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포착] 뚜벅뚜벅 외길 인생, 수리의 장인!

입력 2013.07.24 (08:44) 수정 2013.07.2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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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이제는 귀한 존재가 돼버렸지만 대한민국에도 장인이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술가라는 표현으로도 왠지 부족하게 느껴지는 분들인데요.

혼을 담은 작업이란 저런 거구나 싶습니다.

노태영 기자와 만나볼까요?

오늘 소개할 장인들은 어떤 (분야의 장인) 분들인가요?

<기자 멘트>

값비싼 제품들은 고장이 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쉽게 수리를 맡기기가 부담스러운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분들이라면 이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몇 억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악기를 전문적으로 수리해 온 악기 수리의 장인과,, 복잡하고 어렵기로 소문이 난 값비싼 시계들만 수리해온 시계 수리의 장인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수십 년 세월동안 한길만을 걸어간 수리의 장인들 만나보시죠.

<리포트>

서울 서초동의 악기 거리.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작업실에서 악기와 씨름하고 있는 이는 현악기 수리 50여 년 경력의 이정수 씨입니다.

가난한 집안의 맏이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직업전선에 뛰어든 것이 지금의 악기수리인데요

눈썰미가 좋은데다 손재주가 있어 금세 기술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이정우(악기 장인) : "(악기 수리를) 시작한 게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좋다고 해서 친척 분이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 해서 (하게 되었어요)."

손 때 묻은 공책에는 그동안 그가 홀로 기술을 익혀가며 터득한 노하우가 빼곡히 적혀있는데요.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뒤인 마흔이라는 나이에 좀 더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자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홀연히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매일 9시간씩 혹독하게 훈련하며 기술을 익힌 끝에 미국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데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의 악기를 수리하기도 했습니다.

악기 본연의 소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솜씨는 한 번 찾은 고객들을 수십 년 이상 된 단골로 만들어줍니다.

<인터뷰> 이보연(바이올리니스트) : "무척 만족하고요. 항상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다녔고 저에 대해서 아시고 그렇게 해서 평생 선생님한테 맡기면 될 거 같아요. 제 악기는요."

이제는 두 아들 역시 자신의 뒤를 이어 악기 수리의 길로 뛰어들었는데요.

고집스러울 만큼 묵묵하게 한 길을 걸어온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두 아들은 자연스럽게 가업을 잇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상규(첫째 아들) : "오로지 악기만을 위해서 항상 애써 오셨던 것을 무척 잘 알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하는 스승님으로 선배님으로 (아버지가) 늘 존경스럽습니다."

<인터뷰> 이상윤(둘째 아들) : "외길을 걷고 계신 것에 대해서 항상 존경스럽게 생각하고 저도 그 길을 따라가기 위해서 계속 노력을 (할 겁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를 고스란히 닮은 두 아들. 지난 수십여 년 동안 아버지가 걸어왔던 길을 이어가게 됩니다.

<인터뷰> 이정우(악기 수리 장인) : "한 가지 일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다는 것을 나 스스로를 칭찬을 하고 싶네요. 앞으로도 그렇게 지낼 거고요."

평생 좋아하는 악기를 수리할 수 있어 이정우씨는 그 누구보다 행복한 세월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대구 교동의 시계 거리에는 또 다른 유명한 장인이 있습니다.

겨우 두 세명 앉을 수 있는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 바로 시계 수리 장인 박준덕 씨입니다.

못 고치는 시계가 없을 정도로 솜씨 좋기로 정평이 나 있는데요. 특히 고가의 화려하고 복잡한 시계일수록 시계 수리 실력이 더욱 빛이 납니다.

<인터뷰> 박준덕(시계 장인) : "태엽 감는 것이 부러져서 (고치는데) 부품이 없어서 부품이 없는 것은 (내가) 직접 만들어서 넣거든요."

눈으로는 식별하기도 힘들만큼 작은 부품들을 일일이 깎고 다듬어 손질하는데요.

