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우리도 사람”…소방관들 ‘마음의 병’

입력 2017.01.30 (08:34) 수정 2017.01.3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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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밤을 새워 진화 작업을 마친 소방관이 현장 구석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습니다.

소방관들의 현실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죠.

가장 존경받는 직업으로 꼽히지만, 정작 이들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기만 한데요.

특히 재난 현장을 누비는 업무 특성상 소방대원들은 마음의 병,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하지만 이들을 위한 전문 치료센터는 단 한 곳도 없습니다.

동료를 떠나보낸 슬픔과 고통을 내색하지 못하고 또다시 재난 현장에 나서야 하는 실정인데요.

‘마음의 병’으로 힘들어하는 소방관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출동을 알리는 벨소리가 소방관들을 불러 모읍니다.

119구급차가 도착한 곳은 한 아파트.

의식을 잃고 쓰러진 70대 남성을 급히 병원으로 이송합니다.

<녹취> “할아버지 눈 좀 떠보세요. 불편한 데 있으세요?”

구급대원들의 응급처치로 환자는 다행히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는데요.

<인터뷰> 강규훈(소방교/ 서울 서초소방서) : “저혈당으로 신고가 들어와서 의식이 아예 없었죠. 혈당을 다시 올려서 왔으니까 응급처치는 적절하게 잘 됐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소방서로 복귀하자 숨돌릴 틈 없이 또 다른 출동 명령이 이어집니다.

교통사고 현장으로, 또 화재 현장으로.

언제 다시 출동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소방관들은 한 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합니다.

<인터뷰> 최순복(소방장/서울 서초소방서) : “소방관들은 벨이 울리는 범위 내에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어딜 못 나가요. 그러니까 갇혀있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그거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일 거예요.”

긴장 속에서 매일같이 위험천만한 현장을 누비다보니 소방대원들 중에는 밤잠을 설치거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경우도 많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한 소방관은 전국에 2천 3백여명으로 전체소방관의 6%를 웃도는 정도.

0.6% 유병률을 보이는 일반인에 비해 10배 이상 많은 수준입니다.

<인터뷰> 김용현(소방위/서울 서초소방서) : “22년 동안 하면서 거의 다 기억이 나요. 다 기억이 나지만 (사고 현장이) 갑자기 생각나고 또 지워지고. 어느 날은 가만히 있으면 생각도 나고.”

<인터뷰> 강규훈(소방교/서울 서초소방서) : “훼손이 많이 된 시신 봤을 때. 아무래도 좀 문득문득 일을 하다가도 가끔씩 생각이 나요. 밥도 못 먹을 정도로 그래요.”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한 오피스텔에서 일어난 화재.

<녹취> "(몇 호에서 나왔어요? 몇 호?) 806호!"

사람들이 도망쳐 나오는 곳을 향해 뛰어들어야 하는 소방관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장 속에서 25kg의 장비를 짊어지고 화재진압과 인명 구조를 동시에 해내야 하는데요.

많은 소방관이 이런 현장을 경험하면서 트라우마를 갖게 됩니다.

<인터뷰> 이재춘(소방위/서울 서초소방서) : “대형화재라고 했을 때는 옛날에 그런 기억들이 이 되새김 돼서 머리에 회상이 다시 되고 아주 안 좋았을 때는 병원으로 가서 수면제도 먹고 그런 적도 있어요.”

올해 10년 차 소방관인 황윤상 씨는 수면장애와 우울증, 그리고 참혹한 현장이 자꾸 떠오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두 번이나 휴직해야만 했습니다.

<인터뷰> 황윤상(소방관) : “약 먹고 응급실에 한 번 실려갔었거든요. 왜 그랬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알코올 같은 것도 의존해서 매일같이 술 먹고. 안 먹으면 잠이 안 오니까요. 계속 술을 먹다 보니까 점점 더 안 좋아지고.”

24시간 연속 근무를 하는 날이면 많게는 20번 넘게 출동을 해야 했던 황윤상 소방관.

당연히 일하다 얻은 마음의 병이라 생각했는데 국가는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황윤상(소방관) : “첫 번째 휴직을 할 때 그땐 인정이 안 됐어요. 그래갖고 그때는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고서 공상 승인을 해달라 했더니 그때는 인정을 안 해주시더라고요. 소송이 거의 5년 걸려서 재작년 2015년에 승소를 했어요.”

문제는 이 같은 고통을 겪는 게 비단 황 씨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인터뷰> 황윤상(소방관) : “다른 동료, 선배 같은 경우도 출동 갔다 오면 잔인한 장면 볼 때가 있어요. 보고 오면 말은 안 하는데 와서 이렇게 손을 떠는 사람들도 본 적 있고 몸을 막 떨어요. 그러니까 다 충격이 있는 것 같아요.”

소방관들을 힘들게 하는 건 또 있습니다.

