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멀쩡한 닭·오리를…눈물의 AI 현장

입력 2014.02.20 (08:37) 수정 2014.02.20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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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고병원성 AI가 확산된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지금까지 매몰처분 된 닭과 오리는 400만 마리를 훌쩍 넘는데요.

오늘 뉴스따라잡기는 현장 분위기를 살펴봅니다.

이승훈 기자 나와있습니다.

이런 소식 전해드려야 한다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기자 멘트>

멀쩡하게 살아있는 닭과 오리를 죽여야 하는 현장.

누구라도 착잡한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겁니다.

애지중지 키운 닭을 바라보는 농장주는 물론 작업에 투입된 공무원들 역시 내내 굳은 얼굴이었습니다.

AI 매몰 현장에선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뉴스따라잡기에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틀 전, 가금류 농장에 대한 ‘예방적 매몰처분’이 이뤄진 경기도 화성시를 찾아갔습니다.

지난달 28일 처음 AI가 발생한 직후 이미 1차로 10여 차례나 ‘예방적 매몰’을 단행한 화성시.

이번에 또다시 ‘매몰 처분’ 결정이 내려지면서 마을 분위기가 크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녹취> 마을주민 (음성변조) : “안타까운 심정은 말할 수 없죠. 그 사람들이 애지중지 기르던 것인데, (키워서) 생계유지하고 그러는데, 저렇게 (매몰 처분) 되는 것이 얼마나 애가 타겠냐고요.”

<녹취> 1차 예방적 매몰 처분 농장주 (음성변조) : “(18일) 오늘도 어디 매몰 처분한다는 소식 들었거든요. (분위기가) 다 안 좋죠. 좋을 리가 있겠어요. 다들 시무룩해 가지고, (AI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죠.”

매몰 작업이 시작된 현장...

이른 아침부터 전문 방역인력과 공무원 등 백여 명이 모여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매몰처리 될 닭은 2개 농장에서 키우던 종계와 산란계 등 모두 4만여 마리...

<녹취> 남기연(화성시 경제산업국장) : “(1월 28일 화성시 AI 첫 발생 후) 현재까지 25만 8천 수 살처분을 완료했습니다. 확산 방지를 위해서 (2차) 예방적 살처분을 하고 있습니다.”

매몰 처리를 앞두고, 낡은 포대에 하나, 둘 담겨져 나오는 닭들.

작업이 진행된 내내 농장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녹취> 인근 마을주민 (음성변조) : “자기들이 키우는 닭을 묻는데 좋을 사람 누가 있어요. 내가 어떻게 되나 싶어서 전화를 몇 번 해봤는데, 전화를 안 받더라고요. 완전히 초상집이죠.”

잔인한 매몰 처분이 계속되면서 현장에서는 반대운동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2일...

예방적 매몰 처분이 이뤄진 충북 음성의 한 양계 농장에서는 동물보호단체의 시위가 열렸습니다.

<녹취> 조희경(대표/동물자유연대) : “예방적 살처분의 기본적인 원칙은 병에 감염이 됐든 안됐든 다 죽이는 겁니다. (AI가 발생한) 3킬로미터 안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다 그쪽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보다는 (지형적, 축산방식 등을 고려한) 탄력적인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게다가 이 농장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동물복지 농장’ 1호로 인증받은 곳.

동물복지 농장에서 벌어진 이 참극에 동물단체와 농민의 반발은 극에 달했습니다.

<녹취> 홍기훈(대표/국내 1호 동물복지 농장) : “(동물복지 농장은) 사육밀도가 낮다 보니까 암모니아가스라든지, 이산화탄소 이런 것에 대한 발생률이 거의 없고, 그런 데서 자란 닭들이 강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는데...)”

농장주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이 농장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오리농장에서 AI가 발생하는 바람에 예방적 매몰 대상에 포함되고 말았습니다.

<녹취> 홍기훈(대표/국내 1호 동물복지 농장) : “주위를 보시면, 산과 하천, 고속도로가 (있어서) 마을과 완전히 격리가 가능해서, 살처분 예외를 해달라고 충청북도에서도 건의를 (했는데) 농림부에서는 형평성의 논리 이런 것들 때문에 불가피하게 살처분에 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결국 7만 4천 마리를 그대로 열처리 기계에 들어가게 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더 큰 걱정은 앞으로 농장을 원래대로 복구할 기약조차 할 수 없다는 겁니다.

<녹취> 홍기훈(대표/국내 1호 동물복지 농장) : “참담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고요... 너무 허탈하고, 앞으로 과연 이 농장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또 12명이나 되는 직원들은 어떻게 할까 막막합니다.”

<기자 멘트>

지난달 16일 전북 고창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뒤 한 달여 동안, 전국에서 매몰 처분된 닭과 오리 등은 437만 마리에 이릅니다.

