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노란 손수건의 사부곡

입력 2007.01.04 (22:1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이렇게 최욱일씨처럼 천신만고끝에 개인이 탈출한 경우도 있지만 납북자 문제는 아직도 풀기 어려운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여기에다 정부가 추진한 전후 납북 피해자 지원법은 아직까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해 납북자 가족들의 한숨만 깊어가고 있습니다.

납북자문제의 실태 김정환 기자가 심층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나무에 달 노란 손수건을 준비하는 늙은 아내의 손길이 바쁩니다.

오는 15일이면 남편이 납북된지 20년, 이 추위에 북에 있을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인터뷰> 김태주 (59살 / 납북 어부 최종석씨 부인) : "남편이 건강하게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달고 있어"

동진호 선원 최종석씨의 가족들은 15일까지 만남을 상징하는 노란 손수건 만 장을 달겠다고 나섰습니다.

<인터뷰> 최우영 (납북 어부 최종석씨 딸) :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노란 손수건을 보시도록....."

그러나 파주시청이 손수건을 매다는데 나무 한그루만 허용하겠다고 해 가족들의 마음은 더욱 쓰리기만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납북자 가족들의 마음은 더욱 답답합니다.

생사확인도 못한 채 시간은 흐르지만, 전후 납북자나 국군 포로와는 달리, 정부나 여론의 관심이 거의 없어 소외감도 큽니다.

<인터뷰> 이미일 (6·25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 회장) : "전후 납북자 특별법이 진행 중인데, 전쟁 납북자도 가족 지원 특별법 등이 제정돼야 합니다."

현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전후 납북자는 485명, 생존 국군포로는 545명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납북자의 경우 정부는 7,034명으로 보고 있지만 가족 협의회측은 9만 6천 여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14차례의 이산 가족 상봉을 통해, 전후 납북자 13명과 국군포로 11명이 남쪽 가족들과 만났습니다.

지난해 4월에는 장관급 회담에서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했지만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 실험으로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습니다.

특히 북측은 지난해 7월, 이산 가족 상봉에서 납북이란 말을 쓴 남측 취재단의 취재를 방해하는 등, 이 문제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근식 (경남대 정외과 교수) : "북측은 납치를 인정하는 순간, 피해 보상 요구에 시달리는 빌미가 된다고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정부가 추진한 전후 납북 피해자 지원법은,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김남중 (통일부 사회문화 총괄팀장) : "이 법안은 가족들이 당한 고통을 위로한다는 차원에서 위로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납북자 단체들은 정부가 이전보다는 다소 적극적이지만, 아직은 멀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최성용 (납북자 가족모임 대표) : "국군포로, 납북자를 탈출시키면, 내국인으로 생각해서 움직여야 하는데 그렇치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남북 관계가 핵 문제 해결과 연계돼 있어, 남북 당국이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언제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KBS 뉴스 김정환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심층취재] 노란 손수건의 사부곡
    • 입력 2007-01-04 21:08:50
    뉴스 9
<앵커 멘트> 이렇게 최욱일씨처럼 천신만고끝에 개인이 탈출한 경우도 있지만 납북자 문제는 아직도 풀기 어려운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여기에다 정부가 추진한 전후 납북 피해자 지원법은 아직까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해 납북자 가족들의 한숨만 깊어가고 있습니다. 납북자문제의 실태 김정환 기자가 심층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나무에 달 노란 손수건을 준비하는 늙은 아내의 손길이 바쁩니다. 오는 15일이면 남편이 납북된지 20년, 이 추위에 북에 있을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인터뷰> 김태주 (59살 / 납북 어부 최종석씨 부인) : "남편이 건강하게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달고 있어" 동진호 선원 최종석씨의 가족들은 15일까지 만남을 상징하는 노란 손수건 만 장을 달겠다고 나섰습니다. <인터뷰> 최우영 (납북 어부 최종석씨 딸) :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노란 손수건을 보시도록....." 그러나 파주시청이 손수건을 매다는데 나무 한그루만 허용하겠다고 해 가족들의 마음은 더욱 쓰리기만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납북자 가족들의 마음은 더욱 답답합니다. 생사확인도 못한 채 시간은 흐르지만, 전후 납북자나 국군 포로와는 달리, 정부나 여론의 관심이 거의 없어 소외감도 큽니다. <인터뷰> 이미일 (6·25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 회장) : "전후 납북자 특별법이 진행 중인데, 전쟁 납북자도 가족 지원 특별법 등이 제정돼야 합니다." 현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전후 납북자는 485명, 생존 국군포로는 545명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납북자의 경우 정부는 7,034명으로 보고 있지만 가족 협의회측은 9만 6천 여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14차례의 이산 가족 상봉을 통해, 전후 납북자 13명과 국군포로 11명이 남쪽 가족들과 만났습니다. 지난해 4월에는 장관급 회담에서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했지만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 실험으로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습니다. 특히 북측은 지난해 7월, 이산 가족 상봉에서 납북이란 말을 쓴 남측 취재단의 취재를 방해하는 등, 이 문제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근식 (경남대 정외과 교수) : "북측은 납치를 인정하는 순간, 피해 보상 요구에 시달리는 빌미가 된다고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정부가 추진한 전후 납북 피해자 지원법은,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김남중 (통일부 사회문화 총괄팀장) : "이 법안은 가족들이 당한 고통을 위로한다는 차원에서 위로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납북자 단체들은 정부가 이전보다는 다소 적극적이지만, 아직은 멀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최성용 (납북자 가족모임 대표) : "국군포로, 납북자를 탈출시키면, 내국인으로 생각해서 움직여야 하는데 그렇치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남북 관계가 핵 문제 해결과 연계돼 있어, 남북 당국이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언제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KBS 뉴스 김정환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