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JSA로 본 북한, 북한군

입력 2017.12.02 (08:08) 수정 2017.12.02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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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달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 북한군 병사가 귀순한 사건을 계기로 분단의 상징, JSA가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습니다.

JSA와 판문점은 북한 당국이 세습 정권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강조해온 공간이기도 한데요.

특히 귀순 병사의 보건과 영양 상태가 극도로 열악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한군, 나아가 북한 주민들의 현실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습니다.

<클로즈업 북한> 이번 주에는 남북한이 마주보는 긴장의 땅, JSA를 통해 북한군과 북한을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北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지난 11월 23일) : "우리민족이 당하는 고통과 불행이 응축되어 있어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판문점."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가 최근 공개한 영상물. 판문점과 공동경비구역, JSA를 다루고 있다.

김정일, 김정은 부자가 각각 시찰한 이 지역을 김 부자의 통일 의지가 담긴 곳이라고 선전한다.

<녹취> 北 영상물 ‘판문점과 더불어 길이 빛날 백두영장들의 불멸의 업적’ : "우리 장군님(김정일)의 불멸의 자욱이 어린 판문점은 백두영장의 불면불휴의 영도와 통일 의지를 전하는 성스러운 곳으로 온 겨레의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되어 있습니다."

김정은의 현지 시찰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고도 주장한다.

<녹취> "경애하는 원수님의 판문점 시찰은 온 세계를 경탄시켰고, 오만무례하게 날뛰던 내외 호전 광들의 전쟁 광기를 단숨에 꺾어버렸습니다."

이처럼 북한이 최고 지도자의 판문점과 JSA 일대 방문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이 곳이 김일성 일가가 집권의 정당성을 찾는 6.25 전쟁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판문점을 정전 협정을 맺은 장소라기 보다 승리의 장소라고 과장, 왜곡한다.

<인터뷰> 김진무(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 "판문점은 정전협정을 체결한 장소입니다. 정전협정을 체결했다는 건 우리는 정전협정 체결일로 7월 27일을 기념하고 있지만 북한은 그날이 전승절입니다. 그러면 판문점 자체는 자기들이 6.25 전쟁을 이기고 항복문서에 서명을 미국으로부터 항복문서에 서명을 받은 장소가 되는 겁니다."

이처럼 북한 정권이 중시하는 판문점과 JSA 일대에서 지난 달 13일 총성과 함께 갑작스런 탈주극이 벌어졌다.

JSA 북한 측 후방 지역에서 내려오는 군용 지프 한 대. 북측 초소 앞을 지나쳐 남쪽으로 질주한다.

JSA 경내 배수로에 차량이 빠지고 무장한 북한 병사들이 달려드는 상황, 북한군 병사가 차를 버리고 급히 군사분계선을 넘는다.

총을 다섯 발이나 맞고 긴급 후송된 북한군 귀순 병사는 생사를 넘나든 수술과 자기 피의 세배에 이르는 수혈 끝에 회복 중이다.

<녹취> 이국종(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 : "자기 몸에 혈액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요. 확실히 특수 훈련을 받은 친구라 잘 견디는 것 같습니다."

사건 2주 뒤 북한 병사가 귀순했던 현장이 언론에 공개됐다.

총탄 자국들은 귀순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보여준다.

북한군은 귀순병사가 넘었던 군사분계선 근처엔 도랑을 파고 차량이 통과했던 다리에는 통문을 설치했다.

추가 귀순을 막으려는 의도로 추정된다. 남과 북이 마주보는 곳, 그래서 언제든 이탈이나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 JSA. 그런 만큼 판문점 대표부를 지키는 북한의 JSA 근무병은 출신 성분부터 체격, 사상 등을 철저히 따진다.

