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김정은의 ‘유희장 정치’…의도는?

입력 2016.09.03 (08:08) 수정 2016.09.0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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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 TV에서는 물놀이를 하거나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워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자주 방송되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건설을 지시한 각종 유희 시설을 통해 북한은 문명강국, 지상낙원을 이뤘다고 선전하고 있는데요.

그 실상은 어떨까요?

<클로즈업 북한> 오늘은 김정은의 ‘유희장 정치’, 그 의도와 한계를 들여다 봅니다.

<리포트>

헬멧을 쓴 사람들이 비행기 활주로에 들어선다.

이들을 맞이하는 건 관광용 초경량 비행기.

최근 평양에 들어선 항공관광시설 ‘미림항공구락부’의 모습이다.

<녹취> "저희가 오늘 여러분들이 타게 될 관광 비행기를 조종하게 됩니다. (아 그렇습니까? 처녀 비행사 동무 아닙니까?) 옳습니다."

경비행기를 조종하는 건 북한의 처녀 비행사들!

<녹취> "제일 먼저 비행기에 오르신 걸 보니 담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나는 그저 저 하늘에 빨리 오르고 싶습니다) 손님, 그래도 침착하셔야 합니다."

올해 18살에 불과한 앳된 소녀들이다.

느릿느릿 활주로를 달리는 비행기에 속도가 붙더니 이내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른다.

하늘을 나는 경비행기 아래로 평양시내의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집단 체조 ‘아리랑’이 펼쳐진 15만석 규모의 5월1일 경기장.

북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류경호텔에 이어 대동강변을 따라 들어선 고층 건물들도 한눈에 들어온다.

평양의 주요 명소를 40분간 돌아보는 관광 코스.

칭찬 일색인 승객들의 소감도 빠지지 않는다.

<녹취> 비행 체험 승객 : "처음엔 긴장했더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비행기를) 타보니까 내가 하늘의 새가 돼서 훨훨 나는 쾌감이더라 말입니다."

북한 당국은 이 미림항공구락부가 주민들을 위한 시설이라며 적극 선전하고 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달 3일) :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이 하늘에서도 행복하고 문명한 생활을 누리게 하시려 초경량 비행기를 우리식으로 만들어 훌륭히 제작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외부 세계에 수도 평양을 보여주며 대북 제재 국면에서도 체제가 건재하다고 선전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인터뷰> 정일영(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 "지난 3월에 (유엔 대북 제재를 결의하면서) 항공 연료를 공급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가 함께 발효가 되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연료 공급, 에너지 상황이 평상시와 같이 공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선전선동이지 않나..."

인근에 위치한 미림승마장 역시 북한이 선전하는 김정은 시대 대표 위락시설 가운데 하나다.

2012년 겨울, 김정은은 평양 인근의 기마중대 훈련장을 주민들을 위한 승마 클럽으로 바꾸라고 지시한다.

10차례 넘게 현지지도에 나서며 공을 들인 끝에 2013년 가을 미림승마구락부가 완공됐다.

<녹취> 조선중앙TV(2013년 10월) : "당에서 마련한 60여 필의 말들을 기쁨 속에 보시며 키 큰 말들은 어른들을 키 작은 말들은 아이들을 태우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자본가 계급이나 즐기는 승마가 북한에서는 대중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게 됐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녹취> 조선중앙TV ‘우리의 꿈 우리의 리상이 꽃펴난 곳에서’(2013년 10월) : "어린아이로부터 중학생, 대학생, 늙은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계절에 상관없이 매일같이 찾아와서 승마기술을 연마하고 체력을 단련하고 있다고 합니다."

<녹취> 평양 주민 : "힘껏 달리니까 기분이 얼마나 상쾌한지 모릅니다."

<녹취> 평양 주민 : "처음이니까 그렇지 저도 꽤 연습하면 좀 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비행장이나 승마장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 상류층뿐이라는 것이 대북 소식통을 빈번히 접하는 탈북민의 전언이다.

<인터뷰> 서재평(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 "특수한 상위 몇%가 아니면 접근조차 안 되는 그런 경비행장 시설인데, 저건 도대체 누굴 위해서 왜 만들었냐... 승마구락부도 사실 북한 주민들이 굉장히 의아해하는 시설인데, 경비행기 시설이야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렇게 보는 거죠."

<녹취> 조선중앙TV(지난 7월 25일) : "대성산 기슭에 자연박물관과 중앙동물원이 기념비적 창조물로 훌륭히 일떠섰습니다 (건설되었습니다)."

최근 평양에선 동물원과 자연 박물관도 잇따라 문을 열었다.

