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빗줄기 사이로 대형 버스가 멈춰 섭니다. 우비를 입은 사람들이 차례대로 내리더니, 순식간에 손팻말 앞으로 모여섭니다.
“저희는 4월 30일부터 입주 시작이 됐었어야 하는데도 각자가 살 집을 잃고 남의 집, 월세 집, 모텔방 전전하며 떠돌아다니며 생활하고 있는 암담한 상황입니다.“ |

대전에서 올라온 한 재개발 아파트 조합원들입니다.
”입주 대출도 안 되고 열쇠도 안 주고 그래서 입주를 못 하고...“ |
아파트는 다 지어졌는데, 이들은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장하시는 게 어떤 내용인가요?) 하루빨리 우리 조합원들 입주를 시켜달라고 하는 겁니다.” |
새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집회에 참가했던 한 조합원을 만났습니다. 이 동네에서 20년 넘게 거주하며 이 재개발 아파트의 조합원이 됐다고 합니다.
재개발 조합원(음성변조) “저희 집이 너무 오래돼서 너무 낙후됐었어요. 시공사에서 맨날 청사진을 제공하는데 어느 사람이 안 넘어가요.” |

오랜 기간 가져온 신축 아파트의 꿈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올해 초. 공사비를 두고 조합과 시공사 간에 갈등이 빚어진 겁니다.
재개발 조합원(음성변조) “조합하고 시공사의 싸움인 줄 알았지 우리 개개인 조합원들한테 이렇게 치명적인 불이익이 올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죠. 근데 갑자기 입주 날짜가 됐는데 열쇠를 안 준다는 거예요.” |
함께 조합에 들어온 부모님은 이 일이 불거지면서 건강이 나빠졌다고 합니다.
재개발 조합원(음성변조) “저희 어머니는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부정맥이 왔어요. 그래서 지금 굉장히 심각한 상태예요. 저희 아버님이 맨날 잠꼬대처럼 ‘내가 그 좋은 집에 들어가서 문고리라도 한번 잡아보고 죽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세요.” |
원래라면 늦어도 지난달 입주했을 집. 굳게 닫힌 문 앞에 서자 눈물만 나옵니다.
재개발 조합원(음성변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
이 조합원도 짐을 풀지 못한 채 방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재개발 조합원(음성변조) “여기는 지금 6박 7일로 단기 숙소로 잡은 거예요. 그전까지는 모텔에서 하루 있기도 하고 이틀 있기도 하고 그랬어요.” |
급하게 구매했다는 다리미가 보입니다.

재개발 조합원(음성변조) “빨래방에서 세탁해서 입었더니 구깃구깃하니까 ‘안 되겠네’ 해서 중고 거래 앱에서 이거 9천 원 주고 다리미를 또 샀지 뭐예요.” |
한쪽에는 언제든 다시 옮길 수 있도록 커다란 짐 가방이 있습니다.
재개발 조합원(음성변조) “(캐리어가 모두 몇 개인가요?) 캐리어요? 3개. (3개요?) 네.” “‘그냥 우리가 세 살면서 그렇게 몇 년 기다리면 되겠네’ 했는데 이렇게까지 늦어지고 이렇게 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죠.” |
가장 큰 걱정은, 이곳도 곧 비워줘야 한다는 겁니다.
재개발 조합원(음성변조) “여기서는 이제 (6월) 26일에 나가야 하고요. 내일모레죠. (26일이면 내일모레인데요) 네, 그때 여기를 비워줘야 해요.” |
이 아파트의 경우, 애초 천7백억 원이던 공사비가 2023년 말, 2천3백여억 원으로 늘었고, 증액안은 조합원 총회를 통과했습니다.
여기에 조합원 재산을 인정하는 기준인 재개발 ‘비례율’이 크게 줄었는데, 이 모두를 반영한 조합원 분담금이 지난 4월 통지됐습니다.
조합원별 추정 분담금은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3억 원에 이릅니다.
조합원 반발이 잇따르자, 조합은 공사비 협상단을 꾸려 최근 시공사에 재협상을 요구했습니다.
박장원/재개발조합 공사비협상단 위원장 “633억 원 증액 중에 (이상한 건) 처음에는 특화공사로 인한 추가 공사비는 없다고 했는데요. 633억 원이 들어온 부분을 보면 250억 원 정도가 과다 계상된 것이 지금 밝혀지고 있습니다.” |
공사비 갈등이 해결되지 않자 시공사 측이 조합원의 입주를 막아온 겁니다.
전체 9백9십여 세대 가운데, 재개발 조합원은 170여 세대입니다.

