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관광지…빼앗긴 고향 섬

입력 2013.11.02 (08:29) 수정 2013.11.0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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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하얗게 부서는 백사장, 바닥이 다 보일 것처럼 투명한 바다, 눈부시도록 파란 하늘. 보기 좋습니다.

이런 풍광을 보면 맨발로 달려 들어가고 싶어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의 하나로 인정받는 필리핀 보라카이 섬이 자랑하는 것들입니다.

멀지도 않아 보라카이를 찾는 외국인 중에는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그만큼 신혼 여행지로 휴가지로 인기인 것이죠! 여>이 섬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도 누군가가 살고 있었겠죠?

물론입니다.

관광산업이 팽창하면서, 개발에 밀려 섬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인 보라카이 원주민들의 사연이 있습니다.

아티족을 이경진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손만 뻗으면 구름이 손에 잡힐 것 같은, 하늘과 맞닿은 푸른 섬.

섬 전체를 감싼 녹음이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바다를 만나 지상 낙원이라 불리는 곳.

필리핀 보라카이 섬입니다.

보라카이.

7천 여 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에서도 가장 매혹적이라는 평을 받는 세계적인 휴양지입니다.

섬 전체 길이는 7km 밖에 되지 않는데, 해안가 한쪽 4km가 산호 가루가 만들어 낸 백사장입니다.

<인터뷰> 수지(호주 관광객) :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아름다운 화이트 비치와 보시는 것 처럼 멋진 바다가 있죠. 너무 투명하고 파랗습니다. 또 필리핀 사람들이 참 친절하다고 해서 휴가지로 보라카이를 골랐습니다"

이 작은 섬엔 이미 3백 개 가까운 리조트와 호텔이 들어서 있습니다.

하지만 밀려드는 관광객을 붙잡기 위해 섬 구석구석에서 숙박시설과 골프장 신축 공사가 한창입니다.

그 틈 사이에 위치한 한적해 보이는 마을.

유치원에서 3,4살 된 꼬마들이 영어 알파벳을 배우고 있습니다.

언뜻 봐도 아이들은 여느 동남아시아 사람들보다 검은 피부에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졌습니다.

보라카이의 원주민, 아티족입니다.

<인터뷰> 로데스(아티족 학교 교사) : "이 곳 아티족 마을에서 아티족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아티족고요. 우리 부족만의 학교를 연 이유는 우리 문화가 이 섬에 보존돼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생선을 잡고 지천에 널린 과일 나무에서 열매를 따며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

하지만 보라카이의 비경이 세상에 알려져 본격적인 관광 개발이 시작된 20년 전, 아티족의 비극도 시작됐습니다.

<인터뷰> 빈지(아티족) : "그래도 보라카이가 조금씩 변할 때는 살아갈 수 있는 틈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많이 변해서 삶의 터전이 그만큼 없어져버렸죠."

치솟는 땅값.

계속되는 리조트 개발.

아티족은 섬 이쪽에서 저쪽으로 쫓겨 다니길 반복하다 2년 전, 마을을 만들어 정착했습니다.

필리핀 정부가 학교 운동장 두 어개 넓이 땅에 대한 아티족의 소유권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원주민들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았다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었습니다.

보라카이 아티족 마을은 보라카이의 관광 중심지 반대편에 위치해 있습니다.

마을 면적은 섬 전체 면적의 0.2%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땅은 비극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 됐습니다.

필리핀 정부가 아티족의 소유권을 인정한 땅, 해변과 곧장 연결돼 있고 백사장 양 옆으로 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습니다.

보라카이에서 유일하게 관광 개발이 안 된 바닷가인데다, 고급 개인 리조트를 짓기에 안성맞춤인 지형입니다.

현지 개발업자들은 아티족 마을의 땅 값이 시가 1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합니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정부 결정에 반발했습니다.

특히 한 대형 리조트 업체가 이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냈고 경비원들을 동원해 마을 담장을 허물며 아티족을 위협했습니다.

관광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지방 정부는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엘비 수녀(아티족 마을 후원) : "(왜 아티족 마을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나요?) 리조트 업체 측 주장은, 자신들이 주인이라는 거죠. (이 땅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인터뷰> 윌벡(보라카이 말라이시 부시장) : "아티족이 중앙 정부가 준 땅에 사는 건 허용됐지만 땅을 정식으로 소유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

26살의 아티족 청년 덱스터가 8발의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마을에 정착한 아티족 2백 여 명을 위해 대변인 역할을 했던 덱스터.

