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4
아동학대의 실체, ‘팩트체크’
Q. 아동학대 공식 통계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할까?
A. 아니다. 아동학대는 숨겨진 ‘암수범죄’가 많을뿐더러, 드러난 학대조차 통계에 모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아동학대 주요 통계’, 해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하는 통계다. 아동학대 현황을 드러내는 사실상 유일한 지표이기도 하다. 통계상 아동학대 신고는 한해 3~4만여 건, 지난 2020년은 42,251건이었다. 이 중 아동학대 사례는 30,905건이었는데, 36.2%인 11,209건이 수사가 진행되거나 사건이 처리됐다. 재판을 마친 경우는 2,600건, 이 중 1,635건은 보호처분을 받았고 276건은 형사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이마저 드러난 아동학대 실태를 모두 반영하지는 못한다. 경찰이나 자치단체, 지역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아동학대’로 신고된 사안 위주로 집계되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등으로 신고됐다가 이후 아동학대 혐의가 확인된 사건은 경찰에서 통보해주지 않으면 통계에 합산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드러나지 않은 사건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2020년 국내의 아동학대 발견율은 4%, 지난 2019년 미국 8.9%, 호주 10.1%인 것과 비교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드러난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는 이유이다. 우리사회에서 아동학대는 숨겨진 “암수범죄”인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최근 연구는 이를 뒷받침한다. 국과수가 지난 2016년 아동 변사사건 부검 기록 341건의 학대 연관성을 살핀 결과, 최소 84명에서 최대 148명이 아동학대로 숨졌다고 분석했다. 2016년 정부 공식 통계상 학대로 숨진 아이는 36명, 적게는 2배, 많게는 4배 이상 차이난 것이다.

연구를 진행한 김희송 국과수 법심리실장은 확실한 증거뿐만 아니라 부검결과와 수사 자료를 종합해 아이의 관점에서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은 경우를 모두 분석했다고 밝혔다. 심각한 학대나 고의적 살해는 물론, 사인불명인 ‘영아급사증후군’도 방임 정황이 있으면 학대 연관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국과수는 연구를 확대해 2015년~2017년의 아동 변사 949건을 분석해 417건이 학대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조사 중이다.

김희송/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심리실장
“현재의 (공식 통계상) 관점은 가해자의 고의성이 입증됐을 경우에만 아마 (아동학대로) 나온 거고요. 저희는 명확한 물리적 증거가 없어도 환경적으로 방임이나 아이의 입장에서 분명히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에 (공식 통계와)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아동 통계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아동의 죽음 자체를 굉장히 면밀하게 봐야 된다는 견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학대가) 상당히 많을 거예요. 은밀한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아동학대 관련 형사 판결문을 전수 분석한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드러난 아동학대 가운데서도 일부에 그치지만, 판결문에는 공식 통계만으로는 알기 힘든 학대의 실상이 낱낱이 담겨 있다. 최근까지도 자행된 아동학대 범죄가 어디에서, 어떻게, 왜 벌어졌는지 피해아동의 시각에서 면밀히 살펴 아동학대의 실체를 가늠해보고, 가해자는 물론 학대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은 어떠한지 돌아보려한다. 지금부터 마주할 것은 아동학대의 숨겨진 얼굴이자,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Q. 아동학대는 드러나지 않는 ‘암수 범죄’이다?
A. 그렇다. 아동학대는 ‘암수범죄’였다.

드러난 사건인 아동학대 형사 판결문 1,406건에도 ‘암수성’이 나타난다. 사건은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가장 은폐된 곳에서, 아이와 가까운 이들에 의해 일어났고, 피해가 커지고서야 비로소 드러났다.

학대가 가장 많이 일어난 장소는 어디였을까?

절반 정도는 ‘주거지’에서 일어났고, 어린이집이나 학교 등 ‘교육보육’ 공간과 공공장소가 뒤를 이었다. 주거지는 대부분 가족이나 동거인이, 교육보육 공간은 교사 등이, 공공장소는 주로 제3자가 가해자였다.

하지만, 아이가 다치거나 숨진 사건은 대부분 ‘가정’에서 일어났다. 상해와 사망사건의 68.9%가 ‘주거지’에서 일어났고, 가해자는 대부분 가족이나 동거인이었다. 사망사건은 더 심각했다. 열에 아홉이 부모의 범행이었고, 주거지나 숙박시설 등 주변 시선이 가려진 곳에서 일어났다. ‘가정’은 피해아동이 다치거나 숨지기 전까지는 학대가 드러나지 않는 은폐된 공간인 것이다.

