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北, “수해 복구 마무리”...실상은?

입력 2016.11.26 (08:08) 수정 2016.11.2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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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화위복. 지난 여름 두만강 일대를 휩쓴 대홍수가 오히려 새 집을 얻는 기쁨으로 돌아왔다며 북한 당국이 선전하는 말입니다.

최근엔 피해 복구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하며 축하 방송까지 했는데요...실상은 과연 어떨까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남북의창>이 단독 입수한 영상 등을 통해 북한 수해 복구의 실태를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조선중앙TV ‘수해 복구 축하방송’(지난 16일) : “여러분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던 그날...) 인민군 장병들과 돌격대원들, 전국의 인민들을 열렬히 축하합니다!”

새로 지은 듯한 주택 단지 사진을 배경으로 남녀 아나운서가 축하 방송에 한창이다.

이들이 소개하는 곳은 함경북도 북부의 수해 복구 지역.

회령시와 무산군, 연사군 등 지난 여름 홍수로 큰 피해를 입은 두만강 인근 마을들이다.

<녹취> 조선중앙TV ‘수해 복구 축하방송’(지난 16일) : “6개 시군의 폐허 지역에 새 거리와 마을들을 최단기간에 일떠세워야하는 역사상 유례없는 복구대전...”

조선중앙TV는 “대재앙이 들이닥친 두만강 기슭에 전화위복의 기적이 창조됐다”며 한껏 분위기를 띄웠다.

<녹취> 조선중앙TV ‘수해 복구 축하방송’(지난 16일) : “착공의 첫 삽을 밟을 때로부터 2달도 안 되는 기간에 방대한 공사가 훌륭히 완공됐습니다.”

수해 복구 현장에서도 어김없이 강조해 온 이른바 속도전.

당과 군, 인민이 힘을 합치면 못할 게 없다는 노래까지 곁들인다.

<녹취> 북한 노래 ‘조선은 결심하면 한다’ : “조선은 결심하면 한다 조선은 한다면 한다.”

축하방송 사흘 전 북한 당국은 함경북도 수해복구에 나선 군 장병과 주민들에게 보내는 감사문을 발표했다.

수해 복구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함경북도 수해는 김정은 정권의 국내적인 안정성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국가적인 재난이라고 볼 수 있어요. 민심이 상당히 이반되어 있는 것으로 지금 알려지고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는 신속한 복구가 완료됐다라는 어떤 정치적인 선언이 필요하다, 이렇게 볼 수 있죠."

북한은 지난 여름 발생한 수해를 ‘해방 이후 최악’이라고 주장하며 국제 사회의 지원을 요청했다.

유엔 산하기구들은 3만 7천여 채의 가옥이 파괴되고 500명 이상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피해 정도가 심상치 않자 북한은 이른바 200일 전투의 방향을 수해 복구 사업으로 돌렸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9월 10일) : “오늘 200일 전투의 주타격방향, 최전방은 북부피해복구 전선이다. 우리 당은 일체 건설역량과 설비 자재를 북부 전선에 돌리는 조치부터 취하였다.”

김정은 시대의 상징물이 될 평양 여명거리 건설 인력을 포함해 군인과 돌격대, 주민 등 총 10만 명을 복구에 투입했다.

해마다 반복돼 온 수해 복구 작업에 대규모 인력을 동원했다고 적극 선전한 것은 심상치 않은 민심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인터뷰> 강미진(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 기자/2010년 탈북) : "(피해가) 심각한 것도 원인이었지만 일단 국경지역이잖아요... 주민들한테 추위가 당장 닥쳐오는데 집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민심이 다른 데로 쏠릴 수 있죠. 대량 탈북이 일어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국으로서는 그걸 빨리 하지 않으면 안 돼는 그런 상황이었죠."

두 달에 걸쳐 진행된 이른바 ‘북부 피해 복구 전투’.

지난 21일 북한 매체들은 만 1900여 세대에 달하는 살림집이 완공됐다며 주민들의 입주 소식을 대대적으로 전했다.

