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어설픈 주차장 강도 알고 보니…

입력 2015.07.14 (08:33) 수정 2015.07.1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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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주차장입니다.

이곳에서 얼마 전 여자 손님을 상대로 한 흉기 강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에 붙잡힌 피의자. 어딘가 모르게 좀 어설픕니다.

60대 여성 피해자와 승강이를 벌이다, 힘없이 흉기를 떨어뜨리고, 또 범행 뒤 달아나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오래 뛰지를 못하고 너털 걸음을 걷습니다.

알고 보니, 이 강도.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기진맥진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대체, 이 허약한 강도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요?

뉴스 따라잡기에서 따라가보겠습니다.

<리포트>

지난 5일 밤,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지하주차장.

쇼핑을 마친 중년여성이 자신의 승용차에 올라탑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괴한.

차량 뒤쪽으로 지나 가는척 하더니, 잽싸게 조수석에 올라탑니다.

<인터뷰> 최덕근(강남경찰서 강력3팀 팀장) : "차에 타려고 하는데 낯선 사람이 옆에 타면서 ‘빨리 운전을 해라’ (하면서) 흉기를 목에다 대고……."

잠시 뒤,

차량의 양쪽 문이 열리고, 운전석에서 피해 여성이 황급히 빠져나옵니다.

<현장음> 피해여성 (음성변조) :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뒤따라 내린 괴한.

하지만 비명소리에 당황을 한 건지, 주변을 잠시 머뭇대다 이내 달아나 버립니다.

폐점 시간, 백화점 주차장에서 일어난 강도 사건입니다.

<녹취> 백화점 관계자(음성변조) : "(백화점이) 폐점되고 그쪽에 우리 아르바이트 요원이나 보안 요원이 철수하는 그 시간을 이용해서……."

목과 이마에 찰과상을 입긴 했지만, 피해자인 60대 여성은 다행히 큰 부상없이 강도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소지품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최덕근(강남경찰서 강력3팀 팀장) : "(여성이)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막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까 (강도가) ‘소리 지르지 마라, 가겠다’라고 하면서 도주를 한 거예요. 출동해 보니까 피해를 당하신 분께서는 굉장히 불안하고 공포에 질려있었던 상황이었고요."

신고를 받은 경찰은 현장에서 달아난 괴한의 뒤를 쫒았습니다.

인근 방범 CCTV에 포착된 용의자.

지금 보시는 영상이 바로, 범행 직후 달아나는 용의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강도 용의자..

자세히보니 여느 강도들과는 어딘가 좀 달라보입니다.

<인터뷰> 김지훈(경위/강남경찰서 강력3팀) : "(도주라 보기엔 (그냥) 걷네요.) 도주하다 보니까 지쳐가지고요."

축 늘어진 어깨와 고개. 천근만근 같은 발걸음.

기운이 하나도 없고, 어딘가 많이 피곤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용의자는 범행 장소인 백화점에서 지하철역까지, 4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계속 이런 식으로 이동했습니다.

<인터뷰> 김지훈(경위/강남경찰서 강력3팀) : "어느 지점에 도보 속도라 하면 30초 내 아니면 1분 내에 지나가야 되는데 지나가질 않아요. 그럼 우리가 놓쳤나 싶어서 다른 골목까지 확인을 하다 보면 용의자가 또 (CCTV에 ) 나타나는 거예요. 힘이 들고 그러니까 계속 쉬다가 쉬다가 움직이고"

이후 용의자는 무임승차로 지하철을 탄 다음, 택시를 잡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취재팀은 당시 용의자를 목격한 택시기사를 어렵게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그런데, 택시기사의 얘기가 좀 뜻밖이었습니다.

<녹취> 택시기사 A씨(용의자 목격자, 음성변조) : "좀 왜소해 보이고 힘이 없고 돈이 5백 원 밖에 없는데 태워달라고 (했는데) 뭔가 좀 믿음이 안가서 안 태워줬어요."