<인터뷰> 차리혁(북한군 지휘소대장 출신/2014년 탈북) : "아무래도 판문점 대표부라고 하게 되면 일반 병정하고는 좀 틀려요. 중앙당 고위급 자녀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간단위 예를 든다면 도당 책임비서의 아들이거나 그 다음에 군으로 본다면 군단장 아들 이런 자녀들이 와서 그래도 빽이 있는 자녀들이 와서 이제 거기서 군복무를 하는 거죠. 그리고 거기서 하는 경우에 같으면 체격부터 시작해 가지고 키 다 봐요. 다 보기 때문에 일반 키나 가지고는 거기서 군 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이들에 대한 남다른 대우는 김정은 선전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녹취> 北 기록영화(2012년 3월) : "적들과 항시적으로 맞서 어려운 전투 근무를 수행하는 전초병들을 위해서는 아까울 것이 없다고, 그들에게 최상의 생활조건을 마련해주어 사소한 불편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JSA 경내 북한군 군인들은 모두 장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터뷰> 김진무(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 "그러니까 JSA지역 안에는 그러니까 경무관이라고 해서 군관들입니다. 장교.. 군관들이 소위하고 중위급인데 그 군관들이 40명에서 50명 정도가 1개 조로 일주일 와서 근무를 하고 그 1개조가 빠지고 또 쉬었던 다른 조가 또 일주일 들어오고 이렇게 교대 근무를 하게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 군관들이 그 지역을 하고 나머지 병사들은 그 안에서 근무를 하지 않고 얼씬도 못하게 되어 있죠."

10년 가량의 긴 군 생활을 감안하더라도 같은 인물이 상당히 오랜 시간 공동경비구역에서 복무한다는 게 우리 측 전직 JSA 근무자의 증언이다.

<인터뷰> 이승백(JSA 전우회 회원) : "제가 이제 놀랬던 건 뭐냐면 북측에 있는 병사들이 복무기간이 10년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제가 느꼈던 부분은 제대를 하고 부대를 이제 저희가 매년 한 번씩 들어가는데 제가 근무할 때 저를 포섭하기 위해서 왔던 병사가 창문 밖에 서 있는 거죠. 근무자들만 느끼는 그런 부분인데 그런 부분이 굉장히 놀랐던 부분이 많았던 거죠. 아직도 근무하나? 왜 제대 안 했지?"

북측 JSA 근무자는 사상적으로 무장돼 있었고 북한 체제를 수시로 선전했다고도 전한다.

<인터뷰> 이승백(JSA 전우회 회원) : "야간에 근무를 서게 되면 보통 저희가 얘기할 때는 저희를 포섭하기 위한 병사들이 2, 3명 정도가 와요, 그 사람들이 항상 하는 얘기는 체제의 어떤 우월성 그 다음에 자기들이 수령에 대한 부분들 이 부분이 맨 처음에 얘기가 되는 부분들이거든요. 이 사람들은 어떤 일을 대두를 시켜놔도 충성심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보이는 거죠."

휴전 이후 JSA를 둘러싼 최대 사건은 1976년 8월 벌어졌다.

공동 경비 구역 내 미루나무를 가지치기하던 미군 장교 두 명을 북한군이 도끼로 살해한 것이다.

북한은 이 사건을 미국에 대한 북한군의 승리라고 선전하고 사건을 주도했던 군인을 공화국 영웅으로 칭송하는 선전물까지 만들어 방영했다.

<녹취> 박지선(도끼 만행 사건 당시 北 군인) : "홍성문 동무는 잽싸게 도끼를 걷어쥐고 3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놈들을 네놈이나 족쳐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선전과는 달리 이른바 도끼 만행 사건은 북한의 대표적인 도발 행위로 각인되며 사건 직후 엄청난 후폭풍을 불렀다.

미국이 항공모함 전단과 폭격기를 한반도에 집결시키며 군사적 긴장 수위를 최고조로 높인 것이다.

결국 북한이 김일성 명의로 사과를 하고 미군이 미루나무 제거 작전이라는 상징적인 조치를 마친 뒤에야 사건은 일단락 됐다.

<인터뷰> 이승백(JSA 전우회 회원) : "강력한 도발로 보고 준전시상태까지 갔기 때문에 북쪽에서는 굉장히 위협이 많이 됐겠죠. 저희가 미루나무를 절단하겠다고 통보를 했을 때 그 주변에는 북한병사들이 근처에 오지도 않았었어요."

도끼만행 사건 뒤에도 북한은 판문점과 JSA를 김씨 일가 권력 세습의 정당성을 선전하는데 계속 활용하고 있다.

이번 귀순 과정에서 주목받은 김일성 친필비가 대표적이다.

북한은 1995년 이 비를 세우며 김일성이 조국통일이라는 유훈을 남겼고 이를 김정일이 이어갈 것이라고 선전했다.

이듬해 김정일이 JSA를 직접 찾아 반미 투쟁을 강조하기도 했다.

