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돈 불려 주겠다”…‘시민 영웅’의 사기극

입력 2017.06.02 (08:33) 수정 2017.06.0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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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수천억 원대 비자금이 숨겨져 있으니 투자금을 내면 큰돈을 만지게 해주겠다.

사기꾼들의 단골 수법 중 하나인데요.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오늘 소개할 사건의 피해자가 사기꾼을 믿은 데는 조금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친절하게 접근해 투자를 권유하던 40대 남성.

바로 5년 전 서울 도심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당시 시민들을 구한 시민 영웅 중 한 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모범 시민상을 탔다는 말에 이 남성을 굳게 믿었다고 합니다.

시민 영웅에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사기극에 연루된 걸까요.

사건의 전말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서울의 한 지하철역.

개찰구를 나오는 한 남성을 경찰이 불러 세웁니다.

<녹취> 경찰 : “잠시만요, 문00 씨 맞으시죠? 문00 씨 아니세요? 서울 서대문구 송종호 수사관입니다.”

<녹취> 문 모 씨(피의자/음성변조) : “네?”

<녹취> 경찰 : "현재시각 19시 54분, 체포영장에 의해 체포합니다."

이 남성은 무슨 상황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 합니다.

<녹취> 경찰 :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변명의 기회 있습니다. 이리 오세요. 이리 오세요.”

<녹취> 문 모 씨(피의자/음성변조) : “아니...”

체포된 남성은 72살 문 모 씨.

한 달 후 경찰은 문 씨의 지인 55살 채 모 씨도 체포합니다.

<녹취> 채 모 씨(피의자/음성변조) : “알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누가 나를…….”

<녹취> 경찰 : “문00 씨 아시죠?”

<녹취> 채 모 씨(피의자/음성변조) : “네, 너무 황당한데…….”

경찰은 억대의 사기극을 벌인 혐의로 이들의 행방을 쫓아 왔습니다.

<인터뷰> 김순진(서대문 경찰서 경제2팀장) : “지리산에 수표, 채권, 달러, 5만 원권 지폐 등이 가득 실려 있는 1톤 트럭이 있는데 5억 원을 빌려주면 이 트럭을 인수한 후에 본부 벙커에 가서 원하는 대로 현금을 지급하겠다고 속이고…….”

지리산 속에 수천억 원대 비자금이 숨겨져 있다며,

비자금을 찾는 비용을 대주면 큰돈을 돌려주겠다고 사업가인 정 모 씨에게 접근했습니다.

자신들이 국제금융기구 직원이고, 청와대와도 접촉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인터뷰> 송종호(서대문경찰서 경제2팀 수사관) : “청와대를 출입하는 실장, 그리고 아시아 어느 지역 담당자, 이런 식으로 각자 그냥 생각나는 대로 역할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5인조 사기단 중에 정 씨와 자주 만난 건 40대 남성 A모 씨입니다.

서울의 한 카페 골목에서 자주 만남을 갖고, 등산도 함께 가며 신뢰를 쌓았다고 합니다.

<인터뷰> 송종호(서대문경찰서 경제2팀 수사관) : “(A씨가) 준수한 외모를 가져서 사람들이 신뢰하기 쉬운 그런 인상입니다. 피해자와 자주 저녁을 먹고 술자리도 가지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신뢰 관계를 구축한 것 같습니다.”

국제금융기구 직원이라며 다소 황당한 얘기를 했지만, 정 씨는 A씨에게 두터운 신뢰를 갖게 됩니다.

<인터뷰> 김순진(서대문 경찰서 경제2팀장) : “몸에 바코드 같은 것을 심어 놓아서 그 사람이 몸만 움직이면 해외 어디를 가든 돈을 인출할 수 있는 능력자라고…….”

결국, 올해 초 4억 2천만 원을 건넸습니다.

20배가 넘는 돈을 돌려주겠다는 호언장담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인터뷰> 김순진(서대문 경찰서 경제2팀장) : “처음에는 (투자금의) 2, 3배 정도를 준다고 했는데 정씨가 쉽게 돈을 안 빌려주니깐 시간이 흐르면서 100~200억 원 정도를 제안한 상태였습니다.”

정 씨가 A씨를 믿게 된 결정적 이유는 또 있었습니다.

A씨가 모범 시민상을 받고,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시민 영웅, 의인으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순진(서대문 경찰서 경제2팀장) : “칼부림 사건의 의인이란 그런 얘기를 듣고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까 사실이었고, 또 (A씨의) 평소 몸가짐이나 모습, 말투나 이런 게 실제 의인답게 보였기 때문에……. ”

지난 2012년 8월 발생한 서울 여의도 흉기 난동 사건 과정에서 모범 시민상을 받았다며 정 씨를 안심시켰습니다.

당시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남성이 실직에 대한 불만으로 전 직장 동료와 행인들에게 무차별 흉기를 휘둘렀던 사건.

