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한반도] ‘회고록’ 계기로 본 대북 인권 정책

입력 2016.10.22 (07:50) 수정 2016.10.2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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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회고록 한 권이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지난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투표를 하기 직전에, 당시 정부가 북한에 의사를 물어본 뒤 입장을 정했다는 취지의 내용 때문입니다.

대북 정책의 정치적 민감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는데요.

<이슈 앤 한반도> 오늘은 이른바 회고록 논란을 계기로 우리의 대북인권정책을 짚어봤습니다.

맹유나 리포터입니다.

<리포트>

무자비한 공개 처형, 국경을 넘기만 해도 총알이 날아드는 참혹한 실상.

<녹취> "‘땅’하는 소리가 나는데 쓰러진 사람인데 벌벌 기어서 그 때까진 움직이더라고요."

질병과 배고픔에 시달리고,

<녹취> "영양실조지 근데, 혀가 다 갈라지고 여기 이런 껍질이 다 벗겨지면서 햇볕에 나가질 못해. 너무 쓰려서..."

강제 북송에, 여성과 어린아이들의 피 말리는 고통, 북한 인권 유린의 참상들입니다.

지난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실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국제사회에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탈북자들의 증언과 국제사회의 조사로 김정은 정권의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인권 침해가 만천하에 공개됐습니다.

<녹취> 마이클 커비(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장/지난 2014년) :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은 (인권 침해 사건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유엔은 이 같은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2003년부터 해마다 북한 인권 결의안을 채택해 왔습니다.

올해도 북한 인권 문제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와 책임자 처벌을 담은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해외 노동자의 인권 문제가 포함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인터뷰> 박형중(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장) : "3만~5만 또는 12만까지 추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노동자들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지금보다도 한 단계 더 증가할 것이고 이 노동자들의 생활을 개선해야 된다는 압력이 그 노동자들이 소재한 국가들에 좀 더 책임 있게 가해질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번 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 장관 회의에서 양국은 북한 인권 협의체를 발족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는 이처럼 국제 정치 무대에서 계속 주목받고 있습니다.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개선을 촉구하는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

지난 2003년 유엔 인권위원회가 처음 채택한 뒤,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국제 사회는 물론 국내에서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정치권에서 과거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둘러싸고 공방이 뜨거운데요, 특히 논란이 된 지난 2007년 결의안 투표 당시 상황을 되돌아봤습니다.

북한 인권결의안을 처음으로 채택했던 2003년,

당시 노무현 정부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이유로 표결에 불참했습니다.

<녹취> 천영우(당시 외교통상부 국제기구정책관/지난 2003년) :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이 중요한 전기를 맞고 있는 현 시점에서 투표에 불참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2004년과 2005년에는 표결엔 참여했지만 모두 기권표를 던졌습니다.

그러나 2006년 처음으로 찬성 투표를 했습니다.

투표 한 달 전인 10월 9일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감행한 것이 결정적 배경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다음 해인 2007년, 고문과 공개 처형, 심각한 영양실조 같은 북한 인권 실태의 개선을 촉구하는 유엔 결의안이 다시 상정됩니다.

<녹취> 페로나 마틴스(포르투갈 대표/지난 2007년) : "이것은 북한에 만연하고 있는 심각한 인권 상황에 대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녹취> 박덕훈(유엔 북한대표부 차석대사/지난 2007년) : "이것은 날조된 거짓 정보로 가득 찼고 사악한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일 뿐입니다."

결국 찬성 97, 반대 23, 기권 60이란 큰 표차로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한국 정부는 기권을 선택했습니다.

기권, 찬성, 기권으로 오락가락한 겁니다.

불과 한 달 반 전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녹취> 노무현(당시 대통령/지난 2007년 10월) : "공동 번영, 화해 협력 문제에 이르기까지 유익하고 진지한 대화가 이뤄졌습니다."

<녹취> 김정일(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지난 2007년 10월) : "수시로 만나자고 했으니까 자주 만납시다."

북한 총리가 서울을 찾는 등 남북 관계 개선 국면을 고려한 고육지책이란 게 당시 정부 설명입니다.

반면 대선 한 달 전, 임기 말 정부가 남북관계의 큰 흐름을 결정하고,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대해 입장을 번복한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 맞섰습니다.

북한 인권 결의안에 찬성해달라 요구했던 미국과의 이견도 드러났습니다.

<인터뷰>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인류 보편적 잣대를 갖고 북한 인권 문제를 보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었고 당시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그 문제도 중요하지만 남북 관계의 특수성, 특히 대화와 협력을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 인권 문제가 돌출돼서 남북관계를 또 대화의 장들도 어렵게 만들 수 있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이후 정권이 바뀐 2008년부터 한국은 공동 제안국으로서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에 줄곧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쓴 회고록이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에 대한 논란을 다시 촉발시켰습니다.