<녹취> 北 기록영화(1996년 11월) : "미제 원수들과는 언제든 한 번 싸워 반드시 이겨야 한다. 정전협정 조인서가 아니라 완전 멸망의 항복서를 받아낼 멸적의 각오와 승리의 신심이 장병들의 가슴마다에 더욱 굳게 자리 잡았습니다. "

김정은 역시 집권 직후인 2012년 3월, JSA를 찾았다. 할아버지 김일성의 친필비를 보며 감회에 젖은 표정을 짓기도 하고, 통일을 명분으로 3대 세습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녹취> 北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 : "쌍안경으로 남녘땅을 바라보시면서 위대한 수령님들의 뜻대로 통일된 삼천리강산을 후대들에게 반드시 물려주시려는 굳은 결심과 의지를 다지셨습니다."

또 북측 JSA 군인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생활 여건도 둘러보며 관심을 과시했다.

그러나 북한과 김씨 일가가 치켜세우는 공동경비구역 군인들도 사상 무장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녹취> KBS 9시뉴스(1998년 2월) : "판문점 경비병 귀순 판문점 경비를 맡고 있는 북한군 한명이 오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통해서 귀순했습니다."

1998년 JSA를 통해 북측 판문점 대표부 경비병이 탈북했다.

당시 귀순한 변용관 상위는 중립국 감독위원회 숙소 옆 초소를 통해 남측으로 넘어왔다.

이후 2007년 9월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고 올해 또 한 번 JSA귀순이 일어난 것이다. 검열이 철저한 북측 JSA에 잇따라 구멍이 뚫리는 데는 정보와 문화 유입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북 확성기 방송도 있지만 USB, 라디오 등을 통한 한류 콘텐츠가 북한군의 사고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인터뷰> 차리혁(북한군 지휘소대장 출신/2014년 탈북) : "외부적인 이런 작용이 없으면 이런 귀순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외부적인 작용에 의해 가지고 귀순 병사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는 거예요. 운전병 이런 사람들은 개별임무를 좀 많이 수행하다보니까 좀 자유시간이 많아요. 공간시간이 많다는 거죠. 일반 군인들보다 그러다보면 대한민국 드라마를 좀 볼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방송을 좀 볼 수가 있다는 거죠. 이렇게 하다보면 이 대한민국에 대한 선호도가 생기게 되고 머리가 사상이 변질이 된다는 거죠."

실제 이번에 귀순한 북한군 병사도 한국 걸그룹 음악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녹취> 이국종(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 : "소녀시대의 'Gee'를 틀어줬는데 역시 오리지널 걸 그룹 버전이 제일 좋다고 하더라고요."

이와 함께 수술을 받은 귀순 병사가 몸속 수십 마리 기생충 때문에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고 뱃속 음식물 대부분이 옥수수였다는 사실은 북측 JSA 일대를 지키는 군인들도 보건과 영양 상태가 열악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인터뷰> 차리혁(북한군 지휘소대장 출신/2014년 탈북) : "아무래도 지금 북한이라는 지역 자체가 전군이 열악하다보니까 판문점 쪽이 그래도 판문점 쪽이 일반병정보다는 나아요. 그래도 그 군인들 같은 경우에는 순전히 옥수수 쌀밥보다도 7:3이라도 섞어서 먹을 수 있는 이런 밥을 주고요. 일반병정 같은 경우에는 쌀밥을 구경을 못해요 제대로."

전문가들은 이번 북한군 귀순 사건이 JSA뿐 아니라 북한군 전반과 북한 주민들의 현실을 인식하는 의미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녹취> 김진무(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 "많이 먹을 수 있다, 옥수수라도 많이 먹을 수 있다, 이거는 북한군 병사한테 엄청난 특혜입니다. 실질적으로 바로 옆에 있는 2군단 우리 경기도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북한 2군단이거든요. 2군단 병사들의 영양 상태는 약 한 2~30%는 영양실조 상태고 키도 평균 키가 160cm밖에 안 되고 굉장히 열악하고 굉장히 아주 문제가 많은 그런 부대거든요. 그러니까 판문점 대표부는 북한에서 가장 대우를 잘 받는데 이 정도다 이런 식의 판단이 필요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이번 JSA 귀순 병사가 북한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이 됐다고 평가했다.

열악한 보건 실태와 철저한 사상 검열에 시달린 20대 병사.

