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리포트] 종자 전쟁 시대…강국의 비결

입력 2016.02.20 (08:32) 수정 2016.02.2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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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알싸한 청양고추, 즐겨 드시죠?

그런데 종자는 돈을 주고 외국에서 사옵니다.

청양고추 종자는 세계 1위 다국적 종자 기업인 '몬산토' 소유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는 중국 기업이 스위스 종자 기업 신젠타를 52조 원에 인수해 화제가 됐는데, 이처럼 종자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종자 전쟁 시대를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일찍이 품종 개발에 공을 들인 나라가 있는데, 바로 네덜란드입니다.

허솔지 순회특파원이 종자 강국, 네덜란드의 비결을 들여다봤습니다.

<리포트>

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아 '네덜란드'라는 이름도 '낮은 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다 보니 간척 사업이 중요했고, 바닷물을 퍼올리는 동력원, 풍차는 네덜란드의 상징이 됐습니다.

그리고 네덜란드 하면 떠오르는 또 한 가지, 바로 튤립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 시내 광장에서 열리는 재래시장.

빵과 채소, 과일까지 먹을거리가 가득한 시장의 한쪽은 형형색색, 향기 가득한 꽃입니다.

<인터뷰> 페터 푸트(꽃 판매 상인) : "네덜란드에서는 버스정류장에 다섯 명이 서 있다면, 그중 한 명은 분명 꽃을 들고 있을 거예요. 꽃을 보면 늘 사고 싶어 하죠."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꽃은 튤립입니다.

<인터뷰> 아너커 세일런(꽃 구매자) : "튤립은 색이 다양하고 신선해요. 네덜란드의 꽃이기 때문에 자랑스러워하기도 하죠."

네덜란드인들의 튤립 사랑은 이처럼 유별납니다.

그런데 이 튤립의 원산지가 사실은 네덜란드가 아닙니다.

야생 튤립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 히말라야 산맥입니다.

척박한 산악 지대에서 자라던 튤립은 16세기 오스만투르크 제국 시절 이스탄불을 거쳐 17세기 들어서야 네덜란드로 전해집니다.

<인터뷰> 슈어츠 반 에이덴(튤립 박물관장) : "17세기 초반, 유럽에서 튤립의 인기는 높았습니다. 튤립 거래는 아름다움에 반한 부자들의 취미 활동이었죠."

그런데 튤립 인기가 높아지면서 종자, 즉 알뿌리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급등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바이러스에 감염돼 독특한 모양과 색을 갖는 튤립은 엄청난 가격에 거래됐습니다.

1636년 네덜란드 목수의 연 소득이 250길더였던 시절,

렘브란트가 명화 '야경'을 그리고 천6백 길더를 받을 때 최고급 알뿌리 하나는 5천2백 길더였습니다.

<인터뷰> 슈어츠 반 에이덴(튤립 박물관장) : "튤립 알뿌리 가격이 2배, 3배, 4배로 해마다 치솟았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자본주의적 과열 투기 현상으로 기록되고 있죠."

하지만 천정부지 가격은 1637년 2월 어느 날 마치 거짓말처럼 거래가 뚝 끊기면서 폭락합니다.

가격에 낀 거품이 한순간에 꺼져버린 겁니다.

투기가 사라지자 튤립은 일반적인 농작물로 자리를 잡았고, 1900년을 전후해 본격적인 종자 연구가 시작됩니다.

특히 2차 대전 때 알뿌리가 식량 대용으로도 쓰이면서 종자 개량 연구가 보다 활발해 집니다.

이런 오랜 노력의 결과를 볼 수 있는 곳이 네덜란드의 종자 시장입니다.

현재 공식적으로 등록된 튤립 종자는 5천5백 여 가지,

실제 재배되는 튤립도 3백 종이 넘는데, 전 세계 튤립의 90%는 네덜란드 산입니다.

<인터뷰> 테오 스타츠(시장 상인) : "여기에는 최소 3천 개의 품종이 있습니다. 다양한 품종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색의 튤립 구근도 팔고 있습니다."

튤립으로 시작한 종자 산업에 대한 투자는 100년 넘는 역사를 통해 네덜란드를 종자 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투자의 중심에는 골든 트라이앵글이라 불리는 삼각 구조가 있습니다.

대학 연구소의 유리 온실.

만 제곱미터나 되는 이 시설에선 온도와 습도, 이산화탄소 농도 등을 달리해가며 종자 연구가 한창입니다.

이 연구소는 이처럼 종자에 대한 기초 연구만을 합니다.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종자 기업은 신품종을 개발합니다.

정부는 개발된 신품종을 검증하고 안정성을 관리합니다.

이처럼 정부와 기업, 연구 기관이 각자 역할 분담을 해 효율적인 종자 개발을 해 나가는 체계가 바로 '골든 트라이앵글'입니다.