<녹취> 조선중앙TV ‘어서 오시라 자연의 세계로–자연박물관을 찾아서’(지난달 29일) : "무시무시하구나... 여기가 어디야? (공룡 공원이래.) 우리 지금 우주에 올라서 있는 것 같지? (어. 난 지금 비행기가 돌아가는 것 같아!)"

북한 매체들은 어김없이 북한이 ‘문명강국’이며, 김정은의 ‘인민 사랑의 결과’라고 선전하고 있다.

평양 최초의 대형 놀이 시설인 대성산 유희장이 문을 연 건, 1977년.

이어 1982년에는 만경대 유희장이, 1984년에는 개선청년공원 유희장이 평양에 잇따라 들어섰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 결정된 이후 갖가지 유희장 확충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심각한 경제난 시기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북한의 유희장은 흉물스럽게 방치되기 시작했다.

지난 2011년, 영국의 한 프리랜서 기자가 포착한 북한 만경대 유원지의 모습이다.

군데군데 녹이 슨 낡은 시설물과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은 듯 심하게 지저분한 화장실.

사진들은 방치된 만경대 유원지 실상을 생생히 보여줬다.

이후 권력자에 오른 김정은은 2012년, 만경대 유희장을 찾아 잡초를 직접 뽑으며 간부들을 질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녹취> 조선중앙TV(2012년 5월) :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려는 양심이 있다면 이렇게 일할 수 있겠느냐고 (김정은이) 격하신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집권 이후 이토록 유희시설 확충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녹취> 정일영(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 "김정은은 약관에 정권을 인수받게 되었는데요. 김정일과 달리 후계 수업도 장기간 받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핵 개발이나 유희 오락 시설과 같이 단기간에 주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성과가 필요하지 않았나...."

이른바 ‘유희장 정치’에 정점을 찍은 건 2012년 7월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 자리였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부인 리설주를 깜짝 공개한 것이다.

리설주와 팔짱을 끼고 등장한 김정은은 활짝 웃으며 직접 놀이기구를 타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인터뷰> 서재평(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 "어느날 갑자기 김정은이 부인 팔짱을 낀 장면은 북한 주민들에게 ‘역시 김정은이 다르구나’그것도 인민 유원지에 맞게 편안함도 주고 여기 와서 즐겁게 자유대로 즐겁게 놀아라하는 그런 이미지... 또 하나의 뭐랄까 전략 전술적인 그런 어떤 이미지 연출이 아니냐 그렇게 봅니다."

김정은 시대 들어 잇따라 건설된 북한의 위락 시설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선전하는 것은 북한식 워터파크, 문수물놀이장이다.

실제 체제 핵심 계층인 평양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은 시설이기도 하다.

<녹취> 北 기록영화 ‘문수물놀이장에 깃든 인민사랑의 새 전설’ : "풍치수려한 대동강변에 위대한 김정은 시대를 빛내이는 대기념비적 창조물로 훌륭히 일떠선(건설된) 세계적인 문수물놀이장..."

10만 9,000㎡에 달하는 방대한 부지에 수영장과 파도풀, 물미끄럼을 갖춘 문수 물놀이장.

입장료는 대체로 국적 등에 따라 미화 3달러에서 15달러 선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게는 수 십 배에 달하는 웃돈을 주고 입장권을 사는 경우가 많아 생활 형편이 상대적으로 좋은 평양에서도 보통 주민들이 쉽게 이용하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라는 것이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인터뷰> 황소연(2015년 탈북) : "돈 있는 사람들은 많이 찾고 자주 찾고 하니까 암거래 시장에 또 그 표도 뒤에서 몰래 거기 직원들이 자기네가 월급도 못 받고 하니까 돈을 벌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월급은 없으니까 표를 암거래로 거기서 싸게 표를 사서 밖에다가는 그 두 배로 붙여서 파는 거에요. 그래서 그런 암거래가 진행되기 때문에 표 값이 비쌀 수밖에 없어요. 일반인들이 가기에는 좀 벅찬 가격이죠."

이런 점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특히 평양과 지방 사이의 갈등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인터뷰> 서재평(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 "박탈감을 느끼는 건 지방 사람들이죠. 저 그림의 떡은 우리한테 하나도 필요가 없다. 그냥 TV를 통해서 북한을 선전하는, 또 마치 그것이 북한에 보편화되고 있는 그런 선전에 북한 주민들은, 일반 주민들은 굉장히 좌절감을 느끼고 불만을 표출하는 거죠."

