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김정일 사망 6년…유훈의 그늘

입력 2017.12.16 (08:08) 수정 2017.12.16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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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내일은 북한 김정일이 숨진지 꼭 6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난 6년 동안 셋째 아들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하면서 김정일의 유훈에 따라 대외적으로는 핵질주를 하고 대내적으로는 잇단 숙청 속에 권력을 강화해왔는데요.

특히 김정은의 공포정치는 김정일 일가도 피로 물들였습니다.

<클로즈업 북한> 이번 주에는 김정일 사망일을 계기로 김정일의 유훈이 김정은 정권에서 어떻게 계승되고 있고 한편으로 어떤 비극으로 이어졌는지 함께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조선중앙TV(2011년 12월 19일) :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

2011년 12월, 갑작스런 김정일 사망 발표.

이어 사인도 자세하게 전했다.

<녹취> 조선중앙TV(2011년 12월 17일) : "달리는 야전열차 안에서 중증 급성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한 심장성 쇼크가 합병되었다."

사망 발표 다음 날 시신을 공개했고, 후계자 김정은이 조문객을 맞았다.

김정은 뒤에 선 김여정도 눈길을 끌었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일의 죽음을 슬퍼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집중 조명하며 애도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로부터 6년.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전 활동을 정리한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던 주민들이 김정일 찬양을 쏟아낸다.

<녹취> 정창룡(북한 주민) : "한 몸의 위험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가파른 벼랑길을 넘으시고 또 진창길 눈길 가림 없이 헤쳐가신 바로 그 길을 깊이 새겼습니다."

김정일이 내세웠던 이른바 선군정치를 선전하는 또 다른 기념관에서도 김정일 업적 띄우기가 한창이다.

<녹취> 황정혁(북한 주민) : "오늘 이 사진 문헌들 앞에 서니 위대한 장군님께서 여름에도 가시고 겨울에도 가시던 그 길, 저의 가슴을 쾅쾅 울려줍니다."

김정일이 세상을 떠난지 6년이 지났지만 북한 매체들은 그의 사망일을 계기로 추모프로그램을 집중 방송하고 있다.

<녹취> 김정일 기록영화 ‘혁명 생애의 2011년’ : "생애의 마지막 나날까지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과 인민의 안녕을 지켜 바람세찬 전선 길에 계셨습니다."

<인터뷰> 정성장(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 "지금 김정은이 권력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정통성에 기반이 되는 것도 바로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정을 했다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김정은의 정책에 어떤 정통성을 부여하고 이제 거기에 대한 무조건적인 간부들의 충성을 이끌어내는데 이것이 매우 유효하게 활용이 되고 있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김정은이 집권 이후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한 정책은 김정일 우상화 강화였다.

<녹취> 조선중앙TV(2012년) :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어버이 장군님을 천세만세 높이 모시기 위한 사업에 온갖 심혈을 다 기울이셨습니다."

평양 중심부 만수대 언덕에 23m 크기의 거대한 김일성-김정일 부자 동상이 세워졌다.

김정일의 시신과 생전에 사용하던 물품을 전시한 시설도 보수해 금수산태양궁전으로 이름도 바꿨다.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단순히 우상화 대상에 머물지 않고 김정은 정권의 정책에도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핵개발이다.

<인터뷰> 정성장(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 "김정은은 이제 김정일의 유훈을 토대로 해서 자신의 모든 정책을 정당화 하는 거죠 핵미사일 개발을 중단해야 되지 않겠냐? 라는 그런 이제 비판이 있을 때도 그것은 이제 김정일의 뜻이 아니다, 라고 반박을 할 수가 있는 거죠."

<녹취> 조선중앙TV(11월 29일) : "새로 개발한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5형 시험 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북한 당국이 국가 핵무력 완성의 증거로 내세운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 15형. 김정은 정권은 대북 제재 속에서도 올 들어 6차 핵실험과 함께 16차례나 미사일 도발을 강행했다.

멈출 줄 모르는 핵 질주는 아버지인 김정일이 추진했던 군사정책을 계승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김정일이가 항상 이야기했던 것이 사상적 강국, 정치적 강국 이뤘는데 이제 군사적 강국하고 경제적 강국만 이루면 된다. 그런데 그 이루는 방법이 결국은 핵과 미사일이 거의 유일무의한 방법이 됐다. 그러니까 김정일이 사회주의 강국건설을 김정은이 이어 받아서 로켓맹주국 핵보유국 이것으로 좀 더 구체화되고 구체적으로 실현이 돼서 지금 현재 열매로 나타난 것이 아니냐."

앞서 지난 7월, 북한이 또 다른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을 시험 발사한 뒤 평양에서 축하 공연이 열렸다.

<녹취> 北 노래 ‘사회주의 전진가’ : "전진 또 전진 신심 드높이, 전진 또 전진 용기백배해."

