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면에 같이 질렀다…낯가림 없는 ‘소분모임’

입력 2025.07.2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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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이들과 삼삼오오 쇼핑하기.

해 볼 생각 있으신가요? 조금은 망설여지시나요?

저는 최근 한 번 해봤습니다. 굳이? 왜? 어디서? 뭘 사려고?

이 기사는 이런 궁금증에 대한 설명입니다.

■ 들어는 봤니, 소분모임

소분 (小分): 작게 나눔, 또는 그런 부분.

요즘 일상에선 잘 안 쓰는 단어죠. 중고거래 플랫폼에선 다릅니다.

'소분모임'을 검색하면, 쭈~욱 아주 길게 검색됩니다.

7월 12일, 지난주 토요일에 이 소분모임에 저도 동참했습니다.

지난 12일, 한 창고형 대형마트 앞.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만났습니다.지난 12일, 한 창고형 대형마트 앞.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창고형 대형마트에서 파는 제품들, 참 싸긴 하지만 양이 많아 고민일 때가 있죠.

특히 1인 가구나 2인 가구일 경우에는 더 그렇습니다.

이런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제품을 싸게 나눠 사자고 만든, 쉽게 말해 크게 사서 작게 나누기로 한 공동구매입니다.

■ "이번 주, 어디서 만나요"

이 모임, 어떻게 성사되는 걸까요?

중고거래 플랫폼의 ‘소분모임’중고거래 플랫폼의 ‘소분모임’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지역별로 소분모임이 꾸려져 있습니다.

모임 가입자들은 사고 싶은 제품이 생겼을 때, 별도의 '일정'을 만듭니다. 나누고 싶은 제품, 날짜, 인원 등을 정해서 올리는 겁니다.

공지된 제품과 일정 등을 살펴보고, 다른 참여자들이 동참 의사를 밝히면, 시간을 조율한 뒤 만남이 성사됩니다.

저도 그렇게 참여 의사를 전한 뒤 약속한 시각에 서울의 한 창고형 대형마트 앞에서 만났습니다.

이번 모임 인원은 총 5명. 여느 중고거래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느낌이 왔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휴대전화와 주변을 번갈아 가며 보시는 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 저분이시구나.'

그렇게 하나둘 모여 인사를 나눈 뒤 곧장 마트로 들어갔습니다.

■ 세상에 못 나눌 건 없다

창고형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다짐육창고형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다짐육

제가 참여한 모임의 목표는 '다짐육'이었습니다.

다짐육은 창고형 대형마트의 대표 제품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싼데, 대용량입니다. 보통 3kg대로 팝니다.

대가족이 아니고서야 상하기 전에 다 먹기 힘듭니다. 냉동보관을 해도 언제 다 먹을지 기약이 없습니다. 얼리면 맛도 덜해지는 건 상식입니다.

저희가 구매한 미국산 소고기 다짐육은 3.3kg에 4만 4천 원. 시중가보다 최대 20% 정도 싼 가격입니다.

다짐육은 수많은 사례 중 하나입니다. 대용량 또는 다포장 제품이라면 뭐든 다 나눌 수 있습니다.

3개들이 굴 소스도 소분모임의 취지에 딱 맞는 제품이었습니다. 한 병씩 나눠 사면 시중에서 한 병을 따로 살 때보다 2천 원가량 저렴했습니다.

"이거도 나눌까요? 8,500원이면 한 명당 3천 원도 안 되는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연스레 마음이 맞았습니다.

다짐육, 굴 소스, 대용량 연어, 레몬즙, 사과식초를 그날 소분모임에서 나눠 샀습니다.

개별 포장된 제품은 바로 나눌 수 있다지만, 고기나 생선 같은 제품은 어떻게 나눌까요?


소분모임 장보기에는 준비물이 필요합니다. 비닐장갑과 저울, 반찬통입니다. 계산이 끝나면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됩니다.

조금씩 떼서 저울에 무게를 달고…. 세 명이 1.1kg씩 나눠 가졌습니다.

비용은 현장에서 바로바로 정산합니다.

