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발해까지 만리장성?

입력 2012.07.02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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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북부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목단강이라고 불리는 이곳의 유명 관광지 산다오관 산림공원입니다.

입구에서 500미터쯤 들어가니 2개의 표지석이 나타납니다.

<녹취> "이게 뭐죠? 문화유산표시네요"

발해 목단강 변장, 즉 목단강 국경 장벽 유적이라는 표지석과 세계유네스코문화유산 표지석입니다.

표지석에는 발해국이 만든 이 목단강 변장이 중국의 장성이며, 세계문화유산 유적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녹취> "한번 올라가보죠"

흙으로 쌓은 장벽이 20여 미터 이어지고 있고, 끝나는 부분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대형 표지석이 나타납니다.

<인터뷰> 이종수 교수(단국대 역사학과) : "오늘 와서 보니까 공원 안에다가 변장공원을 만들어가지고 시민들한테 지금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발해의 성곽을 중국 만리장성의 일부라고 주장하면서 이미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언론과 웹사이트도 지난 2008년 50킬로미터에 이르는 발해의 목단강 변장이 세계문화유산으로 그것도 '당나라 장성'으로 등재됐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닙니다.

<녹취> 김지현(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세계유산담당) : "만리장성에 옛 발해 지역에 있는 목단강 유적의 경우 공식적으로 만리장성 지역에 포함 돼 있지 않습니다./관련 문서를 보아도 발해 지역 유적까지 연장을 한다는 이런 내용은 전혀 없고요."

취재팀과 동행했던 역사학계 교수도 중국의 역사왜곡에 놀랍니다.

<인터뷰> 이종수(교수) : "이번에 확인을 해 보니까 유네스코 등재 부분이 거짓이라고 밝혀져 가지고 정말 이것은 역사왜곡이자 사실왜곡이거든요.그래서 상당히 많이 놀랐습니다."

발해의 국경 성벽은 당나라 장성으로 만리장성에 포함돼 있고 세계가 이를 인정했다는 거짓 주장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자 멘트>

이처럼 중국이 만리장성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는 성곽 가운데는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이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중국의 역사로 둔갑시키는 중국의 역사왜곡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린성 창춘에서 50킬로미터 떨어진 더후이시, 도로 곳곳마다 '변강' 이란 지명이 눈에 띱니다.

변강촌, 변강향.

중국말로 비엔깡, 즉 국경 둔덕이란 뜻입니다.

더후이와 농안시 사이에 수킬로미터 이어진 지명 '변강', 이곳은 중국이 주장하는 장성 유적이 있다는 곳이지만, 들판에서 장성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곳 주민에게 변강이라는 지명의 유래와 위치를 물었습니다.

<녹취> 더호이시(변강촌 주민) : " 전에는 변강 그 모습이 있었는데 몇 년 전에 그 변강이 2번 도로로 바뀌었어요."

가리켜준 곳을 가 보니 길게 이어진 도로만 있지 장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녹취> 변강촌 주민 : "여기가 2번 국도예요.(예전에 변강이 있지 않았나요?) 맞아요. 오래된 변강이었는데 이렇게 도로가 됐어요."

둔덕이 단단하게 쌓여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위로 지나다니다 보니 도로로 변한 것입니다.

<인터뷰> 이종수(교수) : "80년대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그 당시에는 이 유적이 높이가 5미터 정도 폭이 6미터 정도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학계는 이곳이 고구려가 당나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646년 연개소문 장군이 쌓은 천리장성의 가장 북쪽지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이 국경 언덕이 중국 당나라 장성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종수(교수) : "이 성이 당나라 장성이 된다면 연개소문 장군이 땅속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중국은 지난달 5일 만리장성의 총길이가 기존의 두 배 이상인 2만천196킬로미터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실체가 남지 않은 곳까지 포함시킨데다 고구려와 발해의 성곽까지 맘대로 포함시켜 명백한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더후이시에서 900킬로미터 떨어진 헤이룽장성 최대 호수 경박호, 이곳에는 발해의 경박호 변장이 있습니다.

표지석이 있는 곳에는 당시의 흔적과 언덕만 보일 뿐 성곽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성곽의 존재를 찾기 위해 산속으로 500미터 정도 올랐습니다.

거친 숲속을 오르고 나니 신비로운 모습의 돌 성곽이 나타납니다.

천년 넘는 세월에 성곽은 무너져 내리면서 1미터 정도로 낮아졌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성벽마다 이끼가 끼었습니다.