아티족은 대형 리조트 경비원을 범행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들이 있다고 했고, 현재 이 사건은 형사 소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플로 수녀(아티족 마을 후원) : "덱스터가 총에 맞은 건 아티족을 위한 투쟁을 계속했기 때문입니다. 덱스터의 죽음은 오히려 이 땅에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아티족들에게 더 강한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다른 섬으로 거주지를 옮겨 주겠다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티족이 바라는 것은 딱 한 가지.

고향 땅에 살고 싶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을에 집과 학교를 짓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엘마(아티족) : "우리 여섯 식구가 어떤 날은 잘 곳을 찾기도 어려워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지금은 집이 생겨 너무 좋습니다. 보라카이에서 태어나 줄곧 살았기 때문에 여기가 우리 땅이죠."

올해 크리스마스까지 32채의 집을 짓는 게 1차 목표.

지금은 고정 후원자가 십 여 명 밖에 없어 돈을 마련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관광 서비스업이 곧 생업인 보라카이에서 남들보다 까만 외모와 제대로 배우지 못해 당하는 차별도 아티족에겐 넘어야 할 벽입니다.

하지만 경제적 자립은 결국 자신들의 힘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아티족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니(아티족) : "발전한 보라카이가 자랑스럽습니다. 취직해 일하고 돈을 벌수 있는 것도요.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남들처럼 그렇게 살고 싶은데 도움이 필요합니다."

전세계 90개국에 3억 7천 만명의 아티족 같은 토착 원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미국과 호주, 칠레 등 여러 국가에서 땅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원주민들은 도둑맞은 과거를 돌려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유엔은 20년 전 세계 원주민의 날을, 2007년에는 원주민 권리선언을 채택해 원주민들이 땅과 고유 문화에 대한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지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플로 수녀 : "뿌리가 없다면 과실이 열릴 수 없겠죠. 나무와 같습니다. 아티족들은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어요. 보라카이가 그들의 뿌리입니다."

세계 최고의 관광지가 다른 누구에게는 떠날 수 없는 삶의 터전입니다.

아티족이 바라는 것.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따뜻한 시선과

급변한 세상에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배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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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혜의 관광지…빼앗긴 고향 섬
    • 입력 2013-11-02 10:12:49
    • 수정2013-11-02 10:45:29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하얗게 부서는 백사장, 바닥이 다 보일 것처럼 투명한 바다, 눈부시도록 파란 하늘. 보기 좋습니다.

이런 풍광을 보면 맨발로 달려 들어가고 싶어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의 하나로 인정받는 필리핀 보라카이 섬이 자랑하는 것들입니다.

멀지도 않아 보라카이를 찾는 외국인 중에는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그만큼 신혼 여행지로 휴가지로 인기인 것이죠! 여>이 섬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도 누군가가 살고 있었겠죠?

물론입니다.

관광산업이 팽창하면서, 개발에 밀려 섬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인 보라카이 원주민들의 사연이 있습니다.

아티족을 이경진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손만 뻗으면 구름이 손에 잡힐 것 같은, 하늘과 맞닿은 푸른 섬.

섬 전체를 감싼 녹음이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바다를 만나 지상 낙원이라 불리는 곳.

필리핀 보라카이 섬입니다.

보라카이.

7천 여 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에서도 가장 매혹적이라는 평을 받는 세계적인 휴양지입니다.

섬 전체 길이는 7km 밖에 되지 않는데, 해안가 한쪽 4km가 산호 가루가 만들어 낸 백사장입니다.

<인터뷰> 수지(호주 관광객) :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아름다운 화이트 비치와 보시는 것 처럼 멋진 바다가 있죠. 너무 투명하고 파랗습니다. 또 필리핀 사람들이 참 친절하다고 해서 휴가지로 보라카이를 골랐습니다"

이 작은 섬엔 이미 3백 개 가까운 리조트와 호텔이 들어서 있습니다.

하지만 밀려드는 관광객을 붙잡기 위해 섬 구석구석에서 숙박시설과 골프장 신축 공사가 한창입니다.

그 틈 사이에 위치한 한적해 보이는 마을.

유치원에서 3,4살 된 꼬마들이 영어 알파벳을 배우고 있습니다.

언뜻 봐도 아이들은 여느 동남아시아 사람들보다 검은 피부에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졌습니다.

보라카이의 원주민, 아티족입니다.