당시 공연의 배경 화면은 김정일의 미사일 개발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실제 김정일 집권 시기 북한은 미사일 사정거리를 늘리며 주변국들을 긴장시켰다.

<녹취> 북한 ‘대포동 1호’ 발사(1998년 8월) : "우리의 과학자·기술자들은 다계단 운반 로켓으로 첫 인공지구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사거리 약 2,500킬로미터, 대포동 1호가 일본 열도를 넘어간 것.

김정일은 일본을 넘어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염두에 두고 기술 개발을 독려했다고 북한 군수 분야를 취재했던 탈북 기자는 증언한다.

<인터뷰> 김길선(前 북한 국방과학원 정책 담당기자) : "84년 10월 24일에는 중거리프로젝트에 들어갔고 1987년 4월 11일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거예요. 뭐 어떻게 빨리 하라, 매일 지시가 나오고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오고요. 매일 중앙당에서 파견원이 나와요. 체크 해 가는 파견원이 그러니까 북한 국방과학자들은 이 벌써 화성5호, 6호 들어갈 때는 집에도 못가요."

<녹취> 조선중앙TV(1993년 3월) : "나라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조치로서 부득이 핵무기전파방지 조약에서 탈퇴한다는 것을 선포한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 NPT 탈퇴를 선언하며 1차 북핵 위기를 맞았다.

최근 공개된 미국 비밀문서는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 영변 핵시설 폭격은 물론, 북한과의 전쟁까지 계획했었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

대북제재 속에서도 핵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는 김정은의 행보는 미국과의 갈등과 최악의 경제난 속에서도 핵개발을 강행한 김정일의 전철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 김길선(前 북한 국방과학원 정책 담당기자) : "어느 역에서 차가 또 멈춰 섰는데 그때 기차칸 안에서 굶어죽은 사람 내리는데요. 동태두름 던지듯 하며 내리더라고요. 저거를 저렇게 굶겨 죽이고 국가경제를 저렇게 하면서라도 핵미사일만 가지고.. 이걸 끝까지 해서 완성 시키면 유일한 생존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유일한 협상수단이 된다는 거예요. 그걸 협상수단으로 해서 얼마든지 적을 굴복시키고 갈취할 수 있다는 거예요."

다만 김정은은 군이 중심이 된 통치, 선군정치를 내세웠던 김정일과는 다른 권력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집권 5년차인 2016년, 36년 만에 노동당 대회를 열어 자신의 대관식을 치른다.

<녹취> 김영남(2016년 5월/제7차 당대회 폐막식) :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조선노동당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할 것을 본 대회에 정중히 제의합니다."

‘노동당 위원장’김정은은 9개의 공식 직함 가운데 노동당 수장 지위를 대표 직위로 선택하며 당을 앞세운 통치 구조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권력 구도도 크게 바뀌었다.

김정일의 운구차 옆에 섰던 당시 최고 실세들.

맨 앞에 섰던 리영호 총참모장을 비롯해 운구차 왼편을 지켰던 4명 모두 차례로 숙청되거나 한직으로 물러났다.

특히 집권 2년 만에 김정은의 고모부이자 후견인이었던 장성택마저 전격 처형됐고 고모 김경희는 공개 석상에서 사라졌다.

가족에게까지 번져간 공포정치의 그림자.

그 절정은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이다 중국의 보호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진 김정남을 다른 나라 공항에서 테러해 전 세계를 경악게했다.

김정일의 차남 김정철은 은둔 중이고 김정일의 딸 김여정만 김정은의 측근으로 공개 활동을 하고 있다.

독재 권력을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측근은 물론 가족과 친척까지 숙청하는 이 같은 공포 정치 역시 김씨 일가의 통치 방식 중 하나라는 게 한때 김정일의 통역까지 맡았던 전문가의 설명이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前 북한 외교관) : "이제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들 할아버지 때 아버지에게 했던 이야기들 자기끼리만 보는 문서들이 있는 거거든요. 그 문서에 대한 학습을 통해서 아, 이런 때는 이런 방법으로 장성택을 침으로서 이 위기를 돌파하고 나의 유일지배체제를 세워야겠다, 그때그때의 환경과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제8차 군수공업대회 개막식/12월 12일) : "두 자루의 권총으로부터 시작하여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한 전인미답의 장구한 행로는..."