산 중턱까지는 흙으로 쌓았다가 중턱부터 20킬로미터는 돌로 쌓았습니다.

<인터뷰> 이종수(교수) : "고구려보다는 좀 엉성하긴 하지만 고구려 축성법을 이어받아 가지고 그와 유사한 형태로 쌓으려고 하는 형태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발해의 수도인 돈화를 수비하던 경박호변장은 1300년이 지난 지금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이 산성을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곳도 당나라 장성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의 말은 다릅니다.

당나라는 이렇게 북쪽까지 진출한 기록이 없는 데 어떻게 당의 장성이냐며 발해의 성곽이라 고분명히 말합니다.

<녹취> 경박호(변장 주민) : "발해국 때의 성곽입니다. (당나라 장성이라고 하는데요?) 당나라는 아니에요."

이밖에도 중국이 만리장성의 길이를 늘리며 포함시킨 고구려 발해의 유적은 발해의 강동 변장 등을 포함해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에 걸쳐 최소 300킬로미터에 이르는 것으로 우리 역사학계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지난 2006년부터 '장성보호조례'를 만들고 900억원을 투입해 이른바 '장성공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장성공정'이 아니라 중국 변방에 흩어져 있는 여러 민족이 세운 장성들을 찾아내고 보호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장성 유적 보호가 목적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무단장시과 닝안시 경계에 있는 목단강 변장의 일부입니다.

당나라와 전혀 관련 없는 유적이지만 표지석에는 당과 발해가 함께 표시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유적을 보호하기 위한 경계석이 띄엄띄엄 서 있습니다.

이 경계석 주위 20미터는 훼손하지 못하도록 됐있습니다.

그러나 곳곳에서 경계석들이 뽑혀져 있고 주위는 대부분 경작지로 변해버렸습니다.

<인터뷰> 이종수(교수) : "뒤쪽 보시면 다 경작지로 훼손된 상탭니다.아까 비석에는 여기다 경작을 하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 말뿐인 문물보호라고 보시면 될 거 같구요."

장벽의 일부는 도로가 새로 나면서 아예 흔적조차 없어져 버렸습니다.

<녹취> "저쪽에서 연결돼 가지고 이쪽 구간을 지나 연결되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유적 보호가 목적이 아니라 이런 표시 등을 통해 만리장성의 길이를 늘리고 있는 셈입니다.

중국은 왜 이렇게 고구려와 발해가 세운 장성의 길이까지 늘려 만리장성의 범주로 포함시키려 할까?

<인터뷰> 조법종(교수/우석대 역사교육과) : "대표적인 중국의 상징물인 장성의 개념에 고구려의 천리장성과 목단강 변장같은 발해의 장소를 포함시킴으로써 말 그대로 역사논리를 유적으로 현장화하는 장성판 동북공정이라고 할 수 있죠."

2007년 동북공정으로 역사이론을 완성한 중국이 이제 그 역사를 영토라는 공간으로 실체화 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동원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즉 사회과학원 주도의 동북공정과 국가문물국 주도의 만리장성 확대는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발해의 마지막 수도 상경 용천부입니다.

한때 동북아를 풍미했던 발해의 넓은 궁궐터에는 이제 무너진 성벽과 주춧돌만이 남았습니다.

이곳 박물관에는 발해가 당나라 시대 말갈족이 세운 중국의 소수민족 국가라고 써 있습니다.

발해의 시조 대조영과 역대 왕들은 모두 왕이 아니라 장군이나 신하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중국의 지배를 받은 것으로 왜곡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중국에서 발해는 이미 중국의 역사가 돼 버렸습니다.

<인터뷰> 이성제(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중국은 동북공정 나왔을때부터 이제 고구려사는 본격적으로 중국사의 일부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발해사 부분은 훨씬 전부터 중국사의 일부로서 간주해왔습니다."

궁궐 터 옆에는 기념 건물을 세우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발해 상경 용천부를 중국의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 등재해 세계의 인정을 받으려 한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발해의 역사가 이렇게 중국의 역사가 된다면 우리의 역사는 청천강 이남으로 한정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조법종(교수) : "언론도 그렇고 정부의 대책도 그렇고 좀 중장기적으로, 정권 바뀔때마다 입장이 바뀌는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백년대계를 민족의 큰 목표를 향해서 나가는 그런 중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역사는 진행형입니다.

동북공정의 쟁점은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장성공정이 시작됐습니다.