송 전 장관이 현직 장관이 던 2007년 한국 정부가 결의안에 입장을 정할 때 북한에게 먼저 의견을 물은 뒤 기권 결정을 했다는 내용 때문입니다.

자신이 결의안 찬성을 강하게 주장하자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북한의 의견을 확인하자고 했고, 문재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그렇게 하자고 결론을 냈다는 겁니다.

이와 함께 송 전 장관은 인권 결의안에 찬성하지 말라는 북한 측 입장이 담겼다는 쪽지 내용도 회고록에 함께 소개하며, 정부의 최종 입장은 이 같은 과정을 거쳐 결의안 투표 직전인 11월 20일 결정됐다는 취지로 기록했습니다.

<녹취> 송민순(전 외교통상부 장관) : "그 당시에 인권 부분(결의안) 이렇게 찬성하고 갔으면 노무현 정부의,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이나 우리 통일정책의 철학을 그대로 이어가는데 훨씬 좋았을 것이다. 다음 정부가 들어와도 뒤집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 삼십 몇 년 간 공직에 있었던 사람이 (회고록을) 소설같이 썼겠습니까?

하지만 김만복 전 국정원장,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등 당시 외교안보라인 핵심 인사들은 정부가 이미 입장을 정한 뒤 북에 통보했을 뿐이라고 부인하고,

<녹취> 이재정(전 통일부 장관) : "명확하게 기억해요.‘(기권으로) 결론을 냅시다’하고 가신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에) 물어본다는 게 말이 되겠어요?"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은 논란 자체를 색깔론으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녹취> 문재인(더불어 민주당 전 대표) : "사실 관계는 지금 나올 만큼 다 나왔으니까요. 더 말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정부가 유엔 표결 2시간 전에 기권을 결정했다는 내용의 미국 외교전문이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논란은 점차 정치권의 진실 공방으로 번지며 장기화 조짐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활발히 논의돼온 북한 인권 문제는 정작 국내에서는 정치적 논란 속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시간이 적지 않았습니다.

11년의 진통 끝에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하고 지난 달 발효된 북한인권법 역시 여전히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데요,

북한인권법의 내용과 진행 경과를 살펴봤습니다.

<녹취> "북한 인권 법안 대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지난 3월, 북한인권법이 처음 발의된 지 11년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북한 정권을 압박해 남북관계를 악화 시킬 수 있다는 정치권 일각의 반대로 폐기를 거듭하다, 마침내 여야가 합의를 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지난달 4일, 북한 인권법이 발효되면서 법무부 산하 기구인 북한 인권 기록 보존소가 문을 열었습니다.

북한 인권 기록 보존소는 옛 서독의 사례를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베를린 장벽을 넘어 탈출하려는 자국민들에게 총까지 쐈던 동독, 서독 정부는 이 같은 인권 유린 실태를 기록, 보존하기 위해, 검찰 산하 중앙 기록 보존소를 세웠습니다.

<녹취> 최태원(북한 인권 기록 보존소 소장) : "우리의 모델이 됐던 게 독일의 중앙기록보존소입니다. 독일 통일 이후에 그 기록을 가지고 기소를 하고 재판을 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도 그런 방안도 저희의 목적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법무부 북한 인권기록보존소는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로부터 북한 인권 실태를 이관 받아 북한의 반인권 범죄 책임자를 단죄할 근거 자료를 관리하게 됩니다.

유엔과 공조해 반인권 범죄자를 국제 형사 재판소에 회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형중(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장) : "인권 유린이 기록이 되고 그 책임자가 누구라는 것을 적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동독 내에 알려짐으로 해서 동독 내에서 인권 유린을 어느 정도 완화시키는데 공헌을 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한국에서 정부가 체계적으로 북한 인권 기록을 하고 보존을 한다는 것이 북한 내부에 즉 지금 현재 북한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가 될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반면 북한인권법 시행 한 달 반이 지났지만 또 다른 핵심기관인 북한 인권 재단과 북한 인권 증진 자문위원회는 출범 조자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의 자리 다툼 속에 야당 몫 이사와 자문위원 추천이 지연돼 북한 인권 연구와 시민단체 지원 등 업무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그 방식을 둘러싸고는 이론은 있을 수 있지만 그러나 남북 관계에서 남남 갈등을 최소화시키면서 남북 관계의 개선, 북한이 좀 더 인류 보편적인 인권 국가로 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차원에서의 노력이 좀 더 국민적인 어떤 결집 속에서 필요하다..."

군사적 도발과 인권 탄압의 책임자이자 대화와 협상의 대상인 북한,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과 북한 정권에 대한 압박을 일도양단으로 나누어 시행하기 어려운 현실.

