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하는 ‘갈등의 섬’

입력 2013.01.13 (06:59) 수정 2013.01.1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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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한반도에 백령도와 연평도가 있다면 타이완엔 한자로 금문도라고 쓰는 진먼다오가 있습니다.

어떤 곳인지 짐작이 가시죠? 타이완의 부속 섬이지만 오히려 중국과 더 가까워 중국 본토가 눈에 보일 정도라고 합니다.

1949년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쫓겨날 땐 최후의 보루로 삼은 곳이고, 1950년대엔 당시 중공군에게 포격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진먼다오가 최근 변화하고 있답니다. 전쟁과 갈등의 섬이 ‘평화와 교역의 섬’으로 모습을 바꾸면서 관광객을 맞이한다는데요.

우리에게도 이런 변화를 기대하면서 박정호 특파원의 보도를 함께 보시죠!

<리포트>

중국 푸졘성 남동부의 항구 도시 샤먼 시 국제적으로 아모이로도 알려진 샤먼은 한겨울에도 낮 기온이 영상 20도를 오르내리는 아열대 기후로 일년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습니다. 샤먼 앞바다의 작은 섬 구랑위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 1840년대 개항 당시 서구 열강의 영사관 건물들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어 중국 속의 작은 유럽 바다 위의 정원으로 불립니다.

<인터뷰>관광객:“경치와 날씨가 참 좋습니다. 이 섬의 일광암과 숙장화원,해변을 돌아보고 해산물도 먹었는데, 정말 좋습니다.“

샤먼에서 동쪽으로 대략 10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진먼다오. 제주도 10분의 1 넓이로 대륙에서는 가깝고 타이완에서는 200킬로미터 넘게 떨어져 있지만 타이완 땅입니다. 대륙 코앞의 진먼다오가 타이완 땅으로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1949년 대륙에서 국민당을 몰아낸 뒤 마지막 남은 타이완 공격에 나선 공산당 먼저 진먼다오 공격을 시도했지만 국민당과의 혈전 끝에 실패로 끝났습니다. 1958년엔 샤먼과 진먼다오 사이에 하루 수만 발의 포탄이 오가는 격전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1978년 중국이 개혁 개방을 선언하면서 30년 가까이 계속된 포격전이 끝나고 진먼다오는 타이완에 남게 된 것입니다.

<인터뷰>천진화(샤먼 시 8.23박물관 해설원):“1958년 8월23일 전투가 가장 치열했습니다. 450여 문의 대포와 200 여 대의 전투기가 동원됐습니다.“

포격전은 오래 전에 끝났지만 진먼다오 곳곳엔 아직 포격전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덕분에 유명해진 게 진먼다오의 칼입니다. 우쯩둥씨의 칼 공장 공장 한 켠엔 녹슨 포탄 수백 발이 산더미처럼 싸여 있습니다. 화약이 없는 공포탄으로 폭발 위험은 없습니다.

우 씨는 이 포탄을 이용해 칼을 만드는 데 진먼의 특산품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손쉽게 포탄을 구할 수 있는 데다 보통 쇠보다 단단해 칼을 만드는 재료로는 그만이라는 겁니다.

<인터뷰>우쯩둥('진먼 리강' 칼 대표):“당시 포탄이 비오는 것 같았는데 1제곱미터에 몇 발의 포탄이 떨어졌어요. 전에는 사람들이 포탄을 주워서 제게 팔았는데 지금은 공사 현장에서 땅을 파면 포탄이 발견됩니다.”

포격전이 남긴 진먼다오의 또 다른 특징은 섬 전체가 군사 시설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군대가 철수하면서 빈 요새들은 관광 상품으로 떠올랐고 진먼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초반에 건설된 지하 방공호입니다. 포격전 당시에는 군사 기지로 사용됐지만 지금은 진먼 섬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탈바꿈했습니다.

현재 관광지로 공개된 방공호만 열 곳이 넘습니다. 바다와 연결된 이 지하 방공호는 전투함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중국 관광객들도 엄청난 규모에 놀란 표정입니다.

