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가성비 여행지 ‘이곳’, 지금은 ‘물가 폭탄 구역’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5.08.12 (08:00)
수정 2025.08.1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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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유럽으로, 특히 발칸 반도로 휴가를 계획 중이라면 '먹을거리 예산'을 다시 계산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풍광에다 '가성비' 좋은 물가로 인기가 유명한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북마케도니아 등 발칸 주요국의 생활물가가 최근 서유럽을 웃돌면서, 현지인들까지 슈퍼마켓 불매 운동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 서유럽보다 비싸진 달걀값 … 가격 눈속임, 그리고 유통 독과점
크로아티아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12월 기준 식품·비알코올 음료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약 5% 올라, 전체 물가상승률(3.4%)보다 높았습니다.
품목별로 보면, 빵과 곡류는 약 17%, 우유·치즈·달걀은 약 11% 상승했습니다. 독일·오스트리아 등 서유럽 주요 도시와의 가격 차이도 줄어, 일부 품목은 비슷하거나 소폭 높아졌습니다.
세르비아와 북마케도니아 역시 국제 원자재 가격과 기후 영향, 관광 성수기 가격 인상 등으로 식료품 물가가 유럽연합(EU) 평균을 웃도는 흐름을 보였습니다.
물가 폭등은 최근 유로화를 도입한 크로아티아에서 먼저 시작됐습니다.
2년 전인 2023년 1월 첫 유로를 도입한 크로아티아는, 한동안 자국 통화인 '쿠나'와 '유로'를 함께 상품에 병기했습니다. 이후 '반올림 규칙'을 도입해 쿠나 환산값을 유로 소수 둘째 자리로 반올림 하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어 9.99쿠나는 현재 환율로 약 1.326유로인데, 이 경우 1.33유로로 표시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전환 초기 일부 업자들이 정상 반올림 범위를 넘어선 '가격 재설정'을 했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점검에 나선 정부가 부당 인상을 적발하고 과태료를 부과했습니다. 점검 대상의 40% 가까이가 부당 인상이었습니다.
유럽중앙은행은 후속 보고서에서, 크로아티아의 유로 도입 자체가 전체 물가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식품과 외식·의류 등 일부 품목에선 전환 과정의 재표시·심리적 가격 조정이 관측됐다고 지적했습니다.
크로아티아와 경제 구역을 공유하는 인근 발칸 국가들도 이 같은 가격 상승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관광객 비중이 높은 국가는 관광 철에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시즌 프리미엄'을 적용하는데, 이 가격이 국경을 넘어간 겁니다.
여기에, 상위 소수 유통회사의 시장 독과점이 물가 인상에 더 불을 붙였습니다.
크로아티아는 상위 3개 대형 체인(Konzum, Lidl, Spar)이 전체 식료품 소매시장의 70%를 차지합니다. 세르비아와 북마케도니아도 상위 체인이 과반을 점유합니다. 대형 체인 본사에서 가격을 올리면, 인근 국가의 지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합니다. 즉 가격 경쟁이 약하고, 가격 인상분을 소비자에게 그대로 전가하는 구조가 반복돼 온 겁니다.
물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으로 국제 원자재와 식품 가격이 오르고, 기후 영향으로 곡물 가격이 급등한 것도 한 원인입니다.
■ 발칸 소비자가 이끄는 '불매 운동'…불매 첫 주 매출 '반토막'
발칸 지역 소비자들은 물가 인상에 더 빨리, 더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총 가계 지출에서 식료품 구매가 차지하는 비율이 크기 때문입니다.
EU 집행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식료품 구매 비율은 독일·프랑스가 11~14%이지만, 북마케도니아는 44%, 세르비아는 28%에 이릅니다.
이에 지난 1월부터 본격적으로 불매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크로아티아에서 시작해 세르비아, 북마케도니아, 불가리아 등 발칸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북마케도니아에서는 주요 유통체인 8곳의 매출이 불매 첫 주에 전주 대비 46% 급감했습니다. 불가리아 대형마트는 평일 매출이 30% 이상 줄었고,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외곽의 체인 매장은 하루 방문객이 절반 가까이 줄었습니다.