바로 가족과도 같은 동료를 사고로 떠나보내는 일입니다.

<인터뷰> 김용현(소방위/서울 서초소방서) : “제일 안 좋고 마음에 남는 건 결국에는 같은 동료가 다치고 죽고 하는 게 제일 안 좋은 거 같아요. 정말 많이 울었던 거 같아요, 기억에. 많이 울고 지금도 생각해보면 정말 한 달 내내 두 달, 꽤 오랫동안 울었던 거 같아요.”

<인터뷰> 최순복 소방장/ 서울 서초소방서 : “아휴. 맘이 너무 아프죠. 가끔 이름 비슷한 사람 있거나 생김새가 닮거나 그러면 문득 문득 생각나요. 같이 근무했던 거, 술 한 잔 마시면서 깔깔대고 웃던 기억. 뭐 이런 것들이 기억나서 좀 우울해지고 그래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빠른 진단과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지만 소방관들을 위한 전문 치료센터는 단 한 곳도 없는 실정입니다.

인권위 조사 결과, 소방관 10명 가운데 8명은 다쳐도 공상 신청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터뷰> 박승균(소방위/경기 남양주소방서) : “낙인찍힌다는 그런 것도 있어요. ‘나는 심리검사를 했는데 고위험군이 안 나왔어. 고위험군이 안 나오고 바로 밑이야. 난 안심해.’ 이렇게 생각하시거든요.”

<인터뷰> 최인창(119 소방복지사업단장) : “사회 인식 자체가 소방관들에 대한 어떤 영웅, 존경. 이런 게 포함되다 보니까 본인 스스로가 나는 환자라는 걸 아예 밝힐 수가 없는 그런 애로사항들이 꽤 많죠.”

한 명의 소방관이 지켜야 하는 국민의 수는 1,200여 명.

소방관의 건강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이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도록 적극적인 제도 시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인터뷰> 최인창(119 소방복지사업단장) : “미국 같은 경우는 퇴직 후 십년까지 국가 정부에서 관리를 하거든요. 퇴직하신 분들을 또 그런 쪽으로 전문 분야를 양성합니다.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나는 이렇게 해서 치유가 됐어.’ 그런 식으로 또 양성을 해 나가고 그렇게 시스템화 되는데 우리나라도 이제는 그런 것들을 준비를 해야 될 때가 된 것 같아요.”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고 있는 4만 명의 소방공무원들.

추운 겨울, 소방관들은 타오르는 화마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과도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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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우리도 사람”…소방관들 ‘마음의 병’
    • 입력 2017-01-30 08:40:15
    • 수정2017-01-30 09: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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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밤을 새워 진화 작업을 마친 소방관이 현장 구석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습니다.

소방관들의 현실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죠.

가장 존경받는 직업으로 꼽히지만, 정작 이들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기만 한데요.

특히 재난 현장을 누비는 업무 특성상 소방대원들은 마음의 병,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하지만 이들을 위한 전문 치료센터는 단 한 곳도 없습니다.

동료를 떠나보낸 슬픔과 고통을 내색하지 못하고 또다시 재난 현장에 나서야 하는 실정인데요.

‘마음의 병’으로 힘들어하는 소방관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출동을 알리는 벨소리가 소방관들을 불러 모읍니다.

119구급차가 도착한 곳은 한 아파트.

의식을 잃고 쓰러진 70대 남성을 급히 병원으로 이송합니다.

<녹취> “할아버지 눈 좀 떠보세요. 불편한 데 있으세요?”

구급대원들의 응급처치로 환자는 다행히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는데요.

<인터뷰> 강규훈(소방교/ 서울 서초소방서) : “저혈당으로 신고가 들어와서 의식이 아예 없었죠. 혈당을 다시 올려서 왔으니까 응급처치는 적절하게 잘 됐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소방서로 복귀하자 숨돌릴 틈 없이 또 다른 출동 명령이 이어집니다.

교통사고 현장으로, 또 화재 현장으로.

언제 다시 출동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소방관들은 한 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합니다.

<인터뷰> 최순복(소방장/서울 서초소방서) : “소방관들은 벨이 울리는 범위 내에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어딜 못 나가요. 그러니까 갇혀있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그거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일 거예요.”

긴장 속에서 매일같이 위험천만한 현장을 누비다보니 소방대원들 중에는 밤잠을 설치거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경우도 많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한 소방관은 전국에 2천 3백여명으로 전체소방관의 6%를 웃도는 정도.

0.6% 유병률을 보이는 일반인에 비해 10배 이상 많은 수준입니다.

<인터뷰> 김용현(소방위/서울 서초소방서) : “22년 동안 하면서 거의 다 기억이 나요. 다 기억이 나지만 (사고 현장이) 갑자기 생각나고 또 지워지고. 어느 날은 가만히 있으면 생각도 나고.”