하지만 자유를 향한 그의 용기는 북한 세습 정권 정당성의 상징인 JSA에도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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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2 07:50:49
    • 수정2017-12-02 08:39:25
    남북의 창
<앵커 멘트>

지난 달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 북한군 병사가 귀순한 사건을 계기로 분단의 상징, JSA가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습니다.

JSA와 판문점은 북한 당국이 세습 정권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강조해온 공간이기도 한데요.

특히 귀순 병사의 보건과 영양 상태가 극도로 열악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한군, 나아가 북한 주민들의 현실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습니다.

<클로즈업 북한> 이번 주에는 남북한이 마주보는 긴장의 땅, JSA를 통해 북한군과 북한을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北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지난 11월 23일) : "우리민족이 당하는 고통과 불행이 응축되어 있어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판문점."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가 최근 공개한 영상물. 판문점과 공동경비구역, JSA를 다루고 있다.

김정일, 김정은 부자가 각각 시찰한 이 지역을 김 부자의 통일 의지가 담긴 곳이라고 선전한다.

<녹취> 北 영상물 ‘판문점과 더불어 길이 빛날 백두영장들의 불멸의 업적’ : "우리 장군님(김정일)의 불멸의 자욱이 어린 판문점은 백두영장의 불면불휴의 영도와 통일 의지를 전하는 성스러운 곳으로 온 겨레의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되어 있습니다."

김정은의 현지 시찰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고도 주장한다.

<녹취> "경애하는 원수님의 판문점 시찰은 온 세계를 경탄시켰고, 오만무례하게 날뛰던 내외 호전 광들의 전쟁 광기를 단숨에 꺾어버렸습니다."

이처럼 북한이 최고 지도자의 판문점과 JSA 일대 방문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이 곳이 김일성 일가가 집권의 정당성을 찾는 6.25 전쟁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판문점을 정전 협정을 맺은 장소라기 보다 승리의 장소라고 과장, 왜곡한다.

<인터뷰> 김진무(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 "판문점은 정전협정을 체결한 장소입니다. 정전협정을 체결했다는 건 우리는 정전협정 체결일로 7월 27일을 기념하고 있지만 북한은 그날이 전승절입니다. 그러면 판문점 자체는 자기들이 6.25 전쟁을 이기고 항복문서에 서명을 미국으로부터 항복문서에 서명을 받은 장소가 되는 겁니다."

이처럼 북한 정권이 중시하는 판문점과 JSA 일대에서 지난 달 13일 총성과 함께 갑작스런 탈주극이 벌어졌다.

JSA 북한 측 후방 지역에서 내려오는 군용 지프 한 대. 북측 초소 앞을 지나쳐 남쪽으로 질주한다.

JSA 경내 배수로에 차량이 빠지고 무장한 북한 병사들이 달려드는 상황, 북한군 병사가 차를 버리고 급히 군사분계선을 넘는다.

총을 다섯 발이나 맞고 긴급 후송된 북한군 귀순 병사는 생사를 넘나든 수술과 자기 피의 세배에 이르는 수혈 끝에 회복 중이다.

<녹취> 이국종(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 : "자기 몸에 혈액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요. 확실히 특수 훈련을 받은 친구라 잘 견디는 것 같습니다."

사건 2주 뒤 북한 병사가 귀순했던 현장이 언론에 공개됐다.

총탄 자국들은 귀순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보여준다.

북한군은 귀순병사가 넘었던 군사분계선 근처엔 도랑을 파고 차량이 통과했던 다리에는 통문을 설치했다.

추가 귀순을 막으려는 의도로 추정된다. 남과 북이 마주보는 곳, 그래서 언제든 이탈이나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 JSA. 그런 만큼 판문점 대표부를 지키는 북한의 JSA 근무병은 출신 성분부터 체격, 사상 등을 철저히 따진다.