<인터뷰> 한스 돈스(종자 개발 연구원) : "(기초 연구를 바탕으로) 기업체들은 새로운 품종을 개발합니다. 그렇게 개발된 품종이 농가에 판매돼 재배할 수 있게 되죠."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인데도 활기가 넘치는 이곳, 세계 최대 규모의 꽃 경매장입니다.

네덜란드 전역의 8천여 농가가 재배한 꽃이 경매에 부쳐지고, 낙찰된 꽃은 네덜란드 국내는 물론 20여 개국으로 팔려나갑니다.

이곳에서는 경매를 통해 하루 5천만 송이가 넘는 꽃이 거래됩니다. 금액으로 따지면 하루 880만 유로, 우리 돈으로 115억 원이 넘습니다.

골든 트라이앵글의 선순환으로 네덜란드가 전 세계 화훼 종자의 43%를 점유하고 있다 보니 다양한 품종 재배가 가능해졌고, 결국 화훼 유통의 중심지까지 된 겁니다.

네덜란드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농산물 수출국인 이유도 종자 산업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인터뷰> 에블린 멜처(경매장 홍보담당자) : "네덜란드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아주 많고 이 제품들이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로 수출됩니다. 그래서 꽃과 화분은 네덜란드의 매우 중요한 제품이죠."

네덜란드는 종자 산업을 통해 막대한 로열티 수익도 올리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종자 기업들이 보유한 토마토 품종은 무려 4백 가지 이상, 현재 토마토 종자 1g의 가격은 우리 돈 10만 원대로 금보다 2배 비쌉니다.

<인터뷰> 르네 반 파슨(토마토 협동조합 관계자) : "노란 토마토, 오렌지 토마토, 스낵 토마토, 체리 토마토, 비프 토마토 등 다양합니다. 종자 수출은 매우 중요해요. 갈수록 종자 시장이 글로벌화되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가 외국에 지불하는 농작물 로열티는 한 해 평균 160억 원,

특히 네덜란드에는 매년 40억 원가량을 지불합니다.

반면 로열티로 벌어들이는 돈은 고작 1억 원 정도입니다.

종자 강국 네덜란드에서 배워야 할 점은 분명합니다.

<인터뷰> 한스 돈스(종자 개발 연구원) : "먼저 네덜란드에는 150년이라는 긴 시간이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연구를 위해 기업체와 정부가 투자해야 하고, 그만큼 연구기관은 유용한 연구 결과를 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동양의 꽃이었던 튤립이 네덜란드의 상징이 된 이유,

다름 아닌 체계적 구조를 바탕으로 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라고 종자 강국 네덜란드는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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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 리포트] 종자 전쟁 시대…강국의 비결
    • 입력 2016-02-20 08:46:14
    • 수정2016-02-20 09:13:43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알싸한 청양고추, 즐겨 드시죠?

그런데 종자는 돈을 주고 외국에서 사옵니다.

청양고추 종자는 세계 1위 다국적 종자 기업인 '몬산토' 소유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는 중국 기업이 스위스 종자 기업 신젠타를 52조 원에 인수해 화제가 됐는데, 이처럼 종자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종자 전쟁 시대를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일찍이 품종 개발에 공을 들인 나라가 있는데, 바로 네덜란드입니다.

허솔지 순회특파원이 종자 강국, 네덜란드의 비결을 들여다봤습니다.

<리포트>

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아 '네덜란드'라는 이름도 '낮은 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다 보니 간척 사업이 중요했고, 바닷물을 퍼올리는 동력원, 풍차는 네덜란드의 상징이 됐습니다.

그리고 네덜란드 하면 떠오르는 또 한 가지, 바로 튤립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 시내 광장에서 열리는 재래시장.

빵과 채소, 과일까지 먹을거리가 가득한 시장의 한쪽은 형형색색, 향기 가득한 꽃입니다.

<인터뷰> 페터 푸트(꽃 판매 상인) : "네덜란드에서는 버스정류장에 다섯 명이 서 있다면, 그중 한 명은 분명 꽃을 들고 있을 거예요. 꽃을 보면 늘 사고 싶어 하죠."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꽃은 튤립입니다.

<인터뷰> 아너커 세일런(꽃 구매자) : "튤립은 색이 다양하고 신선해요. 네덜란드의 꽃이기 때문에 자랑스러워하기도 하죠."

네덜란드인들의 튤립 사랑은 이처럼 유별납니다.

그런데 이 튤립의 원산지가 사실은 네덜란드가 아닙니다.

야생 튤립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 히말라야 산맥입니다.

척박한 산악 지대에서 자라던 튤립은 16세기 오스만투르크 제국 시절 이스탄불을 거쳐 17세기 들어서야 네덜란드로 전해집니다.

<인터뷰> 슈어츠 반 에이덴(튤립 박물관장) : "17세기 초반, 유럽에서 튤립의 인기는 높았습니다. 튤립 거래는 아름다움에 반한 부자들의 취미 활동이었죠."

그런데 튤립 인기가 높아지면서 종자, 즉 알뿌리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급등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바이러스에 감염돼 독특한 모양과 색을 갖는 튤립은 엄청난 가격에 거래됐습니다.

