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임 현장] 정당하지만 눈치보게 되는 ‘출산휴가’

입력 2007.01.25 (09:26) 수정 2007.01.25 (10:4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저출산 시대, 정부가 각종 지원책까지 마련하면서 출산을 장려하고 있지만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듯 합니다.

법에 엄연히 명시된 규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사회 위원회가 실시한 조사결과에서 아기를 낳은 여성 근로자의 42%가 출산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심지어 출산 전후에 회사로부터 퇴사 압력까지 받고 있습니다.

산모가 죄인으로 취급받는 실태, 지금부터 살펴 봅니다. 홍성철 기자.. 이래서야 맘 놓고 임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리포트>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작용하기 때문인데요.

실제 취재 현장에서 만난 여성들은 임신을 했거나 아이를 키우는 취업 여성의 경우 업무 면에서 소홀하다는 일부 그릇된 시각에 대한 피해의식이 상당했습니다.

여전히 정착되지 않은 출산 휴가 제도, 무엇이 문제인 지 짚어봤습니다.

오는 6월 출산을 앞두고 있는 올해 32세의 김 모씨. 직원 10여 명의 소규모 업체에서 도면작업을 맡고 있는데 오는 4월, 일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회사측에 임신사실이 알려지면서 김씨는 암암리에 퇴직 권유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인터뷰>김00(32) : "회사 측과 출산할 때 회사를 관두겠다거나 육아휴직을 받겠다는 얘기도 결정나지 않은 상태에서 (남자직원들이) 언제까지 일하고 그만둘 것이냐며 그만두는 분위기로 몰아서 얘기를 하더라고요."

후임자까지 내정된터라 회사를 계속 다닐 것이며, 출산 휴가를 쓰겠다는 이야기는 꺼낼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인터뷰>김00(32) : "어느 날 갑자기 (후임을) 면접 본 다음에 직원들에게 인사시키고, 특정한 날짜를 말하며 출근하게 될 직원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보니까 좀 당황하였죠."

2년 넘게 일한 곳에서 임신을 이유로 자신을 동료며 직원으로 여기지 않는 풍토에 배신감마저 느꼈다는데요.

<인터뷰>김00(32) : "아이 낳는 것은 죄가 아니고 자랑스럽고 기쁜 일인데, 회사에 다니면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게 굉장히 억울하더라고요."

6개월 된 아들을 둔 29살의 정 모씨 역시 건축설계를 담당하던 전문직이었음에도 지난 7월, 출산을 이유로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종업원 3백 명이 넘는 제법 규모있는 회사였지만 출산 휴가를 쓴 전례가 없다는 게 회사 측의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인터뷰>정00(29) : "아무런 설명도 없이 우리 회사는 출산휴가를 준 적이 없다며 나가라는 식으로 말을 하더라고요."

엄연히 법적으로 보장된 출산휴가를 얻기 위해 관련 단체에 상담도 해보고 신고도 생각해 봤지만 혹여 있을 수 있는 피해를 생각해 정씨는 결국 사직서를 썼다고 했습니다.

<인터뷰>정00(29) : "같은 업종에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물론 신고는 할 수 있지만, 회사가 더 큰 집단이기 때문에 제가 다시 피해자가 될 것 같아요."

행여나 이번 인터뷰로 재취업에 차질이 생길까 조심스러워 할 만큼 정씨는 출산 이후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을 느꼈다고 했는데요.

<인터뷰>정00(29) : "제 아이가 아들인 게 다행이에요. 저와 같은 경험을 안 해도 되겠구나 싶어서."

전체 여성근로자의 26.7%가 출산 휴가를 쓰지 못하고 퇴직하는 상황. 휴가를 받더라도 42%에 달하는 여성들은 법정 휴가일인 90일을 다 채우지 못하고 업무에 복귀하고 있었습니다.

여성근로자의 60%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나빴는데요.

<인터뷰>박남희(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 : "산전후 휴가를 받아야 하는 시점에 계약이 종료되면 휴가 자체를 적용받을 수 없게 됩니다. 산전후 휴가를 쓰는 기간에는 고용관계를 종료하는 것을 연장하는 방안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이렇게 출산전후 휴가에 난색을 표하는 회사들이 꼽는 첫째 이유는 휴직 기간 중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회사 차원에서 슬기롭게 해결한 곳도 있었는데요.

지난 1997년과 2001년 두 차례나 출산휴가를 다녀온 이민진 씨. 휴가 중 자신의 업무를 동료직원들이 분산해 맡아 줘 부담 없이 출산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인터뷰>이민진(37) : "(동료) 눈치는 보지 않았어요. 아이는 당연히 낳아야 하는 거니까요. 출산 잘하고 오라며 격려해주시고, 출산휴가 중간에 팀장이 복직날짜를 알려줬거든요. 언제 복직해야 하는데 와야지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이 회사는 최근 4년간 출산휴가자 500여 명 전원을 출산 전 맡았던 업무로 복귀시키고 있었는데요.