<인터뷰> 차리혁(북한군 지휘소대장 출신/2014년 탈북) : "아무래도 판문점 대표부라고 하게 되면 일반 병정하고는 좀 틀려요. 중앙당 고위급 자녀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간단위 예를 든다면 도당 책임비서의 아들이거나 그 다음에 군으로 본다면 군단장 아들 이런 자녀들이 와서 그래도 빽이 있는 자녀들이 와서 이제 거기서 군복무를 하는 거죠. 그리고 거기서 하는 경우에 같으면 체격부터 시작해 가지고 키 다 봐요. 다 보기 때문에 일반 키나 가지고는 거기서 군 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이들에 대한 남다른 대우는 김정은 선전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녹취> 北 기록영화(2012년 3월) : "적들과 항시적으로 맞서 어려운 전투 근무를 수행하는 전초병들을 위해서는 아까울 것이 없다고, 그들에게 최상의 생활조건을 마련해주어 사소한 불편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JSA 경내 북한군 군인들은 모두 장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터뷰> 김진무(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 "그러니까 JSA지역 안에는 그러니까 경무관이라고 해서 군관들입니다. 장교.. 군관들이 소위하고 중위급인데 그 군관들이 40명에서 50명 정도가 1개 조로 일주일 와서 근무를 하고 그 1개조가 빠지고 또 쉬었던 다른 조가 또 일주일 들어오고 이렇게 교대 근무를 하게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 군관들이 그 지역을 하고 나머지 병사들은 그 안에서 근무를 하지 않고 얼씬도 못하게 되어 있죠."

10년 가량의 긴 군 생활을 감안하더라도 같은 인물이 상당히 오랜 시간 공동경비구역에서 복무한다는 게 우리 측 전직 JSA 근무자의 증언이다.

<인터뷰> 이승백(JSA 전우회 회원) : "제가 이제 놀랬던 건 뭐냐면 북측에 있는 병사들이 복무기간이 10년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제가 느꼈던 부분은 제대를 하고 부대를 이제 저희가 매년 한 번씩 들어가는데 제가 근무할 때 저를 포섭하기 위해서 왔던 병사가 창문 밖에 서 있는 거죠. 근무자들만 느끼는 그런 부분인데 그런 부분이 굉장히 놀랐던 부분이 많았던 거죠. 아직도 근무하나? 왜 제대 안 했지?"

북측 JSA 근무자는 사상적으로 무장돼 있었고 북한 체제를 수시로 선전했다고도 전한다.

<인터뷰> 이승백(JSA 전우회 회원) : "야간에 근무를 서게 되면 보통 저희가 얘기할 때는 저희를 포섭하기 위한 병사들이 2, 3명 정도가 와요, 그 사람들이 항상 하는 얘기는 체제의 어떤 우월성 그 다음에 자기들이 수령에 대한 부분들 이 부분이 맨 처음에 얘기가 되는 부분들이거든요. 이 사람들은 어떤 일을 대두를 시켜놔도 충성심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보이는 거죠."

휴전 이후 JSA를 둘러싼 최대 사건은 1976년 8월 벌어졌다.

공동 경비 구역 내 미루나무를 가지치기하던 미군 장교 두 명을 북한군이 도끼로 살해한 것이다.

북한은 이 사건을 미국에 대한 북한군의 승리라고 선전하고 사건을 주도했던 군인을 공화국 영웅으로 칭송하는 선전물까지 만들어 방영했다.

<녹취> 박지선(도끼 만행 사건 당시 北 군인) : "홍성문 동무는 잽싸게 도끼를 걷어쥐고 3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놈들을 네놈이나 족쳐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선전과는 달리 이른바 도끼 만행 사건은 북한의 대표적인 도발 행위로 각인되며 사건 직후 엄청난 후폭풍을 불렀다.

미국이 항공모함 전단과 폭격기를 한반도에 집결시키며 군사적 긴장 수위를 최고조로 높인 것이다.

결국 북한이 김일성 명의로 사과를 하고 미군이 미루나무 제거 작전이라는 상징적인 조치를 마친 뒤에야 사건은 일단락 됐다.

<인터뷰> 이승백(JSA 전우회 회원) : "강력한 도발로 보고 준전시상태까지 갔기 때문에 북쪽에서는 굉장히 위협이 많이 됐겠죠. 저희가 미루나무를 절단하겠다고 통보를 했을 때 그 주변에는 북한병사들이 근처에 오지도 않았었어요."

도끼만행 사건 뒤에도 북한은 판문점과 JSA를 김씨 일가 권력 세습의 정당성을 선전하는데 계속 활용하고 있다.

이번 귀순 과정에서 주목받은 김일성 친필비가 대표적이다.

북한은 1995년 이 비를 세우며 김일성이 조국통일이라는 유훈을 남겼고 이를 김정일이 이어갈 것이라고 선전했다.

이듬해 김정일이 JSA를 직접 찾아 반미 투쟁을 강조하기도 했다.