<인터뷰>마위팡(중국 후베이성):“당시의 역사에 관해서 신문, 잡지 라디오를 통해 보고 들었는데요. 여기서는 직접 보고 체험하고 있습니다.“

방공호 뿐만 아니라 소규모 병력 이동을 위한 지하 통로도 섬 전체에 깔려 있습니다. 어른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포격전 당시의 긴장감이 묻어납니다.

<인터뷰>쉬샤오밍(진먼다오 관광 안내원):“높이가 1m 60에서 2m 정도 폭은 가장 좁은 곳이 90cm입니다. 기능은 사람들이 막힘없이 이동하는 겁니다.“

비교적 보존이 잘된 이 지하 통로의 길이는 대략 1300미터 통로 중간엔 전쟁 물자를 보관하고 지휘소로 사용된 공간도 마련돼 있습니다. 포격전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공연입니다. 군복을 입고 있는 병사들은 군인이 아니라 진먼다오의 배우들. 포탄도 실탄이 아닌 공포탄입니다.

진먼다오 최북단 포대에서 진행되는 이 공연은 전쟁터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인터뷰>타이완 관광객:“전에 양안 군사 대치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이제 진먼은 군사 기지가 아닌 좋은 관광지입니다.“

또 다른 자원은 고량주입니다. 진먼다오 정부가 직접 관리하고 있는 고량주는 1949년 군인과 섬 주민을 위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맑은 물로 술맛이 좋기로 평판이 나면서 타이완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처럼 고량주와 전쟁터 관광은 진먼 경제 발전의 원동력 섬 정부는 대륙의 코앞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전략입니다.

<인터뷰>리워스(진먼 현 현장):“앞으로 진먼의 경제 발전을 위해 대륙 시장 개척을 적극 고려하고 있습니다.”

진먼 뿐 아니라 타이완과 가까운 중국 샤먼 시도 양안 관계 발전을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진먼과 가장 가까우면서 지금은 육로로 연결돼 있는 샤먼 시 외곽의 농촌 섬 다등. 이 곳엔 2011년 9월 타이완 상품 전문 시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전자 제품에서부터 먹을거리와 생활용품 등 타이완에서 좋다는 물건은 빠지지 않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 돈 백만 원 이하의 물건을 살 경우 면세 혜택이 적용돼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 모두 만족도가 높습니다.

<인터뷰>관광객:“특히 먹을거리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올 때 마다 러우쑹(말린 고기)과자를 포함해 많은 식품을 삽니다.“

현재 개발이 완료된 타이완 상품 시장의 면적은 8만 제곱미터 가량입니다. 샤먼 시 정부는 앞으로 5년 안에 이 시장의 규모를 열 배까지 키운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샤먼 시 정부가 타이완에 파격적인 혜택을 준 것은 경제적 목적보다는 양안 관계 발전을 위한 정치적 목적이 더 큽니다.

<인터뷰>천춘휘(타이완 상품시장 부사장):“다등다오 시장을 통해 타이완 사람들이 창업하고 발전하기를 희망합니다.“

샤먼 시는 이와 함께 양안 금융 특구 건설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타이완의 금융 기업을 입주시킬 특구의 면적은 송도신도시의 4배가 넘는 23만 제곱미터 40층 이상 대형 건물만 수십 동이 들어설 예정인데 일부 건물은 완공을 앞두고 있어 양안 경제 교류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서로를 경제 공동체로 여기는 샤먼과 진먼은 양쪽을 잇는 다리 건설까지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리워스(진먼셴 셴장):“대진먼과 소진먼을 연결하는 대교가 착공됐는데 어떻게 하면 대교를 샤먼까지 연결할 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천춘휘(다등다오 상품시장 부사장):“다등다오는 공산당과 국민당의 반세기, 일세기 동안의 원한을 지켜본 증인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일 뿐이고 지난 일입니다. 양안의 인민들은 미래를 봐야 합니다.“

국공 내전에 이은 치열한 포격전까지 중국 현대사의 비극을 안고 있는 대륙의 샤먼과 타이완의 진먼 아픈 역사의 현장은 이제 관광지로 바뀌었고 교류의 중심지로 떠올랐습니다.

