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영유권 보복’…일본의 극복기

입력 2017.03.04 (21:13) 수정 2017.03.04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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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중국은 센카쿠 열도 중국명 댜오위다오로 일본과 영유권 갈등이 고조됐을때도 이번처럼 보복조치를 잇따라 내놨습니다.

일본은 경제적 타격을 입었지만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방법으로 대응했습니다.

도쿄에서 나신하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2012년 9월 중국인 시위대가 베이징의 일본 대사관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흥분한 시위대는 일본계 백화점과 자동차 대리점, 전자부품 공장 등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후지무라(2012년 당시 日관방장관) : "일본인에 대한 폭력이 수차례 있었습니다. 일본인의 안전 확보를 중국 측에 요구했습니다."

중국이 센카쿠 열도, 중국명 댜오위다오를 영해기선으로 선포하고, 일본은 섬을 사들여 국유화한 뒤, 벌어진 일입니다.

시위에 이어 대대적인 불매운동에도 들어갔습니다.

통관검사를 대폭 강화하고 일본 관광을 억제하는 등 중국 정부의 보복조치가 이어졌습니다.

중국내 일본 자동차 판매량은 한때 반으로 줄었는가 하면, 중국관광객은 34% 감소했습니다.

중국은 2010년엔, 전자 산업에 필수적인 희토류의 일본 수출을 막기도 했습니다.

자국의 고용과 수출 충격을 감수하고서라도 외교 안보 갈등을 경제 보복으로 되갚아온 셈입니다.

일본은 중국과의 무역 분쟁을 공장 이전과 교역 다변화 등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1년 뒤부터 경제 보복의 충격에서 빠르게 벗어났습니다.

도쿄에서 KBS 뉴스 나신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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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영유권 보복’…일본의 극복기
    • 입력 2017-03-04 21:14:45
    • 수정2017-03-04 22: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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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중국은 센카쿠 열도 중국명 댜오위다오로 일본과 영유권 갈등이 고조됐을때도 이번처럼 보복조치를 잇따라 내놨습니다.

일본은 경제적 타격을 입었지만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방법으로 대응했습니다.

도쿄에서 나신하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2012년 9월 중국인 시위대가 베이징의 일본 대사관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흥분한 시위대는 일본계 백화점과 자동차 대리점, 전자부품 공장 등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후지무라(2012년 당시 日관방장관) : "일본인에 대한 폭력이 수차례 있었습니다. 일본인의 안전 확보를 중국 측에 요구했습니다."

중국이 센카쿠 열도, 중국명 댜오위다오를 영해기선으로 선포하고, 일본은 섬을 사들여 국유화한 뒤, 벌어진 일입니다.

시위에 이어 대대적인 불매운동에도 들어갔습니다.

통관검사를 대폭 강화하고 일본 관광을 억제하는 등 중국 정부의 보복조치가 이어졌습니다.

중국내 일본 자동차 판매량은 한때 반으로 줄었는가 하면, 중국관광객은 34% 감소했습니다.

중국은 2010년엔, 전자 산업에 필수적인 희토류의 일본 수출을 막기도 했습니다.

자국의 고용과 수출 충격을 감수하고서라도 외교 안보 갈등을 경제 보복으로 되갚아온 셈입니다.

일본은 중국과의 무역 분쟁을 공장 이전과 교역 다변화 등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1년 뒤부터 경제 보복의 충격에서 빠르게 벗어났습니다.

도쿄에서 KBS 뉴스 나신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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