시공사 측은 입주 지연은 조합과의 합의로 해결됐으며, 공사비 증액은 설계변경과 물가 급등 등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2023년 변경 계약이 끝난 공사비에 대해 이제 와 문제를 제기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의 공사비 갈등은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 건수는 지난 5년 동안 10배 넘게 급증했습니다.

갈등의 시작은 조합과 시공사 간의 ‘정보 비대칭’에서 시작합니다. 즉, 조합에선 복잡한 공사비 구조를 알지 못한 채 시공사 측에서 통보만 받다 보니, 처음부터 제대로 파악해서 계약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유선종/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사실 조합원들은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정비사업, 그러니까 어떻게 하다 보니 재건축 아파트를 하나 갖고 있게 됐고 그리고 그 소유자로서 새로운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된 거죠.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갑자기 큰 금액을 지불하라고 건축비 증액분을 지불해야 한다고 통보를 받게 되면 당황하는 게 일반적인 패턴일 수밖에 없고요.” |
결국 시공사 측이 제시한 공사비 총액이나 평당 단가에 우선 계약을 체결하고, 나중에 늘어나는 공사비로 갈등이 불거지는 겁니다.
유선종/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수주 전에는 정말로 말 그대로 그들이 원하는, 조합이 원하는 눈높이에 맞춰서 모든 걸 해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수주가 결정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교환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뀌어서 시공사가 끌어가는 대로 조합은 끌려갈 수밖에 없는 그런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
특히 입주를 앞둔 상황에서 공사비 분쟁이 생기면, 조합은 입주 시기에 쫓겨 검증을 제대로 하기 어렵습니다.
위승문/공사비 검증업체 대표 “조합에서 (공사비가) 너무 많다, 검증을 한번 해보자고 의뢰가 들어옵니다. (공사) 도면하고 조합에 (공사) 예산 내역서를 뽑아놓은 게 있냐, 기초 금액. 그런데 저희가 가보면 거의 다 없습니다, 조합에는.” |
공사비 갈등은, 재건축이나 재개발뿐 아니라, 지역주택조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가 시내버스 종점이에요.” |
한 지역주택조합에 속한 박상숙 씨 가족이 임시로 거주하는 곳입니다.
박상숙/지역주택조합 조합원 "처음에 지나가는데 현수막에 500만 원대 아파트라고 나와 있길래 다른 데보다 되게 싸기에 분양을 받았거든요.” |
결혼 38년 만에 처음으로 신축 아파트로 간다는 기쁨에 처음에는 온 가족이 기뻐했습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건, 애초 5월이던 입주 시기가 계속 연기되면서입니다.
박상숙/지역주택조합 조합원 “제가 하도 답답하길래 5월이면 준비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답답해서 전화했더니 6월로 연기, 입주가. 그다음에 또 전화했더니 7월로 연기, 계속 그러더라고요.” |
살던 집까지 팔고 입주를 준비하던 중, 날아든 소식은 추가분담금을 더 내라는 거였습니다.
박상숙/지역주택조합 조합원 “등기우편으로 왔는데 저는 이제 입주하라는 건 줄 알고 기분 좋게 가서 찾아서 와서 봤더니 딱 열어보니까 그거더라고요. 6,470만 원 더 내야 한다.” |
시공사가 요구한 공사비는 조합 총회에서 부결됐고, 결과는 입주 연기였습니다.