대륙은 일국 이체제를 타이완은 삼민주의를 추구하고 있지만 경제 교류 확대엔 모두 거리낌이 없습니다. 날로 가까워지는 샤먼과 진먼. 남북 대결 구도가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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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신하는 ‘갈등의 섬’
    • 입력 2013-01-13 06:59:56
    • 수정2013-01-13 09:12:52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한반도에 백령도와 연평도가 있다면 타이완엔 한자로 금문도라고 쓰는 진먼다오가 있습니다. 어떤 곳인지 짐작이 가시죠? 타이완의 부속 섬이지만 오히려 중국과 더 가까워 중국 본토가 눈에 보일 정도라고 합니다. 1949년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쫓겨날 땐 최후의 보루로 삼은 곳이고, 1950년대엔 당시 중공군에게 포격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진먼다오가 최근 변화하고 있답니다. 전쟁과 갈등의 섬이 ‘평화와 교역의 섬’으로 모습을 바꾸면서 관광객을 맞이한다는데요. 우리에게도 이런 변화를 기대하면서 박정호 특파원의 보도를 함께 보시죠! <리포트> 중국 푸졘성 남동부의 항구 도시 샤먼 시 국제적으로 아모이로도 알려진 샤먼은 한겨울에도 낮 기온이 영상 20도를 오르내리는 아열대 기후로 일년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습니다. 샤먼 앞바다의 작은 섬 구랑위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 1840년대 개항 당시 서구 열강의 영사관 건물들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어 중국 속의 작은 유럽 바다 위의 정원으로 불립니다. <인터뷰>관광객:“경치와 날씨가 참 좋습니다. 이 섬의 일광암과 숙장화원,해변을 돌아보고 해산물도 먹었는데, 정말 좋습니다.“ 샤먼에서 동쪽으로 대략 10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진먼다오. 제주도 10분의 1 넓이로 대륙에서는 가깝고 타이완에서는 200킬로미터 넘게 떨어져 있지만 타이완 땅입니다. 대륙 코앞의 진먼다오가 타이완 땅으로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1949년 대륙에서 국민당을 몰아낸 뒤 마지막 남은 타이완 공격에 나선 공산당 먼저 진먼다오 공격을 시도했지만 국민당과의 혈전 끝에 실패로 끝났습니다. 1958년엔 샤먼과 진먼다오 사이에 하루 수만 발의 포탄이 오가는 격전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1978년 중국이 개혁 개방을 선언하면서 30년 가까이 계속된 포격전이 끝나고 진먼다오는 타이완에 남게 된 것입니다. <인터뷰>천진화(샤먼 시 8.23박물관 해설원):“1958년 8월23일 전투가 가장 치열했습니다. 450여 문의 대포와 200 여 대의 전투기가 동원됐습니다.“ 포격전은 오래 전에 끝났지만 진먼다오 곳곳엔 아직 포격전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덕분에 유명해진 게 진먼다오의 칼입니다. 우쯩둥씨의 칼 공장 공장 한 켠엔 녹슨 포탄 수백 발이 산더미처럼 싸여 있습니다. 화약이 없는 공포탄으로 폭발 위험은 없습니다. 우 씨는 이 포탄을 이용해 칼을 만드는 데 진먼의 특산품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손쉽게 포탄을 구할 수 있는 데다 보통 쇠보다 단단해 칼을 만드는 재료로는 그만이라는 겁니다. <인터뷰>우쯩둥('진먼 리강' 칼 대표):“당시 포탄이 비오는 것 같았는데 1제곱미터에 몇 발의 포탄이 떨어졌어요. 전에는 사람들이 포탄을 주워서 제게 팔았는데 지금은 공사 현장에서 땅을 파면 포탄이 발견됩니다.” 포격전이 남긴 진먼다오의 또 다른 특징은 섬 전체가 군사 시설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군대가 철수하면서 빈 요새들은 관광 상품으로 떠올랐고 진먼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초반에 건설된 지하 방공호입니다. 포격전 당시에는 군사 기지로 사용됐지만 지금은 진먼 섬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탈바꿈했습니다. 현재 관광지로 공개된 방공호만 열 곳이 넘습니다. 바다와 연결된 이 지하 방공호는 전투함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중국 관광객들도 엄청난 규모에 놀란 표정입니다. <인터뷰>마위팡(중국 후베이성):“당시의 역사에 관해서 신문, 잡지 라디오를 통해 보고 들었는데요. 여기서는 직접 보고 체험하고 있습니다.