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마저 드러난 아동학대 실태를 모두 반영하지는 못한다. 경찰이나 자치단체, 지역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아동학대’로 신고된 사안 위주로 집계되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등으로 신고됐다가 이후 아동학대 혐의가 확인된 사건은 경찰에서 통보해주지 않으면 통계에 합산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드러나지 않은 사건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2020년 국내의 아동학대 발견율은 4%, 지난 2019년 미국 8.9%, 호주 10.1%인 것과 비교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드러난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는 이유이다. 우리사회에서 아동학대는 숨겨진 “암수범죄”인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최근 연구는 이를 뒷받침한다. 국과수가 지난 2016년 아동 변사사건 부검 기록 341건의 학대 연관성을 살핀 결과, 최소 84명에서 최대 148명이 아동학대로 숨졌다고 분석했다. 2016년 정부 공식 통계상 학대로 숨진 아이는 36명, 적게는 2배, 많게는 4배 이상 차이난 것이다.
연구를 진행한 김희송 국과수 법심리실장은 확실한 증거뿐만 아니라 부검결과와 수사 자료를 종합해 아이의 관점에서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은 경우를 모두 분석했다고 밝혔다. 심각한 학대나 고의적 살해는 물론, 사인불명인 ‘영아급사증후군’도 방임 정황이 있으면 학대 연관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국과수는 연구를 확대해 2015년~2017년의 아동 변사 949건을 분석해 417건이 학대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조사 중이다.
아동학대 관련 형사 판결문을 전수 분석한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드러난 아동학대 가운데서도 일부에 그치지만, 판결문에는 공식 통계만으로는 알기 힘든 학대의 실상이 낱낱이 담겨 있다. 최근까지도 자행된 아동학대 범죄가 어디에서, 어떻게, 왜 벌어졌는지 피해아동의 시각에서 면밀히 살펴 아동학대의 실체를 가늠해보고, 가해자는 물론 학대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은 어떠한지 돌아보려한다. 지금부터 마주할 것은 아동학대의 숨겨진 얼굴이자,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드러난 사건인 아동학대 형사 판결문 1,406건에도 ‘암수성’이 나타난다. 사건은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가장 은폐된 곳에서, 아이와 가까운 이들에 의해 일어났고, 피해가 커지고서야 비로소 드러났다.
학대가 가장 많이 일어난 장소는 어디였을까?
절반 정도는 ‘주거지’에서 일어났고, 어린이집이나 학교 등 ‘교육보육’ 공간과 공공장소가 뒤를 이었다. 주거지는 대부분 가족이나 동거인이, 교육보육 공간은 교사 등이, 공공장소는 주로 제3자가 가해자였다.
하지만, 아이가 다치거나 숨진 사건은 대부분 ‘가정’에서 일어났다. 상해와 사망사건의 68.9%가 ‘주거지’에서 일어났고, 가해자는 대부분 가족이나 동거인이었다. 사망사건은 더 심각했다. 열에 아홉이 부모의 범행이었고, 주거지나 숙박시설 등 주변 시선이 가려진 곳에서 일어났다. ‘가정’은 피해아동이 다치거나 숨지기 전까지는 학대가 드러나지 않는 은폐된 공간인 것이다.
오랫동안 감춰진 학대들…범인은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최소 1년에서 최대 15년 동안 반복되고서야 뒤늦게 드러난 아동학대는 201건, 68명의 아이가 다쳤고 2명은 숨지고서야 드러났다. 81.6%는 가족이나 동거인이 범행했고, 12.4%는 예체능 코치나 교사 등 아이들을 지도하던 이들이 저질렀다. 아이들을 돌보거나 가르치는 가까운 어른이 학대할수록, 오랜 기간 드러나지 않는 ‘암수범죄’가 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대체 아이들의 어떤 행동을 두고 피고인들은 아동학대를 변명했을까?
‘낮잠을 안 자서’, ‘밥을 안 먹어서’, ‘배변을 못 가려서’… 아이가 성장하며 당연히 겪는 행동을 탓한 경우가 20%를 넘었다. 나머지도 대부분 친구나 형제와 다퉜거나, 심부름이나 청소, 숙제를 안 해서 등 아이의 사소한 행동들이었다. 가출이나 절도, 술‧담배 등 아이의 일탈과 관련된 이유는 고작 3.5%뿐이었다.
아이들과 상관없는 학대 이유 159건은 더욱 황당하다.
이중 59건은 가해자의 가정폭력과 연관됐는데, 아이가 이를 말리거나 경찰에 신고한다는 이유로 학대했다. 나머지도 피고인이 육아나 가정생활이 힘들거나 홧김에 학대하는 등 갖은 황당한 이유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는 결국 ‘학대의 이유’가 아닌, 학대에 대한 피고인들의 ‘인식’을 나타낸다고 분석한다.