<녹취> 마식령스키장 개장식(2013년 12월 31일) : "사회주의 문명국의 상징으로, 선군 조선의 문명의 산악으로 높이 솟아 세세연연 길이 빛날 것입니다."

북한이 속도전을 자랑하며 건설한 마식령 스키장의 경우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외국인 관광객과 평창동계올림픽을 겨냥해 만들어졌다는 마식령스키장은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사실상 대규모 전시 시설에 불과하다.

더욱이 대북제재 여파로 스키장 유지를 위한 수입 장비 구입도 타격을 받았다.

이 같은 유희장 건설을 위해 무리한 ‘속도전’을 벌이는 경우도 많다.

공기를 정해놓고 인민군 건설부대 등을 동원해 무리한 공사를 강행한다.

군인들이 속도전에 동원되는 동안 주민들은 각종 모금 운동에 내몰린다.

외국인을 상대로 한 체제 과시와 평양의 일부 특권층을 위한 유희시설 건설에 돈을 내야하는 주민들의 불만은 자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인터뷰> 황소연(2015년 탈북) : "월급도 안 주고 배급도 안 주고 많이 굶고 사는 인민들이 많잖아요. 차라리 그런 놀이기구나 쓸데 없는 데다가 돈을 투자할거면 인민들한테 조금이라도 줬으면..."

단기적인 성과를 노려 추진하는 유희장 건설이 장기적으로는 북한 경제를 더욱 왜곡시킬거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인터뷰> 정일영(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 "재원과 자재들이 평양에 집중됨으로 인해서 평양과 그 이외 지역으로 분리되는 경제적으로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지속된다면 김정은 체제에서 북한의 경제를 재건하는데 상당히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5월, 36년만에 열린 7차 당대회.

김정은은 또 다시 유희장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녹취> 김정은(7차 당대회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 : "문화 체육 시설과 편의 봉사 시설들을 최상의 수준으로 일떠세우고 공원, 유원지, 명승지들을 잘 꾸려 근로자들과 청소년들이 다양한 문화정서 생활을 마음껏 누리게 하여야합니다."

북한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을 외면한 채 위락시설을 통한 이미지 정치와 체제 선전에 몰두하고 있는 김정은.

대규모 위락 시설이 일부 특권층과 평양 주민들의 호응을 얻을지는 몰라도 자원의 분배 왜곡으로 북한의 경제난을 가중시킬 것이란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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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03 08:41:33
    • 수정2016-09-03 09: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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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 TV에서는 물놀이를 하거나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워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자주 방송되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건설을 지시한 각종 유희 시설을 통해 북한은 문명강국, 지상낙원을 이뤘다고 선전하고 있는데요.

그 실상은 어떨까요?

<클로즈업 북한> 오늘은 김정은의 ‘유희장 정치’, 그 의도와 한계를 들여다 봅니다.

<리포트>

헬멧을 쓴 사람들이 비행기 활주로에 들어선다.

이들을 맞이하는 건 관광용 초경량 비행기.

최근 평양에 들어선 항공관광시설 ‘미림항공구락부’의 모습이다.

<녹취> "저희가 오늘 여러분들이 타게 될 관광 비행기를 조종하게 됩니다. (아 그렇습니까? 처녀 비행사 동무 아닙니까?) 옳습니다."

경비행기를 조종하는 건 북한의 처녀 비행사들!

<녹취> "제일 먼저 비행기에 오르신 걸 보니 담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나는 그저 저 하늘에 빨리 오르고 싶습니다) 손님, 그래도 침착하셔야 합니다."

올해 18살에 불과한 앳된 소녀들이다.

느릿느릿 활주로를 달리는 비행기에 속도가 붙더니 이내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른다.

하늘을 나는 경비행기 아래로 평양시내의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집단 체조 ‘아리랑’이 펼쳐진 15만석 규모의 5월1일 경기장.

북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류경호텔에 이어 대동강변을 따라 들어선 고층 건물들도 한눈에 들어온다.

평양의 주요 명소를 40분간 돌아보는 관광 코스.

칭찬 일색인 승객들의 소감도 빠지지 않는다.

<녹취> 비행 체험 승객 : "처음엔 긴장했더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비행기를) 타보니까 내가 하늘의 새가 돼서 훨훨 나는 쾌감이더라 말입니다."

북한 당국은 이 미림항공구락부가 주민들을 위한 시설이라며 적극 선전하고 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달 3일) :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이 하늘에서도 행복하고 문명한 생활을 누리게 하시려 초경량 비행기를 우리식으로 만들어 훌륭히 제작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외부 세계에 수도 평양을 보여주며 대북 제재 국면에서도 체제가 건재하다고 선전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인터뷰> 정일영(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 "지난 3월에 (유엔 대북 제재를 결의하면서) 항공 연료를 공급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가 함께 발효가 되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연료 공급, 에너지 상황이 평상시와 같이 공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선전선동이지 않나..."