<녹취> 당시 보도화면 : “멀쩡히 길을 가던 한 남성이 갑자기 흉기를 휘둘러 4명이 다쳤습니다.”

퇴근 시간 무렵 도심 한복판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건인데요.

난동을 피우던 남성을 현장에서 제압하고 흉기에 찔린 행인을 도운 시민들이 있었는데, A 씨도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인터뷰> A 모 씨(2012년 8월 당시 인터뷰/피의자/음성변조) : “상의를 벗고 내의를 벗어서 (피해자의) 겨드랑이 부위를 묶고 상처 부위를 한 번 더 덮어서 손으로 대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여자 분이 '저 어디 찔렸어요?' 하고 물어보더라고요. 제가 보니깐 많이 힘들어하는 거 같아서…….”

흉기에 찔린 행인을 지혈하며 응급처치를 도왔던 A씨.

당시 현장을 지켜본 주변 상인들은 아직도 그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녹취> 당시 목격자(음성변조) : “여기서는 아가씨, 아가씨 부르는 걸 봤는데 그러니까 (A 씨가) 구하기는 구했지.”

투자금을 건넨 지 한두 달이 지나도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연락까지 뜸해지자 정 씨는 그제야 사기임을 직감했습니다.

시민 영웅 A씨가 어떻게 하다가 대담한 사기 행각에 연루된 걸까요.

A씨는 뚜렷한 직업 없이 한동안 모 정당의 청년 조직 임원으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만난 사기 전과 10범의 문 모 씨와 함께 이런 사기 행각을 꾸민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녹취> A씨 지인(음성변조) : “그 친구(A씨)는 직업이 없으니까 3년 전부터 뭐 왔다 갔다 하더니 소식이 (끊겼습니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정 씨에게 받은 4억 2천만 원 중 자신이 챙긴 돈은 2천만 원뿐이라고 진술했습니다.

공범 4명이 1억 원을 나눠 가졌다고 하는데, 나머지 3억 원의 행방은 묘연했습니다.

<인터뷰> 송종호(서대문경찰서 경제2팀 수사관) : “마찬가지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3억 원을 줬다고 진술해서 현재 다른 용의자에 대해서 추적 수사 중입니다.”

또 다른 사기꾼에게 속아 사기로 번 돈 3억 원을 모두 날렸다는 겁니다.

경찰은 구속된 A씨 등을 상대로 이 진술의 진위 여부 등을 계속 수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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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돈 불려 주겠다”…‘시민 영웅’의 사기극
    • 입력 2017-06-02 08:46:36
    • 수정2017-06-02 09: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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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수천억 원대 비자금이 숨겨져 있으니 투자금을 내면 큰돈을 만지게 해주겠다.

사기꾼들의 단골 수법 중 하나인데요.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오늘 소개할 사건의 피해자가 사기꾼을 믿은 데는 조금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친절하게 접근해 투자를 권유하던 40대 남성.

바로 5년 전 서울 도심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당시 시민들을 구한 시민 영웅 중 한 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모범 시민상을 탔다는 말에 이 남성을 굳게 믿었다고 합니다.

시민 영웅에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사기극에 연루된 걸까요.

사건의 전말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서울의 한 지하철역.

개찰구를 나오는 한 남성을 경찰이 불러 세웁니다.

<녹취> 경찰 : “잠시만요, 문00 씨 맞으시죠? 문00 씨 아니세요? 서울 서대문구 송종호 수사관입니다.”

<녹취> 문 모 씨(피의자/음성변조) : “네?”

<녹취> 경찰 : "현재시각 19시 54분, 체포영장에 의해 체포합니다."

이 남성은 무슨 상황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 합니다.

<녹취> 경찰 :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변명의 기회 있습니다. 이리 오세요. 이리 오세요.”

<녹취> 문 모 씨(피의자/음성변조) : “아니...”

체포된 남성은 72살 문 모 씨.

한 달 후 경찰은 문 씨의 지인 55살 채 모 씨도 체포합니다.

<녹취> 채 모 씨(피의자/음성변조) : “알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누가 나를…….”

<녹취> 경찰 : “문00 씨 아시죠?”

<녹취> 채 모 씨(피의자/음성변조) : “네, 너무 황당한데…….”

경찰은 억대의 사기극을 벌인 혐의로 이들의 행방을 쫓아 왔습니다.

<인터뷰> 김순진(서대문 경찰서 경제2팀장) : “지리산에 수표, 채권, 달러, 5만 원권 지폐 등이 가득 실려 있는 1톤 트럭이 있는데 5억 원을 빌려주면 이 트럭을 인수한 후에 본부 벙커에 가서 원하는 대로 현금을 지급하겠다고 속이고…….”

지리산 속에 수천억 원대 비자금이 숨겨져 있다며,

비자금을 찾는 비용을 대주면 큰돈을 돌려주겠다고 사업가인 정 모 씨에게 접근했습니다.