1mm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만듭니다. 이런 기술력으로 지금까지 수리한 시계만도 9만여 개.

전국 각지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시계를 수리해 달라는 주문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인터뷰> "(수리 접수예요?) 네."

<녹취> "시계 잘 고치신다고 해서 (왔습니다)."

<인터뷰> 박준덕(시계 장인) : "어떤 분은 홍콩에서 (시계를 고치러) 일부러 (왔어요) 스위스 본사에 3번 맡겨도 (고치지 못해서) 저한테 와서 한 번 만에 수리를 해서 갔거든요."

가난 때문에 일찌감치 뛰어들었던 시계 수리의 길.

어깨 너머로 어렵게 시계 수리 기술을 배워야 하기도 했지만 힘든 역경을 딛고 영국 시계학회가 주관한 시험에서 최고 등급을 패스하며 이제는 세계가 인정한 최고의 기술자가 됐습니다.

<인터뷰> 박준덕(시계 장인) : "(실기 테스트) 80% 받았는데 세계에서 저 혼자 뿐입니다."

<인터뷰> 박준덕(시계 장인) : "1984년도에 받았거든요. 전 세계 300명이 응시해서 8명이 (합격을) 했는데 거기서 제가 1등을 했습니다."

부품이 없을 때는 직접 깍아서라도 만들어내는 실력!

지금까지 박 씨가 만든 시계 부품만도 수십 종류가 넘습니다.

<인터뷰> 박준덕(시계 장인) : "단종된 물건도 제 손으로 (부품을) 만들어서 끼우면 (원래의 제품과) 똑같습니다."

눈썰미와 손의 감각이 허락하는 한 시계 수리의 길을 계속하겠다는 박 씨.

<인터뷰> 박준덕(시계 장인) : "제가 (시계 수리를) 한 지가 한 50년이 됐는데요.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 오직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한길 인생을 걸어온 수리의 장인들.

그들이 대한민국의 장인 정신을 빛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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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제포착] 뚜벅뚜벅 외길 인생, 수리의 장인!
    • 입력 2013-07-24 08:45:51
    • 수정2013-07-24 10:49:30
    아침뉴스타임
<앵커 멘트>

이제는 귀한 존재가 돼버렸지만 대한민국에도 장인이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술가라는 표현으로도 왠지 부족하게 느껴지는 분들인데요.

혼을 담은 작업이란 저런 거구나 싶습니다.

노태영 기자와 만나볼까요?

오늘 소개할 장인들은 어떤 (분야의 장인) 분들인가요?

<기자 멘트>

값비싼 제품들은 고장이 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쉽게 수리를 맡기기가 부담스러운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분들이라면 이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몇 억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악기를 전문적으로 수리해 온 악기 수리의 장인과,, 복잡하고 어렵기로 소문이 난 값비싼 시계들만 수리해온 시계 수리의 장인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수십 년 세월동안 한길만을 걸어간 수리의 장인들 만나보시죠.

<리포트>

서울 서초동의 악기 거리.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작업실에서 악기와 씨름하고 있는 이는 현악기 수리 50여 년 경력의 이정수 씨입니다.

가난한 집안의 맏이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직업전선에 뛰어든 것이 지금의 악기수리인데요

눈썰미가 좋은데다 손재주가 있어 금세 기술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이정우(악기 장인) : "(악기 수리를) 시작한 게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좋다고 해서 친척 분이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 해서 (하게 되었어요)."

손 때 묻은 공책에는 그동안 그가 홀로 기술을 익혀가며 터득한 노하우가 빼곡히 적혀있는데요.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뒤인 마흔이라는 나이에 좀 더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자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홀연히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매일 9시간씩 혹독하게 훈련하며 기술을 익힌 끝에 미국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데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의 악기를 수리하기도 했습니다.

악기 본연의 소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솜씨는 한 번 찾은 고객들을 수십 년 이상 된 단골로 만들어줍니다.