중국의 역사왜곡이 도를 넘고 있고 이는 언제든지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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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 발해까지 만리장성?
    • 입력 2012-07-02 07:52:22
    취재파일K
중국 동북부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목단강이라고 불리는 이곳의 유명 관광지 산다오관 산림공원입니다. 입구에서 500미터쯤 들어가니 2개의 표지석이 나타납니다. <녹취> "이게 뭐죠? 문화유산표시네요" 발해 목단강 변장, 즉 목단강 국경 장벽 유적이라는 표지석과 세계유네스코문화유산 표지석입니다. 표지석에는 발해국이 만든 이 목단강 변장이 중국의 장성이며, 세계문화유산 유적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녹취> "한번 올라가보죠" 흙으로 쌓은 장벽이 20여 미터 이어지고 있고, 끝나는 부분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대형 표지석이 나타납니다. <인터뷰> 이종수 교수(단국대 역사학과) : "오늘 와서 보니까 공원 안에다가 변장공원을 만들어가지고 시민들한테 지금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발해의 성곽을 중국 만리장성의 일부라고 주장하면서 이미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언론과 웹사이트도 지난 2008년 50킬로미터에 이르는 발해의 목단강 변장이 세계문화유산으로 그것도 '당나라 장성'으로 등재됐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닙니다. <녹취> 김지현(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세계유산담당) : "만리장성에 옛 발해 지역에 있는 목단강 유적의 경우 공식적으로 만리장성 지역에 포함 돼 있지 않습니다./관련 문서를 보아도 발해 지역 유적까지 연장을 한다는 이런 내용은 전혀 없고요." 취재팀과 동행했던 역사학계 교수도 중국의 역사왜곡에 놀랍니다. <인터뷰> 이종수(교수) : "이번에 확인을 해 보니까 유네스코 등재 부분이 거짓이라고 밝혀져 가지고 정말 이것은 역사왜곡이자 사실왜곡이거든요.그래서 상당히 많이 놀랐습니다." 발해의 국경 성벽은 당나라 장성으로 만리장성에 포함돼 있고 세계가 이를 인정했다는 거짓 주장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자 멘트> 이처럼 중국이 만리장성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는 성곽 가운데는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이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중국의 역사로 둔갑시키는 중국의 역사왜곡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린성 창춘에서 50킬로미터 떨어진 더후이시, 도로 곳곳마다 '변강' 이란 지명이 눈에 띱니다. 변강촌, 변강향. 중국말로 비엔깡, 즉 국경 둔덕이란 뜻입니다. 더후이와 농안시 사이에 수킬로미터 이어진 지명 '변강', 이곳은 중국이 주장하는 장성 유적이 있다는 곳이지만, 들판에서 장성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곳 주민에게 변강이라는 지명의 유래와 위치를 물었습니다. <녹취> 더호이시(변강촌 주민) : " 전에는 변강 그 모습이 있었는데 몇 년 전에 그 변강이 2번 도로로 바뀌었어요." 가리켜준 곳을 가 보니 길게 이어진 도로만 있지 장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녹취> 변강촌 주민 : "여기가 2번 국도예요.(예전에 변강이 있지 않았나요?) 맞아요. 오래된 변강이었는데 이렇게 도로가 됐어요." 둔덕이 단단하게 쌓여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위로 지나다니다 보니 도로로 변한 것입니다. <인터뷰> 이종수(교수) : "80년대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그 당시에는 이 유적이 높이가 5미터 정도 폭이 6미터 정도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학계는 이곳이 고구려가 당나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646년 연개소문 장군이 쌓은 천리장성의 가장 북쪽지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이 국경 언덕이 중국 당나라 장성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종수(교수) : "이 성이 당나라 장성이 된다면 연개소문 장군이 땅속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중국은 지난달 5일 만리장성의 총길이가 기존의 두 배 이상인 2만천196킬로미터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실체가 남지 않은 곳까지 포함시킨데다 고구려와 발해의 성곽까지 맘대로 포함시켜 명백한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더후이시에서 900킬로미터 떨어진 헤이룽장성 최대 호수 경박호, 이곳에는 발해의 경박호 변장이 있습니다. 표지석이 있는 곳에는 당시의 흔적과 언덕만 보일 뿐 성곽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성곽의 존재를 찾기 위해 산속으로 500미터 정도 올랐습니다. 거친 숲속을 오르고 나니 신비로운 모습의 돌 성곽이 나타납니다. 천년 넘는 세월에 성곽은 무너져 내리면서 1미터 정도로 낮아졌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성벽마다 이끼가 끼었습니다. 