<녹취> 北 기록영화(1996년 11월) : "미제 원수들과는 언제든 한 번 싸워 반드시 이겨야 한다. 정전협정 조인서가 아니라 완전 멸망의 항복서를 받아낼 멸적의 각오와 승리의 신심이 장병들의 가슴마다에 더욱 굳게 자리 잡았습니다. "

김정은 역시 집권 직후인 2012년 3월, JSA를 찾았다. 할아버지 김일성의 친필비를 보며 감회에 젖은 표정을 짓기도 하고, 통일을 명분으로 3대 세습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녹취> 北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 : "쌍안경으로 남녘땅을 바라보시면서 위대한 수령님들의 뜻대로 통일된 삼천리강산을 후대들에게 반드시 물려주시려는 굳은 결심과 의지를 다지셨습니다."

또 북측 JSA 군인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생활 여건도 둘러보며 관심을 과시했다.

그러나 북한과 김씨 일가가 치켜세우는 공동경비구역 군인들도 사상 무장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녹취> KBS 9시뉴스(1998년 2월) : "판문점 경비병 귀순 판문점 경비를 맡고 있는 북한군 한명이 오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통해서 귀순했습니다."

1998년 JSA를 통해 북측 판문점 대표부 경비병이 탈북했다.

당시 귀순한 변용관 상위는 중립국 감독위원회 숙소 옆 초소를 통해 남측으로 넘어왔다.

이후 2007년 9월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고 올해 또 한 번 JSA귀순이 일어난 것이다. 검열이 철저한 북측 JSA에 잇따라 구멍이 뚫리는 데는 정보와 문화 유입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북 확성기 방송도 있지만 USB, 라디오 등을 통한 한류 콘텐츠가 북한군의 사고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인터뷰> 차리혁(북한군 지휘소대장 출신/2014년 탈북) : "외부적인 이런 작용이 없으면 이런 귀순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외부적인 작용에 의해 가지고 귀순 병사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는 거예요. 운전병 이런 사람들은 개별임무를 좀 많이 수행하다보니까 좀 자유시간이 많아요. 공간시간이 많다는 거죠. 일반 군인들보다 그러다보면 대한민국 드라마를 좀 볼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방송을 좀 볼 수가 있다는 거죠. 이렇게 하다보면 이 대한민국에 대한 선호도가 생기게 되고 머리가 사상이 변질이 된다는 거죠."

실제 이번에 귀순한 북한군 병사도 한국 걸그룹 음악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녹취> 이국종(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 : "소녀시대의 'Gee'를 틀어줬는데 역시 오리지널 걸 그룹 버전이 제일 좋다고 하더라고요."

이와 함께 수술을 받은 귀순 병사가 몸속 수십 마리 기생충 때문에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고 뱃속 음식물 대부분이 옥수수였다는 사실은 북측 JSA 일대를 지키는 군인들도 보건과 영양 상태가 열악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인터뷰> 차리혁(북한군 지휘소대장 출신/2014년 탈북) : "아무래도 지금 북한이라는 지역 자체가 전군이 열악하다보니까 판문점 쪽이 그래도 판문점 쪽이 일반병정보다는 나아요. 그래도 그 군인들 같은 경우에는 순전히 옥수수 쌀밥보다도 7:3이라도 섞어서 먹을 수 있는 이런 밥을 주고요. 일반병정 같은 경우에는 쌀밥을 구경을 못해요 제대로."

전문가들은 이번 북한군 귀순 사건이 JSA뿐 아니라 북한군 전반과 북한 주민들의 현실을 인식하는 의미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녹취> 김진무(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 "많이 먹을 수 있다, 옥수수라도 많이 먹을 수 있다, 이거는 북한군 병사한테 엄청난 특혜입니다. 실질적으로 바로 옆에 있는 2군단 우리 경기도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북한 2군단이거든요. 2군단 병사들의 영양 상태는 약 한 2~30%는 영양실조 상태고 키도 평균 키가 160cm밖에 안 되고 굉장히 열악하고 굉장히 아주 문제가 많은 그런 부대거든요. 그러니까 판문점 대표부는 북한에서 가장 대우를 잘 받는데 이 정도다 이런 식의 판단이 필요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이번 JSA 귀순 병사가 북한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이 됐다고 평가했다.

열악한 보건 실태와 철저한 사상 검열에 시달린 20대 병사.

하지만 자유를 향한 그의 용기는 북한 세습 정권 정당성의 상징인 JSA에도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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