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금융 중심지 두바이서 ‘꺾기’에 ‘뒷돈’까지 [지금 중동은]
입력 2025.07.29 (07:00)
수정 2025.07.29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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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계좌 개설부터 막히는 한국 기업들
아랍에미리트 (UAE) 두바이에 올해 초 지사를 차린 한 컨설팅 업체의 대표 A씨는 현지 은행과의 첫 만남에서 예상치 못한 현실과 맞부딪쳤습니다.
'중동의 금융허브' 두바이가 투명하고 효율적인 금융 시스템일 것이라는 기대가, 실제와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법인계좌 개설이 복잡하지만 절차는 명확합니다. 사업자등록증과 정관, 법인등기부등본 등 법정 서류만 갖추면 은행에서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수수료 체계도 투명합니다. 금융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꺾기' 같은 불합리한 관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법인 계좌 개설이 언제쯤 가능할지 예측 가능합니다.
그러나 두바이 은행 관행은 A씨의 상상을 넘어섰습니다. 은행의 법인 계좌 개설 담당자가 금융상품 가입을 노골적으로 요구했습니다. 명백히 불법이지만, 은행과 싸워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고 은행과 거래를 트는 게 시급했기에 A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금융상품에 가입했습니다. 이 비용을 '수업료'로 생각했습니다.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은행 담당자는 이번엔 계좌 개설 수수료를 요구했습니다. '공식 수수료냐'고 물었더니, 담당자는 '아니'라고 태연히 말했습니다. 사실상 '뒷돈'을 달라는 거였습니다. 돈을 주지 않자, 담당자는 계좌 개설을 계속 미루며 시간을 끌었습니다. 당장 일을 진행해야 하는 A씨는 불쾌했지만, 뒷돈을 건넬 수밖에 없었습니다.
A씨는 외국에서 온 기업인이라고 은행이 너무 뜯어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은행이 문제가 아니라 금융권 곳곳에 포진한 특정 국가 출신들이 횡포를 부린다는 얘기를 같은 업종에 있는 사업가로부터 들었습니다. A씨가 당한 담당자도 해당 국가 출신이었습니다.

■ 승인받은 인증도 다시 받아야 하는 화장품 업계
화장품 업계의 상황은 더욱 복잡합니다. 한국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만 받으면 전국 어디서든 판매할 수 있습니다. 지자체마다 별도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UAE에서는 연방기관인 산업발전부(MoIAT)에 화장품 제품 등록(ECAS)을 마쳐도 두바이 정부에 또 다른 등록 절차(CPRE)를 거쳐야 합니다. 더 황당한 것은 상위 인증인 ECAS 승인을 받은 제품에 대해서도 하위 CPRE 인증에서 거절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점입니다.
한 화장품 기업 관계자는 "연방 정부 승인을 받았는데 지방 정부에서 거절당하는 경우가 있다"며 "정부 기관 인증 체계를 단일화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 이중 인증의 늪에 빠진 제조업체들
산업 전반에 걸쳐 인증 문제가 적지 않았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걸프협력회의(GCC) 통합 인증인 G마크(Gmark)와 별개로 UAE 자국 인증인 ECAS 취득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지역 통합 인증을 받았는데도 UAE에서는 자국 인증을 별도로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이미 GCC 통합 인증을 받았는데도 별도로 UAE 인증을 받아야 해서 시간과 비용이 이중으로 든다"며 "한국보다 인증 절차가 복잡하다"고 말했습니다.

■ 무역협회, UAE 진출· 수출 5천여 개 기업의 경험 조사
위의 사례들은 무역협회 두바이 지부가 아랍에미리트(UAE) 진출 및 수출 한국 기업 대상으로 실시한 애로 조사에서 나타난 실제 경험담들입니다. 무역협회 두바이 지부는 지난 4월부터 5월까지 두 달간 UAE 진출 기업 100여 개사와 수출 기업 5천여 개사를 대상으로 전화 및 방문 인터뷰와 간담회, 온라인 설문조사 및 추가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허가·인증·금융·조달 등 분야에서 크게 7개 사업 장벽이 드러났습니다. 기업 친화적인 환경으로 널리 알려진 두바이지만 '일부 분야'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이해할 수 없는 장벽이 있었던 겁니다. 기업들은 법인계좌 설립 관련 표준지침 제정과 공공 조달 시 영어 사용 강제화, 연방·지방정부 간 정보 공유 확대, G마크·ECAS 상호 인정 제도 도입 등을 건의했습니다.
■ UAE 정부 기관 한국기업 애로 청취
무역협회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아부다비 경제개발청, 두바이 경제관광청 등 현지 정부 기관과 아부다비·두바이 상공회의소에 건의서를 제출했습니다. 해당 기관들로부터 제도 개선에 힘쓰겠다는 긍정적인 답변도 받았습니다.
중동 지역의 경제 허브 두바이. 중동·아프리카 권역에서는 기업에 최고의 환경을 갖춘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분야에서 아직도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번 조사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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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7-29 07:00:15
- 수정2025-07-29 07:03:24

