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북한 열병식’ 의 정치학

입력 2015.09.05 (08:08) 수정 2015.09.05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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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사회주의 국가들마다 체제 선전과 군사력을 과시하기 위해 개최하는 행사, 바로 ‘열병식’입니다.

지난 5월엔 러시아에서, 그리고 이번 주엔 바로 중국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열병식이 열렸는데요,

북한 역시 당 창건 70주년인 다음 달 10일 대규모 열병식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북한의 열병식은 뭐가 다른지 그리고 이번 열병식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집중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3일, 중국 수도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

중국 국기가 올라가고, 군인들이 행진을 시작한다.

항일승전 70주년을 기념해 열린 중국의 열병식.

각국의 정상급 외빈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주빈인 시진핑 중국 주석 바로 옆에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나란히 자리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을 대신해, 최룡해 노동당 비서도 모습을 보였다.

<녹취> 시진핑(중국 주석) : "(중국은) 어떤 길을 가더라도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과거 우리가 겪었던 전쟁의 비극을 다른 민족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열병식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압도적인 행사 규모.

병력 만 2천여 명과 500여 종의 무기 장비, 200여 대의 군용기가 총동원됐다.

특히 중거리 탄도 미사일 ‘둥펑-21D’와 ‘둥펑-26’등 공개된 중국산 무기의 84 퍼센트가 처음으로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최신형이었다.

<인터뷰> 서유석(북한연구소 연구위원) : "동아시아에서 일본이나 미국을 두고 패권을 겨루고 있는 상황, 그 다음에 이제 남중국해에서 필리핀 등 국가와의 영유권 문제가 불거지는 게 있기 때문에 그런 국가들한테 전달해주는 무력시위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달 평양을 찾았던 남북의 창 취재진은 이동 과정에서 흥미로운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무언가 행사 연습에 한창인 학생들의 모습이다.

어린 학생들까지 동원돼 다음 달 당 창건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달 24일에는 좀 더 구체적인 정황이 포착됐다.

북한 위성사진이다.

평양 미림비행장에, 장갑차 등 각종 군 수송 장비로 추정되는 물체들이 집결한 것이다.

오는 10월 10일, 북한의 당 창건 70주년에 열릴 열병식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대규모 열병식 개최를 앞두고, 이를 대내외에 알리는 북한 당국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고려여행사 등 북한 전문 여행사들은 일제히 ‘열병식’ 관람을 주요 일정으로 한 여행상품 판매에 나섰다.

북한의 열병식은 어떤 모습일까.

<녹취> 2012년 4월, 김일성 100회 생일 기념 열병식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 탄생 100돌 경축 열병식을 실황 중계 해드리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가장 성대한 열병식은 2012년,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에 열렸다.

20만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정예 북한군이 북한 최고 지도자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

북한은 열병식 사상 가장 많은 34종 880여 대의 무기와 장비를 선보이며 군사력을 과시했다.

<인터뷰> 유호열(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 "자기들 체제의 위업을 과시하는 그런 대외적인 목적도 있고, 내부적으로는 그만큼 정권이 강건하다, 이런 것을 선전하기 위한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의미가 굉장히 강하다고 봅니다."

북한 최초의 열병식은 1948년, 북한 정규군 창설과 함께 시작됐다.

서른여섯 살의 젊은 김일성은 연설을 통해 최초 열병식 행사를 기념했다.

<녹취> 1948년 2월, 김일성 육성 연설(북한군 창건 기념 열병식)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을 위하여 앞으로 나갑시다. 조선인민의 강병인 조선인민군 만세. 만세~만세~"

정권 수립 초기, 광복절 행사 성격으로 진행되던 열병식은 1960년 대 이후 그 개최 빈도가 급격히 줄어든다.

김일성 1인 체제의 안정기, 여기에 경제 성장이 뒷받침되면서 내부 통합의 필요성이 약화된 탓이라는 분석이다.

이후 1980년 대 까지 불과 3차례에 그쳤던 열병식이 부활한 것은 김정일 시대가 개막한 1990년 대.