돈이 없다며, 5백 원에 택시를 태워달라는 용의자.

취재팀은 정말 5백 원에 용의자를 태워준 다른 택시기사를 수소문해 봤습니다.

<녹취> 택시기사 B씨(용의자 목격자/음성변조) : "차비를 내일 부쳐주겠다고 그래서 나이도 드셨고, 요금도 많이 나오는 장소가 아니라 동정심에 태워다 줬죠. 차비가 없다고 미리 솔직히 이야기하는 사람이 드물거든요. 진실성 있게 보이고, 5백 원을 주고 가더라고요."

갈수록 의문투성이인 강도 용의자.

경찰은 택시의 이동 경로를 추적해, 강도 용의자 주거지를 찾았고, 검거까지 성공합니다.

<인터뷰> 김지훈(경위/강남경찰서 강력3팀) : "(용의자의) 첫마디가 ‘모두 다 인정합니다. 그리고 2, 3일 내로 자수하려고 했습니다’ (했어요.) 피해자분은 다치지 않았느냐 그것을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렇게 사건 발생 닷새 만에 검거된 강도 피의자 A씨.

그런데 행색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김지훈(경위/강남경찰서 강력3팀) : "너무 행색이 남루하고 해서 ‘식사는 하셨습니까’ 하고 물어보니까 ‘한 끼도 못 먹었습니다’ 하더라고요. 검거 시간이 저녁 8시 반 이상 됐고요. 경찰서에 와서 식사를 시켜드렸는데 밥 한 톨도 안 남기더라고요. 진짜 배고파보였어요."

돈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피의자.

알고 봤더니, 강도짓을 한 날도 이틀 동안 물로만 배를 채운채

서울 강남 일대를 헤매다 이런 일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인터뷰> 김지훈(경위/강남경찰서 강력3팀) : "(범행 전) 이틀 동안 용의자가 움직이는 동선을 전부 다 봤는데, 구석에 있는 물 생수를 먹는 것 밖에 저희가 확인을 못했고, 물배를 채우면서 허기를 달래다가 범행을 했고요. 오죽하면 (피해) 여성의 나이가 60세인데, 그분이랑 실랑이를 하다가 (힘이 없어서) 흉기도 떨어뜨리고 도망갔거든요."

피의자의 사연을 좀 더 취재해봤습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넉넉하진 않지만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평범한 가장이었다는 A씨.

그런 A씨의 사업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 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라고 했습니다.

<전화>피의자 지인(음성변조) : "예전에는 굉장히 괜찮았죠. 안 좋아진 것이 작년이에요. 세월호 그 이후에. 무슨 공사 중지되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공사하는데서 돈을 줘야 하는데 안 주니까 더 어려워졌죠. 몇 군데서 그랬나 보더라고요."

받아야 할 돈을 제때 받지 못하면서, A씨의 사업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워지면서 가족들과도 떨어져, 식당 한켠 쪽방에서 지내왔다는 피의자.

<녹취> : "피의자 지인(음성변조) 일단 수입이 없으니까 좀 힘들어한 것은 맞아요. 버스비가 없어서 버스비 좀 빌려달라고 하고 이런 정도였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암 투병 중인 노모와, 큰 수술을 앞두고 있는 가족의 병원비까지, 감당해야 할 처지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터뷰> 최덕훈(강남경찰서 강력3팀 팀장) : "형 수술비하고, 어머니, 처 아프고 약값 한 5백만 원 정도 필요했다. 가족들 확인해 보니까 그 가해자 말이 다 맞더라고요."

가족의 생활비와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기력도 없이 어설픈 강도짓을 벌이게 됐다는 피의자.

하지만, 돈 한 푼 쥐어보지 못한채 결국 철창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인터뷰> 김지훈(경위/강남경찰서 강력3팀) : "가장 역할을 충분히 하던 가장이 벼랑 끝에 내몰려가지고 이런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나 그런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경찰은 피의자에게 강도 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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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어설픈 주차장 강도 알고 보니…
    • 입력 2015-07-14 08:35:44
    • 수정2015-07-14 08:59:25
    아침뉴스타임
<기자 멘트>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주차장입니다.