<인터뷰> 강규훈(소방교/서울 서초소방서) : “훼손이 많이 된 시신 봤을 때. 아무래도 좀 문득문득 일을 하다가도 가끔씩 생각이 나요. 밥도 못 먹을 정도로 그래요.”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한 오피스텔에서 일어난 화재.

<녹취> "(몇 호에서 나왔어요? 몇 호?) 806호!"

사람들이 도망쳐 나오는 곳을 향해 뛰어들어야 하는 소방관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장 속에서 25kg의 장비를 짊어지고 화재진압과 인명 구조를 동시에 해내야 하는데요.

많은 소방관이 이런 현장을 경험하면서 트라우마를 갖게 됩니다.

<인터뷰> 이재춘(소방위/서울 서초소방서) : “대형화재라고 했을 때는 옛날에 그런 기억들이 이 되새김 돼서 머리에 회상이 다시 되고 아주 안 좋았을 때는 병원으로 가서 수면제도 먹고 그런 적도 있어요.”

올해 10년 차 소방관인 황윤상 씨는 수면장애와 우울증, 그리고 참혹한 현장이 자꾸 떠오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두 번이나 휴직해야만 했습니다.

<인터뷰> 황윤상(소방관) : “약 먹고 응급실에 한 번 실려갔었거든요. 왜 그랬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알코올 같은 것도 의존해서 매일같이 술 먹고. 안 먹으면 잠이 안 오니까요. 계속 술을 먹다 보니까 점점 더 안 좋아지고.”

24시간 연속 근무를 하는 날이면 많게는 20번 넘게 출동을 해야 했던 황윤상 소방관.

당연히 일하다 얻은 마음의 병이라 생각했는데 국가는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황윤상(소방관) : “첫 번째 휴직을 할 때 그땐 인정이 안 됐어요. 그래갖고 그때는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고서 공상 승인을 해달라 했더니 그때는 인정을 안 해주시더라고요. 소송이 거의 5년 걸려서 재작년 2015년에 승소를 했어요.”

문제는 이 같은 고통을 겪는 게 비단 황 씨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인터뷰> 황윤상(소방관) : “다른 동료, 선배 같은 경우도 출동 갔다 오면 잔인한 장면 볼 때가 있어요. 보고 오면 말은 안 하는데 와서 이렇게 손을 떠는 사람들도 본 적 있고 몸을 막 떨어요. 그러니까 다 충격이 있는 것 같아요.”

소방관들을 힘들게 하는 건 또 있습니다.

바로 가족과도 같은 동료를 사고로 떠나보내는 일입니다.

<인터뷰> 김용현(소방위/서울 서초소방서) : “제일 안 좋고 마음에 남는 건 결국에는 같은 동료가 다치고 죽고 하는 게 제일 안 좋은 거 같아요. 정말 많이 울었던 거 같아요, 기억에. 많이 울고 지금도 생각해보면 정말 한 달 내내 두 달, 꽤 오랫동안 울었던 거 같아요.”

<인터뷰> 최순복 소방장/ 서울 서초소방서 : “아휴. 맘이 너무 아프죠. 가끔 이름 비슷한 사람 있거나 생김새가 닮거나 그러면 문득 문득 생각나요. 같이 근무했던 거, 술 한 잔 마시면서 깔깔대고 웃던 기억. 뭐 이런 것들이 기억나서 좀 우울해지고 그래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빠른 진단과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지만 소방관들을 위한 전문 치료센터는 단 한 곳도 없는 실정입니다.

인권위 조사 결과, 소방관 10명 가운데 8명은 다쳐도 공상 신청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터뷰> 박승균(소방위/경기 남양주소방서) : “낙인찍힌다는 그런 것도 있어요. ‘나는 심리검사를 했는데 고위험군이 안 나왔어. 고위험군이 안 나오고 바로 밑이야. 난 안심해.’ 이렇게 생각하시거든요.”

<인터뷰> 최인창(119 소방복지사업단장) : “사회 인식 자체가 소방관들에 대한 어떤 영웅, 존경. 이런 게 포함되다 보니까 본인 스스로가 나는 환자라는 걸 아예 밝힐 수가 없는 그런 애로사항들이 꽤 많죠.”

한 명의 소방관이 지켜야 하는 국민의 수는 1,200여 명.

소방관의 건강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이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도록 적극적인 제도 시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인터뷰> 최인창(119 소방복지사업단장) : “미국 같은 경우는 퇴직 후 십년까지 국가 정부에서 관리를 하거든요. 퇴직하신 분들을 또 그런 쪽으로 전문 분야를 양성합니다.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나는 이렇게 해서 치유가 됐어.’ 그런 식으로 또 양성을 해 나가고 그렇게 시스템화 되는데 우리나라도 이제는 그런 것들을 준비를 해야 될 때가 된 것 같아요.”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고 있는 4만 명의 소방공무원들.

추운 겨울, 소방관들은 타오르는 화마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과도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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