박상숙/지역주택조합 조합원 “그냥 마음이 제일 힘들죠. 돈도 돈이지만 짐 맡겨놓고 이런 데 남의 집에 와서 살려니까 너무 힘든 거죠.” |
이삿짐을 맡길 곳도 급히 찾아야 했습니다.
박상숙/지역주택조합 조합원 “(이삿짐 포장에) 한 2주일 걸린 것 같아요. 조금씩 조금씩 일 다니면서 해야 하니까요.” |
언제쯤 이삿짐을 다시 풀 수 있을지 기약도 없습니다.

박상숙/지역주택조합 조합원 “(이게 원래 이번 달(7월)에 들어가야 할 짐이죠?) 네. 새 집으로 들어가야 할 건데 지금 못 들어가고 여기다 갖다 놨어요.” |
이젠 공사가 거의 끝난 아파트로 가봤습니다.
박상숙/지역주택조합 조합원 “저기 103동, 103동이 저희 (집이에요).” “(여기 자주 오셨어요?) 그렇죠. 거의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왔어요. 다 지어졌나 어쩌나 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와서 확인하고 그랬죠.” |
전체 6백여 세대인 이 아파트 단지의 총 공사비는 8백7십억 원. 시공사와 조합 비대위는 공사비 170억 원 증액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비대위가 80억 원만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자 시공사는 입주 지연으로 맞섰습니다.
“필요 서류의 교부 거부, 유치권 행사 및 조합 조합원 및 수분양자에 대한 목적물 인도 거부.” |
조합 측은, 시공사의 공사비 통지가 입주를 앞두고 갑자기 이뤄졌다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김희선/지역주택조합 조합원 “입주 두 달 앞두고, 아까 보셨겠지만 이사까지 다 해놓고 집 팔고 오갈 데도 없는데, 갑자기 두 달 전에 돈을 막 수천만 원씩 내라고 하니 당연히 지금 잔금만 준비하고 계셨던 분들이 이제 붕 뜨는 거죠.” |