북한 정권은 김정은이 김일성, 김정일의 유훈을 이어가며 결국 세계적 핵 강국이 됐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는 곧 김정은 세습 정권이 통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남조선 놈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못 살고 긴장되고 전투적으로 살아야 되고 이런 거를 계속 해서 주입시켜서 70년 동안 왔거든요. 그러니까 통일이라는 목표가 실현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김일성의 사상과 그 유언대로 아들 손자가 이어서 가는 그 형식이 계속 될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같은 유훈 정치는 김씨 일가의 독재 권력, 즉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일 뿐, 주변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데는 부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인터뷰> 정성장(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 "그러니까 김정일이 이렇게 하라, 라고 조언했지만 그 조언대로 현실은 반드시 가지 않을 수 있다, 뭐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거죠. 북한이 수소폭탄에다가 ICBM까지 완성한 다음에 남한하고 대화하자고 할 때 남한이 그걸 과연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이 고도화 되면 고도화 될수록 이제 국제적 고립은 심화되고 경제상황은 악화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정일 사망 이후 6년.

그가 넘긴 권력을 바탕으로 아들 김정은이 공포정치와 핵 질주를 노골화한 시간이기도 하다.

비록 김씨 3대 세습은 이어지고 있지만 김정일이 남긴 핵 개발 기술은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로 돌아왔고 장남을 비롯한 가계는 죽음과 숙청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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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김정일 사망 6년…유훈의 그늘
    • 입력 2017-12-16 08:22:48
    • 수정2017-12-16 08: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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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내일은 북한 김정일이 숨진지 꼭 6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난 6년 동안 셋째 아들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하면서 김정일의 유훈에 따라 대외적으로는 핵질주를 하고 대내적으로는 잇단 숙청 속에 권력을 강화해왔는데요.

특히 김정은의 공포정치는 김정일 일가도 피로 물들였습니다.

<클로즈업 북한> 이번 주에는 김정일 사망일을 계기로 김정일의 유훈이 김정은 정권에서 어떻게 계승되고 있고 한편으로 어떤 비극으로 이어졌는지 함께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조선중앙TV(2011년 12월 19일) :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

2011년 12월, 갑작스런 김정일 사망 발표.

이어 사인도 자세하게 전했다.

<녹취> 조선중앙TV(2011년 12월 17일) : "달리는 야전열차 안에서 중증 급성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한 심장성 쇼크가 합병되었다."

사망 발표 다음 날 시신을 공개했고, 후계자 김정은이 조문객을 맞았다.

김정은 뒤에 선 김여정도 눈길을 끌었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일의 죽음을 슬퍼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집중 조명하며 애도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로부터 6년.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전 활동을 정리한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던 주민들이 김정일 찬양을 쏟아낸다.

<녹취> 정창룡(북한 주민) : "한 몸의 위험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가파른 벼랑길을 넘으시고 또 진창길 눈길 가림 없이 헤쳐가신 바로 그 길을 깊이 새겼습니다."

김정일이 내세웠던 이른바 선군정치를 선전하는 또 다른 기념관에서도 김정일 업적 띄우기가 한창이다.

<녹취> 황정혁(북한 주민) : "오늘 이 사진 문헌들 앞에 서니 위대한 장군님께서 여름에도 가시고 겨울에도 가시던 그 길, 저의 가슴을 쾅쾅 울려줍니다."

김정일이 세상을 떠난지 6년이 지났지만 북한 매체들은 그의 사망일을 계기로 추모프로그램을 집중 방송하고 있다.

<녹취> 김정일 기록영화 ‘혁명 생애의 2011년’ : "생애의 마지막 나날까지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과 인민의 안녕을 지켜 바람세찬 전선 길에 계셨습니다."

<인터뷰> 정성장(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 "지금 김정은이 권력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정통성에 기반이 되는 것도 바로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정을 했다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김정은의 정책에 어떤 정통성을 부여하고 이제 거기에 대한 무조건적인 간부들의 충성을 이끌어내는데 이것이 매우 유효하게 활용이 되고 있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김정은이 집권 이후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한 정책은 김정일 우상화 강화였다.

<녹취> 조선중앙TV(2012년) :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어버이 장군님을 천세만세 높이 모시기 위한 사업에 온갖 심혈을 다 기울이셨습니다."

평양 중심부 만수대 언덕에 23m 크기의 거대한 김일성-김정일 부자 동상이 세워졌다.

김정일의 시신과 생전에 사용하던 물품을 전시한 시설도 보수해 금수산태양궁전으로 이름도 바꿨다.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단순히 우상화 대상에 머물지 않고 김정은 정권의 정책에도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핵개발이다.

<인터뷰> 정성장(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 "김정은은 이제 김정일의 유훈을 토대로 해서 자신의 모든 정책을 정당화 하는 거죠 핵미사일 개발을 중단해야 되지 않겠냐? 라는 그런 이제 비판이 있을 때도 그것은 이제 김정일의 뜻이 아니다, 라고 반박을 할 수가 있는 거죠."

<녹취> 조선중앙TV(11월 29일) : "새로 개발한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5형 시험 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북한 당국이 국가 핵무력 완성의 증거로 내세운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 15형. 김정은 정권은 대북 제재 속에서도 올 들어 6차 핵실험과 함께 16차례나 미사일 도발을 강행했다.