<녹취> 조선중앙TV(‘새 마을들에서 살림집 입사 모임’/지난 21일) :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대해같은 사랑 속에 피해 지역 주민들이 누구나 부러워할 새 살림집에서 행복을 누리게 되는 노동당 시대의 새 전설이 또 다시 꽃펴났습니다.”

가전제품과 세간살이까지 말끔히 갖춰진 살림집을 둘러보는 사람들.

이 모든 게 김정은과 당 덕분이라는 인터뷰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녹취> 수해 지역 주민(조선중앙TV/지난 21일) : “재난은 당했지만 우리 집은 사회주의 제도의 고마운 혜택 속에서 그전보다 더 훌륭한 생활이 마련된 전화위복의 가정이 됐습니다.”

<녹취> 수해 지역 주민(조선중앙TV/지난 21일) : “정말 춤을 추다가도 눈물이 앞을 가리워... 그래서 저는 앞으로 맡은 일을 더 잘해서 진정으로 우리 당을 충정으로 받들겠습니다. 조선로동당 만세! 사회주의 만세! ”

수해가 전화위복이 돼 낡은 집들이 현대적으로 바뀌었다고 선전하고 있는 북한.

그 실상은 과연 어떨까?

‘남북의 창’이 입수한 이달 중순 두만강 인근 함경북도 회령시의 모습이다.

눈이 쌓인 두만강변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형태의 주택들.

자세히 보면 대부분의 건물은 유리 없이 창문이 그대로 뚫려 있다.

한 건물에는 유리창 대신 비닐을 덧씌운 듯한 모습도 보인다.

<인터뷰> 강미진(데일리 NK 기자) : "그 뒤 쪽은 건설이 채 마무리가 안 된 그런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있고요. 유리를 안 끼워서 개인들이 비닐 방막 대고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은 집 안에서도 신발을 신고 다니고 추워서... 솜옷도 입고 자야 되는 그런 상황이고..."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심각한 건 날림 공사에 따른 안전성 문제다.

<인터뷰> 강미진(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 기자/2010년 탈북) : "벽돌 자체가 마르지 않은 걸 그대로 올렸다 쌓았기 때문에 그 위에 시멘트 포장을 하잖아요. 그 시멘트 포장도 마르지 않았고 그게 집 위에다 불을 떼면서 집 안 온기로 말리고 이러면서 균열이 벌써부터 가기 시작한다고 그러더라고요. 밑에서 조금만 균열이 가면 위층은 다 무너지는 그런 상황이잖아요."

여기에 건물 내 습기로 관절염과 동상에 시달리는 주민들도 상당수라는 게 현지 주민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을 서둘러 입주시킨 건 겨울을 맞아 민심이 더 흉흉해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인터뷰> 서재평(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 "11월 초에 폭설이 내려서 함경북도 지역에 전체가 눈이 엄청 많이 내렸고... 지금은 영하 7도 정도로 떨어지고 있거든요. 그러면 사실 건설이 힘든 상황입니다. 복구가 완료됐다고 서두른 발표를 한 거죠."

수해 지역 복구 과정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특징은 탈북이 한층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이다.

그동안 탈북의 온상으로 불리던 두만강변 인접 마을들.

북한 당국은 그동안 마을 이전을 수차례 시도했지만, 주민들의 반발에 밀려 번번이 실패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수해로 탈북 거점이 돼 온 마을들이 상당수 정리됐다는 것이다.

<인터뷰> 서재평(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 "거의 80%가 두만강변에 있는 주택 마을이 다 이렇게 쓸려갔거든요. 아무래도 국경과 가까이 있는 그런 인접한 지역을 통해서 탈북이 이루어지는데, 지금 그 지역 주택들은 하나도 복구를 안 하고 그 뒤로 이렇게 주택을 뒤쪽으로 건설을 했어요. 그러면 아무래도 그쪽을 개활 지대로 만들어 놓으면 국경경비대가 통제하기 쉬운 지역으로 만들어져 버렸죠."

실제 새로 건설된 주택단지는 두만강변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담장도 없이 이웃과 마주보며 촘촘하게 들어선 살림집.

주민 감시는 쉬워진 반면에 은밀한 탈북 준비는 더 어려워진 셈이다.