■ 불매 운동 전략·방식 뚜렷…SNS 인증도 확산
소비자 연대가 정한 불매 패턴·전략·참여방식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정해진 '불매의 날'이 있습니다. 각국 소비자단체·SNS 커뮤니티가 주 1~2회 '불매 데이'를 지정하면, 해당 요일은 대형마트를 전혀 이용하지 않습니다. 불매 일에는 지역 재래시장과 동네 소형 슈퍼, 직거래 장터를 이용합니다.
불매 대상 또한 시장 점유율이 높은 소수 대형 체인으로 특정하고, 이를 SNS로 인증하게 했습니다. 인스타그램이나 X(과거 트위터) 등에 해시태그 #bojkot(불매), #praznakorpa(빈 장바구니)를 사용해 인증 사진을 올리는 게 유행이 됐습니다. 불매 일에 장을 보지 않은 빈 장바구니 사진을 올리거나, 재래시장 등에서 구입한 영수증을 올리는 방식입니다.
이른바 '공구'로 불리는 공동 구매도 확산했습니다. 가족과 이웃끼리 공동 구매 후 가격을 낮추는 '공동 장보기'가 상시화됐습니다.
여기에 지정한 불매일 전날 혹은 당일에, 발칸 국가들과 독일 등 타 유럽 국가와 가격을 비교한 가격 비교표를 현장 유인물로 배포하거나, 비싼 물품에 '이건 비쌉니다' 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이고 지나가는 운동도 퍼졌습니다.
■ '발등에 불' 발칸 국가들… 여전히 강경한 소비자들
정부와 유통업계는 비상입니다.
크로아티아 정부는 2025년 2월부터 70개 필수 소비재에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는 등 소비자 부담 완화에 나섰습니다. 세르비아 정부도 농업 예산을 사상 최대 수준으로 늘리는 등(1년 국가 예산의 7.5%) 간접적인 식료품 관련 지원을 강화했습니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1+1' 등 자체 할인 이벤트를 폭넓게 진행 중입니다.
그럼에도 소비자 단체는 '일시적 세일로 불매를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대형 유통업계가 장악한 발칸 국가들의 시장 구조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인근 국가들은 주시하고 있습니다. 불매가 장기화하면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이 재래시장과 소형 상점으로 옮겨가는 구조적인 변화가 예견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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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가성비 여행지 ‘이곳’, 지금은 ‘물가 폭탄 구역’ [특파원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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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8-12 08:00:03
- 수정2025-08-12 08:15:34

이번 여름 유럽으로, 특히 발칸 반도로 휴가를 계획 중이라면 '먹을거리 예산'을 다시 계산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풍광에다 '가성비' 좋은 물가로 인기가 유명한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북마케도니아 등 발칸 주요국의 생활물가가 최근 서유럽을 웃돌면서, 현지인들까지 슈퍼마켓 불매 운동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 서유럽보다 비싸진 달걀값 … 가격 눈속임, 그리고 유통 독과점
크로아티아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12월 기준 식품·비알코올 음료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약 5% 올라, 전체 물가상승률(3.4%)보다 높았습니다.
품목별로 보면, 빵과 곡류는 약 17%, 우유·치즈·달걀은 약 11% 상승했습니다. 독일·오스트리아 등 서유럽 주요 도시와의 가격 차이도 줄어, 일부 품목은 비슷하거나 소폭 높아졌습니다.
세르비아와 북마케도니아 역시 국제 원자재 가격과 기후 영향, 관광 성수기 가격 인상 등으로 식료품 물가가 유럽연합(EU) 평균을 웃도는 흐름을 보였습니다.
물가 폭등은 최근 유로화를 도입한 크로아티아에서 먼저 시작됐습니다.
2년 전인 2023년 1월 첫 유로를 도입한 크로아티아는, 한동안 자국 통화인 '쿠나'와 '유로'를 함께 상품에 병기했습니다. 이후 '반올림 규칙'을 도입해 쿠나 환산값을 유로 소수 둘째 자리로 반올림 하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어 9.99쿠나는 현재 환율로 약 1.326유로인데, 이 경우 1.33유로로 표시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전환 초기 일부 업자들이 정상 반올림 범위를 넘어선 '가격 재설정'을 했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점검에 나선 정부가 부당 인상을 적발하고 과태료를 부과했습니다. 점검 대상의 40% 가까이가 부당 인상이었습니다.