상황이 계속되면서 농민들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고, 작업에 동원된 공무원들의 피로는 한계에 치닫고 있습니다.

<리포트>

지난 6일...

전북 김제에서는 토종닭을 키우던 농장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닭 3만 5천 마리를 키우던 농장주는, AI 여파로 판로가 막힌 데다, 그동안 추가로 들어간 사료값 4천만 원까지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고 합니다.

<녹취> 유족 (음성변조) : “어떻게 감당을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좀 참아봐라, 무슨 조치가 있을 것 아니냐 (했는데)...”

AI 매몰 처리와 방역에 연일 동원되는 공무원들의 인내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땅에 묻어야 하다보니, 많은 공무원들이 불안증상과 불면증 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녹취> 김정수(충북 진천군청 산림축산과) : “살처분 조에 들어가서 오리를 잡았는데, 오리가 잡혔을 때 두근두근하는 심장 떨림이 있어요. 사람도 당황하면 심장이 두근두근하잖아요. 그래도 그냥 (포대에) 집어넣고... 꿈에도 나타나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상당히 가슴이 많이 아프고요...”

심지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쓰러진 공무원도 있습니다.

설 연휴도 쉬지 못한 채 매몰 현장에 투입됐다고 하는데요,

<녹취> 공무원 정모 씨 아내 (음성변조) : “(매몰 현장에) 설 전에도 갔다 오고, 설 다음날도 갔다 오고... (AI지원 업무에) 거의 매일 야근을 했어요. 가만히 있으면 오리 소리 들린다고 하고, 오리의 따뜻한 체온 같은 것이 아직도 생각난다고 하고 힘들어 보였죠.”

AI로 생계를 위협받게 된 농민들과 매몰 작업에 투입되는 공무원들...

전문가들은 이들에게 ‘외상후 스트레스(PTSD)’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며 적절한 치료가 시급하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녹취> 김현수(센터장/경기도정신건강증진센터) : “살처분에 참여하게 된 농민이나 공무원이나 군인이나 재경험, 장면이 떠오른다든지, 구토, 악몽 (등으로) 과도한 무력감이나 과도한 알코올 남용 이런 문제에 빠져들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발견해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심각하게 발전하지 않도록 막는 예방적 개입이 중요합니다. ”

한 달 넘게...

전국의 닭, 오리 농장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고병원성 AI.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 속에... 농민과 공무원, 그리고 가족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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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멀쩡한 닭·오리를…눈물의 AI 현장
    • 입력 2014-02-20 08:41:05
    • 수정2014-02-20 09: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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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고병원성 AI가 확산된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지금까지 매몰처분 된 닭과 오리는 400만 마리를 훌쩍 넘는데요.

오늘 뉴스따라잡기는 현장 분위기를 살펴봅니다.

이승훈 기자 나와있습니다.

이런 소식 전해드려야 한다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기자 멘트>

멀쩡하게 살아있는 닭과 오리를 죽여야 하는 현장.

누구라도 착잡한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겁니다.

애지중지 키운 닭을 바라보는 농장주는 물론 작업에 투입된 공무원들 역시 내내 굳은 얼굴이었습니다.

AI 매몰 현장에선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뉴스따라잡기에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틀 전, 가금류 농장에 대한 ‘예방적 매몰처분’이 이뤄진 경기도 화성시를 찾아갔습니다.

지난달 28일 처음 AI가 발생한 직후 이미 1차로 10여 차례나 ‘예방적 매몰’을 단행한 화성시.

이번에 또다시 ‘매몰 처분’ 결정이 내려지면서 마을 분위기가 크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녹취> 마을주민 (음성변조) : “안타까운 심정은 말할 수 없죠. 그 사람들이 애지중지 기르던 것인데, (키워서) 생계유지하고 그러는데, 저렇게 (매몰 처분) 되는 것이 얼마나 애가 타겠냐고요.”

<녹취> 1차 예방적 매몰 처분 농장주 (음성변조) : “(18일) 오늘도 어디 매몰 처분한다는 소식 들었거든요. (분위기가) 다 안 좋죠. 좋을 리가 있겠어요. 다들 시무룩해 가지고, (AI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죠.”

매몰 작업이 시작된 현장...

이른 아침부터 전문 방역인력과 공무원 등 백여 명이 모여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매몰처리 될 닭은 2개 농장에서 키우던 종계와 산란계 등 모두 4만여 마리...

<녹취> 남기연(화성시 경제산업국장) : “(1월 28일 화성시 AI 첫 발생 후) 현재까지 25만 8천 수 살처분을 완료했습니다. 확산 방지를 위해서 (2차) 예방적 살처분을 하고 있습니다.”

매몰 처리를 앞두고, 낡은 포대에 하나, 둘 담겨져 나오는 닭들.