시공사 측은 공사비 증액은 조합 요청의 특화공사 등에 따른 것이며, 170억 원 증액이 되지 않으면 물가 인상 손실도 메우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또, 증액 사유가 발생할 때마다 공문을 조합에 발송해 알렸다며 갑자기 인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시공사의 다른 지역 공사 현장에서도 비슷한 갈등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체 8백4십 세대의 공사비가 2천3백9십억 원에서 6백7십억 원 더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역주택조합의 경우, 주택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공사비 검증이 쉽지 않았다고 조합 측은 주장합니다.
김홍구/대구 지역주택조합 비대위원장 “(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맡기려고 했는데 그게 좀 어렵다고 답변을 들으셨다고요?) ‘지역주택조합은 해당 사항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재건축은 부동산원에서 해당이 되고 지역주택은 해당이 안 된다고 하니 ‘지역주택법이 너무나 허술하구나’라는 걸 느꼈고...” |
공사비 갈등을 겪는 조합에 가장 큰 어려움은 공사비 검증이라고 합니다.
김희선/지역주택조합 조합원 “그 (상세) 내역서가 있어야 당초 금액이 그 항목에 들어 있어서 비교를 해보는데, 시공사가 갖고 온 건 당초·변경만 있어요, 항목별로요. 그러니까 각 공정에 대해서 당초·변경만 있으니 당초 금액이나 물량이 맞는지를 확인할 수가 없는 거죠, 저희가.” |
전문가들은 공사비 분쟁을 줄이려면 첫 도급계약 때부터 상세한 공사비 내역서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민간 정비사업과 달리 공공사업에서 상대적으로 갈등이 적은 건 그 때문입니다.
위승문 / 공사비 검증업체 대표 “공공사업은 발주 전에 (상세한) 실시설계를 갖고 기초 금액, 예정 가격을 산정해 놓습니다. 이 과업에 대해서 공사비가 예를 들어서 1,000억 원이면, 그에 맞는 도면이 있어서 업체 선정해서 계약이 진행되면 공사를 하면서 생기는 설계 변경 사항들, 물가 변동 이런 거는 원만하게 협의해서 진행되죠.” |
시공사 측도 초기 사업비 산정 시 표준공사계약서를 활용해 산출 근거를 명확히 공개하고, 공사비 조정 기준을 마련하도록 해야 분쟁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또 갈등 중재를 위해선 공사비 검증 제도나 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에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유선종 /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결정된 공사비 검증한 결과에 대해서 강제력이 없어요. ‘조정을 한다’라고 할 때 ‘공사비 검증을 하고 이렇게 나왔습니다’라고 이 결과를 제출할 거 아닙니까. 그럼 그랬을 때 이 결과를 수용해 줘야 하는데 이 결과에 불복하면 또 그만이거든요.” |
한때 공사비 분쟁을 치른 뒤 입주가 진행 중인 재건축 단지입니다. 저층 주공 아파트 두 개 단지 2천 세대가 3천8백 세대 대단지 아파트로 바뀌었습니다.
“어린이 놀이터 잘 돼 있고요. 단지 내 이런 조경은 잘 돼 있어요.” |
시공사와 공사비 갈등을 전면에서 겪었던 최홍엽 씨.
최홍엽/재건축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장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좀 수정해서 감독기관을 하나 만들어서 정확하게 따져주고 확인해 주고 그런 절차를 거쳐야만 하는 것 같아요. 공사비 증액도 무조건 강제 규정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하고, 이런 것들이 꼭 필요합니다.” |
신규 주택 공급을 위해 불가피한 주택 정비 사업. 제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공사비 갈등도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유선종/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서울 수도권에서는 신규 택지가 없잖아요. 신도시 만드는 것 외에는 새롭게 주택을 공급하는 건 다 정비 사업입니다. 그러니까 정비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새집 마련이라는 누군가의 꿈이 위협받지 않도록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 변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지주택 #재개발 #재건축 #공사비 #지역주택조합 #이재명
취재:이승종
촬영:조선기 강우용
편집:최민경
그래픽:장수현
리서처:한혜민
조연출:심은별 이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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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보다] 입주 앞두고 날아온 청구서
-
- 입력 2025-07-13 23:03:33
굵은 빗줄기 사이로 대형 버스가 멈춰 섭니다. 우비를 입은 사람들이 차례대로 내리더니, 순식간에 손팻말 앞으로 모여섭니다.
“저희는 4월 30일부터 입주 시작이 됐었어야 하는데도 각자가 살 집을 잃고 남의 집, 월세 집, 모텔방 전전하며 떠돌아다니며 생활하고 있는 암담한 상황입니다.“ |

대전에서 올라온 한 재개발 아파트 조합원들입니다.
”입주 대출도 안 되고 열쇠도 안 주고 그래서 입주를 못 하고...“ |
아파트는 다 지어졌는데, 이들은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장하시는 게 어떤 내용인가요?) 하루빨리 우리 조합원들 입주를 시켜달라고 하는 겁니다.” |
새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집회에 참가했던 한 조합원을 만났습니다. 이 동네에서 20년 넘게 거주하며 이 재개발 아파트의 조합원이 됐다고 합니다.
재개발 조합원(음성변조) “저희 집이 너무 오래돼서 너무 낙후됐었어요. 시공사에서 맨날 청사진을 제공하는데 어느 사람이 안 넘어가요.” |

오랜 기간 가져온 신축 아파트의 꿈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올해 초. 공사비를 두고 조합과 시공사 간에 갈등이 빚어진 겁니다.
재개발 조합원(음성변조) “조합하고 시공사의 싸움인 줄 알았지 우리 개개인 조합원들한테 이렇게 치명적인 불이익이 올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죠. 근데 갑자기 입주 날짜가 됐는데 열쇠를 안 준다는 거예요.” |
함께 조합에 들어온 부모님은 이 일이 불거지면서 건강이 나빠졌다고 합니다.
재개발 조합원(음성변조) “저희 어머니는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부정맥이 왔어요. 그래서 지금 굉장히 심각한 상태예요. 저희 아버님이 맨날 잠꼬대처럼 ‘내가 그 좋은 집에 들어가서 문고리라도 한번 잡아보고 죽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세요.” |
원래라면 늦어도 지난달 입주했을 집. 굳게 닫힌 문 앞에 서자 눈물만 나옵니다.
재개발 조합원(음성변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
이 조합원도 짐을 풀지 못한 채 방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재개발 조합원(음성변조) “여기는 지금 6박 7일로 단기 숙소로 잡은 거예요. 그전까지는 모텔에서 하루 있기도 하고 이틀 있기도 하고 그랬어요.” |
급하게 구매했다는 다리미가 보입니다.