산 중턱까지는 흙으로 쌓았다가 중턱부터 20킬로미터는 돌로 쌓았습니다. <인터뷰> 이종수(교수) : "고구려보다는 좀 엉성하긴 하지만 고구려 축성법을 이어받아 가지고 그와 유사한 형태로 쌓으려고 하는 형태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발해의 수도인 돈화를 수비하던 경박호변장은 1300년이 지난 지금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이 산성을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곳도 당나라 장성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의 말은 다릅니다. 당나라는 이렇게 북쪽까지 진출한 기록이 없는 데 어떻게 당의 장성이냐며 발해의 성곽이라 고분명히 말합니다. <녹취> 경박호(변장 주민) : "발해국 때의 성곽입니다. (당나라 장성이라고 하는데요?) 당나라는 아니에요." 이밖에도 중국이 만리장성의 길이를 늘리며 포함시킨 고구려 발해의 유적은 발해의 강동 변장 등을 포함해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에 걸쳐 최소 300킬로미터에 이르는 것으로 우리 역사학계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지난 2006년부터 '장성보호조례'를 만들고 900억원을 투입해 이른바 '장성공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장성공정'이 아니라 중국 변방에 흩어져 있는 여러 민족이 세운 장성들을 찾아내고 보호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장성 유적 보호가 목적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무단장시과 닝안시 경계에 있는 목단강 변장의 일부입니다. 당나라와 전혀 관련 없는 유적이지만 표지석에는 당과 발해가 함께 표시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유적을 보호하기 위한 경계석이 띄엄띄엄 서 있습니다. 이 경계석 주위 20미터는 훼손하지 못하도록 됐있습니다. 그러나 곳곳에서 경계석들이 뽑혀져 있고 주위는 대부분 경작지로 변해버렸습니다. <인터뷰> 이종수(교수) : "뒤쪽 보시면 다 경작지로 훼손된 상탭니다.아까 비석에는 여기다 경작을 하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 말뿐인 문물보호라고 보시면 될 거 같구요." 장벽의 일부는 도로가 새로 나면서 아예 흔적조차 없어져 버렸습니다. <녹취> "저쪽에서 연결돼 가지고 이쪽 구간을 지나 연결되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유적 보호가 목적이 아니라 이런 표시 등을 통해 만리장성의 길이를 늘리고 있는 셈입니다. 중국은 왜 이렇게 고구려와 발해가 세운 장성의 길이까지 늘려 만리장성의 범주로 포함시키려 할까? <인터뷰> 조법종(교수/우석대 역사교육과) : "대표적인 중국의 상징물인 장성의 개념에 고구려의 천리장성과 목단강 변장같은 발해의 장소를 포함시킴으로써 말 그대로 역사논리를 유적으로 현장화하는 장성판 동북공정이라고 할 수 있죠." 2007년 동북공정으로 역사이론을 완성한 중국이 이제 그 역사를 영토라는 공간으로 실체화 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동원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즉 사회과학원 주도의 동북공정과 국가문물국 주도의 만리장성 확대는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발해의 마지막 수도 상경 용천부입니다. 한때 동북아를 풍미했던 발해의 넓은 궁궐터에는 이제 무너진 성벽과 주춧돌만이 남았습니다. 이곳 박물관에는 발해가 당나라 시대 말갈족이 세운 중국의 소수민족 국가라고 써 있습니다. 발해의 시조 대조영과 역대 왕들은 모두 왕이 아니라 장군이나 신하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중국의 지배를 받은 것으로 왜곡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중국에서 발해는 이미 중국의 역사가 돼 버렸습니다. <인터뷰> 이성제(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중국은 동북공정 나왔을때부터 이제 고구려사는 본격적으로 중국사의 일부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발해사 부분은 훨씬 전부터 중국사의 일부로서 간주해왔습니다." 궁궐 터 옆에는 기념 건물을 세우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발해 상경 용천부를 중국의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 등재해 세계의 인정을 받으려 한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발해의 역사가 이렇게 중국의 역사가 된다면 우리의 역사는 청천강 이남으로 한정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조법종(교수) : "언론도 그렇고 정부의 대책도 그렇고 좀 중장기적으로, 정권 바뀔때마다 입장이 바뀌는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백년대계를 민족의 큰 목표를 향해서 나가는 그런 중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역사는 진행형입니다. 동북공정의 쟁점은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장성공정이 시작됐습니다. 중국의 역사왜곡이 도를 넘고 있고 이는 언제든지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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