한 소분모임 참여자는 "처음에는 걱정도 되긴 했지만 한 번 해보니, 딱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라 장 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깔끔하게 정산하고 '안녕히 가세요' 하고 헤어지니 오히려 편했다"고 말했습니다.

■ 귀차니즘도 넘어선 '열기'


중고거래 플랫폼에 이런 소분모임이 처음 생겨난 건 2022년 12월입니다.

올해 6월 기준, 소분모임은 2022년 당시보다 약 21배 늘었습니다.

올해 상반기 새롭게 만들어진 소분모임은 지난해 상반기의 4배를 넘습니다.

세종시 소분모임은 가입자만 천 명이 넘습니다.

소분모임이 급증한 가장 큰 이유는 물가, 특히 식품 물가입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두 달 만에 다시 2%대로 올라섰습니다.

가공식품 물가는 4.6% 뛰었습니다. 수산물은 7.4%, 축산물은 4.3% 올랐습니다.

전체 물가와 먹거리 물가가 따로 노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고 있는 요즘, 알뜰한 소비를 위해 더욱 필요한 모임이었던 겁니다.

포털사이트 카페 소분 글포털사이트 카페 소분 글

소분 문화, 예전부터 포털사이트 카페에서도 있긴 했습니다.

지역 카페 등을 중심으로 대용량 제품을 나눠 살 사람, 이미 산 제품을 나눠 가질 사람 등을 찾는 글을 종종 만날 수 있습니다.

소분 물품은 치즈, 빵 등 유통기한이 짧은 음식은 물론 세제 등 생활용품까지 다양했습니다.

다만 카페는 불편했습니다. 소통에 한계가 있었죠. 이제는 실시간으로 일정을 잡고 채팅까지 할 수 있는 중고거래 앱을 통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중고거래 플랫폼 소분모임 개설자도 "이전에는 카페에 글을 올려서 소분할 사람을 찾았었는데, 그게 불편해서 직접 소분모임을 만들게 됐다"고 했습니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 장바구니 물가에 이런 실속 소비 현장은 더 늘어날 거로 보입니다.

"같이 장 보러 가실 분"

물가, 특히 먹거리 물가가 잡히지 않는 한, 플랫폼에서 이런 게시글은 점점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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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면에 같이 질렀다…낯가림 없는 ‘소분모임’
    • 입력 2025-07-20 09:02:56
    심층K

처음 만난 이들과 삼삼오오 쇼핑하기.

해 볼 생각 있으신가요? 조금은 망설여지시나요?

저는 최근 한 번 해봤습니다. 굳이? 왜? 어디서? 뭘 사려고?

이 기사는 이런 궁금증에 대한 설명입니다.

■ 들어는 봤니, 소분모임

소분 (小分): 작게 나눔, 또는 그런 부분.

요즘 일상에선 잘 안 쓰는 단어죠. 중고거래 플랫폼에선 다릅니다.

'소분모임'을 검색하면, 쭈~욱 아주 길게 검색됩니다.

7월 12일, 지난주 토요일에 이 소분모임에 저도 동참했습니다.

지난 12일, 한 창고형 대형마트 앞.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창고형 대형마트에서 파는 제품들, 참 싸긴 하지만 양이 많아 고민일 때가 있죠.

특히 1인 가구나 2인 가구일 경우에는 더 그렇습니다.

이런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제품을 싸게 나눠 사자고 만든, 쉽게 말해 크게 사서 작게 나누기로 한 공동구매입니다.

■ "이번 주, 어디서 만나요"

이 모임, 어떻게 성사되는 걸까요?

중고거래 플랫폼의 ‘소분모임’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지역별로 소분모임이 꾸려져 있습니다.

모임 가입자들은 사고 싶은 제품이 생겼을 때, 별도의 '일정'을 만듭니다. 나누고 싶은 제품, 날짜, 인원 등을 정해서 올리는 겁니다.

공지된 제품과 일정 등을 살펴보고, 다른 참여자들이 동참 의사를 밝히면, 시간을 조율한 뒤 만남이 성사됩니다.

저도 그렇게 참여 의사를 전한 뒤 약속한 시각에 서울의 한 창고형 대형마트 앞에서 만났습니다.