작업이 진행된 내내 농장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녹취> 인근 마을주민 (음성변조) : “자기들이 키우는 닭을 묻는데 좋을 사람 누가 있어요. 내가 어떻게 되나 싶어서 전화를 몇 번 해봤는데, 전화를 안 받더라고요. 완전히 초상집이죠.”

잔인한 매몰 처분이 계속되면서 현장에서는 반대운동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2일...

예방적 매몰 처분이 이뤄진 충북 음성의 한 양계 농장에서는 동물보호단체의 시위가 열렸습니다.

<녹취> 조희경(대표/동물자유연대) : “예방적 살처분의 기본적인 원칙은 병에 감염이 됐든 안됐든 다 죽이는 겁니다. (AI가 발생한) 3킬로미터 안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다 그쪽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보다는 (지형적, 축산방식 등을 고려한) 탄력적인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게다가 이 농장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동물복지 농장’ 1호로 인증받은 곳.

동물복지 농장에서 벌어진 이 참극에 동물단체와 농민의 반발은 극에 달했습니다.

<녹취> 홍기훈(대표/국내 1호 동물복지 농장) : “(동물복지 농장은) 사육밀도가 낮다 보니까 암모니아가스라든지, 이산화탄소 이런 것에 대한 발생률이 거의 없고, 그런 데서 자란 닭들이 강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는데...)”

농장주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이 농장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오리농장에서 AI가 발생하는 바람에 예방적 매몰 대상에 포함되고 말았습니다.

<녹취> 홍기훈(대표/국내 1호 동물복지 농장) : “주위를 보시면, 산과 하천, 고속도로가 (있어서) 마을과 완전히 격리가 가능해서, 살처분 예외를 해달라고 충청북도에서도 건의를 (했는데) 농림부에서는 형평성의 논리 이런 것들 때문에 불가피하게 살처분에 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결국 7만 4천 마리를 그대로 열처리 기계에 들어가게 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더 큰 걱정은 앞으로 농장을 원래대로 복구할 기약조차 할 수 없다는 겁니다.

<녹취> 홍기훈(대표/국내 1호 동물복지 농장) : “참담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고요... 너무 허탈하고, 앞으로 과연 이 농장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또 12명이나 되는 직원들은 어떻게 할까 막막합니다.”

<기자 멘트>

지난달 16일 전북 고창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뒤 한 달여 동안, 전국에서 매몰 처분된 닭과 오리 등은 437만 마리에 이릅니다.

상황이 계속되면서 농민들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고, 작업에 동원된 공무원들의 피로는 한계에 치닫고 있습니다.

<리포트>

지난 6일...

전북 김제에서는 토종닭을 키우던 농장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닭 3만 5천 마리를 키우던 농장주는, AI 여파로 판로가 막힌 데다, 그동안 추가로 들어간 사료값 4천만 원까지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고 합니다.

<녹취> 유족 (음성변조) : “어떻게 감당을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좀 참아봐라, 무슨 조치가 있을 것 아니냐 (했는데)...”

AI 매몰 처리와 방역에 연일 동원되는 공무원들의 인내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땅에 묻어야 하다보니, 많은 공무원들이 불안증상과 불면증 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녹취> 김정수(충북 진천군청 산림축산과) : “살처분 조에 들어가서 오리를 잡았는데, 오리가 잡혔을 때 두근두근하는 심장 떨림이 있어요. 사람도 당황하면 심장이 두근두근하잖아요. 그래도 그냥 (포대에) 집어넣고... 꿈에도 나타나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상당히 가슴이 많이 아프고요...”

심지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쓰러진 공무원도 있습니다.

설 연휴도 쉬지 못한 채 매몰 현장에 투입됐다고 하는데요,

<녹취> 공무원 정모 씨 아내 (음성변조) : “(매몰 현장에) 설 전에도 갔다 오고, 설 다음날도 갔다 오고... (AI지원 업무에) 거의 매일 야근을 했어요. 가만히 있으면 오리 소리 들린다고 하고, 오리의 따뜻한 체온 같은 것이 아직도 생각난다고 하고 힘들어 보였죠.”

AI로 생계를 위협받게 된 농민들과 매몰 작업에 투입되는 공무원들...

전문가들은 이들에게 ‘외상후 스트레스(PTSD)’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며 적절한 치료가 시급하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녹취> 김현수(센터장/경기도정신건강증진센터) : “살처분에 참여하게 된 농민이나 공무원이나 군인이나 재경험, 장면이 떠오른다든지, 구토, 악몽 (등으로) 과도한 무력감이나 과도한 알코올 남용 이런 문제에 빠져들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발견해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심각하게 발전하지 않도록 막는 예방적 개입이 중요합니다. ”

한 달 넘게...

전국의 닭, 오리 농장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고병원성 AI.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 속에... 농민과 공무원, 그리고 가족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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