재개발 조합원(음성변조) “빨래방에서 세탁해서 입었더니 구깃구깃하니까 ‘안 되겠네’ 해서 중고 거래 앱에서 이거 9천 원 주고 다리미를 또 샀지 뭐예요.” |
한쪽에는 언제든 다시 옮길 수 있도록 커다란 짐 가방이 있습니다.
재개발 조합원(음성변조) “(캐리어가 모두 몇 개인가요?) 캐리어요? 3개. (3개요?) 네.” “‘그냥 우리가 세 살면서 그렇게 몇 년 기다리면 되겠네’ 했는데 이렇게까지 늦어지고 이렇게 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죠.” |
가장 큰 걱정은, 이곳도 곧 비워줘야 한다는 겁니다.
재개발 조합원(음성변조) “여기서는 이제 (6월) 26일에 나가야 하고요. 내일모레죠. (26일이면 내일모레인데요) 네, 그때 여기를 비워줘야 해요.” |
이 아파트의 경우, 애초 천7백억 원이던 공사비가 2023년 말, 2천3백여억 원으로 늘었고, 증액안은 조합원 총회를 통과했습니다.
여기에 조합원 재산을 인정하는 기준인 재개발 ‘비례율’이 크게 줄었는데, 이 모두를 반영한 조합원 분담금이 지난 4월 통지됐습니다.
조합원별 추정 분담금은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3억 원에 이릅니다.
조합원 반발이 잇따르자, 조합은 공사비 협상단을 꾸려 최근 시공사에 재협상을 요구했습니다.
박장원/재개발조합 공사비협상단 위원장 “633억 원 증액 중에 (이상한 건) 처음에는 특화공사로 인한 추가 공사비는 없다고 했는데요. 633억 원이 들어온 부분을 보면 250억 원 정도가 과다 계상된 것이 지금 밝혀지고 있습니다.” |
공사비 갈등이 해결되지 않자 시공사 측이 조합원의 입주를 막아온 겁니다.
전체 9백9십여 세대 가운데, 재개발 조합원은 170여 세대입니다.

시공사 측은 입주 지연은 조합과의 합의로 해결됐으며, 공사비 증액은 설계변경과 물가 급등 등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2023년 변경 계약이 끝난 공사비에 대해 이제 와 문제를 제기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의 공사비 갈등은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 건수는 지난 5년 동안 10배 넘게 급증했습니다.