정익중/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가정에서의 학대는 은폐된 경우들이 많거든요. 돌봄 기관 등은 금방 발견될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학대) 수준도 경미한 경우들도 많고요. 가정에서 벌어지는 건 오랫동안 감춰져 있고 지속적이고 아주 심각한 경우에만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 장소보다) 학대 지속 기간이나 강도의 차이가 굉장히 크지 않을까.”

오랫동안 감춰진 학대들…범인은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최소 1년에서 최대 15년 동안 반복되고서야 뒤늦게 드러난 아동학대는 201건, 68명의 아이가 다쳤고 2명은 숨지고서야 드러났다. 81.6%는 가족이나 동거인이 범행했고, 12.4%는 예체능 코치나 교사 등 아이들을 지도하던 이들이 저질렀다. 아이들을 돌보거나 가르치는 가까운 어른이 학대할수록, 오랜 기간 드러나지 않는 ‘암수범죄’가 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박주영/부산고등법원 동부지원 판사
“암수범죄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듯이, 실제 문제는 벌어졌지만 사건화된 것은 극히 일부인 범죄를 말합니다. 아동학대는 가정 내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피해 아동이 어리거나 가해자로부터 억압을 당하는 상황에서 피해를 정확하게 외부에 알리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Q. 아동학대는 대부분 ‘훈육’에서 비롯된다?
A. 아니다. 형사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주장한 ‘아동학대의 이유’가 이를 보여준다.
KBS 아동학대 기획팀은 판결문 1,406건에 적힌 피고인의 학대 이유 1,152가지를 분석했다. 86.1%가 아이들의 행동과 관련됐고, 나머지는 아이들과 관련조차 없었다.

대체 아이들의 어떤 행동을 두고 피고인들은 아동학대를 변명했을까?

‘낮잠을 안 자서’, ‘밥을 안 먹어서’, ‘배변을 못 가려서’… 아이가 성장하며 당연히 겪는 행동을 탓한 경우가 20%를 넘었다. 나머지도 대부분 친구나 형제와 다퉜거나, 심부름이나 청소, 숙제를 안 해서 등 아이의 사소한 행동들이었다. 가출이나 절도, 술‧담배 등 아이의 일탈과 관련된 이유는 고작 3.5%뿐이었다.

아이들과 상관없는 학대 이유 159건은 더욱 황당하다.

이중 59건은 가해자의 가정폭력과 연관됐는데, 아이가 이를 말리거나 경찰에 신고한다는 이유로 학대했다. 나머지도 피고인이 육아나 가정생활이 힘들거나 홧김에 학대하는 등 갖은 황당한 이유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는 결국 ‘학대의 이유’가 아닌, 학대에 대한 피고인들의 ‘인식’을 나타낸다고 분석한다.

김영미/변호사·법무부 아동인권보호 전문위원
“보호자가 아동학대로 수사기관에 입건되면 ‘아이가 이런 행동을 해서 한 대 때렸습니다.’라고 꼭 변명을 해요. 성인이면 상대가 거슬리는 행동을 할 때 때리지 않잖아요. 교육적으로 타일러야 되는데 아동이라는 이유만으로 못 참고 징벌한단 말이에요. 본인 탓인데 아이 탓으로 돌리는 거죠.”
이수정/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아동학대를 범죄로 여기지 않고 ‘내 새끼 내 마음대로’란 사고방식에 기인한 학대 행위자들이 가장 다수일 거예요. 또 하나는 밖에서도 범죄를 저지르고 집에서도 때리고 결국 (아이가) 사망하는 유형이고…”
Q. ‘아동학대 죄’는 대부분 아동을 때리는 ‘신체학대’일 것이다?
A. 그렇지 않다.

형사 판결문 속 학대 유형을 여러 학대가 함께 일어난 중복학대를 포함해 분류한 결과, 신체학대가 39%, 성학대가 31.7%로 가장 많았고 정서학대 21%, 유기방임이 5.7%를 차지했다. 아이를 때리는 신체학대뿐만 아니라, SNS나 어플 등을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가 많아져 성학대 비율도 높았고, 정서학대도 사건 다섯 중 하나 꼴로 흔히 일어났다.

