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희망 싣고 달리는 탈북 트럭 기사들

입력 2016.03.12 (08:19) 수정 2016.03.12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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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남북통일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가는 [통일로 미래로] 입니다.

탈북민들이 정착할 때 현실적으로 가장 절실한 게 바로 안정된 일자리인데요.

탈북민 트럭기사들이 주축이 돼 세워진 화물 운송 회사가 있어 화제입니다.

남한 출신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며 희망을 키워가고 있는 탈북민 트럭 기사들을 홍은지 리포터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이달 정식으로 문을 연 부산의 한 운수업체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이곳에 조금 특별한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는데요.

<녹취> 박철(탈북 트럭 기사) : "저는 함경북도 청진에서 왔어요."

<녹취> 이정서(탈북 트럭 기사) : "저는 무산에서 왔어요. 함경북도. (부산하고 이름이 비슷하네요?) 네. 무산, 부산."

서른두 명의 기사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이런 탈북민입니다.

이 회사의 대표 또한 탈북민 출신인데요, 남과 북의 사람들이 함께 일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녹취> 남일중(운수업체 대표/탈북민 출신) : "탈북민들만 있는 회사가 아니고 기존 남한에서 일하시던 남한 분들이 같이 공존해서 하는 회사입니다. 남북통일을 위한 회사라고 보면 되죠."

오늘은 개업 기념사진을 찍기로 한 날.

소중한 손님들도 함께 했습니다.

<녹취> "어서오세요."

<녹취> 전금옥(탈북 트럭 기사 가족) : "(회사에) 처음 와봤어요. 와보니까 집 같기도 하고 분위기가 뭐랄까... 우리 집 아랫목 같은 마음도 들고 편안해요."

힘든 정착기를 거친 남편, 아빠에게 소중한 일자리를 선물해준 고마운 회사로 가족들까지 모인 겁니다.

남과 북이 스스럼없이 어울려 일할 수 있는 이 현장.

화물을 배달하는 이들은 ‘통일의 꿈’도 함께 실어 나르고 있는 데요.

과연 이들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5년 전 탈북 해, 지난해부터 화물차 운전을 시작했다는 방명호 씨. 이른 아침부터 부산 이곳저곳을 돌며 배달할 물건들을 챙기는데요.

<녹취> "열 둘, 열 셋, 열 넷, 열다섯. 맞습니다."

몇 시간 씩 고된 일을 하면서도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습니다.

종일 걷은 물건을 한 가득 싣고 마침내 목적지로 출발!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졸음을 쫒아 봅니다.

지금은 트럭도 장만하고 2세까지 가진 어엿한 가장이지만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어려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녹취> 방명호(탈북 트럭 기사) : "내가 저 북한 땅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해본 사람입니다. 나는 우리 아들이 커서 하고 싶다는 일을 내가 돈이 없다던가 뭐가 부족해서 못 해준다면 그게 제일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아들만큼은 부족함 없이 살게 해주고 싶다는 명호 씨의 소박한 소망인데요.

밤을 꼬박 새워가며 일을 해도 늘 웃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새벽녘에야 물건 배달을 모두 마치고 닷새만에 집으로 향합니다.

<녹취> "(고생 많이 했네.) 동혁아. (아빠 안녕.)"

아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길에서 이틀을 내리 일한 피로도 눈 녹듯 사라집니다.

5년 전 북한에서 만나 함께 사선을 넘은 남편.

밤낮없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남편이 늘 걱정이지만, 지금 같은 평범한 일상이 꿈만 같습니다.

<녹취> 김영희(가명/방명호 씨 아내) : "저희 지금 사는 일상적인 생활이 북한에서는 최상위급 수준에 가니까. 저쪽에서 살아봤으니까. 너무 힘들 때는 우리 이보다 더 힘든 일도 겪고 살았는데 하면서 서로..."

불규칙한 생활에도 일자리가 있어서 행복하다는 이들.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이 가장 필요한 것은 그저 열심히 일하고 쉴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아닐까요?

회사 인근에 모처럼 회식자리가 마련됐습니다.

<녹취> "소! 소통하고 화! 화합하여 발! 발전하자. 파이팅."

