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한국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참전 용사들에게는 무공훈장이 수여되죠.
병역기록이 없었던 또는 생사를 확인 할 수 없었던 용사들에게 거의 60년만에 무공훈장이 돌아갔습니다.
함영구 기자입니다.
<리포트>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치닫던 1952년 백마고지 금화지구 전투.
81살 김상율씨는 이 전투에서 수색대원으로 북한군 수십 명을 사살하고 2명을 생포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부상을 당하고 전역한 김씨는 58년이 흐른 지난달에야 육군본부에서 병역기록이 확인돼 뒤늦게 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인터뷰>김상률(무공훈장 수훈자) : "부대에 있는 사람들 다 가버리고(죽고) 정신 차리고 보니까 병원인데..그렇게 된거죠."
6.25 당시 광주 공비 토벌작전에서 공을 세운 고 이범득 씨의 묘 앞에 무공훈장이 놓였습니다.
참전한 동안 두 아들까지 잃어 한평생 죄책감을 떨치지 못했던 이씨는 17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셋째 아들이 뒤늦게 무공훈장을 찾아왔습니다.
<인터뷰>이창희(고 이범득씨 셋째 아들) : "늦게나마 이렇게 찾아서 아버님께 훈장을 드리니까 마음은 시원합니다."
1955년 이후 훈장 찾기사업을 통해 뒤늦게나마 무공훈장을 받은 참전용사는 모두 8만 7천여 명입니다.
<인터뷰>이동환(육군본부 유가족찾기 요원) : "제적부, 색인부조회까지 해서 비슷한 이름과 생년월일을 다 찾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하지만, 전공을 인정받은 7만 5천여 명의 참전용사는 아직까지 거주지와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훈장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함영구입니다.
한국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참전 용사들에게는 무공훈장이 수여되죠.
병역기록이 없었던 또는 생사를 확인 할 수 없었던 용사들에게 거의 60년만에 무공훈장이 돌아갔습니다.
함영구 기자입니다.
<리포트>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치닫던 1952년 백마고지 금화지구 전투.
81살 김상율씨는 이 전투에서 수색대원으로 북한군 수십 명을 사살하고 2명을 생포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부상을 당하고 전역한 김씨는 58년이 흐른 지난달에야 육군본부에서 병역기록이 확인돼 뒤늦게 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인터뷰>김상률(무공훈장 수훈자) : "부대에 있는 사람들 다 가버리고(죽고) 정신 차리고 보니까 병원인데..그렇게 된거죠."
6.25 당시 광주 공비 토벌작전에서 공을 세운 고 이범득 씨의 묘 앞에 무공훈장이 놓였습니다.
참전한 동안 두 아들까지 잃어 한평생 죄책감을 떨치지 못했던 이씨는 17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셋째 아들이 뒤늦게 무공훈장을 찾아왔습니다.
<인터뷰>이창희(고 이범득씨 셋째 아들) : "늦게나마 이렇게 찾아서 아버님께 훈장을 드리니까 마음은 시원합니다."
1955년 이후 훈장 찾기사업을 통해 뒤늦게나마 무공훈장을 받은 참전용사는 모두 8만 7천여 명입니다.
<인터뷰>이동환(육군본부 유가족찾기 요원) : "제적부, 색인부조회까지 해서 비슷한 이름과 생년월일을 다 찾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하지만, 전공을 인정받은 7만 5천여 명의 참전용사는 아직까지 거주지와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훈장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함영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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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년 만에 주인 찾은 ‘무공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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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1-06-05 21:48:09
<앵커 멘트>
한국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참전 용사들에게는 무공훈장이 수여되죠.
병역기록이 없었던 또는 생사를 확인 할 수 없었던 용사들에게 거의 60년만에 무공훈장이 돌아갔습니다.
함영구 기자입니다.
<리포트>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치닫던 1952년 백마고지 금화지구 전투.
81살 김상율씨는 이 전투에서 수색대원으로 북한군 수십 명을 사살하고 2명을 생포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부상을 당하고 전역한 김씨는 58년이 흐른 지난달에야 육군본부에서 병역기록이 확인돼 뒤늦게 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인터뷰>김상률(무공훈장 수훈자) : "부대에 있는 사람들 다 가버리고(죽고) 정신 차리고 보니까 병원인데..그렇게 된거죠."
6.25 당시 광주 공비 토벌작전에서 공을 세운 고 이범득 씨의 묘 앞에 무공훈장이 놓였습니다.
참전한 동안 두 아들까지 잃어 한평생 죄책감을 떨치지 못했던 이씨는 17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셋째 아들이 뒤늦게 무공훈장을 찾아왔습니다.
<인터뷰>이창희(고 이범득씨 셋째 아들) : "늦게나마 이렇게 찾아서 아버님께 훈장을 드리니까 마음은 시원합니다."
1955년 이후 훈장 찾기사업을 통해 뒤늦게나마 무공훈장을 받은 참전용사는 모두 8만 7천여 명입니다.
<인터뷰>이동환(육군본부 유가족찾기 요원) : "제적부, 색인부조회까지 해서 비슷한 이름과 생년월일을 다 찾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하지만, 전공을 인정받은 7만 5천여 명의 참전용사는 아직까지 거주지와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훈장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함영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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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구 기자 newspow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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