수해를 전화위복이라 선전하면서 접경 마을을 대대적으로 정비한 북한.

한편으로는 수해 복구를 주민 결속과 체제 선전의 계기로 십분 활용했다.

북한 당국은 피해 복구를 이유로 주민들을 밤낮없이 동원했다.

피해 지역에 보낼 자재 생산에 속도를 내라고 독려했는가하면 피해 지역 주민들에 대한 물품 지원도 호소했다.

<녹취> 조선중앙TV ‘수해 복구 축하방송’(지난 16일) : “증산 투쟁이 힘 있게 벌어져 10월 중순까지 복구 전투에 필요한 시멘트 생산 과제를 완수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수해 복구 축하방송’(지난 16일) : “각지 인민들은 친부모, 친형제의 심정으로 피해 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에게 식량과 옷, 부엌세간, 소비품들을 지원해서...”

서로 돕고 이끄는 사회주의 대가정의 참모습을 보여줬다고 내세우는 북한 당국.

하지만 실상은 주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맨 것이라고 대북 소식통들은 전한다.

<인터뷰> 서재평(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 "함경북도 가정 당 웬만한 가정이 중국 돈으로 30원을 평균 걷어갔다는 얘기가... 적어도 북한 돈으로 5,6만 원을 걷었거든요. 그러면 1년 생활비를 걷어간 거나 마찬가지에요. 엄청난 돈을 걷어갔죠. 가정 세대 당."

주민들을 다그쳐 모은 재원과 물품은 결국 또다시 김정은의 치적으로 포장됐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4일) : “찬바람에 추울세라 포근한 모포와 솜옷을 보내주시고 갖가지 식료품들도 한가득 안겨주시니 친부모의 정인들 이보다 더 다심할(다정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뜨거운 눈물로 두 볼을 적셨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새집들이로 흥성이는 회령땅’(지난 23일) : “저렇게 하나같이 멋들어지게 꾸린 살림집이 과연 어떤 집입니까. 경애하는 원수님, 우리가 뭐기에 억만금을 쏟아 붓고 나라의 귀중한 재물을 깡그리 쏟아 이런 만복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신단 말입니까.”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이례적으로 평양이 김정은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던 려명거리 건설단까지 모두 함경북도 수해지구로 보냈거든요. 재난을 새로운 기회로 김정은의 통치력을 보여주는 어떤 그런 프로파겐더를 활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수해 복구를 내세우며 주민 결집과 체제 선전의 효과를 동시에 노렸다.

하지만 수해 지역 주민들에게선 벌써부터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녹취> 함경북도 회령 지역 주민 : “그냥 뼈다구(골조) 해 놓고 그냥 뭐 거기다 뭐 넣어준다, 넣어준다... 아우 몇 집만 해놓고 그냥 또 다 떼먹고 뭘 해요. 지금 뭐 아무것도 안 넣어주고 그냥 들어가서 살라고 하니 누가 살아요? 지금 배도 고파 죽겠는데 먹을 것도 없어서... 거기 들어가서 살려고 해도 살 그게 없단 말이에요. 지금. 거기 가마가 있어요, 뭐가 있어요. 나무는 주워서 뗀다고 치고, 아무것도 없는데, 그거 다 자체해결 해야 되는데...”

전문가들도 이번 수해가 북한 당국의 의도대로 체제 강화의 계기가 됐다고 보기엔 어려운 측면이 많다고 분석한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해당 지역의 어떤 치안이나 민심이나 이런 것들이 매우 나쁘다고 볼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의 업적을 자랑하는 그런 프로파간다, 선전선동은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또 이외의 지역도 모든 물자를 함경북도로 지금 전환이 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도 불만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따라서 복구 여부를 떠나서 이번 함경북도 수해 피해는 김정은 정권에 중장기적으로 내구력의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통일부는 피해 지역이 워낙 넓은데다 수해 복구가 완료되지 않아 김정은이 현장에 나타나지 못하는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탈북의 통로, 두만강 일대를 휩쓴 수해 복구 결과와 민심의 동향은 북녘 맹추위의 장막이 걷힌 뒤 보다 분명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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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北, “수해 복구 마무리”...실상은?
    • 입력 2016-11-26 08:25:49
    • 수정2016-11-26 08:32:49
    남북의 창
<앵커>

전화위복. 지난 여름 두만강 일대를 휩쓴 대홍수가 오히려 새 집을 얻는 기쁨으로 돌아왔다며 북한 당국이 선전하는 말입니다.

