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만월대 공동 발굴…“함께 찾는 역사”

입력 2015.09.05 (08:20) 수정 2015.09.05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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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남북통일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가는 [통일로 미래로]입니다.

북한 땅 개성하면 무엇이 떠오르세요?

개성상인, 개성인삼, 그리고 최근엔 개성공단까지...

그런데 또 하나, 고려 시대 수도였던 개성엔 고려의 왕궁터 만월대가 있습니다.

지금 만월대에서는 남북의 역사학자들이 모여 폐허 속에서 역사의 흔적을 찾아내는 발굴 작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는데요,

이현정 리포터가 만월대 공동 발굴 현장을 공개합니다.

<리포트>

개성 송악산 남쪽 기슭,

꽤 큰 규모의 베이스캠프가 설치됩니다.

4주간 이곳을 지킬 주인공은 남북 역사학자들,

그리고 이들이 찾은 곳은 총 25만 제곱미터의 고려의 왕궁터, 만월대입니다.

고려 시대 왕궁터, 개성 만월대를 디지털로 복원한 모습입니다.

400여 년간 고려왕조와 흥망성쇠를 함께 했던 만월대는 불에 타 없어진 뒤 지금은 일부 계단과 성벽만 남아있는데요.

현재 남북 역사학자들이 사라진 역사의 흔적을 되찾기 위해 공동 발굴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남과 북 역사학자들이 만월대 공동 발굴에 처음 나선 건 지난 2007년.

한때 3년 가까이 중단된 적도 있지만 현재 만월대 서부건축군의 50% 정도 발굴이 진행됐다고 하는데요.

버금 아(亞)자형의 전각터를 확인했고, 원통형 고려청자를 처음 출토되는 등 굵직한 성과도 거뒀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남과 북의 발굴단원들...

<녹취> 남측 발굴단원 : "다들 오래 보신 분들이니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녹취> 조선중앙역사박물관 학예사 : "남측 선생들도 저쪽에서 해일 동무랑 (작업)하는데서...여기는 작업을 하기가 불편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날씨가 심상치 않습니다.

<녹취> 조선중앙역사박물관 학예사 : "(비올 지도 모르니까) 현장 안에는 못 들어가고, 작업하다가 비가 올 경우 철수할 수 있게 여기서 테두리 작업을 하자고요."

궂은 날씨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비닐을 치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금세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녹취> 김태영(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원) : "비가 오면 그 다음날이 힘들어집니다. 이걸 (비닐을) 다 걷어야 되고 이걸 친다고 해도 물이 또 고이고 그러면 물을 퍼내야하고 땅이 마르길 기다려야 돼서 비 한번 오면 (작업 기간이) 최소 하루 이틀이 더 늘어나는 걸로 생각하시면 돼요."

남북이 합의한 발굴 일정은 불과 4주. 단원들의 마음은 급해집니다.

다행히 지나가는 비였던 모양입니다.

1분 1초가 아까운 발굴단, 서둘러 움직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맨땅인지. 특별한 유물이 잠들어 있는지.

아직은 풀과 흙에 뒤덮여 진짜 모습은 오리무중입니다.

<녹취> 박성진(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 "오늘 일 끝날 때까지는 가봐야 (결과가) 나올 거 같은데 생각보단 (유물이) 쉽게 나올 거 같진 않네요."

파고, 파고, 또 파내도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유물들.

<녹취> " 태우 선생님, 이거 도기 잠깐 봐줘요."

<녹취> "이런 기형(그릇 모양)은 아마 여기서 처음 나온 것 같아서 북측도 잘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겨우 찾아낸 유물도 도기의 밑동 뿐...

시간은 없고, 찾고 싶은 건 산더미인 단원들은 애가 탑니다.

<녹취> 김태영(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원) : "(발굴하는 게 참 하는 게 많네요?) 네, 이게(발굴이) 대부분 ‘인디아나존스’라고 생각하시다가 막상 해보면 더 극히 일부분, 준비할 거 뒤처리할 거 그런 게(작업이) 많아서 (놀라시곤 하죠)"

고된 오전 작업을 마쳤더니 도시락이 도착해 있습니다.

<녹취> "이 집의 순두부가 맛있어요.

<녹취> " 새알 같다. 기대 된다."

개성의 명물 ‘민속여관’에서 공수한 도시락인데요.