이곳에서 얼마 전 여자 손님을 상대로 한 흉기 강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에 붙잡힌 피의자. 어딘가 모르게 좀 어설픕니다.

60대 여성 피해자와 승강이를 벌이다, 힘없이 흉기를 떨어뜨리고, 또 범행 뒤 달아나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오래 뛰지를 못하고 너털 걸음을 걷습니다.

알고 보니, 이 강도.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기진맥진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대체, 이 허약한 강도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요?

뉴스 따라잡기에서 따라가보겠습니다.

<리포트>

지난 5일 밤,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지하주차장.

쇼핑을 마친 중년여성이 자신의 승용차에 올라탑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괴한.

차량 뒤쪽으로 지나 가는척 하더니, 잽싸게 조수석에 올라탑니다.

<인터뷰> 최덕근(강남경찰서 강력3팀 팀장) : "차에 타려고 하는데 낯선 사람이 옆에 타면서 ‘빨리 운전을 해라’ (하면서) 흉기를 목에다 대고……."

잠시 뒤,

차량의 양쪽 문이 열리고, 운전석에서 피해 여성이 황급히 빠져나옵니다.

<현장음> 피해여성 (음성변조) :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뒤따라 내린 괴한.

하지만 비명소리에 당황을 한 건지, 주변을 잠시 머뭇대다 이내 달아나 버립니다.

폐점 시간, 백화점 주차장에서 일어난 강도 사건입니다.

<녹취> 백화점 관계자(음성변조) : "(백화점이) 폐점되고 그쪽에 우리 아르바이트 요원이나 보안 요원이 철수하는 그 시간을 이용해서……."

목과 이마에 찰과상을 입긴 했지만, 피해자인 60대 여성은 다행히 큰 부상없이 강도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소지품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최덕근(강남경찰서 강력3팀 팀장) : "(여성이)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막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까 (강도가) ‘소리 지르지 마라, 가겠다’라고 하면서 도주를 한 거예요. 출동해 보니까 피해를 당하신 분께서는 굉장히 불안하고 공포에 질려있었던 상황이었고요."

신고를 받은 경찰은 현장에서 달아난 괴한의 뒤를 쫒았습니다.

인근 방범 CCTV에 포착된 용의자.

지금 보시는 영상이 바로, 범행 직후 달아나는 용의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강도 용의자..

자세히보니 여느 강도들과는 어딘가 좀 달라보입니다.

<인터뷰> 김지훈(경위/강남경찰서 강력3팀) : "(도주라 보기엔 (그냥) 걷네요.) 도주하다 보니까 지쳐가지고요."

축 늘어진 어깨와 고개. 천근만근 같은 발걸음.

기운이 하나도 없고, 어딘가 많이 피곤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용의자는 범행 장소인 백화점에서 지하철역까지, 4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계속 이런 식으로 이동했습니다.

<인터뷰> 김지훈(경위/강남경찰서 강력3팀) : "어느 지점에 도보 속도라 하면 30초 내 아니면 1분 내에 지나가야 되는데 지나가질 않아요. 그럼 우리가 놓쳤나 싶어서 다른 골목까지 확인을 하다 보면 용의자가 또 (CCTV에 ) 나타나는 거예요. 힘이 들고 그러니까 계속 쉬다가 쉬다가 움직이고"

이후 용의자는 무임승차로 지하철을 탄 다음, 택시를 잡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취재팀은 당시 용의자를 목격한 택시기사를 어렵게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그런데, 택시기사의 얘기가 좀 뜻밖이었습니다.

<녹취> 택시기사 A씨(용의자 목격자, 음성변조) : "좀 왜소해 보이고 힘이 없고 돈이 5백 원 밖에 없는데 태워달라고 (했는데) 뭔가 좀 믿음이 안가서 안 태워줬어요."