갈등의 시작은 조합과 시공사 간의 ‘정보 비대칭’에서 시작합니다. 즉, 조합에선 복잡한 공사비 구조를 알지 못한 채 시공사 측에서 통보만 받다 보니, 처음부터 제대로 파악해서 계약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유선종/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사실 조합원들은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정비사업, 그러니까 어떻게 하다 보니 재건축 아파트를 하나 갖고 있게 됐고 그리고 그 소유자로서 새로운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된 거죠.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갑자기 큰 금액을 지불하라고 건축비 증액분을 지불해야 한다고 통보를 받게 되면 당황하는 게 일반적인 패턴일 수밖에 없고요.” |
결국 시공사 측이 제시한 공사비 총액이나 평당 단가에 우선 계약을 체결하고, 나중에 늘어나는 공사비로 갈등이 불거지는 겁니다.
유선종/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수주 전에는 정말로 말 그대로 그들이 원하는, 조합이 원하는 눈높이에 맞춰서 모든 걸 해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수주가 결정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교환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뀌어서 시공사가 끌어가는 대로 조합은 끌려갈 수밖에 없는 그런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
특히 입주를 앞둔 상황에서 공사비 분쟁이 생기면, 조합은 입주 시기에 쫓겨 검증을 제대로 하기 어렵습니다.
위승문/공사비 검증업체 대표 “조합에서 (공사비가) 너무 많다, 검증을 한번 해보자고 의뢰가 들어옵니다. (공사) 도면하고 조합에 (공사) 예산 내역서를 뽑아놓은 게 있냐, 기초 금액. 그런데 저희가 가보면 거의 다 없습니다, 조합에는.” |
공사비 갈등은, 재건축이나 재개발뿐 아니라, 지역주택조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가 시내버스 종점이에요.” |
한 지역주택조합에 속한 박상숙 씨 가족이 임시로 거주하는 곳입니다.
박상숙/지역주택조합 조합원 "처음에 지나가는데 현수막에 500만 원대 아파트라고 나와 있길래 다른 데보다 되게 싸기에 분양을 받았거든요.” |
결혼 38년 만에 처음으로 신축 아파트로 간다는 기쁨에 처음에는 온 가족이 기뻐했습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건, 애초 5월이던 입주 시기가 계속 연기되면서입니다.
박상숙/지역주택조합 조합원 “제가 하도 답답하길래 5월이면 준비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답답해서 전화했더니 6월로 연기, 입주가. 그다음에 또 전화했더니 7월로 연기, 계속 그러더라고요.” |
살던 집까지 팔고 입주를 준비하던 중, 날아든 소식은 추가분담금을 더 내라는 거였습니다.
박상숙/지역주택조합 조합원 “등기우편으로 왔는데 저는 이제 입주하라는 건 줄 알고 기분 좋게 가서 찾아서 와서 봤더니 딱 열어보니까 그거더라고요. 6,470만 원 더 내야 한다.” |
시공사가 요구한 공사비는 조합 총회에서 부결됐고, 결과는 입주 연기였습니다.

박상숙/지역주택조합 조합원 “그냥 마음이 제일 힘들죠. 돈도 돈이지만 짐 맡겨놓고 이런 데 남의 집에 와서 살려니까 너무 힘든 거죠.” |
이삿짐을 맡길 곳도 급히 찾아야 했습니다.
박상숙/지역주택조합 조합원 “(이삿짐 포장에) 한 2주일 걸린 것 같아요. 조금씩 조금씩 일 다니면서 해야 하니까요.” |
언제쯤 이삿짐을 다시 풀 수 있을지 기약도 없습니다.

박상숙/지역주택조합 조합원 “(이게 원래 이번 달(7월)에 들어가야 할 짐이죠?) 네. 새 집으로 들어가야 할 건데 지금 못 들어가고 여기다 갖다 놨어요.” |
이젠 공사가 거의 끝난 아파트로 가봤습니다.
박상숙/지역주택조합 조합원 “저기 103동, 103동이 저희 (집이에요).” “(여기 자주 오셨어요?) 그렇죠. 거의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왔어요. 다 지어졌나 어쩌나 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와서 확인하고 그랬죠.” |
전체 6백여 세대인 이 아파트 단지의 총 공사비는 8백7십억 원. 시공사와 조합 비대위는 공사비 170억 원 증액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비대위가 80억 원만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자 시공사는 입주 지연으로 맞섰습니다.
“필요 서류의 교부 거부, 유치권 행사 및 조합 조합원 및 수분양자에 대한 목적물 인도 거부.” |
조합 측은, 시공사의 공사비 통지가 입주를 앞두고 갑자기 이뤄졌다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김희선/지역주택조합 조합원 “입주 두 달 앞두고, 아까 보셨겠지만 이사까지 다 해놓고 집 팔고 오갈 데도 없는데, 갑자기 두 달 전에 돈을 막 수천만 원씩 내라고 하니 당연히 지금 잔금만 준비하고 계셨던 분들이 이제 붕 뜨는 거죠.” |