여기엔 군이 나라의 중심이라는 이른바 ‘선군정치’의 영향이 컸다.

<인터뷰> 유호열(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 "리더십과 군의 어떤 위력을 과시하고, 그것이 바로 그들이 표방하고 있는 선군 정치를 정당화하는 그런 하나의 방편으로 이러한 군사 열병식을, 군사 퍼레이드를 활용했다.."

열병식에 대한 김정일의 애착은 대단했다.

열병식을 잘 하는 것은 당 선군정치의 위력을 대내외에 힘 있게 시위하는 것”이라고 강조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이 가장 힘을 쏟은 것은 참여 군인의 선발이었다.

북한 열병식에 참여했던 군인 출신 탈북민을 통해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인터뷰> 이소연(군인 출신 탈북자/열병식 참가) : "일단 키를 먼저 봅니다. 키가 여성들 같은 경우에는 160을 지나야 되는데 한 1미터 58정도까지는 봐주고요. 키를 일단 보고, 두 번째는 출신 성분, 저희 대대에 여군만 120명이에요. 그 다음에 남자 군인들이 한 3~400명 정도가 있고요. 그런데 그 속에서 제가 선출됐다고 하는 것은 이미 당의 신임을 얻었다는 거죠."

선발된 군인들은 열병식 6개월 전부터 합숙에 돌입하는데, 다리를 75도로 들어 올린 채 걷는 고난도 훈련 과정에서 갖은 질병이 이들을 괴롭힌다고 한다.

<인터뷰> 이소연(군인 출신 탈북자/열병식 참가) :" 발굽에다가 징 같은 것 박는 것은 누구나가 하는 거죠. 그런데 징을 박다가 그것이 잘못 올라와서 발바닥을 찌르게 되면 그것에 염증이 오고,또 더욱이 다리, 관절 같은 데에 마비가 오기 때문에 그 열병식 전 기간에 화장실을 가게 되면 다리에 마비가 와가지고 앉지를 못했고, 누구나가 그때 제일 많이 호소했던 것이 피 오줌이 나온다..

2010년, 당 창건 65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이 대중 앞에 처음 등장했다.

후계자로 지명된 후 2주 만에 수많은 군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열병식은 형식면에서도 이전과 달랐다.

전례 없는 열병식 생중계에, 외신의 취재까지 대폭 허용했다.

<녹취> 엘리나 조(CNN 기자) : "폐쇄적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국가 가운데 하나인 북한에 서양 언론이 초대된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이후, 지쳐 주저앉거나 실려 나가는 군인의 모습까지 가감 없이 취재를 허용하는 파격은 김정은 시대 새로운 열병식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3대 세습으로 권좌에 오른 2012년, 김정은은 최초 육성 연설을 선보였다.

<녹취> 조선중앙TV(2012년 4월, 김정은 육성 연설/김일성 100회 생일’ 열병식) : "건군 역사에 전례 없는 오늘의 열병식은 위대한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군 건설 업적을 길이 빛내이며.."

앞선 2010년, 열병식을 통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뒤 이번엔 목소리까지 공개한 것이다.

이는 선대인 김정일 위원장의 패턴과도 유사하다.

1985년 광복 40주년 열병식에서 후계자 데뷔무대를 가진 김정일은 1992년 열병식에선 육성 메시지를 남겼다.

<녹취> 1992년, 김정일 육성 메시지(북한군 창설 기념 열병식) :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

열병식을 통해 후계자를 등장시키는 등 체제 세습의 장으로 열병식을 활용해 온 북한..

이는 국력 과시의 목적으로 각국 대표단을 초청해 열병식을 개최하는 중국, 러시아와는 차별화된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인터뷰> 유호열(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 "국가뿐만 아니라 군대 역시 수령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하는 개인적 우상화의 하나의 수단으로 열병식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 다른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열병식의 의미, 가치와는 차이가 있다.."

열병식을 통해 ‘백두혈통’을 강조하고 김일성을 꼭 빼닮은 모습을 연출해 주민들의 환심을 사려는 북한 당국의 의도는 적중했다.