■ 은행계좌 개설부터 막히는 한국 기업들
아랍에미리트 (UAE) 두바이에 올해 초 지사를 차린 한 컨설팅 업체의 대표 A씨는 현지 은행과의 첫 만남에서 예상치 못한 현실과 맞부딪쳤습니다.
'중동의 금융허브' 두바이가 투명하고 효율적인 금융 시스템일 것이라는 기대가, 실제와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법인계좌 개설이 복잡하지만 절차는 명확합니다. 사업자등록증과 정관, 법인등기부등본 등 법정 서류만 갖추면 은행에서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수수료 체계도 투명합니다. 금융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꺾기' 같은 불합리한 관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법인 계좌 개설이 언제쯤 가능할지 예측 가능합니다.
그러나 두바이 은행 관행은 A씨의 상상을 넘어섰습니다. 은행의 법인 계좌 개설 담당자가 금융상품 가입을 노골적으로 요구했습니다. 명백히 불법이지만, 은행과 싸워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고 은행과 거래를 트는 게 시급했기에 A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금융상품에 가입했습니다. 이 비용을 '수업료'로 생각했습니다.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은행 담당자는 이번엔 계좌 개설 수수료를 요구했습니다. '공식 수수료냐'고 물었더니, 담당자는 '아니'라고 태연히 말했습니다. 사실상 '뒷돈'을 달라는 거였습니다. 돈을 주지 않자, 담당자는 계좌 개설을 계속 미루며 시간을 끌었습니다. 당장 일을 진행해야 하는 A씨는 불쾌했지만, 뒷돈을 건넬 수밖에 없었습니다.
A씨는 외국에서 온 기업인이라고 은행이 너무 뜯어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은행이 문제가 아니라 금융권 곳곳에 포진한 특정 국가 출신들이 횡포를 부린다는 얘기를 같은 업종에 있는 사업가로부터 들었습니다. A씨가 당한 담당자도 해당 국가 출신이었습니다.

■ 승인받은 인증도 다시 받아야 하는 화장품 업계
화장품 업계의 상황은 더욱 복잡합니다. 한국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만 받으면 전국 어디서든 판매할 수 있습니다. 지자체마다 별도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UAE에서는 연방기관인 산업발전부(MoIAT)에 화장품 제품 등록(ECAS)을 마쳐도 두바이 정부에 또 다른 등록 절차(CPRE)를 거쳐야 합니다. 더 황당한 것은 상위 인증인 ECAS 승인을 받은 제품에 대해서도 하위 CPRE 인증에서 거절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점입니다.
한 화장품 기업 관계자는 "연방 정부 승인을 받았는데 지방 정부에서 거절당하는 경우가 있다"며 "정부 기관 인증 체계를 단일화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 이중 인증의 늪에 빠진 제조업체들
산업 전반에 걸쳐 인증 문제가 적지 않았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걸프협력회의(GCC) 통합 인증인 G마크(Gmark)와 별개로 UAE 자국 인증인 ECAS 취득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지역 통합 인증을 받았는데도 UAE에서는 자국 인증을 별도로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이미 GCC 통합 인증을 받았는데도 별도로 UAE 인증을 받아야 해서 시간과 비용이 이중으로 든다"며 "한국보다 인증 절차가 복잡하다"고 말했습니다.

■ 무역협회, UAE 진출· 수출 5천여 개 기업의 경험 조사
위의 사례들은 무역협회 두바이 지부가 아랍에미리트(UAE) 진출 및 수출 한국 기업 대상으로 실시한 애로 조사에서 나타난 실제 경험담들입니다. 무역협회 두바이 지부는 지난 4월부터 5월까지 두 달간 UAE 진출 기업 100여 개사와 수출 기업 5천여 개사를 대상으로 전화 및 방문 인터뷰와 간담회, 온라인 설문조사 및 추가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허가·인증·금융·조달 등 분야에서 크게 7개 사업 장벽이 드러났습니다. 기업 친화적인 환경으로 널리 알려진 두바이지만 '일부 분야'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이해할 수 없는 장벽이 있었던 겁니다. 기업들은 법인계좌 설립 관련 표준지침 제정과 공공 조달 시 영어 사용 강제화, 연방·지방정부 간 정보 공유 확대, G마크·ECAS 상호 인정 제도 도입 등을 건의했습니다.
■ UAE 정부 기관 한국기업 애로 청취
무역협회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아부다비 경제개발청, 두바이 경제관광청 등 현지 정부 기관과 아부다비·두바이 상공회의소에 건의서를 제출했습니다. 해당 기관들로부터 제도 개선에 힘쓰겠다는 긍정적인 답변도 받았습니다.
중동 지역의 경제 허브 두바이. 중동·아프리카 권역에서는 기업에 최고의 환경을 갖춘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분야에서 아직도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번 조사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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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형 기자 thene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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