최근엔 피해 복구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하며 축하 방송까지 했는데요...실상은 과연 어떨까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남북의창>이 단독 입수한 영상 등을 통해 북한 수해 복구의 실태를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조선중앙TV ‘수해 복구 축하방송’(지난 16일) : “여러분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던 그날...) 인민군 장병들과 돌격대원들, 전국의 인민들을 열렬히 축하합니다!”

새로 지은 듯한 주택 단지 사진을 배경으로 남녀 아나운서가 축하 방송에 한창이다.

이들이 소개하는 곳은 함경북도 북부의 수해 복구 지역.

회령시와 무산군, 연사군 등 지난 여름 홍수로 큰 피해를 입은 두만강 인근 마을들이다.

<녹취> 조선중앙TV ‘수해 복구 축하방송’(지난 16일) : “6개 시군의 폐허 지역에 새 거리와 마을들을 최단기간에 일떠세워야하는 역사상 유례없는 복구대전...”

조선중앙TV는 “대재앙이 들이닥친 두만강 기슭에 전화위복의 기적이 창조됐다”며 한껏 분위기를 띄웠다.

<녹취> 조선중앙TV ‘수해 복구 축하방송’(지난 16일) : “착공의 첫 삽을 밟을 때로부터 2달도 안 되는 기간에 방대한 공사가 훌륭히 완공됐습니다.”

수해 복구 현장에서도 어김없이 강조해 온 이른바 속도전.

당과 군, 인민이 힘을 합치면 못할 게 없다는 노래까지 곁들인다.

<녹취> 북한 노래 ‘조선은 결심하면 한다’ : “조선은 결심하면 한다 조선은 한다면 한다.”

축하방송 사흘 전 북한 당국은 함경북도 수해복구에 나선 군 장병과 주민들에게 보내는 감사문을 발표했다.

수해 복구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함경북도 수해는 김정은 정권의 국내적인 안정성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국가적인 재난이라고 볼 수 있어요. 민심이 상당히 이반되어 있는 것으로 지금 알려지고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는 신속한 복구가 완료됐다라는 어떤 정치적인 선언이 필요하다, 이렇게 볼 수 있죠."

북한은 지난 여름 발생한 수해를 ‘해방 이후 최악’이라고 주장하며 국제 사회의 지원을 요청했다.

유엔 산하기구들은 3만 7천여 채의 가옥이 파괴되고 500명 이상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피해 정도가 심상치 않자 북한은 이른바 200일 전투의 방향을 수해 복구 사업으로 돌렸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9월 10일) : “오늘 200일 전투의 주타격방향, 최전방은 북부피해복구 전선이다. 우리 당은 일체 건설역량과 설비 자재를 북부 전선에 돌리는 조치부터 취하였다.”

김정은 시대의 상징물이 될 평양 여명거리 건설 인력을 포함해 군인과 돌격대, 주민 등 총 10만 명을 복구에 투입했다.

해마다 반복돼 온 수해 복구 작업에 대규모 인력을 동원했다고 적극 선전한 것은 심상치 않은 민심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인터뷰> 강미진(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 기자/2010년 탈북) : "(피해가) 심각한 것도 원인이었지만 일단 국경지역이잖아요... 주민들한테 추위가 당장 닥쳐오는데 집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민심이 다른 데로 쏠릴 수 있죠. 대량 탈북이 일어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국으로서는 그걸 빨리 하지 않으면 안 돼는 그런 상황이었죠."

두 달에 걸쳐 진행된 이른바 ‘북부 피해 복구 전투’.

지난 21일 북한 매체들은 만 1900여 세대에 달하는 살림집이 완공됐다며 주민들의 입주 소식을 대대적으로 전했다.