피해아동들의 성별에 따라 학대 유형도 달리 나타났다.

여자 피해아동의 경우, 성학대가 절반 이상으로 가장 많았고 신체학대, 정서학대, 유기방임 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달리 남자 피해아동은 신체학대가 가장 많았고 정서학대, 유기방임, 성학대 순으로 분석됐다.

피해아동에게 가장 참혹한 결과인 ‘사망’을 일으킨 사건들의 학대유형도 신체학대에만 그치지 않았다.

사망사건은 신체학대가 가장 많았지만 방임도 37%에 달했다. 방임 사망사건의 피해아동은 대부분 0~2살의 영아였다.

그렇다면, 형사 판결문에 드러난 정서학대와 방임 죄는 어떤 것일까? 일부 사건 내용을 옮겨온다.

  • ‘아이 앞에서 배우자 폭행’
  • ‘아이가 계부에게 학대당하는 것 알면서도 친모가 방임’
  • ‘교사가 수업시간에 초등학생에게 1시간 폭언’
  • ‘어린이집 교사가 우는 원아에게 강제로 음식 먹이고 혼자 수십분 의자에 앉혀둠’
  • ‘친모가 갓난아기를 주택가에 유기’
  • ‘3살, 8살 자녀들만 집에 두고 수차례 심야에 10시간 외출’

주변에서 오늘도 일상적으로 벌어질지 모를 학대들, 모두 ‘유죄’였다.

김민애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
“신체학대는 줄고 있지만 정서학대나 방임은 증가 추세예요. ‘집에 (아이를) 혼자 두고 일을 갔다 와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미국에선 그러지 않잖아요. 학대에 대해 인식 개선이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저지른 학대의 유형은 각각 달랐지만, 아이들이 겪는 학대의 후유증은 모두 같았다.

천근아/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아동학대는 유형을 불문하고 후유증은 거의 비슷하다는 게 정설입니다. 정서학대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해 정서장애나 정신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보고가 많습니다. 방임은 정서적 자극이나 물리적 자극들을 제때 주지 않아 2차적인 지적 장애가 올 수 있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전반적으로 학대는 뇌발달에 굉장히 부정적 영향을 줘서 청소년기, 성인기 정신적 후유증, 우울증, 자살과도 연관이 많을 수 있어요.”
Q. 아동학대 죄는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A.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아동학대 유형에 따라 형량에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성학대’가 포함된 아동학대는 다른 학대 유형보다 실형 비율이 높았다. 전체 사건 1,406건 중 ‘성학대’가 포함된 사건은 542건, 이 중 절반 가까이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반면, 신체학대와 정서학대, 방임 등을 일으킨 피고인에게 내려진 형량은 보다 ‘관대했다.’

신체나 정서학대, 유기방임 사건은 864건, 이 중 2백여 건은 피해아동이 다치거나 숨진 사건이다. 하지만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15%에 그쳐 성학대의 1/3 수준이었고 집행유예가 절반이 넘어 가장 많았다. 사망 사건에도 22.9%는 집행유예였고, 상해는 그 두 배가 넘는 56.7%였다. 신체학대나 정서학대, 방임 등은 성학대에 비해 형량이 낮았고, 아동이 다치거나 숨져도 집행유예가 내려지기도 한 것이다.

정익중/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년 전 성범죄 인식을 생각하면 지금의 아동학대 인식과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성범죄 인식이 개선되면서 양형도 정상을 찾는 과정이고 ‘성학대는 범죄’라는 인식이 분명해진 증거라고 생각해요. (나머지) 아동학대는 훈육과 헷갈려하며 범죄인지 모호해하는 상태라 생각됩니다. ‘아동학대’와 ‘범죄’는 일치되는 거죠. (가해자에게) 적절한 처벌이 필요하고 어떻게 좋은 보호자로 만드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Q. 아동학대, ‘누가’ 저질렀는지에 따라 ‘죗값’이 다를까?
A. 그렇다. 가족, 교사, 제3자 등 피고인 유형에 따라 형량의 양상이 달랐다.

어린이집이나 학교, 학원 선생님 등 ‘돌봄관계’인 피고인은 다른 피고인들에 비해 벌금형 비율이 가장 높았고 실형은 가장 낮았다. 이들의 벌금형 비율은 41.9%, 실형은 13.2%였다. 이와 비교해 가족이나 동거인의 벌금형 비율은 16.6%로 훨씬 낮았고, 제3자는 피고인 유형 중 실형율이 가장 높았다.