형사 판결문 속 학대 유형을 여러 학대가 함께 일어난 중복학대를 포함해 분류한 결과, 신체학대가 39%, 성학대가 31.7%로 가장 많았고 정서학대 21%, 유기방임이 5.7%를 차지했다. 아이를 때리는 신체학대뿐만 아니라, SNS나 어플 등을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가 많아져 성학대 비율도 높았고, 정서학대도 사건 다섯 중 하나 꼴로 흔히 일어났다.
피해아동들의 성별에 따라 학대 유형도 달리 나타났다.
여자 피해아동의 경우, 성학대가 절반 이상으로 가장 많았고 신체학대, 정서학대, 유기방임 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달리 남자 피해아동은 신체학대가 가장 많았고 정서학대, 유기방임, 성학대 순으로 분석됐다.
피해아동에게 가장 참혹한 결과인 ‘사망’을 일으킨 사건들의 학대유형도 신체학대에만 그치지 않았다.
사망사건은 신체학대가 가장 많았지만 방임도 37%에 달했다. 방임 사망사건의 피해아동은 대부분 0~2살의 영아였다.
그렇다면, 형사 판결문에 드러난 정서학대와 방임 죄는 어떤 것일까? 일부 사건 내용을 옮겨온다.
주변에서 오늘도 일상적으로 벌어질지 모를 학대들, 모두 ‘유죄’였다.
아이들에게 저지른 학대의 유형은 각각 달랐지만, 아이들이 겪는 학대의 후유증은 모두 같았다.
‘성학대’가 포함된 아동학대는 다른 학대 유형보다 실형 비율이 높았다. 전체 사건 1,406건 중 ‘성학대’가 포함된 사건은 542건, 이 중 절반 가까이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반면, 신체학대와 정서학대, 방임 등을 일으킨 피고인에게 내려진 형량은 보다 ‘관대했다.’
신체나 정서학대, 유기방임 사건은 864건, 이 중 2백여 건은 피해아동이 다치거나 숨진 사건이다. 하지만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15%에 그쳐 성학대의 1/3 수준이었고 집행유예가 절반이 넘어 가장 많았다. 사망 사건에도 22.9%는 집행유예였고, 상해는 그 두 배가 넘는 56.7%였다. 신체학대나 정서학대, 방임 등은 성학대에 비해 형량이 낮았고, 아동이 다치거나 숨져도 집행유예가 내려지기도 한 것이다.
어린이집이나 학교, 학원 선생님 등 ‘돌봄관계’인 피고인은 다른 피고인들에 비해 벌금형 비율이 가장 높았고 실형은 가장 낮았다. 이들의 벌금형 비율은 41.9%, 실형은 13.2%였다. 이와 비교해 가족이나 동거인의 벌금형 비율은 16.6%로 훨씬 낮았고, 제3자는 피고인 유형 중 실형율이 가장 높았다.
피고인 유형별로 차이가 드러난 ‘죗값의 차이’, 무엇을 의미할까?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건은 집행유예나 실형인 사건에 비해 피해가 커지기 전 빨리 발견됐을 가능성이 크다. 벌금형 비율이 가장 높은 ‘돌봄관계’ 피고인들의 사건 중 1년 이상 이어진 학대는 7% 정도였고, 나머지는 하루에서 수개월 안에 포착됐다. 이들의 학대로 아이가 다친 비율은 15.4%, 사망은 1건이었다.
반면, 가족‧동거인들의 사건은 돌봄관계보다 3배 이상 높은 25.3%가 1년에서 최대 15년까지 학대하다가 뒤늦게 발견됐다, 아동이 다친 비율도 21.7%로 돌봄관계보다 더 높았고, 사망사건은 대부분 부모의 범행이었다. 가족이나 동거인이 저지른 학대는 다른 피고인 유형에 비해 뒤늦게 드러나는 셈이다. 한편, 제3자는 83.6%가 성학대로 나타나 실형율이 높은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동학대 인식에 대한 ‘이중잣대’로도 읽힐 수 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학대는 피해가 커질 때까지 발견되지 않을 만큼 가해자나 주변인 모두 ‘범죄’라는 인식이 둔감했지만, 가정이 아닌 밖에서 타인이 학대하는 경우 인식이 민감해 보다 빨리 포착되는 것이다.
학대로 피해아동이 다친 사건 중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는 절반을 넘었고, 아동의 사지가 마비되거나 전치 5주 이상 다친 중상해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사망사건도 22.9%에는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아이가 죽거나 심하게 다쳐도 어떤 사건은 실형이, 또 다른 사건은 집행유예가 내려지는 이유가 뭘까?