시공사 측은 공사비 증액은 조합 요청의 특화공사 등에 따른 것이며, 170억 원 증액이 되지 않으면 물가 인상 손실도 메우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또, 증액 사유가 발생할 때마다 공문을 조합에 발송해 알렸다며 갑자기 인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시공사의 다른 지역 공사 현장에서도 비슷한 갈등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체 8백4십 세대의 공사비가 2천3백9십억 원에서 6백7십억 원 더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역주택조합의 경우, 주택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공사비 검증이 쉽지 않았다고 조합 측은 주장합니다.
김홍구/대구 지역주택조합 비대위원장 “(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맡기려고 했는데 그게 좀 어렵다고 답변을 들으셨다고요?) ‘지역주택조합은 해당 사항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재건축은 부동산원에서 해당이 되고 지역주택은 해당이 안 된다고 하니 ‘지역주택법이 너무나 허술하구나’라는 걸 느꼈고...” |
공사비 갈등을 겪는 조합에 가장 큰 어려움은 공사비 검증이라고 합니다.
김희선/지역주택조합 조합원 “그 (상세) 내역서가 있어야 당초 금액이 그 항목에 들어 있어서 비교를 해보는데, 시공사가 갖고 온 건 당초·변경만 있어요, 항목별로요. 그러니까 각 공정에 대해서 당초·변경만 있으니 당초 금액이나 물량이 맞는지를 확인할 수가 없는 거죠, 저희가.” |
전문가들은 공사비 분쟁을 줄이려면 첫 도급계약 때부터 상세한 공사비 내역서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민간 정비사업과 달리 공공사업에서 상대적으로 갈등이 적은 건 그 때문입니다.
위승문 / 공사비 검증업체 대표 “공공사업은 발주 전에 (상세한) 실시설계를 갖고 기초 금액, 예정 가격을 산정해 놓습니다. 이 과업에 대해서 공사비가 예를 들어서 1,000억 원이면, 그에 맞는 도면이 있어서 업체 선정해서 계약이 진행되면 공사를 하면서 생기는 설계 변경 사항들, 물가 변동 이런 거는 원만하게 협의해서 진행되죠.” |
시공사 측도 초기 사업비 산정 시 표준공사계약서를 활용해 산출 근거를 명확히 공개하고, 공사비 조정 기준을 마련하도록 해야 분쟁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또 갈등 중재를 위해선 공사비 검증 제도나 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에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유선종 /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결정된 공사비 검증한 결과에 대해서 강제력이 없어요. ‘조정을 한다’라고 할 때 ‘공사비 검증을 하고 이렇게 나왔습니다’라고 이 결과를 제출할 거 아닙니까. 그럼 그랬을 때 이 결과를 수용해 줘야 하는데 이 결과에 불복하면 또 그만이거든요.” |
한때 공사비 분쟁을 치른 뒤 입주가 진행 중인 재건축 단지입니다. 저층 주공 아파트 두 개 단지 2천 세대가 3천8백 세대 대단지 아파트로 바뀌었습니다.
“어린이 놀이터 잘 돼 있고요. 단지 내 이런 조경은 잘 돼 있어요.” |
시공사와 공사비 갈등을 전면에서 겪었던 최홍엽 씨.
최홍엽/재건축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장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좀 수정해서 감독기관을 하나 만들어서 정확하게 따져주고 확인해 주고 그런 절차를 거쳐야만 하는 것 같아요. 공사비 증액도 무조건 강제 규정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하고, 이런 것들이 꼭 필요합니다.” |
신규 주택 공급을 위해 불가피한 주택 정비 사업. 제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공사비 갈등도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유선종/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서울 수도권에서는 신규 택지가 없잖아요. 신도시 만드는 것 외에는 새롭게 주택을 공급하는 건 다 정비 사업입니다. 그러니까 정비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새집 마련이라는 누군가의 꿈이 위협받지 않도록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 변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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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이승종
촬영:조선기 강우용
편집:최민경
그래픽:장수현
리서처:한혜민
조연출:심은별 이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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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기자 arg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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