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인터넷 중고 장터 ‘경음기’ 판매업자의 두 얼굴

입력 2016.03.23 (08:32) 수정 2016.03.2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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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대형 화물차는 경적소리를 내는 경음기가 지붕 위에 부착돼 있습니다.

흔히 ‘클랙슨’이라도 부르죠.

바로 이렇게 나팔모양으로 돼있습니다.

화물차 기사들 사이에선 소리가 크고 음색이 맑은 경음기가 인기인데, 특정 제품은 값도 비싸고 국내에선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상에서 중고 거래도 활발한데요.

중고 사이트에서 인기 있고 ‘경음기’를 척척 구해오는 한 판매업자가 있었습니다.

국내에 몇 대 없는 경음기 모델도 그는 어떻게 손쉽게 구해올 수 있었던 걸까요?

이 판매업자의 정체를 뉴스 따라잡기에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9일, 인적이 드문 밤. 부산의 한 공영주차장.

한 남성이 대형 화물차 주변을 서성이더니 화물차 지붕 위로 올라갑니다.

그러더니 분주한 듯 작업을 시작하는데, 차에 달려있는 무언가를 떼어 내려는 듯합니다.

잠시 뒤, 그 무언가를 손에 쥔 채 차에서 내려와 유유히 자리를 떠나는 남성!

한밤중에 혼자서, 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걸까요.

<인터뷰> 박정곤(경위/부산 사상경찰서 강력2팀) : "2월부터 지금까지 계속 신고가 돼왔습니다. 올해 저희 경찰서 학장지구대 관내에서 화물 트럭 경음기 절도 사건이 계속해서 10건 정도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절도범이 가져간 건 대형 화물차 지붕 위에 부착돼 경적소리를 내는 클랙슨, 즉 경음기였습니다.

절도 피해를 당한 화물차 운전자 박 모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인터뷰> 박○○(피해자/음성변조) : "(도난) 장소가 여기였습니다. 이 장소였습니다. 차를 여기에 대고 가서……. 보통 운행을 하면 하루에 한 번은 클랙슨을 치잖아요. 쳤는데 소리가 안 나서 쳐다보니까……."

알고 보니 박 씨의 동료들 중에도 도난 피해를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박○○(피해자/음성변조) : "이 주위에선 다 떼어 갔어요. 이 주위에서만 내가 알기로 차가 한 다섯 대 있었는데 다 잃어버렸어요. 전부 다 도난당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절도범이 가져간 경음기는 모두 해외의 한 트럭 전문 회사가 만든 제품이었습니다.

소리가 크고 맑아 화물차 운전자들 사이에선 인기였다는데요.

또 다른 피해자 김 모 씨도 얼마 전 이 제품을 도난 당했습니다.

<인터뷰> 김○○(피해자/음성변조) : "처음에 저는 동료가 떼어갔나 이런 생각도 했어요. 자기 것 잃어버리니까, 정상적으로 새것을 사려면 돈 백만 원 치니까 엄두가 안 나니까……."

김 씨는 80만 원이 넘는 경음기를 새로 사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김 씨는 한 인터넷 카페에서 도난당한 경음기와 똑같은 제품을 중고로 사기로 했습니다.

<인터뷰> 김○○(피해자/음성변조) : "(화물차) 동호회가 있거든요. 중고품 하나 구한다고 (게시판에) 얘기를 하니까 바로 한 시간 뒤에 (댓글이) 뜨더라고요. 중고를 20만 원 달라고 하고 그래서 구입했죠."

불과 한 시간 만에 경음기를 판다며 한 판매업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김 씨는 이 판매업자에게서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합니다.

김 씨의 동료도 인터넷 카페에서 김 씨와 똑같은 중고 경음기를 샀는데, 판매자가 동일 인물이었던 겁니다.

<인터뷰> 김○○(피해자/음성변조) : "전화번호, 이름, 택배 포장 내용이 전부 다 동일한 거예요. 그리고 계좌번호도 동일하고……. 좀 이상하다,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없는 물건을 (동료가 또) 신청한다고 하니까 또 나오는 거예요. 클랙슨이라는 게 한 개 가지고 있으면 가지고 있지 두 개, 세 개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한 대도 구하기 쉽지 않은 경음기를 여러 대나 척척 구해오는 이 판매업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수상한 생각이 든 김 씨는 곧바로 경찰에 제보했습니다.

제보를 바탕으로 경찰이 수사를 한 결과 중고 경음기 판매업자 33살 김 모 씨가 바로 경음기 전문 절도범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지난 2014년부터 부산과 대구 등에 있는 대형 화물차 주차장을 돌며 범행을 저질러온 것으로 드러났는데요.

최근까지 훔친 경음기가 70여 개, 시가 6천만 원어치에 달합니다.

<인터뷰> 박정곤(경위/부산 사상경찰서 강력2팀) : "그 경음기를 절취해서 판매하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인터넷으로 구매자들을 모집한 후 주문받고 송금이 확인되면 택배로 배송하는 방법으로 판매했습니다."