1636년 네덜란드 목수의 연 소득이 250길더였던 시절,

렘브란트가 명화 '야경'을 그리고 천6백 길더를 받을 때 최고급 알뿌리 하나는 5천2백 길더였습니다.

<인터뷰> 슈어츠 반 에이덴(튤립 박물관장) : "튤립 알뿌리 가격이 2배, 3배, 4배로 해마다 치솟았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자본주의적 과열 투기 현상으로 기록되고 있죠."

하지만 천정부지 가격은 1637년 2월 어느 날 마치 거짓말처럼 거래가 뚝 끊기면서 폭락합니다.

가격에 낀 거품이 한순간에 꺼져버린 겁니다.

투기가 사라지자 튤립은 일반적인 농작물로 자리를 잡았고, 1900년을 전후해 본격적인 종자 연구가 시작됩니다.

특히 2차 대전 때 알뿌리가 식량 대용으로도 쓰이면서 종자 개량 연구가 보다 활발해 집니다.

이런 오랜 노력의 결과를 볼 수 있는 곳이 네덜란드의 종자 시장입니다.

현재 공식적으로 등록된 튤립 종자는 5천5백 여 가지,

실제 재배되는 튤립도 3백 종이 넘는데, 전 세계 튤립의 90%는 네덜란드 산입니다.

<인터뷰> 테오 스타츠(시장 상인) : "여기에는 최소 3천 개의 품종이 있습니다. 다양한 품종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색의 튤립 구근도 팔고 있습니다."

튤립으로 시작한 종자 산업에 대한 투자는 100년 넘는 역사를 통해 네덜란드를 종자 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투자의 중심에는 골든 트라이앵글이라 불리는 삼각 구조가 있습니다.

대학 연구소의 유리 온실.

만 제곱미터나 되는 이 시설에선 온도와 습도, 이산화탄소 농도 등을 달리해가며 종자 연구가 한창입니다.

이 연구소는 이처럼 종자에 대한 기초 연구만을 합니다.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종자 기업은 신품종을 개발합니다.

정부는 개발된 신품종을 검증하고 안정성을 관리합니다.

이처럼 정부와 기업, 연구 기관이 각자 역할 분담을 해 효율적인 종자 개발을 해 나가는 체계가 바로 '골든 트라이앵글'입니다.

<인터뷰> 한스 돈스(종자 개발 연구원) : "(기초 연구를 바탕으로) 기업체들은 새로운 품종을 개발합니다. 그렇게 개발된 품종이 농가에 판매돼 재배할 수 있게 되죠."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인데도 활기가 넘치는 이곳, 세계 최대 규모의 꽃 경매장입니다.

네덜란드 전역의 8천여 농가가 재배한 꽃이 경매에 부쳐지고, 낙찰된 꽃은 네덜란드 국내는 물론 20여 개국으로 팔려나갑니다.

이곳에서는 경매를 통해 하루 5천만 송이가 넘는 꽃이 거래됩니다. 금액으로 따지면 하루 880만 유로, 우리 돈으로 115억 원이 넘습니다.

골든 트라이앵글의 선순환으로 네덜란드가 전 세계 화훼 종자의 43%를 점유하고 있다 보니 다양한 품종 재배가 가능해졌고, 결국 화훼 유통의 중심지까지 된 겁니다.

네덜란드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농산물 수출국인 이유도 종자 산업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인터뷰> 에블린 멜처(경매장 홍보담당자) : "네덜란드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아주 많고 이 제품들이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로 수출됩니다. 그래서 꽃과 화분은 네덜란드의 매우 중요한 제품이죠."

네덜란드는 종자 산업을 통해 막대한 로열티 수익도 올리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종자 기업들이 보유한 토마토 품종은 무려 4백 가지 이상, 현재 토마토 종자 1g의 가격은 우리 돈 10만 원대로 금보다 2배 비쌉니다.

<인터뷰> 르네 반 파슨(토마토 협동조합 관계자) : "노란 토마토, 오렌지 토마토, 스낵 토마토, 체리 토마토, 비프 토마토 등 다양합니다. 종자 수출은 매우 중요해요. 갈수록 종자 시장이 글로벌화되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가 외국에 지불하는 농작물 로열티는 한 해 평균 160억 원,

특히 네덜란드에는 매년 40억 원가량을 지불합니다.

반면 로열티로 벌어들이는 돈은 고작 1억 원 정도입니다.

종자 강국 네덜란드에서 배워야 할 점은 분명합니다.

<인터뷰> 한스 돈스(종자 개발 연구원) : "먼저 네덜란드에는 150년이라는 긴 시간이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연구를 위해 기업체와 정부가 투자해야 하고, 그만큼 연구기관은 유용한 연구 결과를 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동양의 꽃이었던 튤립이 네덜란드의 상징이 된 이유,

다름 아닌 체계적 구조를 바탕으로 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라고 종자 강국 네덜란드는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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