이 같은 모순되고 복잡한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하는 북한 인권 정책은 그만큼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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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한반도] ‘회고록’ 계기로 본 대북 인권 정책
    • 입력 2016-10-22 08:32:59
    • 수정2016-10-22 09: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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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회고록 한 권이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지난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투표를 하기 직전에, 당시 정부가 북한에 의사를 물어본 뒤 입장을 정했다는 취지의 내용 때문입니다.

대북 정책의 정치적 민감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는데요.

<이슈 앤 한반도> 오늘은 이른바 회고록 논란을 계기로 우리의 대북인권정책을 짚어봤습니다.

맹유나 리포터입니다.

<리포트>

무자비한 공개 처형, 국경을 넘기만 해도 총알이 날아드는 참혹한 실상.

<녹취> "‘땅’하는 소리가 나는데 쓰러진 사람인데 벌벌 기어서 그 때까진 움직이더라고요."

질병과 배고픔에 시달리고,

<녹취> "영양실조지 근데, 혀가 다 갈라지고 여기 이런 껍질이 다 벗겨지면서 햇볕에 나가질 못해. 너무 쓰려서..."

강제 북송에, 여성과 어린아이들의 피 말리는 고통, 북한 인권 유린의 참상들입니다.

지난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실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국제사회에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탈북자들의 증언과 국제사회의 조사로 김정은 정권의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인권 침해가 만천하에 공개됐습니다.

<녹취> 마이클 커비(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장/지난 2014년) :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은 (인권 침해 사건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유엔은 이 같은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2003년부터 해마다 북한 인권 결의안을 채택해 왔습니다.

올해도 북한 인권 문제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와 책임자 처벌을 담은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해외 노동자의 인권 문제가 포함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인터뷰> 박형중(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장) : "3만~5만 또는 12만까지 추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노동자들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지금보다도 한 단계 더 증가할 것이고 이 노동자들의 생활을 개선해야 된다는 압력이 그 노동자들이 소재한 국가들에 좀 더 책임 있게 가해질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번 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 장관 회의에서 양국은 북한 인권 협의체를 발족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는 이처럼 국제 정치 무대에서 계속 주목받고 있습니다.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개선을 촉구하는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

지난 2003년 유엔 인권위원회가 처음 채택한 뒤,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국제 사회는 물론 국내에서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정치권에서 과거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둘러싸고 공방이 뜨거운데요, 특히 논란이 된 지난 2007년 결의안 투표 당시 상황을 되돌아봤습니다.

북한 인권결의안을 처음으로 채택했던 2003년,

당시 노무현 정부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이유로 표결에 불참했습니다.

<녹취> 천영우(당시 외교통상부 국제기구정책관/지난 2003년) :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이 중요한 전기를 맞고 있는 현 시점에서 투표에 불참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2004년과 2005년에는 표결엔 참여했지만 모두 기권표를 던졌습니다.

그러나 2006년 처음으로 찬성 투표를 했습니다.

투표 한 달 전인 10월 9일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감행한 것이 결정적 배경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다음 해인 2007년, 고문과 공개 처형, 심각한 영양실조 같은 북한 인권 실태의 개선을 촉구하는 유엔 결의안이 다시 상정됩니다.

<녹취> 페로나 마틴스(포르투갈 대표/지난 2007년) : "이것은 북한에 만연하고 있는 심각한 인권 상황에 대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녹취> 박덕훈(유엔 북한대표부 차석대사/지난 2007년) : "이것은 날조된 거짓 정보로 가득 찼고 사악한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일 뿐입니다."

결국 찬성 97, 반대 23, 기권 60이란 큰 표차로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한국 정부는 기권을 선택했습니다.

기권, 찬성, 기권으로 오락가락한 겁니다.

불과 한 달 반 전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녹취> 노무현(당시 대통령/지난 2007년 10월) : "공동 번영, 화해 협력 문제에 이르기까지 유익하고 진지한 대화가 이뤄졌습니다."

<녹취> 김정일(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지난 2007년 10월) : "수시로 만나자고 했으니까 자주 만납시다."

북한 총리가 서울을 찾는 등 남북 관계 개선 국면을 고려한 고육지책이란 게 당시 정부 설명입니다.

반면 대선 한 달 전, 임기 말 정부가 남북관계의 큰 흐름을 결정하고,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대해 입장을 번복한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 맞섰습니다.

북한 인권 결의안에 찬성해달라 요구했던 미국과의 이견도 드러났습니다.

<인터뷰>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인류 보편적 잣대를 갖고 북한 인권 문제를 보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었고 당시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그 문제도 중요하지만 남북 관계의 특수성, 특히 대화와 협력을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 인권 문제가 돌출돼서 남북관계를 또 대화의 장들도 어렵게 만들 수 있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이후 정권이 바뀐 2008년부터 한국은 공동 제안국으로서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에 줄곧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쓴 회고록이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에 대한 논란을 다시 촉발시켰습니다.

