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리포트] 사막화 방지, 몽골 스스로 나섰다

입력 2015.05.09 (08:26) 수정 2015.05.0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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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이제는 계절을 가리지 않는 불청객 황사가 올 들어 더 자주 발생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에 오는 황사의 절반 가량은 몽골의 사막에서 생겨난다고 합니다.

문제는 몽골의 사막이 갈수록 더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황사가 잦아지고 심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0여년 전부터 우리 정부와 민간이 함께 몽골 사막지대에 나무를 심는 조림 사업을 해왔죠.

그런데 기대한 만큼의 효과는 없었습니다.

사후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데요.

김준범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맑은 날씨지만, 도시는 온통 뿌옇습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를 봄 황사가 덮쳤습니다.

가장 높은 전망대에서도 도심의 원래 모습을 전혀 가늠할 수 없습니다.

평소 이곳에선 도심은 물론 산 너머 게르촌까지 선명히 보입니다.

황사의 위력입니다.

황사의 진원인 몽골 내륙으로 들어갔습니다.

한 시간 남짓 달리자 '종 머뜨'가 나타납니다.

나무가 많은 곳이란 지명이 무색하게 드문드문 수십 그루에 불과합니다.

대부분 이미 말라 죽었고, 남은 나무도 고사 직전입니다.

<인터뷰> 척트 바뜨르(몽골사막화방지연구소 소장) : "수백년 된 나무들인데 지금 상태가 너무 안 좋고, 새로 자랄 나무도 없고 몇년 만 지나면 남는 게 없을 거 같아요."

풀이 남은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뜻 보면 풀이 있고 양이 있는 초원 같아 보이지만 몇 발짝만 옆으로 옮겨도,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지형, '엘승'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엘승'이 마치 점처럼 수없이 찍히며 확산되고 있는 점사막화 현상입니다.

'엘승'은 몽골 초원이 사막으로 변하는 전형적인 지표입니다.

위에서 보면 사막화의 위력이 더 확연합니다.

강은 실개천으로 말라가고 있고, 나무가 있던 곳곳엔 모래만 남았습니다.

<인터뷰> 닌즈가랍(몽골과학기술대 교수) : "흙 표면에 나무 생장에 필요한 영양분이 많이 담겨 있는데, 사막화로 흙이 바람에 날아가면서 나무 고사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몽골은 고비 사막이 있는 남부만 사막이었지만, 이젠 중부 지역까지 북진했습니다.

국토의 90%가 사막화의 영향권 입니다.

그래서 10여 년 전부터 본격화된 나무심기 사업 역시 중부 지역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심은 나무가 얼마나 잘 자라느냐 입니다.

4년 전 국내 한 기업은 중부의 한 마을에 나무 3천여 그루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허허벌판.

나무를 심었던 구덩이만 눈에 띌 뿐입니다.

<녹취> 담딘(몽골농업대 교수) : "이 나무 딱 한 그루 남은 것 같아요. 포플러 나무인데, 이것도 사실 죽었어요. 나머진 다 흔적만 있고."

나무심기 행사에만 신경 썼지, 사후 관리엔 손을 놓았기 때문입니다.

건조 기후에 꼭 필요한 관수시설, 가축을 막아줄 울타리 등 기본 설비조차 소홀히 했던 겁니다.

<녹취> 비양항가이솜 주민 : "한국 회사가 나무심기 행사한 뒤로 한 번도 현장에 안 왔어요."

울타리 안의 이 조림지는 국내 한 단체가 나무를 심고, 관리는 몽골 정부에 맡겼습니다.

그러나 역시 조림은 실패했습니다.

대규모 나무가꾸기를 해본 인력도, 기술도 태부족한 몽골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인터뷰> 반즈라그치(몽골 환경녹색성장부 국장) : "솔직히 말해서 지금 당장은 우리가 조림 사업을 할 준비가 안돼있어요. 그래서 당분간은 외국의 지원이 계속됐으면 좋겠습니다."

몽골 정부는 2035년까지 동서 3천7백km를 나무 띠로 이어 사막화를 막는다는 계획이지만, 말 그대로 계획 뿐입니다.

올해 배정된 예산이 3억 원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합니다.

한국이 관여한 몽골 내 조림장 30곳 가량을 지난해 전수조사한 결과, 성공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제대로 된 조림 사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에르덴 지역에 국내 환경단체가 조성한 조림지입니다.

겨울 혹한을 견디고 5년 만에 사람 키높이로 자랐고, 땅엔 잡풀도 무성합니다.

국내 단체가 나무를 심은 이후 관리까지 책임진 덕분입니다.