피고인 유형별로 차이가 드러난 ‘죗값의 차이’, 무엇을 의미할까?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건은 집행유예나 실형인 사건에 비해 피해가 커지기 전 빨리 발견됐을 가능성이 크다. 벌금형 비율이 가장 높은 ‘돌봄관계’ 피고인들의 사건 중 1년 이상 이어진 학대는 7% 정도였고, 나머지는 하루에서 수개월 안에 포착됐다. 이들의 학대로 아이가 다친 비율은 15.4%, 사망은 1건이었다.

반면, 가족‧동거인들의 사건은 돌봄관계보다 3배 이상 높은 25.3%가 1년에서 최대 15년까지 학대하다가 뒤늦게 발견됐다, 아동이 다친 비율도 21.7%로 돌봄관계보다 더 높았고, 사망사건은 대부분 부모의 범행이었다. 가족이나 동거인이 저지른 학대는 다른 피고인 유형에 비해 뒤늦게 드러나는 셈이다. 한편, 제3자는 83.6%가 성학대로 나타나 실형율이 높은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동학대 인식에 대한 ‘이중잣대’로도 읽힐 수 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학대는 피해가 커질 때까지 발견되지 않을 만큼 가해자나 주변인 모두 ‘범죄’라는 인식이 둔감했지만, 가정이 아닌 밖에서 타인이 학대하는 경우 인식이 민감해 보다 빨리 포착되는 것이다.

이수정/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보호자가) 자신의 아이를 때리면 ‘훈육’이라고 하고 남이 내 아이를 야단치면 ‘아동학대’라고 하는 거죠. 공공시설은 은폐되기 어려워서 경미한 수준도 신고돼 형사처벌 되니까 벌금형일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부모가 학대하면 누가 신고해요? 아이는 못하죠. 결국 아무도 신고하지 않는 암수범죄가 많은 거죠.”
Q. 아동학대의 ‘죗값’, 판사에 따라 다르다?
A. 그렇다. 판사의 아동학대 ‘민감도’에 따라, 피고인의 형량에 큰 차이가 있었다.

학대로 피해아동이 다친 사건 중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는 절반을 넘었고, 아동의 사지가 마비되거나 전치 5주 이상 다친 중상해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사망사건도 22.9%에는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아이가 죽거나 심하게 다쳐도 어떤 사건은 실형이, 또 다른 사건은 집행유예가 내려지는 이유가 뭘까?

사건에 따라 감경요소와 가중요소가 달랐겠지만, 아동학대 범죄의 특수성에 대해 판사가 가진 ‘민감도’의 차이도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상해와 사망 사건을 중심으로 피고인 유형과 학대 양상이 비슷했지만 집행유예와 실형으로 나뉜 사건들의 양형의 이유를 분석해봤다.

1. 신생아 유기 사망‧상해 사건
“엄마의 안타까운 사정” VS “아기의 안전 위협”
A. 친모가 출산 직후 한밤중 신생아를 주택가에 유기해 사망 집행유예 5년 (징역 3년)
양형의 이유
“죄질이 무겁다. 다만 피고인은 화장실에서 혼자 피해아동을 출산했다. 계획적으로 유기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출산 직후 정신적 충격으로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한 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여, 범행 동기에 참작할 사정이 있다.”
B. 친모가 한밤중 신생아를 건물 계단에 유기해 아이가 10시간 만에 구조됨. 징역 1년 6개월
양형의 이유
“죄질이 매우 좋지 않고 비난가능성 높은 점, 피고인은 피해아동을 건물 계단에 방치하는 행위만으로도 아동의 생명에 심각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생아를 유기해 사망한 사건은 집행유예가, 구조된 사건은 실형이 선고됐다. 집행유예를 내린 재판부는 유기에 이르기까지 ‘피고인의 안타까운 상황’을 참작했고, 실형을 내린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으로 자칫 위험할 수 있었던 ‘아기의 안전’에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2. 의붓자녀 학대 중상해 사건
피해아동들 “처벌 원치 않는다” 재판부 판단은?
A. 계부가 7살 의붓자녀 4차례 폭행해 골절상 입힘. 집행유예 2년 (징역 1년)
양형의 이유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 피해 아동은 피고인의 폭행으로 골절상을 입었음에도 치료를 받지 못한 채 2주 이상 방치됐다. 피고인이 석방돼 피해 아동과 함께 생활할 경우 재범의 위험성도 매우 높다. … 다만 피해아동 및 피해아동의 모친이 피고인의 선처를 호소하는 점, 피고인은 초범인 점…”
B. 계모가 7살, 8살 의붓자녀 2명 21차례 학대해 화상이나 골절상 입힘 징역 4년
양형의 이유
“아동학대 범죄 고유의 속성상 내포된 잔인함과 비정함은 피해아동으로부터 쉽사리 용서받거나 양형 판단 단계에서 비난가능성이 쉽사리 감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해아동들이 비록 선처를 바란다는 탄원서를 제출하였으나, 아동학대 범죄의 본질상 피해아동 측의 의사를 양형에 반영하는 데에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고 보이고, 피해아동들이 탄원서에서조차 피고인의 향후의 진지한 반성과 참회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의붓자녀에 대한 신체학대로 골절상까지 입힌 두 사건, 피해아동들은 모두 재판부에 계부모의 선처를 호소했다.