<인터뷰> 이소연(군인 출신 탈북자/열병식 참여) : "그 열병식이라는 걸 통해서 김정은이 김일성과 똑같은 헤어스타일부터 시작해서 정말 몸까지도 같이 만들어져서 나왔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에게는 김일성이 환생해왔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그것이 좀 큰 효과는 있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지난 2월, 북한 노동당은 당 창건 70주년 추진과제를 발표했다.

열병식과 평양시 군중시위를 성대히 진행하자는 것이 포함돼있다.

북한이 올해, 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에 이토록 힘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서유석(북한연구소 연구위원) : "김정은 체제 들어와서 가장 크게 열렸던 열병식이 2012년, 2013년 열병식인데 선대 수령에 대한 예의를 후계자로서 갖춘다는 그런 성격이 강했습니다. 예우 차원이었죠. 그런데 그것이 지금 시점에 와서는 김정은 시대를 알려야 한다는, 당은 내가 확실하게 움켜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가 있어요."

대내외에 ‘김정은의 북한’을 더욱 공식화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번 열병식이 북한의 가장 큰 행사인 당 창건일에 맞춰 열리는데다, 올해가 이른바 ‘꺾어지는 해’인 70주년이라는 점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열병식의 규모와 더불어 최대 관심사는 바로 신무기 공개이다.

북한은 지난 2012년 열병식에서 사거리가 최대 만 2천킬로미터로 추정되는 신형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공개한데 이어, 2013년엔 진위 여부가 검증되지 않은 ‘핵배낭’까지 등장시킨 바 있다.

또 하나가 더 있다.

지난 5월 북한이 수중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SLBM이 이번 열병식에 등장할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이다.

열병식이 진행되는 당 창건 70주년을 전후해, 북한이 무력시위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

고위급 접촉 타결 이후 처음 열리는 이번 열병식이 향후 남북관계에 변곡점이 될 거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다.

국력 과시에서 나아가 3대 세습 정당화의 수단으로 열병식을 변형, 계승해 온 북한!

10월 10일, 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에서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금 전 세계의 눈이 북한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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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북한 열병식’ 의 정치학
    • 입력 2015-09-05 08:31:23
    • 수정2015-09-05 22:33:10
    남북의 창
<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사회주의 국가들마다 체제 선전과 군사력을 과시하기 위해 개최하는 행사, 바로 ‘열병식’입니다.

지난 5월엔 러시아에서, 그리고 이번 주엔 바로 중국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열병식이 열렸는데요,

북한 역시 당 창건 70주년인 다음 달 10일 대규모 열병식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북한의 열병식은 뭐가 다른지 그리고 이번 열병식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집중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3일, 중국 수도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

중국 국기가 올라가고, 군인들이 행진을 시작한다.

항일승전 70주년을 기념해 열린 중국의 열병식.

각국의 정상급 외빈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주빈인 시진핑 중국 주석 바로 옆에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나란히 자리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을 대신해, 최룡해 노동당 비서도 모습을 보였다.

<녹취> 시진핑(중국 주석) : "(중국은) 어떤 길을 가더라도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과거 우리가 겪었던 전쟁의 비극을 다른 민족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열병식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압도적인 행사 규모.

병력 만 2천여 명과 500여 종의 무기 장비, 200여 대의 군용기가 총동원됐다.

특히 중거리 탄도 미사일 ‘둥펑-21D’와 ‘둥펑-26’등 공개된 중국산 무기의 84 퍼센트가 처음으로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최신형이었다.

<인터뷰> 서유석(북한연구소 연구위원) : "동아시아에서 일본이나 미국을 두고 패권을 겨루고 있는 상황, 그 다음에 이제 남중국해에서 필리핀 등 국가와의 영유권 문제가 불거지는 게 있기 때문에 그런 국가들한테 전달해주는 무력시위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달 평양을 찾았던 남북의 창 취재진은 이동 과정에서 흥미로운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무언가 행사 연습에 한창인 학생들의 모습이다.

어린 학생들까지 동원돼 다음 달 당 창건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달 24일에는 좀 더 구체적인 정황이 포착됐다.