결국 피해자 김 씨는 자신의 경음기를 훔쳐간 절도범에게 돈을 주고 중고 경음기 산 셈입니다.

그저 황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요.

<인터뷰> 김○○(피해자/음성변조) : "저는 남들한테 바보 소리 듣죠. 어째 잃어버리고 다시 그 도둑한테 (경음기를) 샀느냐……."

인터넷 아이디 뒤에 숨어 익명으로 물품을 사고 팔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절도범들은 중고 거래 사이트를 주요 판매 무대로 삼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고 거래 사이트에 불과 몇 시간 전에 도난당한 물건이 버젓이 판매되는 경우까지 있는데요.

실제, 지난 1월에는 잃어버린 자전거가 중고 사이트에 거래 매물로 올라온 것을 본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해 자전거 절도범이 붙잡히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유효종(경위/경기 남양주경찰서 생활범죄수사팀/지난 1월 20일 보도) : "(피해자가) 확인해보니 자기 자전거가 (매물에) 있는 걸 보고 저희한테 요청해서 유인해서 검거하게 된 것입니다."

판매가 이뤄지기 전 절도범이 잡히면 다행이지만, 경음기 사건처럼 많은 사람들이 장물인지도 모르고 물건을 구매했을 땐 구매자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오기도 합니다.

<녹취> 문철기(KBS 자문 변호사) : "장물인 것을 모르고 취득한 경우에는 취득자에게 장물죄의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특례가 있어요. (도난 후) 기간이 2년이 경과되지 않은 경우에는 (원래) 소유자에게 물건을 반환해야 합니다."

실제로 대전에 사는 신 모 씨는 지난해 김 씨가 절도해 판매한 경음기를 구매해 사용하다, 김 씨가 경찰에 검거되면서 물건을 경찰에 압수당했습니다.

구매 시 지불했던 돈도 받지 못하고 경음기를 주인에게 돌려줘야 할 처지가 된 겁니다.

<녹취> 신○○(장물 구입 피해자/음성변조) : "짜증이 나죠. (경찰에 경음기를) 보내주긴 보내줬는데……. 장물인지 몰랐어요. 왜냐하면 그 사람한테 어디서 구했냐고 했더니 중고차 폐차장 이런 식으로 얘기하더라고요."

전문가들은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선 중고 제품이라도 시세보다 지나치게 싼 제품은 일단 의심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경찰은 피의자 김 씨를 특수 절도 혐의로 구속하는 한편, 추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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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인터넷 중고 장터 ‘경음기’ 판매업자의 두 얼굴
    • 입력 2016-03-23 08:32:54
    • 수정2016-03-23 09: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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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대형 화물차는 경적소리를 내는 경음기가 지붕 위에 부착돼 있습니다.

흔히 ‘클랙슨’이라도 부르죠.

바로 이렇게 나팔모양으로 돼있습니다.

화물차 기사들 사이에선 소리가 크고 음색이 맑은 경음기가 인기인데, 특정 제품은 값도 비싸고 국내에선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상에서 중고 거래도 활발한데요.

중고 사이트에서 인기 있고 ‘경음기’를 척척 구해오는 한 판매업자가 있었습니다.

국내에 몇 대 없는 경음기 모델도 그는 어떻게 손쉽게 구해올 수 있었던 걸까요?

이 판매업자의 정체를 뉴스 따라잡기에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9일, 인적이 드문 밤. 부산의 한 공영주차장.

한 남성이 대형 화물차 주변을 서성이더니 화물차 지붕 위로 올라갑니다.

그러더니 분주한 듯 작업을 시작하는데, 차에 달려있는 무언가를 떼어 내려는 듯합니다.

잠시 뒤, 그 무언가를 손에 쥔 채 차에서 내려와 유유히 자리를 떠나는 남성!

한밤중에 혼자서, 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걸까요.

<인터뷰> 박정곤(경위/부산 사상경찰서 강력2팀) : "2월부터 지금까지 계속 신고가 돼왔습니다. 올해 저희 경찰서 학장지구대 관내에서 화물 트럭 경음기 절도 사건이 계속해서 10건 정도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절도범이 가져간 건 대형 화물차 지붕 위에 부착돼 경적소리를 내는 클랙슨, 즉 경음기였습니다.

절도 피해를 당한 화물차 운전자 박 모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인터뷰> 박○○(피해자/음성변조) : "(도난) 장소가 여기였습니다. 이 장소였습니다. 차를 여기에 대고 가서……. 보통 운행을 하면 하루에 한 번은 클랙슨을 치잖아요. 쳤는데 소리가 안 나서 쳐다보니까……."

알고 보니 박 씨의 동료들 중에도 도난 피해를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박○○(피해자/음성변조) : "이 주위에선 다 떼어 갔어요. 이 주위에서만 내가 알기로 차가 한 다섯 대 있었는데 다 잃어버렸어요. 전부 다 도난당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절도범이 가져간 경음기는 모두 해외의 한 트럭 전문 회사가 만든 제품이었습니다.