<인터뷰> 로데스(아티족 학교 교사) : "이 곳 아티족 마을에서 아티족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아티족고요. 우리 부족만의 학교를 연 이유는 우리 문화가 이 섬에 보존돼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생선을 잡고 지천에 널린 과일 나무에서 열매를 따며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

하지만 보라카이의 비경이 세상에 알려져 본격적인 관광 개발이 시작된 20년 전, 아티족의 비극도 시작됐습니다.

<인터뷰> 빈지(아티족) : "그래도 보라카이가 조금씩 변할 때는 살아갈 수 있는 틈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많이 변해서 삶의 터전이 그만큼 없어져버렸죠."

치솟는 땅값.

계속되는 리조트 개발.

아티족은 섬 이쪽에서 저쪽으로 쫓겨 다니길 반복하다 2년 전, 마을을 만들어 정착했습니다.

필리핀 정부가 학교 운동장 두 어개 넓이 땅에 대한 아티족의 소유권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원주민들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았다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었습니다.

보라카이 아티족 마을은 보라카이의 관광 중심지 반대편에 위치해 있습니다.

마을 면적은 섬 전체 면적의 0.2%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땅은 비극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 됐습니다.

필리핀 정부가 아티족의 소유권을 인정한 땅, 해변과 곧장 연결돼 있고 백사장 양 옆으로 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습니다.

보라카이에서 유일하게 관광 개발이 안 된 바닷가인데다, 고급 개인 리조트를 짓기에 안성맞춤인 지형입니다.

현지 개발업자들은 아티족 마을의 땅 값이 시가 1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합니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정부 결정에 반발했습니다.

특히 한 대형 리조트 업체가 이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냈고 경비원들을 동원해 마을 담장을 허물며 아티족을 위협했습니다.

관광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지방 정부는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엘비 수녀(아티족 마을 후원) : "(왜 아티족 마을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나요?) 리조트 업체 측 주장은, 자신들이 주인이라는 거죠. (이 땅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인터뷰> 윌벡(보라카이 말라이시 부시장) : "아티족이 중앙 정부가 준 땅에 사는 건 허용됐지만 땅을 정식으로 소유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

26살의 아티족 청년 덱스터가 8발의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마을에 정착한 아티족 2백 여 명을 위해 대변인 역할을 했던 덱스터.

아티족은 대형 리조트 경비원을 범행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들이 있다고 했고, 현재 이 사건은 형사 소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플로 수녀(아티족 마을 후원) : "덱스터가 총에 맞은 건 아티족을 위한 투쟁을 계속했기 때문입니다. 덱스터의 죽음은 오히려 이 땅에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아티족들에게 더 강한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다른 섬으로 거주지를 옮겨 주겠다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티족이 바라는 것은 딱 한 가지.

고향 땅에 살고 싶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을에 집과 학교를 짓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엘마(아티족) : "우리 여섯 식구가 어떤 날은 잘 곳을 찾기도 어려워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지금은 집이 생겨 너무 좋습니다. 보라카이에서 태어나 줄곧 살았기 때문에 여기가 우리 땅이죠."

올해 크리스마스까지 32채의 집을 짓는 게 1차 목표.

지금은 고정 후원자가 십 여 명 밖에 없어 돈을 마련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관광 서비스업이 곧 생업인 보라카이에서 남들보다 까만 외모와 제대로 배우지 못해 당하는 차별도 아티족에겐 넘어야 할 벽입니다.

하지만 경제적 자립은 결국 자신들의 힘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아티족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니(아티족) : "발전한 보라카이가 자랑스럽습니다. 취직해 일하고 돈을 벌수 있는 것도요.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남들처럼 그렇게 살고 싶은데 도움이 필요합니다."

전세계 90개국에 3억 7천 만명의 아티족 같은 토착 원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미국과 호주, 칠레 등 여러 국가에서 땅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원주민들은 도둑맞은 과거를 돌려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유엔은 20년 전 세계 원주민의 날을, 2007년에는 원주민 권리선언을 채택해 원주민들이 땅과 고유 문화에 대한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지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플로 수녀 : "뿌리가 없다면 과실이 열릴 수 없겠죠. 나무와 같습니다. 아티족들은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어요. 보라카이가 그들의 뿌리입니다."

세계 최고의 관광지가 다른 누구에게는 떠날 수 없는 삶의 터전입니다.

아티족이 바라는 것.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따뜻한 시선과

급변한 세상에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배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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