북한 위성사진이다.

평양 미림비행장에, 장갑차 등 각종 군 수송 장비로 추정되는 물체들이 집결한 것이다.

오는 10월 10일, 북한의 당 창건 70주년에 열릴 열병식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대규모 열병식 개최를 앞두고, 이를 대내외에 알리는 북한 당국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고려여행사 등 북한 전문 여행사들은 일제히 ‘열병식’ 관람을 주요 일정으로 한 여행상품 판매에 나섰다.

북한의 열병식은 어떤 모습일까.

<녹취> 2012년 4월, 김일성 100회 생일 기념 열병식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 탄생 100돌 경축 열병식을 실황 중계 해드리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가장 성대한 열병식은 2012년,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에 열렸다.

20만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정예 북한군이 북한 최고 지도자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

북한은 열병식 사상 가장 많은 34종 880여 대의 무기와 장비를 선보이며 군사력을 과시했다.

<인터뷰> 유호열(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 "자기들 체제의 위업을 과시하는 그런 대외적인 목적도 있고, 내부적으로는 그만큼 정권이 강건하다, 이런 것을 선전하기 위한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의미가 굉장히 강하다고 봅니다."

북한 최초의 열병식은 1948년, 북한 정규군 창설과 함께 시작됐다.

서른여섯 살의 젊은 김일성은 연설을 통해 최초 열병식 행사를 기념했다.

<녹취> 1948년 2월, 김일성 육성 연설(북한군 창건 기념 열병식)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을 위하여 앞으로 나갑시다. 조선인민의 강병인 조선인민군 만세. 만세~만세~"

정권 수립 초기, 광복절 행사 성격으로 진행되던 열병식은 1960년 대 이후 그 개최 빈도가 급격히 줄어든다.

김일성 1인 체제의 안정기, 여기에 경제 성장이 뒷받침되면서 내부 통합의 필요성이 약화된 탓이라는 분석이다.

이후 1980년 대 까지 불과 3차례에 그쳤던 열병식이 부활한 것은 김정일 시대가 개막한 1990년 대.

여기엔 군이 나라의 중심이라는 이른바 ‘선군정치’의 영향이 컸다.

<인터뷰> 유호열(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 "리더십과 군의 어떤 위력을 과시하고, 그것이 바로 그들이 표방하고 있는 선군 정치를 정당화하는 그런 하나의 방편으로 이러한 군사 열병식을, 군사 퍼레이드를 활용했다.."

열병식에 대한 김정일의 애착은 대단했다.

열병식을 잘 하는 것은 당 선군정치의 위력을 대내외에 힘 있게 시위하는 것”이라고 강조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이 가장 힘을 쏟은 것은 참여 군인의 선발이었다.

북한 열병식에 참여했던 군인 출신 탈북민을 통해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인터뷰> 이소연(군인 출신 탈북자/열병식 참가) : "일단 키를 먼저 봅니다. 키가 여성들 같은 경우에는 160을 지나야 되는데 한 1미터 58정도까지는 봐주고요. 키를 일단 보고, 두 번째는 출신 성분, 저희 대대에 여군만 120명이에요. 그 다음에 남자 군인들이 한 3~400명 정도가 있고요. 그런데 그 속에서 제가 선출됐다고 하는 것은 이미 당의 신임을 얻었다는 거죠."

선발된 군인들은 열병식 6개월 전부터 합숙에 돌입하는데, 다리를 75도로 들어 올린 채 걷는 고난도 훈련 과정에서 갖은 질병이 이들을 괴롭힌다고 한다.

<인터뷰> 이소연(군인 출신 탈북자/열병식 참가) :" 발굽에다가 징 같은 것 박는 것은 누구나가 하는 거죠. 그런데 징을 박다가 그것이 잘못 올라와서 발바닥을 찌르게 되면 그것에 염증이 오고,또 더욱이 다리, 관절 같은 데에 마비가 오기 때문에 그 열병식 전 기간에 화장실을 가게 되면 다리에 마비가 와가지고 앉지를 못했고, 누구나가 그때 제일 많이 호소했던 것이 피 오줌이 나온다..