<인터뷰>배권탁(대교 인사팀장) : "숙련된 여성인력들이 출산휴가 후에 바로 현업에 복귀하기 때문에 신규채용을 억제하고 교육훈련비를 절감하는 등 경영상의 이익이 있습니다. 업무 생산성도 훨씬 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법으로 보장된 권리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

내 아내, 내 가족의 임신은 축복받을 일이지만 여성동료의 임신은 업무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엄존하는 한 저출산 문제도, 효율적인 여성 인력 운용도 풀릴 수 없는 문제일 뿐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뉴스타임 현장] 정당하지만 눈치보게 되는 ‘출산휴가’
    • 입력 2007-01-25 08:16:44
    • 수정2007-01-25 10:42:44
    아침뉴스타임
<앵커 멘트> 저출산 시대, 정부가 각종 지원책까지 마련하면서 출산을 장려하고 있지만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듯 합니다. 법에 엄연히 명시된 규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사회 위원회가 실시한 조사결과에서 아기를 낳은 여성 근로자의 42%가 출산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심지어 출산 전후에 회사로부터 퇴사 압력까지 받고 있습니다. 산모가 죄인으로 취급받는 실태, 지금부터 살펴 봅니다. 홍성철 기자.. 이래서야 맘 놓고 임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리포트>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작용하기 때문인데요. 실제 취재 현장에서 만난 여성들은 임신을 했거나 아이를 키우는 취업 여성의 경우 업무 면에서 소홀하다는 일부 그릇된 시각에 대한 피해의식이 상당했습니다. 여전히 정착되지 않은 출산 휴가 제도, 무엇이 문제인 지 짚어봤습니다. 오는 6월 출산을 앞두고 있는 올해 32세의 김 모씨. 직원 10여 명의 소규모 업체에서 도면작업을 맡고 있는데 오는 4월, 일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회사측에 임신사실이 알려지면서 김씨는 암암리에 퇴직 권유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인터뷰>김00(32) : "회사 측과 출산할 때 회사를 관두겠다거나 육아휴직을 받겠다는 얘기도 결정나지 않은 상태에서 (남자직원들이) 언제까지 일하고 그만둘 것이냐며 그만두는 분위기로 몰아서 얘기를 하더라고요." 후임자까지 내정된터라 회사를 계속 다닐 것이며, 출산 휴가를 쓰겠다는 이야기는 꺼낼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인터뷰>김00(32) : "어느 날 갑자기 (후임을) 면접 본 다음에 직원들에게 인사시키고, 특정한 날짜를 말하며 출근하게 될 직원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보니까 좀 당황하였죠." 2년 넘게 일한 곳에서 임신을 이유로 자신을 동료며 직원으로 여기지 않는 풍토에 배신감마저 느꼈다는데요. <인터뷰>김00(32) : "아이 낳는 것은 죄가 아니고 자랑스럽고 기쁜 일인데, 회사에 다니면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게 굉장히 억울하더라고요." 6개월 된 아들을 둔 29살의 정 모씨 역시 건축설계를 담당하던 전문직이었음에도 지난 7월, 출산을 이유로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종업원 3백 명이 넘는 제법 규모있는 회사였지만 출산 휴가를 쓴 전례가 없다는 게 회사 측의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인터뷰>정00(29) : "아무런 설명도 없이 우리 회사는 출산휴가를 준 적이 없다며 나가라는 식으로 말을 하더라고요." 엄연히 법적으로 보장된 출산휴가를 얻기 위해 관련 단체에 상담도 해보고 신고도 생각해 봤지만 혹여 있을 수 있는 피해를 생각해 정씨는 결국 사직서를 썼다고 했습니다. <인터뷰>정00(29) : "같은 업종에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물론 신고는 할 수 있지만, 회사가 더 큰 집단이기 때문에 제가 다시 피해자가 될 것 같아요." 행여나 이번 인터뷰로 재취업에 차질이 생길까 조심스러워 할 만큼 정씨는 출산 이후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을 느꼈다고 했는데요. <인터뷰>정00(29) : "제 아이가 아들인 게 다행이에요. 저와 같은 경험을 안 해도 되겠구나 싶어서." 전체 여성근로자의 26.7%가 출산 휴가를 쓰지 못하고 퇴직하는 상황. 휴가를 받더라도 42%에 달하는 여성들은 법정 휴가일인 90일을 다 채우지 못하고 업무에 복귀하고 있었습니다. 여성근로자의 60%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나빴는데요. <인터뷰>박남희(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 : "산전후 휴가를 받아야 하는 시점에 계약이 종료되면 휴가 자체를 적용받을 수 없게 됩니다. 산전후 휴가를 쓰는 기간에는 고용관계를 종료하는 것을 연장하는 방안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이렇게 출산전후 휴가에 난색을 표하는 회사들이 꼽는 첫째 이유는 휴직 기간 중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회사 차원에서 슬기롭게 해결한 곳도 있었는데요. 지난 1997년과 2001년 두 차례나 출산휴가를 다녀온 이민진 씨. 휴가 중 자신의 업무를 동료직원들이 분산해 맡아 줘 부담 없이 출산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인터뷰>이민진(37) : "(동료) 눈치는 보지 않았어요. 아이는 당연히 낳아야 하는 거니까요. 출산 잘하고 오라며 격려해주시고, 출산휴가 중간에 팀장이 복직날짜를 알려줬거든요. 언제 복직해야 하는데 와야지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이 회사는 최근 4년간 출산휴가자 500여 명 전원을 출산 전 맡았던 업무로 복귀시키고 있었는데요. <인터뷰>배권탁(대교 인사팀장) : "숙련된 여성인력들이 출산휴가 후에 바로 현업에 복귀하기 때문에 신규채용을 억제하고 교육훈련비를 절감하는 등 경영상의 이익이 있습니다. 업무 생산성도 훨씬 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법으로 보장된 권리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 내 아내, 내 가족의 임신은 축복받을 일이지만 여성동료의 임신은 업무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엄존하는 한 저출산 문제도, 효율적인 여성 인력 운용도 풀릴 수 없는 문제일 뿐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