송 전 장관이 현직 장관이 던 2007년 한국 정부가 결의안에 입장을 정할 때 북한에게 먼저 의견을 물은 뒤 기권 결정을 했다는 내용 때문입니다.

자신이 결의안 찬성을 강하게 주장하자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북한의 의견을 확인하자고 했고, 문재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그렇게 하자고 결론을 냈다는 겁니다.

이와 함께 송 전 장관은 인권 결의안에 찬성하지 말라는 북한 측 입장이 담겼다는 쪽지 내용도 회고록에 함께 소개하며, 정부의 최종 입장은 이 같은 과정을 거쳐 결의안 투표 직전인 11월 20일 결정됐다는 취지로 기록했습니다.

<녹취> 송민순(전 외교통상부 장관) : "그 당시에 인권 부분(결의안) 이렇게 찬성하고 갔으면 노무현 정부의,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이나 우리 통일정책의 철학을 그대로 이어가는데 훨씬 좋았을 것이다. 다음 정부가 들어와도 뒤집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 삼십 몇 년 간 공직에 있었던 사람이 (회고록을) 소설같이 썼겠습니까?

하지만 김만복 전 국정원장,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등 당시 외교안보라인 핵심 인사들은 정부가 이미 입장을 정한 뒤 북에 통보했을 뿐이라고 부인하고,

<녹취> 이재정(전 통일부 장관) : "명확하게 기억해요.‘(기권으로) 결론을 냅시다’하고 가신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에) 물어본다는 게 말이 되겠어요?"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은 논란 자체를 색깔론으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녹취> 문재인(더불어 민주당 전 대표) : "사실 관계는 지금 나올 만큼 다 나왔으니까요. 더 말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정부가 유엔 표결 2시간 전에 기권을 결정했다는 내용의 미국 외교전문이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논란은 점차 정치권의 진실 공방으로 번지며 장기화 조짐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활발히 논의돼온 북한 인권 문제는 정작 국내에서는 정치적 논란 속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시간이 적지 않았습니다.

11년의 진통 끝에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하고 지난 달 발효된 북한인권법 역시 여전히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데요,

북한인권법의 내용과 진행 경과를 살펴봤습니다.

<녹취> "북한 인권 법안 대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지난 3월, 북한인권법이 처음 발의된 지 11년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북한 정권을 압박해 남북관계를 악화 시킬 수 있다는 정치권 일각의 반대로 폐기를 거듭하다, 마침내 여야가 합의를 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지난달 4일, 북한 인권법이 발효되면서 법무부 산하 기구인 북한 인권 기록 보존소가 문을 열었습니다.

북한 인권 기록 보존소는 옛 서독의 사례를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베를린 장벽을 넘어 탈출하려는 자국민들에게 총까지 쐈던 동독, 서독 정부는 이 같은 인권 유린 실태를 기록, 보존하기 위해, 검찰 산하 중앙 기록 보존소를 세웠습니다.

<녹취> 최태원(북한 인권 기록 보존소 소장) : "우리의 모델이 됐던 게 독일의 중앙기록보존소입니다. 독일 통일 이후에 그 기록을 가지고 기소를 하고 재판을 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도 그런 방안도 저희의 목적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법무부 북한 인권기록보존소는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로부터 북한 인권 실태를 이관 받아 북한의 반인권 범죄 책임자를 단죄할 근거 자료를 관리하게 됩니다.

유엔과 공조해 반인권 범죄자를 국제 형사 재판소에 회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형중(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장) : "인권 유린이 기록이 되고 그 책임자가 누구라는 것을 적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동독 내에 알려짐으로 해서 동독 내에서 인권 유린을 어느 정도 완화시키는데 공헌을 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한국에서 정부가 체계적으로 북한 인권 기록을 하고 보존을 한다는 것이 북한 내부에 즉 지금 현재 북한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가 될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반면 북한인권법 시행 한 달 반이 지났지만 또 다른 핵심기관인 북한 인권 재단과 북한 인권 증진 자문위원회는 출범 조자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의 자리 다툼 속에 야당 몫 이사와 자문위원 추천이 지연돼 북한 인권 연구와 시민단체 지원 등 업무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그 방식을 둘러싸고는 이론은 있을 수 있지만 그러나 남북 관계에서 남남 갈등을 최소화시키면서 남북 관계의 개선, 북한이 좀 더 인류 보편적인 인권 국가로 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차원에서의 노력이 좀 더 국민적인 어떤 결집 속에서 필요하다..."

군사적 도발과 인권 탄압의 책임자이자 대화와 협상의 대상인 북한,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과 북한 정권에 대한 압박을 일도양단으로 나누어 시행하기 어려운 현실.

이 같은 모순되고 복잡한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하는 북한 인권 정책은 그만큼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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