매일 도로 위를 누비다보니 같은 직장인데도 얼굴 보기가 쉽지 않은 남과 북의 동료들인데요.

한잔 두잔 술잔이 오가더니 가슴에 꼭 묻어뒀던 옛 얘기들이 하나둘 식탁에 오릅니다.

<녹취> 김동영(가명/탈북 트럭 기사) : "귀순해서 사회에 나와서 교육받고 사회를 나와서 사회를 접해보니까 내가 또 위에서 살 때, 북한체제, 공산주의 독재체제라는 데서 살 때 (남한에 대해) 들었던 거랑은 많이 다르더라고요."

내내 밝게 웃던 진혁 씨도 고향 생각에 마음이 울컥해지는데요.

<녹취> 강진혁(탈북 트럭 기사) : "오늘 또 아버지 생일이어서 더 생각납니다. 어제부터 자꾸 생각났는데.. 오늘 생신인데 술 한 잔 못 따라 드려서 너무 죄송하고요. 사랑합니다, 아버지."

어느새 한 식구가 돼 토닥이며 위로합니다.

<녹취> "(아버지 생신인데 진욱이 또 눈물까지 흘리고 생신날 인터뷰도 하게 돼서 영광이죠. 영광.) 북한에 있는 아버지가 이 인터뷰 좀 봤으면 좋겠다."

통일이 되면 남과 북 사람들이 바로 이런 모습으로 서로 돕고 일하지 않을까요?

<녹취> 김용주(트럭 기사/남한 출신) : "북한 사람들이랑 남한 사람들이랑 이렇게 단체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게 참 정겹고..."

<녹취> 남일중(운수업체 대표/탈북민 출신) :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을 겪었지만 그 힘든 것들을 내가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내 형제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하려는 탈북민들이 많은데 이 분들한테만은 우리가 겪었던 이런 걸 겪지 않게 해주자..."

자립을 위해 함께 모여 오늘도 운전대를 잡은 탈북민 트럭 기사들!

희망을 가슴에 품은 이들이 언젠가 남과 북 경계 없이 자유롭게 누빌 그 날을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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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3-12 08:42:24
    • 수정2016-03-12 08: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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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남북통일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가는 [통일로 미래로] 입니다.

탈북민들이 정착할 때 현실적으로 가장 절실한 게 바로 안정된 일자리인데요.

탈북민 트럭기사들이 주축이 돼 세워진 화물 운송 회사가 있어 화제입니다.

남한 출신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며 희망을 키워가고 있는 탈북민 트럭 기사들을 홍은지 리포터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이달 정식으로 문을 연 부산의 한 운수업체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이곳에 조금 특별한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는데요.

<녹취> 박철(탈북 트럭 기사) : "저는 함경북도 청진에서 왔어요."

<녹취> 이정서(탈북 트럭 기사) : "저는 무산에서 왔어요. 함경북도. (부산하고 이름이 비슷하네요?) 네. 무산, 부산."

서른두 명의 기사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이런 탈북민입니다.

이 회사의 대표 또한 탈북민 출신인데요, 남과 북의 사람들이 함께 일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녹취> 남일중(운수업체 대표/탈북민 출신) : "탈북민들만 있는 회사가 아니고 기존 남한에서 일하시던 남한 분들이 같이 공존해서 하는 회사입니다. 남북통일을 위한 회사라고 보면 되죠."

오늘은 개업 기념사진을 찍기로 한 날.

소중한 손님들도 함께 했습니다.

<녹취> "어서오세요."

<녹취> 전금옥(탈북 트럭 기사 가족) : "(회사에) 처음 와봤어요. 와보니까 집 같기도 하고 분위기가 뭐랄까... 우리 집 아랫목 같은 마음도 들고 편안해요."

힘든 정착기를 거친 남편, 아빠에게 소중한 일자리를 선물해준 고마운 회사로 가족들까지 모인 겁니다.

남과 북이 스스럼없이 어울려 일할 수 있는 이 현장.

화물을 배달하는 이들은 ‘통일의 꿈’도 함께 실어 나르고 있는 데요.

