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디바(존경받는 어른)가 떠났다!”

입력 2013.12.07 (08:20) 수정 2013.12.0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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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마디바'가 떠났습니다.

'존경 받는 어른'이라는 현지 부족어라는 군요.

다들 잘 아시죠?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어제 아침 세상을 버렸습니다.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이었던 것 외에도 세계인에게는 자유와 평등의 상징이었습니다.

만델라를 잃은 전 세계는 애도 물결입니다.

파리 연결합니다.

박상용 특파원!

<리포트>

<질문> 한 6개월 전이었죠?

우리 특파원도 위독하다는 소식에 현지에 출장을 갔었는데요?

결국 고령을 이겨내지 못 했나 봅니다.

<답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현지 기준 5일 저녁 8시 50분.

어제 아침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의 공식 발표 부터 들어보시죠!

<녹취> 제이콥 주마(남아공 대통령) : "만델라가 평화 속에 잠들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위대한 아들을 잃었습니다. "

아흔 다섯의 고령으로 몸이 쇠약해진 만델라 전 대통령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췄습니다.

특히 지난 6월부터 지병인 폐 감염증이 재발해 입원했다가 9월에 퇴원한 뒤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진료를 받아 왔습니다.

병문안했던 측근들은 폐에 물이 차는 것을 막기 위해 꽂아 놓은 관 때문에 만델라 전 대통령은 말을 할 수 없었고, 매우 위독했다고 전해왔습니다.

<질문> 위대한 아버지를 잃은 남아공은 큰 슬픔에 잠겨 있을 텐데요.

조금 특별한 추모 열기도 전해주시죠.

<답변> 남아공 전역은 깊은 슬픔과 추모의 열기에 휩싸였습니다.

특히 요하네스버그 고인의 자택 밖에는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수백 명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슬픔를 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특유의 추도 풍습에 따라 가무를 곁들이면서 만델라를 칭송했습니다.

<녹취> 모프호 한센(애도객) : "우리의 전설을 잃었어요. 그가 매우 그리울 거고,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을 겁니다. 누구도 못 한 방식으로 우리 영혼과 마음을 어루만져 줬습니다. "

생전 만델라는 장례식을 간소하게 치러 달라고 말했지만, 남아공 정부는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질문> 국제사회에서도 매우 존경받는 지도자였잖아요?

세계 각국에서 애도 성명이 이어지고 있죠?

<답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용서와 화합의 정신을 실현한 정치인으로서 세계인의 존경을 받아왔습니다.

UN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한 목소리로 애도하고 있습니다.

<녹취> 반기문(UN 사무총장) : "만델라 타계에 깊은 슬픔을 표합니다. 정의와 인간애를 추구한 영웅이었습니다. "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만델라가 없었던 인생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며 그에게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겠다는 말로 추모했습니다.

<녹취> 오바마 미국 대통령 : "다른 사람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희생한 마디바(존경 받는 어른)의 강한 위엄과 굽히지 않는 의지는 남아공을 변화시켰고, 우리를 감동시켰습니다."

케머론 영국 총리도 은혜로운 삶을 살아왔던 고인을 모두가 애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질문> 남아공 민주화의 상징이면서 살아있는 성자로 불렸지 않습니까?

질곡으로 가득 찼던 만델라의 삶을 한 번 정리해주시죠!

<답변> 만델라는 1918년 남아공 동남부 음베조에서 마을 족장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로 템부족 왕의 후견을 받아 교육받았는데요.

당시 흑인으로서는 드물게 초, 중, 고교를 졸업하고 포트헤이 대학에 진학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습니다.

법률가의 꿈을 안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흑인 차별 정책에 눈을 뜨게 돼 민주화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남아공을 쥐고 있던 백인 정권의 흑백차별, 이른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맞서 투쟁하다 46살 나이에 종신형을 선고 받고 무려 27년 동안 복역했습니다.

1990년 석방된 만델라는 1993년 노벨 평화상을 받으면서 세계인권운동의 상징이 됐는데요.

이듬해인 1994년에는 남아공 최초의 민주 선거를 통해 첫 흑인 대통령이 돼, 3백 년 넘게 이어져온 오랜 인종 분규에 끝을 고했습니다.

<녹취> 넬슨 만델라 :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 맞서 싸웠고,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맞서 싸워 왔습니다. 남아공 국민은 모두 평등하다는 이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취임해서는 흑인을 탄압하던 백인을 용서와 화합 정신으로 포용해 국제 사회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여러 색깔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는 '무지개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만델라는 그의 자서전 제목처럼 '자유를 향한 길고도 먼 여정'을 끝내고 영면했습니다.

