. 책상 뒤에서 누가 살아야 하고 누가 죽어야 하는지 결정합니다."]

독일에는 현재 350만 명의 난민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독일 사회에선 반난민, 반이민 정서가 퍼지면서 통합과 공존을 모색하자는 주장이 반목과 갈등의 목소리에 묻히고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송영석입니다.

촬영:이산하/영상편집:오태규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난민천국”은 옛말…국경 빗장 걸어잠근 독일
    • 입력 2025-07-12 22:12:56
    • 수정2025-07-12 22:17:32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난민에게 한없이 관대하던 유럽 국가들이 이제는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한때 "난민 천국"으로 불린 독일에서는 반난민 여론, 반이민 정서가 퍼지면서 올해 초 정권이 교체되기도 했지요.

새로 출범한 독일 보수 연정은 공약한 대로 국경 통제를 강화하면서 이웃 국가들과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또, 난민 인정의 문턱을 대폭 올리고 자격이 안 되는 난민을 추방하려는 분위기입니다.

독일 사회가 왜…이렇게 변했는지, 송영석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독일과 폴란드, 두 나라를 잇는 다리.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독일 국경 경비 대원들이 한 대씩 세워 꼼꼼하게 심사합니다.

불법 체류자의 유입을 막기 위해섭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곳 건너편이 독일입니다.

다리를 지나는 모든 차량을 일일이 검사하다 보니까 보시다시피 독일 쪽 방향은 온종일 긴 차량 행렬이 줄지어 있습니다.

지난 2007년 폴란드도 솅겐 협정에 가입한 이후 이 다리로 하루 평균 5천여 대의 차량이 자유롭게 오갔습니다.

그러나 맞은편 독일이 국경 검문을 하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국경 인근 독일 주민 : "(폴란드에 가려면) 신분증이나 여권이 있어야 해요. 여권 없이는 못가요. 과거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 국경을 건너갔는데 요즘은 한주에 한 번만 가요."]

지난 7일부턴 폴란드도 독일 국경 52군데에서 출입국 심사를 시작했습니다.

독일이 국경에서 적발한 무단 입국 난민들을 폴란드 쪽으로 밀어내자 맞대응에 나선 겁니다.

폴란드는 리투아니아 국경에도 검문소 13곳을 설치해 벨라루스를 통해 넘어오는 난민들을 추방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지난해 9월부터 이웃 9개 나라와의 접경지역에서 밀입국 시도자들을 적발해 현장에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하이코 테가츠/독일 연방경찰 노조 위원장 : "과거 국경 검문이 없었을 때는 범죄율을 줄이지 못했습니다. 국경 강화는 명확히 독일을 더 안전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에서야 경찰이 제대로 일하고 있고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임 올라프 숄츠 총리는 지난해 난민의 잔혹한 범죄가 끊이지 않자, 지난 10년간 유지되던 난민 포용 정책을 폐기했습니다.

최근 경찰관을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힌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 신청자가 경찰에 사살됐다는 소식을 다룬 기사의 댓글들입니다.

가해자에 대한 연민은 더 이상 없다.

'질렸다. 우리 국민을 위한 정치만 원할 뿐', '정치인들이 왜 그런 사람들을 우리나라에 데려올까' 등등 난민에 대한 반감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습니다.

지난 2월 총선을 앞두고 반(反)난민 여론이 비등했습니다.

결국, 연정 붕괴로 이어지면서 조기 총선에서도 승패를 갈랐습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당시 기독민주당 대표/지난 2월 총선 TV 토론 : "주로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에서 온 난민 중 500여 명이 위험한 인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체포하거나 추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습니다."]

지난 5월 출범한 메르츠 내각은 선거 때 공약한 정책에 따라 난민 기준을 바꾸었습니다.

이제는 엄격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난민 신청자는 국경에서 입국이 거부되고 있습니다.

난민 심사에서 탈락하면 즉시 추방될 수도 있습니다.

또, 난민 출신 국가의 치안이 불안해도 남은 가족을 독일로 데려오기도 어렵습니다.

[알렉산더 도브린트/독일 내무부 장관 : "(독일은) 더 이상의 난민 신청자와 난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거부는 계속될 것입니다."]

난민 신청자가 머무는 수용시설.

최대 2,500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그보다 많은 난민이 밀려들어 공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빈방이 늘고 있습니다.

이란에서 건너와 난민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하이다리 씨, 요즘 하루하루가 불안합니다.

[파리 하이다리/난민 신청자 : "우리가 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아니면 다시 우리를 돌려보낼지. 이런 스트레스가 많은 문제들이 있어요."]

시민단체 회원들이 난민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한 편지 낭독 행사.

냉담해진 독일 인심에 절망하고 "도와달라."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로에저/'난민 하산의 편지' 낭독 : "당신이 하는 일은 단순히 국경을 통제하는 것 이상입니다. 책상 뒤에서 누가 살아야 하고 누가 죽어야 하는지 결정합니다."]

독일에는 현재 350만 명의 난민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독일 사회에선 반난민, 반이민 정서가 퍼지면서 통합과 공존을 모색하자는 주장이 반목과 갈등의 목소리에 묻히고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송영석입니다.

촬영:이산하/영상편집:오태규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