집행유예를 내린 재판부는 이를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봤지만, 실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아이들의 진정한 의사 확인’에 보다 집중했다. 가정에서 보호자에게 학대당해도 아이들이 피해를 말하기 쉽지 않은 아동학대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이 때문에 탄원서 자체에만 초점을 두기보다, 그 속에 ‘피고인의 진지한 반성과 참회’를 바란 아이들의 마음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아동의 처벌불원 의사’라는 단순한 감경사유 적용이 아닌, 아동학대 범행의 특성을 고려한 재판부의 인식이 보이는 대목이다.

3. 친부의 ‘계획적이지 않은’ 학대에 자녀 사망
‘집행유예’와 ‘실형’ 가른 양형 이유는?
A. 친부가 형제와 다툰 3살 자녀 때려 넘어뜨리고 뒤늦게 병원 이송해 사망 집행유예 5년 (징역 3년)
양형의 이유
“피해아동을 때려 넘어뜨렸고, 적절한 응급조치를 취하지 못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다만 피고인이 평소에 학대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점, 계획적이거나 적극적인 학대의 의도로 범행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아동의 어머니가 피고인의 선처를 탄원하는 점, 피고인은 자신의 의도치 않은 잘못과 미흡한 대처로 피해아동을 잃게 되었고, 평생 자책하며 고통과 죄책감 속에 괴로워하며 살아갈 것으로 보이는 점, 부양할 어린 자녀들이 남아있는 점…”
B. 친부가 0살 아이 우는 버릇 고친다며 밀어 넘어뜨리고 뒤늦게 병원 이송해 사망 징역 3년
양형의 이유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깨를 밀어 넘어뜨리고 경련을 일으키는 피해아동을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죄책이 매우 무겁다. 한편, 피해아동을 밀어 넘어지게 한 것 외에는 평소 학대 정황은 발견되지 않은 점, 계획적이거나 적극적인 학대의 의도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 점, 피해아동의 어머니가 선처를 탄원하는 점…”

두 아버지 모두 훈육을 이유로 어린 자녀를 때리거나 밀어 넘어뜨렸고, 아이들은 뒤늦게 병원에 옮겨졌지만 숨졌다. 아이의 어머니가 선처를 바란 것도, 다른 학대 정황은 없는 것도, 계획적이지 않은 것도 공통점이다.

하지만 집행유예를 내린 재판부는 피고인의 ‘의도치 않은 잘못과 미흡한 대처’로 보고, 아이를 잃은 피고인의 고통과 나머지 자녀들의 부양과 생계를 걱정했다. 피고인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본 것이다. 이와 달리, 실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어린아이의 당연한 행동을 이유로 학대해 피해아동이 사망에 이른 ‘범행’ 자체에 보다 초점을 두고 여러 감경 요소에도 불구하고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봤다.

비슷한 사건에도 엇갈리는 재판부, 아동학대에 둔감한 사회적 인식이 재판부에도 드러난다는 방증이다.

박주영/부산고등법원 동부지원 판사
“저도 판사 생활을 12년 하면서 중한 아동학대 사건을 처리한 게 몇 건 되지 않습니다. 판사들조차 일반 국민들과 아동학대 인식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만큼 전문성이 좀 없다는 부분이 있고요. 그래서 일반 범죄처럼 아동학대도 합의, 처벌불원, 반성 정도나 남은 가족들, 자식을 양육해야 된다는 이유를 들어서 형을 감경하거나 약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판사들이 시급하게 아동학대 사건의 특수성에 대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벌불원, 양육의 고충, 가족 부양…학대의 ‘죗값’을 덜어내는 ‘사정들’, 누구를 위한 걸까?