지금까지 파리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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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디바(존경받는 어른)가 떠났다!”
    • 입력 2013-12-07 08:35:44
    • 수정2013-12-07 11:20:31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마디바'가 떠났습니다.

'존경 받는 어른'이라는 현지 부족어라는 군요.

다들 잘 아시죠?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어제 아침 세상을 버렸습니다.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이었던 것 외에도 세계인에게는 자유와 평등의 상징이었습니다.

만델라를 잃은 전 세계는 애도 물결입니다.

파리 연결합니다.

박상용 특파원!

<리포트>

<질문> 한 6개월 전이었죠?

우리 특파원도 위독하다는 소식에 현지에 출장을 갔었는데요?

결국 고령을 이겨내지 못 했나 봅니다.

<답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현지 기준 5일 저녁 8시 50분.

어제 아침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의 공식 발표 부터 들어보시죠!

<녹취> 제이콥 주마(남아공 대통령) : "만델라가 평화 속에 잠들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위대한 아들을 잃었습니다. "

아흔 다섯의 고령으로 몸이 쇠약해진 만델라 전 대통령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췄습니다.

특히 지난 6월부터 지병인 폐 감염증이 재발해 입원했다가 9월에 퇴원한 뒤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진료를 받아 왔습니다.

병문안했던 측근들은 폐에 물이 차는 것을 막기 위해 꽂아 놓은 관 때문에 만델라 전 대통령은 말을 할 수 없었고, 매우 위독했다고 전해왔습니다.

<질문> 위대한 아버지를 잃은 남아공은 큰 슬픔에 잠겨 있을 텐데요.

조금 특별한 추모 열기도 전해주시죠.

<답변> 남아공 전역은 깊은 슬픔과 추모의 열기에 휩싸였습니다.

특히 요하네스버그 고인의 자택 밖에는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수백 명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슬픔를 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특유의 추도 풍습에 따라 가무를 곁들이면서 만델라를 칭송했습니다.

<녹취> 모프호 한센(애도객) : "우리의 전설을 잃었어요. 그가 매우 그리울 거고,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을 겁니다. 누구도 못 한 방식으로 우리 영혼과 마음을 어루만져 줬습니다. "

생전 만델라는 장례식을 간소하게 치러 달라고 말했지만, 남아공 정부는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질문> 국제사회에서도 매우 존경받는 지도자였잖아요?

세계 각국에서 애도 성명이 이어지고 있죠?

<답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용서와 화합의 정신을 실현한 정치인으로서 세계인의 존경을 받아왔습니다.

UN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한 목소리로 애도하고 있습니다.

<녹취> 반기문(UN 사무총장) : "만델라 타계에 깊은 슬픔을 표합니다. 정의와 인간애를 추구한 영웅이었습니다. "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만델라가 없었던 인생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며 그에게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겠다는 말로 추모했습니다.

<녹취> 오바마 미국 대통령 : "다른 사람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희생한 마디바(존경 받는 어른)의 강한 위엄과 굽히지 않는 의지는 남아공을 변화시켰고, 우리를 감동시켰습니다."

케머론 영국 총리도 은혜로운 삶을 살아왔던 고인을 모두가 애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질문> 남아공 민주화의 상징이면서 살아있는 성자로 불렸지 않습니까?

질곡으로 가득 찼던 만델라의 삶을 한 번 정리해주시죠!

<답변> 만델라는 1918년 남아공 동남부 음베조에서 마을 족장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로 템부족 왕의 후견을 받아 교육받았는데요.

당시 흑인으로서는 드물게 초, 중, 고교를 졸업하고 포트헤이 대학에 진학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습니다.

법률가의 꿈을 안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흑인 차별 정책에 눈을 뜨게 돼 민주화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남아공을 쥐고 있던 백인 정권의 흑백차별, 이른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맞서 투쟁하다 46살 나이에 종신형을 선고 받고 무려 27년 동안 복역했습니다.

1990년 석방된 만델라는 1993년 노벨 평화상을 받으면서 세계인권운동의 상징이 됐는데요.

이듬해인 1994년에는 남아공 최초의 민주 선거를 통해 첫 흑인 대통령이 돼, 3백 년 넘게 이어져온 오랜 인종 분규에 끝을 고했습니다.

<녹취> 넬슨 만델라 :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 맞서 싸웠고,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맞서 싸워 왔습니다. 남아공 국민은 모두 평등하다는 이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취임해서는 흑인을 탄압하던 백인을 용서와 화합 정신으로 포용해 국제 사회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여러 색깔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는 '무지개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만델라는 그의 자서전 제목처럼 '자유를 향한 길고도 먼 여정'을 끝내고 영면했습니다.

지금까지 파리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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