사건에 따라 감경요소와 가중요소가 달랐겠지만, 아동학대 범죄의 특수성에 대해 판사가 가진 ‘민감도’의 차이도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상해와 사망 사건을 중심으로 피고인 유형과 학대 양상이 비슷했지만 집행유예와 실형으로 나뉜 사건들의 양형의 이유를 분석해봤다.
신생아를 유기해 사망한 사건은 집행유예가, 구조된 사건은 실형이 선고됐다. 집행유예를 내린 재판부는 유기에 이르기까지 ‘피고인의 안타까운 상황’을 참작했고, 실형을 내린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으로 자칫 위험할 수 있었던 ‘아기의 안전’에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의붓자녀에 대한 신체학대로 골절상까지 입힌 두 사건, 피해아동들은 모두 재판부에 계부모의 선처를 호소했다.
집행유예를 내린 재판부는 이를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봤지만, 실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아이들의 진정한 의사 확인’에 보다 집중했다. 가정에서 보호자에게 학대당해도 아이들이 피해를 말하기 쉽지 않은 아동학대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이 때문에 탄원서 자체에만 초점을 두기보다, 그 속에 ‘피고인의 진지한 반성과 참회’를 바란 아이들의 마음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아동의 처벌불원 의사’라는 단순한 감경사유 적용이 아닌, 아동학대 범행의 특성을 고려한 재판부의 인식이 보이는 대목이다.
두 아버지 모두 훈육을 이유로 어린 자녀를 때리거나 밀어 넘어뜨렸고, 아이들은 뒤늦게 병원에 옮겨졌지만 숨졌다. 아이의 어머니가 선처를 바란 것도, 다른 학대 정황은 없는 것도, 계획적이지 않은 것도 공통점이다.
하지만 집행유예를 내린 재판부는 피고인의 ‘의도치 않은 잘못과 미흡한 대처’로 보고, 아이를 잃은 피고인의 고통과 나머지 자녀들의 부양과 생계를 걱정했다. 피고인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본 것이다. 이와 달리, 실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어린아이의 당연한 행동을 이유로 학대해 피해아동이 사망에 이른 ‘범행’ 자체에 보다 초점을 두고 여러 감경 요소에도 불구하고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봤다.
비슷한 사건에도 엇갈리는 재판부, 아동학대에 둔감한 사회적 인식이 재판부에도 드러난다는 방증이다.
이뿐만 아니다. 피해아동이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처벌불원’ 의사를 밝혔거나, 선처를 바랐거나, 합의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참작된 판결(심층 아카이브에서 유리한 정상 키워드로 ‘합의 선처 처벌불원 용서 원하지않다’ 입력)은 전체 1,406건 가운데 471건이었다. 이 중 59.2%가 집행유예로, 전체 사건의 평균 집행유예 비율보다 10.3%p 높았고, 실형은 22.3%로 전체 평균보다 5.5%p 적었다.
하지만 해당 사건들에서 피해아동들의 나이는 영유아인 0~2살이 6.8%, 미취학 아동인 3~5살도 8.5%로 나타나 피해 아동의 진정한 의사가 확인됐을지 우려스럽고, 일부는 아동 보호자의 의견이 대신 반영됐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단순히 ‘피해아동의 처벌불원 의사’만 확인해 감경할 것이 아니라, 가정 내 학대가 많고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억압되는 아동학대의 특성상 아이들의 진정한 의사를 세심히 살피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피고인의 어려운 양육 환경과 경제적 형편, 가족 부양 등이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된 경우(심층 아카이브에서 유리한 정상 키워드로 ‘양육 생계 홀로 부양 경제’ 입력)도 178건에 달했다. 해당 사건들 중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는 62.9%로, 전체 사건 평균 집행유예 비율보다 14%p 더 높았다. 또, 실형은 24.2%로 전체 사건 평균 실형 비율보다 3.6%p 더 낮았다.
이러한 정상 등이 참작돼 집행유예가 내려진 사건 중에는 엄마가 아기를 목욕시키다 떨어뜨려 숨지게 하고 쓰레기장에 버려 시신조차 수습 못 한 사건도, 아픈 아기를 부모 모두 방치해 숨진 사건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판결에는 가장인 가해자가 구금되면 피해아동은 물론, 남겨진 또 다른 자녀와 가족의 생계가 우려되는 열악한 현실과, 처벌이 아동학대를 막을 해법이 못 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이들과 가까운 어른들이 은폐된 곳에서 학대를 반복하지만 학대에 둔감한 우리의 인식은 아이들을 보다 빨리 구하지 못하고 있고, 뒤늦게 드러나더라도 아이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법의 심판에 오른 사건들조차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해결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 아동학대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여전히 유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