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자존심을 건’ 통쾌한 한일전 명승부!

입력 2015.08.15 (21:56) 수정 2015.08.1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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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광복 70년 동안 우리나라는 일본과 그야말로 양보할 수 없는 대결을 펼쳐왔는데요.

한일전에서의 통쾌한 승리는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고 또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김기범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54년 3월7일. 최초의 한일전인 스위스월드컵 예선.

우리대표팀은 지면 현해탄에 몸을 던진다는 각오로 5대 1 대승을 거뒀습니다.

해방 이후 첫 한일전 승리는 긍지와 자신감을 불어넣은 계기였습니다.

이후 스포츠 한일 맞수대결은 1960~70년대 배고프고 힘들었던 국민들에게 희망이 됐습니다.

<인터뷰> 이왕표(프로레슬러) : "정말 대한민국이 난리가 났었죠. 일본 선수를 박치기로 박았을 때 통쾌감 후련함..."

일본의 역사 왜곡이 심해지던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은 한국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였습니다.

<인터뷰> 김재박 : "내가 역전 주자가 된다는 생각에 기습을 대자는 마음.. 대야 한다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빼는 공을 운좋게 내야 안타가 되서..."

한일전 축구사에 가장 짜릿한 명승부로 꼽히는 1997년의 '도쿄 대첩'.

이민성의 극적인 역전골로 일본 열도를 침묵에 빠뜨렸습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 무대에서 거둔 한일 라이벌전 승리는, 대한민국 스포츠사를 가장 빛낸 통쾌한 기억들로 남아 있습니다.

KBS 뉴스 김기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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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 자존심을 건’ 통쾌한 한일전 명승부!
    • 입력 2015-08-15 21:58:25
    • 수정2015-08-16 09: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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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광복 70년 동안 우리나라는 일본과 그야말로 양보할 수 없는 대결을 펼쳐왔는데요. 한일전에서의 통쾌한 승리는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고 또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김기범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54년 3월7일. 최초의 한일전인 스위스월드컵 예선. 우리대표팀은 지면 현해탄에 몸을 던진다는 각오로 5대 1 대승을 거뒀습니다. 해방 이후 첫 한일전 승리는 긍지와 자신감을 불어넣은 계기였습니다. 이후 스포츠 한일 맞수대결은 1960~70년대 배고프고 힘들었던 국민들에게 희망이 됐습니다. <인터뷰> 이왕표(프로레슬러) : "정말 대한민국이 난리가 났었죠. 일본 선수를 박치기로 박았을 때 통쾌감 후련함..." 일본의 역사 왜곡이 심해지던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은 한국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였습니다. <인터뷰> 김재박 : "내가 역전 주자가 된다는 생각에 기습을 대자는 마음.. 대야 한다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빼는 공을 운좋게 내야 안타가 되서..." 한일전 축구사에 가장 짜릿한 명승부로 꼽히는 1997년의 '도쿄 대첩'. 이민성의 극적인 역전골로 일본 열도를 침묵에 빠뜨렸습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 무대에서 거둔 한일 라이벌전 승리는, 대한민국 스포츠사를 가장 빛낸 통쾌한 기억들로 남아 있습니다. KBS 뉴스 김기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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