인근에 위치한 미림승마장 역시 북한이 선전하는 김정은 시대 대표 위락시설 가운데 하나다.

2012년 겨울, 김정은은 평양 인근의 기마중대 훈련장을 주민들을 위한 승마 클럽으로 바꾸라고 지시한다.

10차례 넘게 현지지도에 나서며 공을 들인 끝에 2013년 가을 미림승마구락부가 완공됐다.

<녹취> 조선중앙TV(2013년 10월) : "당에서 마련한 60여 필의 말들을 기쁨 속에 보시며 키 큰 말들은 어른들을 키 작은 말들은 아이들을 태우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자본가 계급이나 즐기는 승마가 북한에서는 대중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게 됐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녹취> 조선중앙TV ‘우리의 꿈 우리의 리상이 꽃펴난 곳에서’(2013년 10월) : "어린아이로부터 중학생, 대학생, 늙은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계절에 상관없이 매일같이 찾아와서 승마기술을 연마하고 체력을 단련하고 있다고 합니다."

<녹취> 평양 주민 : "힘껏 달리니까 기분이 얼마나 상쾌한지 모릅니다."

<녹취> 평양 주민 : "처음이니까 그렇지 저도 꽤 연습하면 좀 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비행장이나 승마장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 상류층뿐이라는 것이 대북 소식통을 빈번히 접하는 탈북민의 전언이다.

<인터뷰> 서재평(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 "특수한 상위 몇%가 아니면 접근조차 안 되는 그런 경비행장 시설인데, 저건 도대체 누굴 위해서 왜 만들었냐... 승마구락부도 사실 북한 주민들이 굉장히 의아해하는 시설인데, 경비행기 시설이야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렇게 보는 거죠."

<녹취> 조선중앙TV(지난 7월 25일) : "대성산 기슭에 자연박물관과 중앙동물원이 기념비적 창조물로 훌륭히 일떠섰습니다 (건설되었습니다)."

최근 평양에선 동물원과 자연 박물관도 잇따라 문을 열었다.

<녹취> 조선중앙TV ‘어서 오시라 자연의 세계로–자연박물관을 찾아서’(지난달 29일) : "무시무시하구나... 여기가 어디야? (공룡 공원이래.) 우리 지금 우주에 올라서 있는 것 같지? (어. 난 지금 비행기가 돌아가는 것 같아!)"

북한 매체들은 어김없이 북한이 ‘문명강국’이며, 김정은의 ‘인민 사랑의 결과’라고 선전하고 있다.

평양 최초의 대형 놀이 시설인 대성산 유희장이 문을 연 건, 1977년.

이어 1982년에는 만경대 유희장이, 1984년에는 개선청년공원 유희장이 평양에 잇따라 들어섰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 결정된 이후 갖가지 유희장 확충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심각한 경제난 시기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북한의 유희장은 흉물스럽게 방치되기 시작했다.

지난 2011년, 영국의 한 프리랜서 기자가 포착한 북한 만경대 유원지의 모습이다.

군데군데 녹이 슨 낡은 시설물과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은 듯 심하게 지저분한 화장실.

사진들은 방치된 만경대 유원지 실상을 생생히 보여줬다.

이후 권력자에 오른 김정은은 2012년, 만경대 유희장을 찾아 잡초를 직접 뽑으며 간부들을 질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녹취> 조선중앙TV(2012년 5월) :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려는 양심이 있다면 이렇게 일할 수 있겠느냐고 (김정은이) 격하신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집권 이후 이토록 유희시설 확충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녹취> 정일영(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 "김정은은 약관에 정권을 인수받게 되었는데요. 김정일과 달리 후계 수업도 장기간 받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핵 개발이나 유희 오락 시설과 같이 단기간에 주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성과가 필요하지 않았나...."

이른바 ‘유희장 정치’에 정점을 찍은 건 2012년 7월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 자리였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부인 리설주를 깜짝 공개한 것이다.

리설주와 팔짱을 끼고 등장한 김정은은 활짝 웃으며 직접 놀이기구를 타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인터뷰> 서재평(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 "어느날 갑자기 김정은이 부인 팔짱을 낀 장면은 북한 주민들에게 ‘역시 김정은이 다르구나’그것도 인민 유원지에 맞게 편안함도 주고 여기 와서 즐겁게 자유대로 즐겁게 놀아라하는 그런 이미지... 또 하나의 뭐랄까 전략 전술적인 그런 어떤 이미지 연출이 아니냐 그렇게 봅니다."