한국인 봉사자 2명이 상주하고, 주민들을 직원으로 고용해 나무가꾸기를 맡겼습니다.

<녹취> 바잉 바뜨르(에르덴 솜 주민) : "일자리가 없었는데 나무 관리 일을 하면서 생활이 나아졌고, 집이 가까워서 아침마다 출근하면서 일하고 있어요."

최대 난제인 물 문제도 백미터 깊이의 지하수로 해결했습니다.

8만 그루 넘는 나무가 90% 넘게 생존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인터뷰> 척트 바뜨르(몽골사막화방지연구소 소장) : "(여기처럼) 나무 뿐 아니라 풀로도 땅이 잘 덮여 있어야만 흙이 바람에 날리지 않고 잘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직접 관리 방식을 무한정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조림사업은 한 곳에서 보통 3년에서 5년 정도 진행됩니다.

사업이 끝나면 현장의 주민들에게 나무 관리를 맡겨야 하지만, 고민은 이 역할을 해줄 사람과 조직이 매우 드물다는 점입니다.

다와 츠릉 씨는 6년 전 유목 생활을 멈추고, 바양노르 조림지에 정착했습니다.

나무 관리와 함께 평생 처음 농사라는 걸 배우고 있습니다.

유실수와 소득 작물을 통해 돈을 벌고 있습니다.

<인터뷰> 다와 츠릉(바양노르솜 주민) :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이 훨씬 나아졌어요. 자녀 2명이나 대학에 보내서 졸업시켰고요. 정말 많이 배웠어요."

나무가 곧 돈이 된다는 우리에겐 당연하지만, 몽골인에겐 생소한 교훈을 체득한 겁니다.

<인터뷰> 다와 츠릉(바양노르솜 주민) : "(예전에도 나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뇨. 전혀요."

바양노르 조림지는 8년에 걸쳐 나무와 함께 사는 마을로 변했습니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으며, 사막화 방지 사업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초원과 말의 나라, 몽골.

뿌리깊은 유목 전통 탓에 나무를 가꿀 방법도, 필요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5년전부터 오늘(9일)을 식목일로 지정하고, 사막화와의 싸움을 뒤늦게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담딘(에코아시아 대학 교수) : "몽골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 지금 행복하고, 두 그루 심으면 다음 생까지 행복하고, 세 그루 심으면 삼 대가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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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 리포트] 사막화 방지, 몽골 스스로 나섰다
    • 입력 2015-05-09 09:12:04
    • 수정2015-05-09 10:13:40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이제는 계절을 가리지 않는 불청객 황사가 올 들어 더 자주 발생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에 오는 황사의 절반 가량은 몽골의 사막에서 생겨난다고 합니다.

문제는 몽골의 사막이 갈수록 더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황사가 잦아지고 심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0여년 전부터 우리 정부와 민간이 함께 몽골 사막지대에 나무를 심는 조림 사업을 해왔죠.

그런데 기대한 만큼의 효과는 없었습니다.

사후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데요.

김준범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맑은 날씨지만, 도시는 온통 뿌옇습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를 봄 황사가 덮쳤습니다.

가장 높은 전망대에서도 도심의 원래 모습을 전혀 가늠할 수 없습니다.

평소 이곳에선 도심은 물론 산 너머 게르촌까지 선명히 보입니다.

황사의 위력입니다.

황사의 진원인 몽골 내륙으로 들어갔습니다.

한 시간 남짓 달리자 '종 머뜨'가 나타납니다.

나무가 많은 곳이란 지명이 무색하게 드문드문 수십 그루에 불과합니다.

대부분 이미 말라 죽었고, 남은 나무도 고사 직전입니다.

<인터뷰> 척트 바뜨르(몽골사막화방지연구소 소장) : "수백년 된 나무들인데 지금 상태가 너무 안 좋고, 새로 자랄 나무도 없고 몇년 만 지나면 남는 게 없을 거 같아요."

풀이 남은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뜻 보면 풀이 있고 양이 있는 초원 같아 보이지만 몇 발짝만 옆으로 옮겨도,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지형, '엘승'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엘승'이 마치 점처럼 수없이 찍히며 확산되고 있는 점사막화 현상입니다.

'엘승'은 몽골 초원이 사막으로 변하는 전형적인 지표입니다.

위에서 보면 사막화의 위력이 더 확연합니다.

강은 실개천으로 말라가고 있고, 나무가 있던 곳곳엔 모래만 남았습니다.

<인터뷰> 닌즈가랍(몽골과학기술대 교수) : "흙 표면에 나무 생장에 필요한 영양분이 많이 담겨 있는데, 사막화로 흙이 바람에 날아가면서 나무 고사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몽골은 고비 사막이 있는 남부만 사막이었지만, 이젠 중부 지역까지 북진했습니다.