발굴 기간, 줄곧 현장에서 지내야하는 대원들에게 배달 도시락은 한줄기의 빛과 같습니다.

<녹취> 김경민(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원) : "입맛에 잘 맞는 거 같아요. 맛있습니다."

<녹취> 박성진(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 "식사 자체도 보시면 알겠지만 북측에서 신경을 많이 써서 정성도 많이 들어간 편이죠."

그리운 집밥 만큼은 아니어도 맛있게 배를 채우고 다시 힘을 내봅니다.

이번 조사의 최대 고비는 작열하는 태양, 그리고 비...

열악한 환경이지만 단원들은 발굴에 속도를 내는데요.

너무 서둘렀나요?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녹취> "(어디가 끼인(다친) 거예요?) 아이고, 손톱이 나가겠는데."

하지만 부상보다도 일을 중단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 고통스럽습니다.

<녹취> 남보라(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원) : "(제가) 일을 못하는 만큼 다른 분들이 일을 많이 해야 하니까 미안한 거죠. 미안할 수밖에 없죠."

부상에도 멈추지 않고 쉼 없이 진행했던 발굴 작업.

드디어 왕궁의 계단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폭 13.4m, 얼핏 보기에도 규모가 웅장한데요,

그동안 만월대 내에서 발견된 계단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합니다.

뙤약볕 속에 흘렸던 땀방울에 대한 보상을 받는 순간입니다.

<녹취> 강소희(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원) : "얼마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중요한 계단이 나왔다는 것은 정말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녹취> 최광식(남북역사학자협의회 위원장) : "(남북) 역사학자들이 만나서 서로의 문화적인 동질성, 역사적인 동질성을 항상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러면서 남북이 서로 함께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거죠. 이제 그 다음 다른 (님북 교류) 사업으로 확대되는 그런 가교 역할도 될 수 있다."

오락가락, 남북 관계와 관계없이 오늘도 만월대에선 남북의 역사학자들이 유물 발굴을 위해 땀 흘리고 있는데요.

퍼즐을 맞추듯, 차근차근 하나씩 역사의 기록들을 함께 찾아가는 것.

이런 노력들이 70년 동안 벌어진 남북 간의 거리를 좁히는 마중물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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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만월대 공동 발굴…“함께 찾는 역사”
    • 입력 2015-09-05 08:34:06
    • 수정2015-09-05 22: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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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남북통일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가는 [통일로 미래로]입니다.

북한 땅 개성하면 무엇이 떠오르세요?

개성상인, 개성인삼, 그리고 최근엔 개성공단까지...

그런데 또 하나, 고려 시대 수도였던 개성엔 고려의 왕궁터 만월대가 있습니다.

지금 만월대에서는 남북의 역사학자들이 모여 폐허 속에서 역사의 흔적을 찾아내는 발굴 작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는데요,

이현정 리포터가 만월대 공동 발굴 현장을 공개합니다.

<리포트>

개성 송악산 남쪽 기슭,

꽤 큰 규모의 베이스캠프가 설치됩니다.

4주간 이곳을 지킬 주인공은 남북 역사학자들,

그리고 이들이 찾은 곳은 총 25만 제곱미터의 고려의 왕궁터, 만월대입니다.

고려 시대 왕궁터, 개성 만월대를 디지털로 복원한 모습입니다.

400여 년간 고려왕조와 흥망성쇠를 함께 했던 만월대는 불에 타 없어진 뒤 지금은 일부 계단과 성벽만 남아있는데요.

현재 남북 역사학자들이 사라진 역사의 흔적을 되찾기 위해 공동 발굴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남과 북 역사학자들이 만월대 공동 발굴에 처음 나선 건 지난 2007년.

한때 3년 가까이 중단된 적도 있지만 현재 만월대 서부건축군의 50% 정도 발굴이 진행됐다고 하는데요.

버금 아(亞)자형의 전각터를 확인했고, 원통형 고려청자를 처음 출토되는 등 굵직한 성과도 거뒀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남과 북의 발굴단원들...

<녹취> 남측 발굴단원 : "다들 오래 보신 분들이니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녹취> 조선중앙역사박물관 학예사 : "남측 선생들도 저쪽에서 해일 동무랑 (작업)하는데서...여기는 작업을 하기가 불편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날씨가 심상치 않습니다.