돈이 없다며, 5백 원에 택시를 태워달라는 용의자.

취재팀은 정말 5백 원에 용의자를 태워준 다른 택시기사를 수소문해 봤습니다.

<녹취> 택시기사 B씨(용의자 목격자/음성변조) : "차비를 내일 부쳐주겠다고 그래서 나이도 드셨고, 요금도 많이 나오는 장소가 아니라 동정심에 태워다 줬죠. 차비가 없다고 미리 솔직히 이야기하는 사람이 드물거든요. 진실성 있게 보이고, 5백 원을 주고 가더라고요."

갈수록 의문투성이인 강도 용의자.

경찰은 택시의 이동 경로를 추적해, 강도 용의자 주거지를 찾았고, 검거까지 성공합니다.

<인터뷰> 김지훈(경위/강남경찰서 강력3팀) : "(용의자의) 첫마디가 ‘모두 다 인정합니다. 그리고 2, 3일 내로 자수하려고 했습니다’ (했어요.) 피해자분은 다치지 않았느냐 그것을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렇게 사건 발생 닷새 만에 검거된 강도 피의자 A씨.

그런데 행색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김지훈(경위/강남경찰서 강력3팀) : "너무 행색이 남루하고 해서 ‘식사는 하셨습니까’ 하고 물어보니까 ‘한 끼도 못 먹었습니다’ 하더라고요. 검거 시간이 저녁 8시 반 이상 됐고요. 경찰서에 와서 식사를 시켜드렸는데 밥 한 톨도 안 남기더라고요. 진짜 배고파보였어요."

돈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피의자.

알고 봤더니, 강도짓을 한 날도 이틀 동안 물로만 배를 채운채

서울 강남 일대를 헤매다 이런 일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인터뷰> 김지훈(경위/강남경찰서 강력3팀) : "(범행 전) 이틀 동안 용의자가 움직이는 동선을 전부 다 봤는데, 구석에 있는 물 생수를 먹는 것 밖에 저희가 확인을 못했고, 물배를 채우면서 허기를 달래다가 범행을 했고요. 오죽하면 (피해) 여성의 나이가 60세인데, 그분이랑 실랑이를 하다가 (힘이 없어서) 흉기도 떨어뜨리고 도망갔거든요."

피의자의 사연을 좀 더 취재해봤습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넉넉하진 않지만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평범한 가장이었다는 A씨.

그런 A씨의 사업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 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라고 했습니다.

<전화>피의자 지인(음성변조) : "예전에는 굉장히 괜찮았죠. 안 좋아진 것이 작년이에요. 세월호 그 이후에. 무슨 공사 중지되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공사하는데서 돈을 줘야 하는데 안 주니까 더 어려워졌죠. 몇 군데서 그랬나 보더라고요."

받아야 할 돈을 제때 받지 못하면서, A씨의 사업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워지면서 가족들과도 떨어져, 식당 한켠 쪽방에서 지내왔다는 피의자.

<녹취> : "피의자 지인(음성변조) 일단 수입이 없으니까 좀 힘들어한 것은 맞아요. 버스비가 없어서 버스비 좀 빌려달라고 하고 이런 정도였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암 투병 중인 노모와, 큰 수술을 앞두고 있는 가족의 병원비까지, 감당해야 할 처지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터뷰> 최덕훈(강남경찰서 강력3팀 팀장) : "형 수술비하고, 어머니, 처 아프고 약값 한 5백만 원 정도 필요했다. 가족들 확인해 보니까 그 가해자 말이 다 맞더라고요."

가족의 생활비와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기력도 없이 어설픈 강도짓을 벌이게 됐다는 피의자.

하지만, 돈 한 푼 쥐어보지 못한채 결국 철창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인터뷰> 김지훈(경위/강남경찰서 강력3팀) : "가장 역할을 충분히 하던 가장이 벼랑 끝에 내몰려가지고 이런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나 그런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경찰은 피의자에게 강도 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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