2010년, 당 창건 65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이 대중 앞에 처음 등장했다.

후계자로 지명된 후 2주 만에 수많은 군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열병식은 형식면에서도 이전과 달랐다.

전례 없는 열병식 생중계에, 외신의 취재까지 대폭 허용했다.

<녹취> 엘리나 조(CNN 기자) : "폐쇄적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국가 가운데 하나인 북한에 서양 언론이 초대된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이후, 지쳐 주저앉거나 실려 나가는 군인의 모습까지 가감 없이 취재를 허용하는 파격은 김정은 시대 새로운 열병식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3대 세습으로 권좌에 오른 2012년, 김정은은 최초 육성 연설을 선보였다.

<녹취> 조선중앙TV(2012년 4월, 김정은 육성 연설/김일성 100회 생일’ 열병식) : "건군 역사에 전례 없는 오늘의 열병식은 위대한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군 건설 업적을 길이 빛내이며.."

앞선 2010년, 열병식을 통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뒤 이번엔 목소리까지 공개한 것이다.

이는 선대인 김정일 위원장의 패턴과도 유사하다.

1985년 광복 40주년 열병식에서 후계자 데뷔무대를 가진 김정일은 1992년 열병식에선 육성 메시지를 남겼다.

<녹취> 1992년, 김정일 육성 메시지(북한군 창설 기념 열병식) :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

열병식을 통해 후계자를 등장시키는 등 체제 세습의 장으로 열병식을 활용해 온 북한..

이는 국력 과시의 목적으로 각국 대표단을 초청해 열병식을 개최하는 중국, 러시아와는 차별화된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인터뷰> 유호열(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 "국가뿐만 아니라 군대 역시 수령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하는 개인적 우상화의 하나의 수단으로 열병식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 다른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열병식의 의미, 가치와는 차이가 있다.."

열병식을 통해 ‘백두혈통’을 강조하고 김일성을 꼭 빼닮은 모습을 연출해 주민들의 환심을 사려는 북한 당국의 의도는 적중했다.

<인터뷰> 이소연(군인 출신 탈북자/열병식 참여) : "그 열병식이라는 걸 통해서 김정은이 김일성과 똑같은 헤어스타일부터 시작해서 정말 몸까지도 같이 만들어져서 나왔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에게는 김일성이 환생해왔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그것이 좀 큰 효과는 있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지난 2월, 북한 노동당은 당 창건 70주년 추진과제를 발표했다.

열병식과 평양시 군중시위를 성대히 진행하자는 것이 포함돼있다.

북한이 올해, 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에 이토록 힘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서유석(북한연구소 연구위원) : "김정은 체제 들어와서 가장 크게 열렸던 열병식이 2012년, 2013년 열병식인데 선대 수령에 대한 예의를 후계자로서 갖춘다는 그런 성격이 강했습니다. 예우 차원이었죠. 그런데 그것이 지금 시점에 와서는 김정은 시대를 알려야 한다는, 당은 내가 확실하게 움켜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가 있어요."

대내외에 ‘김정은의 북한’을 더욱 공식화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번 열병식이 북한의 가장 큰 행사인 당 창건일에 맞춰 열리는데다, 올해가 이른바 ‘꺾어지는 해’인 70주년이라는 점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열병식의 규모와 더불어 최대 관심사는 바로 신무기 공개이다.

북한은 지난 2012년 열병식에서 사거리가 최대 만 2천킬로미터로 추정되는 신형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공개한데 이어, 2013년엔 진위 여부가 검증되지 않은 ‘핵배낭’까지 등장시킨 바 있다.

또 하나가 더 있다.

지난 5월 북한이 수중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SLBM이 이번 열병식에 등장할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이다.

열병식이 진행되는 당 창건 70주년을 전후해, 북한이 무력시위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

고위급 접촉 타결 이후 처음 열리는 이번 열병식이 향후 남북관계에 변곡점이 될 거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다.

국력 과시에서 나아가 3대 세습 정당화의 수단으로 열병식을 변형, 계승해 온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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