자신들이 국제금융기구 직원이고, 청와대와도 접촉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인터뷰> 송종호(서대문경찰서 경제2팀 수사관) : “청와대를 출입하는 실장, 그리고 아시아 어느 지역 담당자, 이런 식으로 각자 그냥 생각나는 대로 역할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5인조 사기단 중에 정 씨와 자주 만난 건 40대 남성 A모 씨입니다.

서울의 한 카페 골목에서 자주 만남을 갖고, 등산도 함께 가며 신뢰를 쌓았다고 합니다.

<인터뷰> 송종호(서대문경찰서 경제2팀 수사관) : “(A씨가) 준수한 외모를 가져서 사람들이 신뢰하기 쉬운 그런 인상입니다. 피해자와 자주 저녁을 먹고 술자리도 가지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신뢰 관계를 구축한 것 같습니다.”

국제금융기구 직원이라며 다소 황당한 얘기를 했지만, 정 씨는 A씨에게 두터운 신뢰를 갖게 됩니다.

<인터뷰> 김순진(서대문 경찰서 경제2팀장) : “몸에 바코드 같은 것을 심어 놓아서 그 사람이 몸만 움직이면 해외 어디를 가든 돈을 인출할 수 있는 능력자라고…….”

결국, 올해 초 4억 2천만 원을 건넸습니다.

20배가 넘는 돈을 돌려주겠다는 호언장담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인터뷰> 김순진(서대문 경찰서 경제2팀장) : “처음에는 (투자금의) 2, 3배 정도를 준다고 했는데 정씨가 쉽게 돈을 안 빌려주니깐 시간이 흐르면서 100~200억 원 정도를 제안한 상태였습니다.”

정 씨가 A씨를 믿게 된 결정적 이유는 또 있었습니다.

A씨가 모범 시민상을 받고,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시민 영웅, 의인으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순진(서대문 경찰서 경제2팀장) : “칼부림 사건의 의인이란 그런 얘기를 듣고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까 사실이었고, 또 (A씨의) 평소 몸가짐이나 모습, 말투나 이런 게 실제 의인답게 보였기 때문에……. ”

지난 2012년 8월 발생한 서울 여의도 흉기 난동 사건 과정에서 모범 시민상을 받았다며 정 씨를 안심시켰습니다.

당시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남성이 실직에 대한 불만으로 전 직장 동료와 행인들에게 무차별 흉기를 휘둘렀던 사건.

<녹취> 당시 보도화면 : “멀쩡히 길을 가던 한 남성이 갑자기 흉기를 휘둘러 4명이 다쳤습니다.”

퇴근 시간 무렵 도심 한복판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건인데요.

난동을 피우던 남성을 현장에서 제압하고 흉기에 찔린 행인을 도운 시민들이 있었는데, A 씨도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인터뷰> A 모 씨(2012년 8월 당시 인터뷰/피의자/음성변조) : “상의를 벗고 내의를 벗어서 (피해자의) 겨드랑이 부위를 묶고 상처 부위를 한 번 더 덮어서 손으로 대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여자 분이 '저 어디 찔렸어요?' 하고 물어보더라고요. 제가 보니깐 많이 힘들어하는 거 같아서…….”

흉기에 찔린 행인을 지혈하며 응급처치를 도왔던 A씨.

당시 현장을 지켜본 주변 상인들은 아직도 그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녹취> 당시 목격자(음성변조) : “여기서는 아가씨, 아가씨 부르는 걸 봤는데 그러니까 (A 씨가) 구하기는 구했지.”

투자금을 건넨 지 한두 달이 지나도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연락까지 뜸해지자 정 씨는 그제야 사기임을 직감했습니다.

시민 영웅 A씨가 어떻게 하다가 대담한 사기 행각에 연루된 걸까요.

A씨는 뚜렷한 직업 없이 한동안 모 정당의 청년 조직 임원으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만난 사기 전과 10범의 문 모 씨와 함께 이런 사기 행각을 꾸민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녹취> A씨 지인(음성변조) : “그 친구(A씨)는 직업이 없으니까 3년 전부터 뭐 왔다 갔다 하더니 소식이 (끊겼습니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정 씨에게 받은 4억 2천만 원 중 자신이 챙긴 돈은 2천만 원뿐이라고 진술했습니다.

공범 4명이 1억 원을 나눠 가졌다고 하는데, 나머지 3억 원의 행방은 묘연했습니다.

<인터뷰> 송종호(서대문경찰서 경제2팀 수사관) : “마찬가지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3억 원을 줬다고 진술해서 현재 다른 용의자에 대해서 추적 수사 중입니다.”

또 다른 사기꾼에게 속아 사기로 번 돈 3억 원을 모두 날렸다는 겁니다.

경찰은 구속된 A씨 등을 상대로 이 진술의 진위 여부 등을 계속 수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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