<녹취> 조선중앙역사박물관 학예사 : "(비올 지도 모르니까) 현장 안에는 못 들어가고, 작업하다가 비가 올 경우 철수할 수 있게 여기서 테두리 작업을 하자고요."

궂은 날씨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비닐을 치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금세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녹취> 김태영(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원) : "비가 오면 그 다음날이 힘들어집니다. 이걸 (비닐을) 다 걷어야 되고 이걸 친다고 해도 물이 또 고이고 그러면 물을 퍼내야하고 땅이 마르길 기다려야 돼서 비 한번 오면 (작업 기간이) 최소 하루 이틀이 더 늘어나는 걸로 생각하시면 돼요."

남북이 합의한 발굴 일정은 불과 4주. 단원들의 마음은 급해집니다.

다행히 지나가는 비였던 모양입니다.

1분 1초가 아까운 발굴단, 서둘러 움직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맨땅인지. 특별한 유물이 잠들어 있는지.

아직은 풀과 흙에 뒤덮여 진짜 모습은 오리무중입니다.

<녹취> 박성진(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 "오늘 일 끝날 때까지는 가봐야 (결과가) 나올 거 같은데 생각보단 (유물이) 쉽게 나올 거 같진 않네요."

파고, 파고, 또 파내도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유물들.

<녹취> " 태우 선생님, 이거 도기 잠깐 봐줘요."

<녹취> "이런 기형(그릇 모양)은 아마 여기서 처음 나온 것 같아서 북측도 잘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겨우 찾아낸 유물도 도기의 밑동 뿐...

시간은 없고, 찾고 싶은 건 산더미인 단원들은 애가 탑니다.

<녹취> 김태영(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원) : "(발굴하는 게 참 하는 게 많네요?) 네, 이게(발굴이) 대부분 ‘인디아나존스’라고 생각하시다가 막상 해보면 더 극히 일부분, 준비할 거 뒤처리할 거 그런 게(작업이) 많아서 (놀라시곤 하죠)"

고된 오전 작업을 마쳤더니 도시락이 도착해 있습니다.

<녹취> "이 집의 순두부가 맛있어요.

<녹취> " 새알 같다. 기대 된다."

개성의 명물 ‘민속여관’에서 공수한 도시락인데요.

발굴 기간, 줄곧 현장에서 지내야하는 대원들에게 배달 도시락은 한줄기의 빛과 같습니다.

<녹취> 김경민(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원) : "입맛에 잘 맞는 거 같아요. 맛있습니다."

<녹취> 박성진(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 "식사 자체도 보시면 알겠지만 북측에서 신경을 많이 써서 정성도 많이 들어간 편이죠."

그리운 집밥 만큼은 아니어도 맛있게 배를 채우고 다시 힘을 내봅니다.

이번 조사의 최대 고비는 작열하는 태양, 그리고 비...

열악한 환경이지만 단원들은 발굴에 속도를 내는데요.

너무 서둘렀나요?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녹취> "(어디가 끼인(다친) 거예요?) 아이고, 손톱이 나가겠는데."

하지만 부상보다도 일을 중단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 고통스럽습니다.

<녹취> 남보라(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원) : "(제가) 일을 못하는 만큼 다른 분들이 일을 많이 해야 하니까 미안한 거죠. 미안할 수밖에 없죠."

부상에도 멈추지 않고 쉼 없이 진행했던 발굴 작업.

드디어 왕궁의 계단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폭 13.4m, 얼핏 보기에도 규모가 웅장한데요,

그동안 만월대 내에서 발견된 계단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합니다.

뙤약볕 속에 흘렸던 땀방울에 대한 보상을 받는 순간입니다.

<녹취> 강소희(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원) : "얼마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중요한 계단이 나왔다는 것은 정말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녹취> 최광식(남북역사학자협의회 위원장) : "(남북) 역사학자들이 만나서 서로의 문화적인 동질성, 역사적인 동질성을 항상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러면서 남북이 서로 함께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거죠. 이제 그 다음 다른 (님북 교류) 사업으로 확대되는 그런 가교 역할도 될 수 있다."

오락가락, 남북 관계와 관계없이 오늘도 만월대에선 남북의 역사학자들이 유물 발굴을 위해 땀 흘리고 있는데요.

퍼즐을 맞추듯, 차근차근 하나씩 역사의 기록들을 함께 찾아가는 것.

이런 노력들이 70년 동안 벌어진 남북 간의 거리를 좁히는 마중물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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