김정은 시대 들어 잇따라 건설된 북한의 위락 시설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선전하는 것은 북한식 워터파크, 문수물놀이장이다.

실제 체제 핵심 계층인 평양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은 시설이기도 하다.

<녹취> 北 기록영화 ‘문수물놀이장에 깃든 인민사랑의 새 전설’ : "풍치수려한 대동강변에 위대한 김정은 시대를 빛내이는 대기념비적 창조물로 훌륭히 일떠선(건설된) 세계적인 문수물놀이장..."

10만 9,000㎡에 달하는 방대한 부지에 수영장과 파도풀, 물미끄럼을 갖춘 문수 물놀이장.

입장료는 대체로 국적 등에 따라 미화 3달러에서 15달러 선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게는 수 십 배에 달하는 웃돈을 주고 입장권을 사는 경우가 많아 생활 형편이 상대적으로 좋은 평양에서도 보통 주민들이 쉽게 이용하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라는 것이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인터뷰> 황소연(2015년 탈북) : "돈 있는 사람들은 많이 찾고 자주 찾고 하니까 암거래 시장에 또 그 표도 뒤에서 몰래 거기 직원들이 자기네가 월급도 못 받고 하니까 돈을 벌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월급은 없으니까 표를 암거래로 거기서 싸게 표를 사서 밖에다가는 그 두 배로 붙여서 파는 거에요. 그래서 그런 암거래가 진행되기 때문에 표 값이 비쌀 수밖에 없어요. 일반인들이 가기에는 좀 벅찬 가격이죠."

이런 점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특히 평양과 지방 사이의 갈등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인터뷰> 서재평(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 "박탈감을 느끼는 건 지방 사람들이죠. 저 그림의 떡은 우리한테 하나도 필요가 없다. 그냥 TV를 통해서 북한을 선전하는, 또 마치 그것이 북한에 보편화되고 있는 그런 선전에 북한 주민들은, 일반 주민들은 굉장히 좌절감을 느끼고 불만을 표출하는 거죠."

<녹취> 마식령스키장 개장식(2013년 12월 31일) : "사회주의 문명국의 상징으로, 선군 조선의 문명의 산악으로 높이 솟아 세세연연 길이 빛날 것입니다."

북한이 속도전을 자랑하며 건설한 마식령 스키장의 경우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외국인 관광객과 평창동계올림픽을 겨냥해 만들어졌다는 마식령스키장은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사실상 대규모 전시 시설에 불과하다.

더욱이 대북제재 여파로 스키장 유지를 위한 수입 장비 구입도 타격을 받았다.

이 같은 유희장 건설을 위해 무리한 ‘속도전’을 벌이는 경우도 많다.

공기를 정해놓고 인민군 건설부대 등을 동원해 무리한 공사를 강행한다.

군인들이 속도전에 동원되는 동안 주민들은 각종 모금 운동에 내몰린다.

외국인을 상대로 한 체제 과시와 평양의 일부 특권층을 위한 유희시설 건설에 돈을 내야하는 주민들의 불만은 자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인터뷰> 황소연(2015년 탈북) : "월급도 안 주고 배급도 안 주고 많이 굶고 사는 인민들이 많잖아요. 차라리 그런 놀이기구나 쓸데 없는 데다가 돈을 투자할거면 인민들한테 조금이라도 줬으면..."

단기적인 성과를 노려 추진하는 유희장 건설이 장기적으로는 북한 경제를 더욱 왜곡시킬거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인터뷰> 정일영(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 "재원과 자재들이 평양에 집중됨으로 인해서 평양과 그 이외 지역으로 분리되는 경제적으로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지속된다면 김정은 체제에서 북한의 경제를 재건하는데 상당히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5월, 36년만에 열린 7차 당대회.

김정은은 또 다시 유희장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녹취> 김정은(7차 당대회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 : "문화 체육 시설과 편의 봉사 시설들을 최상의 수준으로 일떠세우고 공원, 유원지, 명승지들을 잘 꾸려 근로자들과 청소년들이 다양한 문화정서 생활을 마음껏 누리게 하여야합니다."

북한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을 외면한 채 위락시설을 통한 이미지 정치와 체제 선전에 몰두하고 있는 김정은.

대규모 위락 시설이 일부 특권층과 평양 주민들의 호응을 얻을지는 몰라도 자원의 분배 왜곡으로 북한의 경제난을 가중시킬 것이란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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