이뿐만 아니다. 피해아동이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처벌불원’ 의사를 밝혔거나, 선처를 바랐거나, 합의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참작된 판결(심층 아카이브에서 유리한 정상 키워드로 ‘합의 선처 처벌불원 용서 원하지않다’ 입력)은 전체 1,406건 가운데 471건이었다. 이 중 59.2%가 집행유예로, 전체 사건의 평균 집행유예 비율보다 10.3%p 높았고, 실형은 22.3%로 전체 평균보다 5.5%p 적었다.

하지만 해당 사건들에서 피해아동들의 나이는 영유아인 0~2살이 6.8%, 미취학 아동인 3~5살도 8.5%로 나타나 피해 아동의 진정한 의사가 확인됐을지 우려스럽고, 일부는 아동 보호자의 의견이 대신 반영됐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단순히 ‘피해아동의 처벌불원 의사’만 확인해 감경할 것이 아니라, 가정 내 학대가 많고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억압되는 아동학대의 특성상 아이들의 진정한 의사를 세심히 살피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김영미/변호사·법무부 아동인권보호 전문위원
“‘부모님 감옥에 보내고 싶어?’ 묻는데 ‘보내주세요’하는 아이들이 몇이나 있겠어요. 법원이 정말 아이가 어떤 걸 원하는지 면담해서 묻거나 양형조사관을 통해 물어서 아이의 진심을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가해자면 어머니를 통해 전해진 처벌불원 의사를 그대로 믿고 양형에 반영하지 말고요.”
정익중/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아이 의사를 묻는 건 당연하지만 그 의사가 오염될 수 있다는 사실도 반영해야 됩니다. 강요나, (아이 의사를) 대리한다거나 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고요. 아동에 집중하는 법률 조력인은 굉장히 적은데 그런 분들을 키워나가고 아이 심리를 이해하고 의견을 반영할 분들도 키워나가야…”

피고인의 어려운 양육 환경과 경제적 형편, 가족 부양 등이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된 경우(심층 아카이브에서 유리한 정상 키워드로 ‘양육 생계 홀로 부양 경제’ 입력)도 178건에 달했다. 해당 사건들 중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는 62.9%로, 전체 사건 평균 집행유예 비율보다 14%p 더 높았다. 또, 실형은 24.2%로 전체 사건 평균 실형 비율보다 3.6%p 더 낮았다.

이러한 정상 등이 참작돼 집행유예가 내려진 사건 중에는 엄마가 아기를 목욕시키다 떨어뜨려 숨지게 하고 쓰레기장에 버려 시신조차 수습 못 한 사건도, 아픈 아기를 부모 모두 방치해 숨진 사건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판결에는 가장인 가해자가 구금되면 피해아동은 물론, 남겨진 또 다른 자녀와 가족의 생계가 우려되는 열악한 현실과, 처벌이 아동학대를 막을 해법이 못 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영미/변호사·법무부 아동인권보호 전문위원
“피해 아동을 죽게 하거나 불구로 만들었는데도 치료나, 남겨진 다른 자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감형을 해줘야 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잘못한 부분은 제대로 처벌하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상황은 국가에서 복지로 도움을 줘야 되는데 그게 안 되기 때문에 법원이 판단 기준으로 넣는 거죠. 학대 가정은 국가가 세심하게 도와야하지 않나.”
박주영/부산고등법원 동부지원 판사
“처벌 위주 시스템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동학대가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우리가 적당한 체계를 아직 잘 갖추지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치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회복적 사법이라는 이념을 도입해 법원이 단지 처벌하는 기관이 아니고 검찰, 의사, 지역사회, 국가 등 모든 시스템이 협력하고 법원도 일원이 돼서 사건을 예방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합니다.”

아이들과 가까운 어른들이 은폐된 곳에서 학대를 반복하지만 학대에 둔감한 우리의 인식은 아이들을 보다 빨리 구하지 못하고 있고, 뒤늦게 드러나더라도 아이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법의 심판에 오른 사건들조차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해결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 아동학대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여전히 유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