유럽중앙은행은 후속 보고서에서, 크로아티아의 유로 도입 자체가 전체 물가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식품과 외식·의류 등 일부 품목에선 전환 과정의 재표시·심리적 가격 조정이 관측됐다고 지적했습니다.
크로아티아와 경제 구역을 공유하는 인근 발칸 국가들도 이 같은 가격 상승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관광객 비중이 높은 국가는 관광 철에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시즌 프리미엄'을 적용하는데, 이 가격이 국경을 넘어간 겁니다.
여기에, 상위 소수 유통회사의 시장 독과점이 물가 인상에 더 불을 붙였습니다.
크로아티아는 상위 3개 대형 체인(Konzum, Lidl, Spar)이 전체 식료품 소매시장의 70%를 차지합니다. 세르비아와 북마케도니아도 상위 체인이 과반을 점유합니다. 대형 체인 본사에서 가격을 올리면, 인근 국가의 지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합니다. 즉 가격 경쟁이 약하고, 가격 인상분을 소비자에게 그대로 전가하는 구조가 반복돼 온 겁니다.
물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으로 국제 원자재와 식품 가격이 오르고, 기후 영향으로 곡물 가격이 급등한 것도 한 원인입니다.
■ 발칸 소비자가 이끄는 '불매 운동'…불매 첫 주 매출 '반토막'
발칸 지역 소비자들은 물가 인상에 더 빨리, 더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총 가계 지출에서 식료품 구매가 차지하는 비율이 크기 때문입니다.
EU 집행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식료품 구매 비율은 독일·프랑스가 11~14%이지만, 북마케도니아는 44%, 세르비아는 28%에 이릅니다.
이에 지난 1월부터 본격적으로 불매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크로아티아에서 시작해 세르비아, 북마케도니아, 불가리아 등 발칸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북마케도니아에서는 주요 유통체인 8곳의 매출이 불매 첫 주에 전주 대비 46% 급감했습니다. 불가리아 대형마트는 평일 매출이 30% 이상 줄었고,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외곽의 체인 매장은 하루 방문객이 절반 가까이 줄었습니다.
■ 불매 운동 전략·방식 뚜렷…SNS 인증도 확산
소비자 연대가 정한 불매 패턴·전략·참여방식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정해진 '불매의 날'이 있습니다. 각국 소비자단체·SNS 커뮤니티가 주 1~2회 '불매 데이'를 지정하면, 해당 요일은 대형마트를 전혀 이용하지 않습니다. 불매 일에는 지역 재래시장과 동네 소형 슈퍼, 직거래 장터를 이용합니다.
불매 대상 또한 시장 점유율이 높은 소수 대형 체인으로 특정하고, 이를 SNS로 인증하게 했습니다. 인스타그램이나 X(과거 트위터) 등에 해시태그 #bojkot(불매), #praznakorpa(빈 장바구니)를 사용해 인증 사진을 올리는 게 유행이 됐습니다. 불매 일에 장을 보지 않은 빈 장바구니 사진을 올리거나, 재래시장 등에서 구입한 영수증을 올리는 방식입니다.
이른바 '공구'로 불리는 공동 구매도 확산했습니다. 가족과 이웃끼리 공동 구매 후 가격을 낮추는 '공동 장보기'가 상시화됐습니다.
여기에 지정한 불매일 전날 혹은 당일에, 발칸 국가들과 독일 등 타 유럽 국가와 가격을 비교한 가격 비교표를 현장 유인물로 배포하거나, 비싼 물품에 '이건 비쌉니다' 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이고 지나가는 운동도 퍼졌습니다.
■ '발등에 불' 발칸 국가들… 여전히 강경한 소비자들
정부와 유통업계는 비상입니다.
크로아티아 정부는 2025년 2월부터 70개 필수 소비재에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는 등 소비자 부담 완화에 나섰습니다. 세르비아 정부도 농업 예산을 사상 최대 수준으로 늘리는 등(1년 국가 예산의 7.5%) 간접적인 식료품 관련 지원을 강화했습니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1+1' 등 자체 할인 이벤트를 폭넓게 진행 중입니다.
그럼에도 소비자 단체는 '일시적 세일로 불매를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대형 유통업계가 장악한 발칸 국가들의 시장 구조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인근 국가들은 주시하고 있습니다. 불매가 장기화하면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이 재래시장과 소형 상점으로 옮겨가는 구조적인 변화가 예견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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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진 기자 hosk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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