<녹취> 조선중앙TV(‘새 마을들에서 살림집 입사 모임’/지난 21일) :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대해같은 사랑 속에 피해 지역 주민들이 누구나 부러워할 새 살림집에서 행복을 누리게 되는 노동당 시대의 새 전설이 또 다시 꽃펴났습니다.”

가전제품과 세간살이까지 말끔히 갖춰진 살림집을 둘러보는 사람들.

이 모든 게 김정은과 당 덕분이라는 인터뷰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녹취> 수해 지역 주민(조선중앙TV/지난 21일) : “재난은 당했지만 우리 집은 사회주의 제도의 고마운 혜택 속에서 그전보다 더 훌륭한 생활이 마련된 전화위복의 가정이 됐습니다.”

<녹취> 수해 지역 주민(조선중앙TV/지난 21일) : “정말 춤을 추다가도 눈물이 앞을 가리워... 그래서 저는 앞으로 맡은 일을 더 잘해서 진정으로 우리 당을 충정으로 받들겠습니다. 조선로동당 만세! 사회주의 만세! ”

수해가 전화위복이 돼 낡은 집들이 현대적으로 바뀌었다고 선전하고 있는 북한.

그 실상은 과연 어떨까?

‘남북의 창’이 입수한 이달 중순 두만강 인근 함경북도 회령시의 모습이다.

눈이 쌓인 두만강변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형태의 주택들.

자세히 보면 대부분의 건물은 유리 없이 창문이 그대로 뚫려 있다.

한 건물에는 유리창 대신 비닐을 덧씌운 듯한 모습도 보인다.

<인터뷰> 강미진(데일리 NK 기자) : "그 뒤 쪽은 건설이 채 마무리가 안 된 그런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있고요. 유리를 안 끼워서 개인들이 비닐 방막 대고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은 집 안에서도 신발을 신고 다니고 추워서... 솜옷도 입고 자야 되는 그런 상황이고..."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심각한 건 날림 공사에 따른 안전성 문제다.

<인터뷰> 강미진(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 기자/2010년 탈북) : "벽돌 자체가 마르지 않은 걸 그대로 올렸다 쌓았기 때문에 그 위에 시멘트 포장을 하잖아요. 그 시멘트 포장도 마르지 않았고 그게 집 위에다 불을 떼면서 집 안 온기로 말리고 이러면서 균열이 벌써부터 가기 시작한다고 그러더라고요. 밑에서 조금만 균열이 가면 위층은 다 무너지는 그런 상황이잖아요."

여기에 건물 내 습기로 관절염과 동상에 시달리는 주민들도 상당수라는 게 현지 주민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을 서둘러 입주시킨 건 겨울을 맞아 민심이 더 흉흉해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인터뷰> 서재평(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 "11월 초에 폭설이 내려서 함경북도 지역에 전체가 눈이 엄청 많이 내렸고... 지금은 영하 7도 정도로 떨어지고 있거든요. 그러면 사실 건설이 힘든 상황입니다. 복구가 완료됐다고 서두른 발표를 한 거죠."

수해 지역 복구 과정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특징은 탈북이 한층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이다.

그동안 탈북의 온상으로 불리던 두만강변 인접 마을들.

북한 당국은 그동안 마을 이전을 수차례 시도했지만, 주민들의 반발에 밀려 번번이 실패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수해로 탈북 거점이 돼 온 마을들이 상당수 정리됐다는 것이다.

<인터뷰> 서재평(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 "거의 80%가 두만강변에 있는 주택 마을이 다 이렇게 쓸려갔거든요. 아무래도 국경과 가까이 있는 그런 인접한 지역을 통해서 탈북이 이루어지는데, 지금 그 지역 주택들은 하나도 복구를 안 하고 그 뒤로 이렇게 주택을 뒤쪽으로 건설을 했어요. 그러면 아무래도 그쪽을 개활 지대로 만들어 놓으면 국경경비대가 통제하기 쉬운 지역으로 만들어져 버렸죠."

실제 새로 건설된 주택단지는 두만강변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담장도 없이 이웃과 마주보며 촘촘하게 들어선 살림집.

주민 감시는 쉬워진 반면에 은밀한 탈북 준비는 더 어려워진 셈이다.