<인터뷰> 이보연(바이올리니스트) : "무척 만족하고요. 항상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다녔고 저에 대해서 아시고 그렇게 해서 평생 선생님한테 맡기면 될 거 같아요. 제 악기는요."

이제는 두 아들 역시 자신의 뒤를 이어 악기 수리의 길로 뛰어들었는데요.

고집스러울 만큼 묵묵하게 한 길을 걸어온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두 아들은 자연스럽게 가업을 잇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상규(첫째 아들) : "오로지 악기만을 위해서 항상 애써 오셨던 것을 무척 잘 알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하는 스승님으로 선배님으로 (아버지가) 늘 존경스럽습니다."

<인터뷰> 이상윤(둘째 아들) : "외길을 걷고 계신 것에 대해서 항상 존경스럽게 생각하고 저도 그 길을 따라가기 위해서 계속 노력을 (할 겁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를 고스란히 닮은 두 아들. 지난 수십여 년 동안 아버지가 걸어왔던 길을 이어가게 됩니다.

<인터뷰> 이정우(악기 수리 장인) : "한 가지 일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다는 것을 나 스스로를 칭찬을 하고 싶네요. 앞으로도 그렇게 지낼 거고요."

평생 좋아하는 악기를 수리할 수 있어 이정우씨는 그 누구보다 행복한 세월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대구 교동의 시계 거리에는 또 다른 유명한 장인이 있습니다.

겨우 두 세명 앉을 수 있는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 바로 시계 수리 장인 박준덕 씨입니다.

못 고치는 시계가 없을 정도로 솜씨 좋기로 정평이 나 있는데요. 특히 고가의 화려하고 복잡한 시계일수록 시계 수리 실력이 더욱 빛이 납니다.

<인터뷰> 박준덕(시계 장인) : "태엽 감는 것이 부러져서 (고치는데) 부품이 없어서 부품이 없는 것은 (내가) 직접 만들어서 넣거든요."

눈으로는 식별하기도 힘들만큼 작은 부품들을 일일이 깎고 다듬어 손질하는데요.

1mm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만듭니다. 이런 기술력으로 지금까지 수리한 시계만도 9만여 개.

전국 각지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시계를 수리해 달라는 주문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인터뷰> "(수리 접수예요?) 네."

<녹취> "시계 잘 고치신다고 해서 (왔습니다)."

<인터뷰> 박준덕(시계 장인) : "어떤 분은 홍콩에서 (시계를 고치러) 일부러 (왔어요) 스위스 본사에 3번 맡겨도 (고치지 못해서) 저한테 와서 한 번 만에 수리를 해서 갔거든요."

가난 때문에 일찌감치 뛰어들었던 시계 수리의 길.

어깨 너머로 어렵게 시계 수리 기술을 배워야 하기도 했지만 힘든 역경을 딛고 영국 시계학회가 주관한 시험에서 최고 등급을 패스하며 이제는 세계가 인정한 최고의 기술자가 됐습니다.

<인터뷰> 박준덕(시계 장인) : "(실기 테스트) 80% 받았는데 세계에서 저 혼자 뿐입니다."

<인터뷰> 박준덕(시계 장인) : "1984년도에 받았거든요. 전 세계 300명이 응시해서 8명이 (합격을) 했는데 거기서 제가 1등을 했습니다."

부품이 없을 때는 직접 깍아서라도 만들어내는 실력!

지금까지 박 씨가 만든 시계 부품만도 수십 종류가 넘습니다.

<인터뷰> 박준덕(시계 장인) : "단종된 물건도 제 손으로 (부품을) 만들어서 끼우면 (원래의 제품과) 똑같습니다."

눈썰미와 손의 감각이 허락하는 한 시계 수리의 길을 계속하겠다는 박 씨.

<인터뷰> 박준덕(시계 장인) : "제가 (시계 수리를) 한 지가 한 50년이 됐는데요.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 오직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한길 인생을 걸어온 수리의 장인들.

그들이 대한민국의 장인 정신을 빛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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