“ 방공호 뿐만 아니라 소규모 병력 이동을 위한 지하 통로도 섬 전체에 깔려 있습니다. 어른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포격전 당시의 긴장감이 묻어납니다. <인터뷰>쉬샤오밍(진먼다오 관광 안내원):“높이가 1m 60에서 2m 정도 폭은 가장 좁은 곳이 90cm입니다. 기능은 사람들이 막힘없이 이동하는 겁니다.“ 비교적 보존이 잘된 이 지하 통로의 길이는 대략 1300미터 통로 중간엔 전쟁 물자를 보관하고 지휘소로 사용된 공간도 마련돼 있습니다. 포격전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공연입니다. 군복을 입고 있는 병사들은 군인이 아니라 진먼다오의 배우들. 포탄도 실탄이 아닌 공포탄입니다. 진먼다오 최북단 포대에서 진행되는 이 공연은 전쟁터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인터뷰>타이완 관광객:“전에 양안 군사 대치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이제 진먼은 군사 기지가 아닌 좋은 관광지입니다.“ 또 다른 자원은 고량주입니다. 진먼다오 정부가 직접 관리하고 있는 고량주는 1949년 군인과 섬 주민을 위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맑은 물로 술맛이 좋기로 평판이 나면서 타이완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처럼 고량주와 전쟁터 관광은 진먼 경제 발전의 원동력 섬 정부는 대륙의 코앞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전략입니다. <인터뷰>리워스(진먼 현 현장):“앞으로 진먼의 경제 발전을 위해 대륙 시장 개척을 적극 고려하고 있습니다.” 진먼 뿐 아니라 타이완과 가까운 중국 샤먼 시도 양안 관계 발전을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진먼과 가장 가까우면서 지금은 육로로 연결돼 있는 샤먼 시 외곽의 농촌 섬 다등. 이 곳엔 2011년 9월 타이완 상품 전문 시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전자 제품에서부터 먹을거리와 생활용품 등 타이완에서 좋다는 물건은 빠지지 않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 돈 백만 원 이하의 물건을 살 경우 면세 혜택이 적용돼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 모두 만족도가 높습니다. <인터뷰>관광객:“특히 먹을거리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올 때 마다 러우쑹(말린 고기)과자를 포함해 많은 식품을 삽니다.“ 현재 개발이 완료된 타이완 상품 시장의 면적은 8만 제곱미터 가량입니다. 샤먼 시 정부는 앞으로 5년 안에 이 시장의 규모를 열 배까지 키운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샤먼 시 정부가 타이완에 파격적인 혜택을 준 것은 경제적 목적보다는 양안 관계 발전을 위한 정치적 목적이 더 큽니다. <인터뷰>천춘휘(타이완 상품시장 부사장):“다등다오 시장을 통해 타이완 사람들이 창업하고 발전하기를 희망합니다.“ 샤먼 시는 이와 함께 양안 금융 특구 건설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타이완의 금융 기업을 입주시킬 특구의 면적은 송도신도시의 4배가 넘는 23만 제곱미터 40층 이상 대형 건물만 수십 동이 들어설 예정인데 일부 건물은 완공을 앞두고 있어 양안 경제 교류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서로를 경제 공동체로 여기는 샤먼과 진먼은 양쪽을 잇는 다리 건설까지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리워스(진먼셴 셴장):“대진먼과 소진먼을 연결하는 대교가 착공됐는데 어떻게 하면 대교를 샤먼까지 연결할 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천춘휘(다등다오 상품시장 부사장):“다등다오는 공산당과 국민당의 반세기, 일세기 동안의 원한을 지켜본 증인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일 뿐이고 지난 일입니다. 양안의 인민들은 미래를 봐야 합니다.“ 국공 내전에 이은 치열한 포격전까지 중국 현대사의 비극을 안고 있는 대륙의 샤먼과 타이완의 진먼 아픈 역사의 현장은 이제 관광지로 바뀌었고 교류의 중심지로 떠올랐습니다. 대륙은 일국 이체제를 타이완은 삼민주의를 추구하고 있지만 경제 교류 확대엔 모두 거리낌이 없습니다. 날로 가까워지는 샤먼과 진먼. 남북 대결 구도가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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