이번 모임 인원은 총 5명. 여느 중고거래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느낌이 왔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휴대전화와 주변을 번갈아 가며 보시는 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 저분이시구나.'

그렇게 하나둘 모여 인사를 나눈 뒤 곧장 마트로 들어갔습니다.

■ 세상에 못 나눌 건 없다

창고형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다짐육
제가 참여한 모임의 목표는 '다짐육'이었습니다.

다짐육은 창고형 대형마트의 대표 제품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싼데, 대용량입니다. 보통 3kg대로 팝니다.

대가족이 아니고서야 상하기 전에 다 먹기 힘듭니다. 냉동보관을 해도 언제 다 먹을지 기약이 없습니다. 얼리면 맛도 덜해지는 건 상식입니다.

저희가 구매한 미국산 소고기 다짐육은 3.3kg에 4만 4천 원. 시중가보다 최대 20% 정도 싼 가격입니다.

다짐육은 수많은 사례 중 하나입니다. 대용량 또는 다포장 제품이라면 뭐든 다 나눌 수 있습니다.

3개들이 굴 소스도 소분모임의 취지에 딱 맞는 제품이었습니다. 한 병씩 나눠 사면 시중에서 한 병을 따로 살 때보다 2천 원가량 저렴했습니다.

"이거도 나눌까요? 8,500원이면 한 명당 3천 원도 안 되는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연스레 마음이 맞았습니다.

다짐육, 굴 소스, 대용량 연어, 레몬즙, 사과식초를 그날 소분모임에서 나눠 샀습니다.

개별 포장된 제품은 바로 나눌 수 있다지만, 고기나 생선 같은 제품은 어떻게 나눌까요?


소분모임 장보기에는 준비물이 필요합니다. 비닐장갑과 저울, 반찬통입니다. 계산이 끝나면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됩니다.

조금씩 떼서 저울에 무게를 달고…. 세 명이 1.1kg씩 나눠 가졌습니다.

비용은 현장에서 바로바로 정산합니다.

한 소분모임 참여자는 "처음에는 걱정도 되긴 했지만 한 번 해보니, 딱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라 장 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깔끔하게 정산하고 '안녕히 가세요' 하고 헤어지니 오히려 편했다"고 말했습니다.

■ 귀차니즘도 넘어선 '열기'


중고거래 플랫폼에 이런 소분모임이 처음 생겨난 건 2022년 12월입니다.

올해 6월 기준, 소분모임은 2022년 당시보다 약 21배 늘었습니다.

올해 상반기 새롭게 만들어진 소분모임은 지난해 상반기의 4배를 넘습니다.

세종시 소분모임은 가입자만 천 명이 넘습니다.

소분모임이 급증한 가장 큰 이유는 물가, 특히 식품 물가입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두 달 만에 다시 2%대로 올라섰습니다.

가공식품 물가는 4.6% 뛰었습니다. 수산물은 7.4%, 축산물은 4.3% 올랐습니다.

전체 물가와 먹거리 물가가 따로 노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고 있는 요즘, 알뜰한 소비를 위해 더욱 필요한 모임이었던 겁니다.

포털사이트 카페 소분 글
소분 문화, 예전부터 포털사이트 카페에서도 있긴 했습니다.

지역 카페 등을 중심으로 대용량 제품을 나눠 살 사람, 이미 산 제품을 나눠 가질 사람 등을 찾는 글을 종종 만날 수 있습니다.

소분 물품은 치즈, 빵 등 유통기한이 짧은 음식은 물론 세제 등 생활용품까지 다양했습니다.

다만 카페는 불편했습니다. 소통에 한계가 있었죠. 이제는 실시간으로 일정을 잡고 채팅까지 할 수 있는 중고거래 앱을 통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중고거래 플랫폼 소분모임 개설자도 "이전에는 카페에 글을 올려서 소분할 사람을 찾았었는데, 그게 불편해서 직접 소분모임을 만들게 됐다"고 했습니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 장바구니 물가에 이런 실속 소비 현장은 더 늘어날 거로 보입니다.

"같이 장 보러 가실 분"

물가, 특히 먹거리 물가가 잡히지 않는 한, 플랫폼에서 이런 게시글은 점점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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