소리가 크고 맑아 화물차 운전자들 사이에선 인기였다는데요.

또 다른 피해자 김 모 씨도 얼마 전 이 제품을 도난 당했습니다.

<인터뷰> 김○○(피해자/음성변조) : "처음에 저는 동료가 떼어갔나 이런 생각도 했어요. 자기 것 잃어버리니까, 정상적으로 새것을 사려면 돈 백만 원 치니까 엄두가 안 나니까……."

김 씨는 80만 원이 넘는 경음기를 새로 사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김 씨는 한 인터넷 카페에서 도난당한 경음기와 똑같은 제품을 중고로 사기로 했습니다.

<인터뷰> 김○○(피해자/음성변조) : "(화물차) 동호회가 있거든요. 중고품 하나 구한다고 (게시판에) 얘기를 하니까 바로 한 시간 뒤에 (댓글이) 뜨더라고요. 중고를 20만 원 달라고 하고 그래서 구입했죠."

불과 한 시간 만에 경음기를 판다며 한 판매업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김 씨는 이 판매업자에게서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합니다.

김 씨의 동료도 인터넷 카페에서 김 씨와 똑같은 중고 경음기를 샀는데, 판매자가 동일 인물이었던 겁니다.

<인터뷰> 김○○(피해자/음성변조) : "전화번호, 이름, 택배 포장 내용이 전부 다 동일한 거예요. 그리고 계좌번호도 동일하고……. 좀 이상하다,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없는 물건을 (동료가 또) 신청한다고 하니까 또 나오는 거예요. 클랙슨이라는 게 한 개 가지고 있으면 가지고 있지 두 개, 세 개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한 대도 구하기 쉽지 않은 경음기를 여러 대나 척척 구해오는 이 판매업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수상한 생각이 든 김 씨는 곧바로 경찰에 제보했습니다.

제보를 바탕으로 경찰이 수사를 한 결과 중고 경음기 판매업자 33살 김 모 씨가 바로 경음기 전문 절도범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지난 2014년부터 부산과 대구 등에 있는 대형 화물차 주차장을 돌며 범행을 저질러온 것으로 드러났는데요.

최근까지 훔친 경음기가 70여 개, 시가 6천만 원어치에 달합니다.

<인터뷰> 박정곤(경위/부산 사상경찰서 강력2팀) : "그 경음기를 절취해서 판매하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인터넷으로 구매자들을 모집한 후 주문받고 송금이 확인되면 택배로 배송하는 방법으로 판매했습니다."

결국 피해자 김 씨는 자신의 경음기를 훔쳐간 절도범에게 돈을 주고 중고 경음기 산 셈입니다.

그저 황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요.

<인터뷰> 김○○(피해자/음성변조) : "저는 남들한테 바보 소리 듣죠. 어째 잃어버리고 다시 그 도둑한테 (경음기를) 샀느냐……."

인터넷 아이디 뒤에 숨어 익명으로 물품을 사고 팔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절도범들은 중고 거래 사이트를 주요 판매 무대로 삼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고 거래 사이트에 불과 몇 시간 전에 도난당한 물건이 버젓이 판매되는 경우까지 있는데요.

실제, 지난 1월에는 잃어버린 자전거가 중고 사이트에 거래 매물로 올라온 것을 본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해 자전거 절도범이 붙잡히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유효종(경위/경기 남양주경찰서 생활범죄수사팀/지난 1월 20일 보도) : "(피해자가) 확인해보니 자기 자전거가 (매물에) 있는 걸 보고 저희한테 요청해서 유인해서 검거하게 된 것입니다."

판매가 이뤄지기 전 절도범이 잡히면 다행이지만, 경음기 사건처럼 많은 사람들이 장물인지도 모르고 물건을 구매했을 땐 구매자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오기도 합니다.

<녹취> 문철기(KBS 자문 변호사) : "장물인 것을 모르고 취득한 경우에는 취득자에게 장물죄의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특례가 있어요. (도난 후) 기간이 2년이 경과되지 않은 경우에는 (원래) 소유자에게 물건을 반환해야 합니다."

실제로 대전에 사는 신 모 씨는 지난해 김 씨가 절도해 판매한 경음기를 구매해 사용하다, 김 씨가 경찰에 검거되면서 물건을 경찰에 압수당했습니다.

구매 시 지불했던 돈도 받지 못하고 경음기를 주인에게 돌려줘야 할 처지가 된 겁니다.

<녹취> 신○○(장물 구입 피해자/음성변조) : "짜증이 나죠. (경찰에 경음기를) 보내주긴 보내줬는데……. 장물인지 몰랐어요. 왜냐하면 그 사람한테 어디서 구했냐고 했더니 중고차 폐차장 이런 식으로 얘기하더라고요."

전문가들은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선 중고 제품이라도 시세보다 지나치게 싼 제품은 일단 의심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경찰은 피의자 김 씨를 특수 절도 혐의로 구속하는 한편, 추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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