수해를 전화위복이라 선전하면서 접경 마을을 대대적으로 정비한 북한.

한편으로는 수해 복구를 주민 결속과 체제 선전의 계기로 십분 활용했다.

북한 당국은 피해 복구를 이유로 주민들을 밤낮없이 동원했다.

피해 지역에 보낼 자재 생산에 속도를 내라고 독려했는가하면 피해 지역 주민들에 대한 물품 지원도 호소했다.

<녹취> 조선중앙TV ‘수해 복구 축하방송’(지난 16일) : “증산 투쟁이 힘 있게 벌어져 10월 중순까지 복구 전투에 필요한 시멘트 생산 과제를 완수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수해 복구 축하방송’(지난 16일) : “각지 인민들은 친부모, 친형제의 심정으로 피해 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에게 식량과 옷, 부엌세간, 소비품들을 지원해서...”

서로 돕고 이끄는 사회주의 대가정의 참모습을 보여줬다고 내세우는 북한 당국.

하지만 실상은 주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맨 것이라고 대북 소식통들은 전한다.

<인터뷰> 서재평(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 "함경북도 가정 당 웬만한 가정이 중국 돈으로 30원을 평균 걷어갔다는 얘기가... 적어도 북한 돈으로 5,6만 원을 걷었거든요. 그러면 1년 생활비를 걷어간 거나 마찬가지에요. 엄청난 돈을 걷어갔죠. 가정 세대 당."

주민들을 다그쳐 모은 재원과 물품은 결국 또다시 김정은의 치적으로 포장됐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4일) : “찬바람에 추울세라 포근한 모포와 솜옷을 보내주시고 갖가지 식료품들도 한가득 안겨주시니 친부모의 정인들 이보다 더 다심할(다정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뜨거운 눈물로 두 볼을 적셨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새집들이로 흥성이는 회령땅’(지난 23일) : “저렇게 하나같이 멋들어지게 꾸린 살림집이 과연 어떤 집입니까. 경애하는 원수님, 우리가 뭐기에 억만금을 쏟아 붓고 나라의 귀중한 재물을 깡그리 쏟아 이런 만복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신단 말입니까.”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이례적으로 평양이 김정은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던 려명거리 건설단까지 모두 함경북도 수해지구로 보냈거든요. 재난을 새로운 기회로 김정은의 통치력을 보여주는 어떤 그런 프로파겐더를 활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수해 복구를 내세우며 주민 결집과 체제 선전의 효과를 동시에 노렸다.

하지만 수해 지역 주민들에게선 벌써부터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녹취> 함경북도 회령 지역 주민 : “그냥 뼈다구(골조) 해 놓고 그냥 뭐 거기다 뭐 넣어준다, 넣어준다... 아우 몇 집만 해놓고 그냥 또 다 떼먹고 뭘 해요. 지금 뭐 아무것도 안 넣어주고 그냥 들어가서 살라고 하니 누가 살아요? 지금 배도 고파 죽겠는데 먹을 것도 없어서... 거기 들어가서 살려고 해도 살 그게 없단 말이에요. 지금. 거기 가마가 있어요, 뭐가 있어요. 나무는 주워서 뗀다고 치고, 아무것도 없는데, 그거 다 자체해결 해야 되는데...”

전문가들도 이번 수해가 북한 당국의 의도대로 체제 강화의 계기가 됐다고 보기엔 어려운 측면이 많다고 분석한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해당 지역의 어떤 치안이나 민심이나 이런 것들이 매우 나쁘다고 볼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의 업적을 자랑하는 그런 프로파간다, 선전선동은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또 이외의 지역도 모든 물자를 함경북도로 지금 전환이 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도 불만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따라서 복구 여부를 떠나서 이번 함경북도 수해 피해는 김정은 정권에 중장기적으로 내구력의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통일부는 피해 지역이 워낙 넓은데다 수해 복구가 완료되지 않아 김정은이 현장에 나타나지 못하는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탈북의 통로, 두만강 일대를 휩쓴 수해 복구 결과와 민심의 동향은 북녘 맹추위의 장막이 걷힌 뒤 보다 분명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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