국토의 90%가 사막화의 영향권 입니다.

그래서 10여 년 전부터 본격화된 나무심기 사업 역시 중부 지역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심은 나무가 얼마나 잘 자라느냐 입니다.

4년 전 국내 한 기업은 중부의 한 마을에 나무 3천여 그루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허허벌판.

나무를 심었던 구덩이만 눈에 띌 뿐입니다.

<녹취> 담딘(몽골농업대 교수) : "이 나무 딱 한 그루 남은 것 같아요. 포플러 나무인데, 이것도 사실 죽었어요. 나머진 다 흔적만 있고."

나무심기 행사에만 신경 썼지, 사후 관리엔 손을 놓았기 때문입니다.

건조 기후에 꼭 필요한 관수시설, 가축을 막아줄 울타리 등 기본 설비조차 소홀히 했던 겁니다.

<녹취> 비양항가이솜 주민 : "한국 회사가 나무심기 행사한 뒤로 한 번도 현장에 안 왔어요."

울타리 안의 이 조림지는 국내 한 단체가 나무를 심고, 관리는 몽골 정부에 맡겼습니다.

그러나 역시 조림은 실패했습니다.

대규모 나무가꾸기를 해본 인력도, 기술도 태부족한 몽골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인터뷰> 반즈라그치(몽골 환경녹색성장부 국장) : "솔직히 말해서 지금 당장은 우리가 조림 사업을 할 준비가 안돼있어요. 그래서 당분간은 외국의 지원이 계속됐으면 좋겠습니다."

몽골 정부는 2035년까지 동서 3천7백km를 나무 띠로 이어 사막화를 막는다는 계획이지만, 말 그대로 계획 뿐입니다.

올해 배정된 예산이 3억 원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합니다.

한국이 관여한 몽골 내 조림장 30곳 가량을 지난해 전수조사한 결과, 성공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제대로 된 조림 사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에르덴 지역에 국내 환경단체가 조성한 조림지입니다.

겨울 혹한을 견디고 5년 만에 사람 키높이로 자랐고, 땅엔 잡풀도 무성합니다.

국내 단체가 나무를 심은 이후 관리까지 책임진 덕분입니다.

한국인 봉사자 2명이 상주하고, 주민들을 직원으로 고용해 나무가꾸기를 맡겼습니다.

<녹취> 바잉 바뜨르(에르덴 솜 주민) : "일자리가 없었는데 나무 관리 일을 하면서 생활이 나아졌고, 집이 가까워서 아침마다 출근하면서 일하고 있어요."

최대 난제인 물 문제도 백미터 깊이의 지하수로 해결했습니다.

8만 그루 넘는 나무가 90% 넘게 생존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인터뷰> 척트 바뜨르(몽골사막화방지연구소 소장) : "(여기처럼) 나무 뿐 아니라 풀로도 땅이 잘 덮여 있어야만 흙이 바람에 날리지 않고 잘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직접 관리 방식을 무한정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조림사업은 한 곳에서 보통 3년에서 5년 정도 진행됩니다.

사업이 끝나면 현장의 주민들에게 나무 관리를 맡겨야 하지만, 고민은 이 역할을 해줄 사람과 조직이 매우 드물다는 점입니다.

다와 츠릉 씨는 6년 전 유목 생활을 멈추고, 바양노르 조림지에 정착했습니다.

나무 관리와 함께 평생 처음 농사라는 걸 배우고 있습니다.

유실수와 소득 작물을 통해 돈을 벌고 있습니다.

<인터뷰> 다와 츠릉(바양노르솜 주민) :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이 훨씬 나아졌어요. 자녀 2명이나 대학에 보내서 졸업시켰고요. 정말 많이 배웠어요."

나무가 곧 돈이 된다는 우리에겐 당연하지만, 몽골인에겐 생소한 교훈을 체득한 겁니다.

<인터뷰> 다와 츠릉(바양노르솜 주민) : "(예전에도 나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뇨. 전혀요."

바양노르 조림지는 8년에 걸쳐 나무와 함께 사는 마을로 변했습니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으며, 사막화 방지 사업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초원과 말의 나라, 몽골.

뿌리깊은 유목 전통 탓에 나무를 가꿀 방법도, 필요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5년전부터 오늘(9일)을 식목일로 지정하고, 사막화와의 싸움을 뒤늦게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담딘(에코아시아 대학 교수) : "몽골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 지금 행복하고, 두 그루 심으면 다음 생까지 행복하고, 세 그루 심으면 삼 대가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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