과연 이들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5년 전 탈북 해, 지난해부터 화물차 운전을 시작했다는 방명호 씨. 이른 아침부터 부산 이곳저곳을 돌며 배달할 물건들을 챙기는데요.

<녹취> "열 둘, 열 셋, 열 넷, 열다섯. 맞습니다."

몇 시간 씩 고된 일을 하면서도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습니다.

종일 걷은 물건을 한 가득 싣고 마침내 목적지로 출발!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졸음을 쫒아 봅니다.

지금은 트럭도 장만하고 2세까지 가진 어엿한 가장이지만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어려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녹취> 방명호(탈북 트럭 기사) : "내가 저 북한 땅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해본 사람입니다. 나는 우리 아들이 커서 하고 싶다는 일을 내가 돈이 없다던가 뭐가 부족해서 못 해준다면 그게 제일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아들만큼은 부족함 없이 살게 해주고 싶다는 명호 씨의 소박한 소망인데요.

밤을 꼬박 새워가며 일을 해도 늘 웃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새벽녘에야 물건 배달을 모두 마치고 닷새만에 집으로 향합니다.

<녹취> "(고생 많이 했네.) 동혁아. (아빠 안녕.)"

아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길에서 이틀을 내리 일한 피로도 눈 녹듯 사라집니다.

5년 전 북한에서 만나 함께 사선을 넘은 남편.

밤낮없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남편이 늘 걱정이지만, 지금 같은 평범한 일상이 꿈만 같습니다.

<녹취> 김영희(가명/방명호 씨 아내) : "저희 지금 사는 일상적인 생활이 북한에서는 최상위급 수준에 가니까. 저쪽에서 살아봤으니까. 너무 힘들 때는 우리 이보다 더 힘든 일도 겪고 살았는데 하면서 서로..."

불규칙한 생활에도 일자리가 있어서 행복하다는 이들.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이 가장 필요한 것은 그저 열심히 일하고 쉴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아닐까요?

회사 인근에 모처럼 회식자리가 마련됐습니다.

<녹취> "소! 소통하고 화! 화합하여 발! 발전하자. 파이팅."

매일 도로 위를 누비다보니 같은 직장인데도 얼굴 보기가 쉽지 않은 남과 북의 동료들인데요.

한잔 두잔 술잔이 오가더니 가슴에 꼭 묻어뒀던 옛 얘기들이 하나둘 식탁에 오릅니다.

<녹취> 김동영(가명/탈북 트럭 기사) : "귀순해서 사회에 나와서 교육받고 사회를 나와서 사회를 접해보니까 내가 또 위에서 살 때, 북한체제, 공산주의 독재체제라는 데서 살 때 (남한에 대해) 들었던 거랑은 많이 다르더라고요."

내내 밝게 웃던 진혁 씨도 고향 생각에 마음이 울컥해지는데요.

<녹취> 강진혁(탈북 트럭 기사) : "오늘 또 아버지 생일이어서 더 생각납니다. 어제부터 자꾸 생각났는데.. 오늘 생신인데 술 한 잔 못 따라 드려서 너무 죄송하고요. 사랑합니다, 아버지."

어느새 한 식구가 돼 토닥이며 위로합니다.

<녹취> "(아버지 생신인데 진욱이 또 눈물까지 흘리고 생신날 인터뷰도 하게 돼서 영광이죠. 영광.) 북한에 있는 아버지가 이 인터뷰 좀 봤으면 좋겠다."

통일이 되면 남과 북 사람들이 바로 이런 모습으로 서로 돕고 일하지 않을까요?

<녹취> 김용주(트럭 기사/남한 출신) : "북한 사람들이랑 남한 사람들이랑 이렇게 단체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게 참 정겹고..."

<녹취> 남일중(운수업체 대표/탈북민 출신) :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을 겪었지만 그 힘든 것들을 내가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내 형제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하려는 탈북민들이 많은데 이 분들한테만은 우리가 겪었던 이런 걸 겪지 않게 해주자..."

자립을 위해 함께 모여 오늘도 운전대를 잡은 탈북민 트럭 기사들!

희망을 가슴에 품은 이들이 언젠가 남과 북 경계 없이 자유롭게 누빌 그 날을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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