멈출 줄 모르는 핵 질주는 아버지인 김정일이 추진했던 군사정책을 계승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김정일이가 항상 이야기했던 것이 사상적 강국, 정치적 강국 이뤘는데 이제 군사적 강국하고 경제적 강국만 이루면 된다. 그런데 그 이루는 방법이 결국은 핵과 미사일이 거의 유일무의한 방법이 됐다. 그러니까 김정일이 사회주의 강국건설을 김정은이 이어 받아서 로켓맹주국 핵보유국 이것으로 좀 더 구체화되고 구체적으로 실현이 돼서 지금 현재 열매로 나타난 것이 아니냐."

앞서 지난 7월, 북한이 또 다른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을 시험 발사한 뒤 평양에서 축하 공연이 열렸다.

<녹취> 北 노래 ‘사회주의 전진가’ : "전진 또 전진 신심 드높이, 전진 또 전진 용기백배해."

당시 공연의 배경 화면은 김정일의 미사일 개발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실제 김정일 집권 시기 북한은 미사일 사정거리를 늘리며 주변국들을 긴장시켰다.

<녹취> 북한 ‘대포동 1호’ 발사(1998년 8월) : "우리의 과학자·기술자들은 다계단 운반 로켓으로 첫 인공지구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사거리 약 2,500킬로미터, 대포동 1호가 일본 열도를 넘어간 것.

김정일은 일본을 넘어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염두에 두고 기술 개발을 독려했다고 북한 군수 분야를 취재했던 탈북 기자는 증언한다.

<인터뷰> 김길선(前 북한 국방과학원 정책 담당기자) : "84년 10월 24일에는 중거리프로젝트에 들어갔고 1987년 4월 11일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거예요. 뭐 어떻게 빨리 하라, 매일 지시가 나오고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오고요. 매일 중앙당에서 파견원이 나와요. 체크 해 가는 파견원이 그러니까 북한 국방과학자들은 이 벌써 화성5호, 6호 들어갈 때는 집에도 못가요."

<녹취> 조선중앙TV(1993년 3월) : "나라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조치로서 부득이 핵무기전파방지 조약에서 탈퇴한다는 것을 선포한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 NPT 탈퇴를 선언하며 1차 북핵 위기를 맞았다.

최근 공개된 미국 비밀문서는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 영변 핵시설 폭격은 물론, 북한과의 전쟁까지 계획했었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

대북제재 속에서도 핵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는 김정은의 행보는 미국과의 갈등과 최악의 경제난 속에서도 핵개발을 강행한 김정일의 전철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 김길선(前 북한 국방과학원 정책 담당기자) : "어느 역에서 차가 또 멈춰 섰는데 그때 기차칸 안에서 굶어죽은 사람 내리는데요. 동태두름 던지듯 하며 내리더라고요. 저거를 저렇게 굶겨 죽이고 국가경제를 저렇게 하면서라도 핵미사일만 가지고.. 이걸 끝까지 해서 완성 시키면 유일한 생존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유일한 협상수단이 된다는 거예요. 그걸 협상수단으로 해서 얼마든지 적을 굴복시키고 갈취할 수 있다는 거예요."

다만 김정은은 군이 중심이 된 통치, 선군정치를 내세웠던 김정일과는 다른 권력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집권 5년차인 2016년, 36년 만에 노동당 대회를 열어 자신의 대관식을 치른다.

<녹취> 김영남(2016년 5월/제7차 당대회 폐막식) :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조선노동당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할 것을 본 대회에 정중히 제의합니다."

‘노동당 위원장’김정은은 9개의 공식 직함 가운데 노동당 수장 지위를 대표 직위로 선택하며 당을 앞세운 통치 구조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권력 구도도 크게 바뀌었다.

김정일의 운구차 옆에 섰던 당시 최고 실세들.

맨 앞에 섰던 리영호 총참모장을 비롯해 운구차 왼편을 지켰던 4명 모두 차례로 숙청되거나 한직으로 물러났다.

특히 집권 2년 만에 김정은의 고모부이자 후견인이었던 장성택마저 전격 처형됐고 고모 김경희는 공개 석상에서 사라졌다.

가족에게까지 번져간 공포정치의 그림자.

그 절정은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이다 중국의 보호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진 김정남을 다른 나라 공항에서 테러해 전 세계를 경악게했다.

김정일의 차남 김정철은 은둔 중이고 김정일의 딸 김여정만 김정은의 측근으로 공개 활동을 하고 있다.

독재 권력을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측근은 물론 가족과 친척까지 숙청하는 이 같은 공포 정치 역시 김씨 일가의 통치 방식 중 하나라는 게 한때 김정일의 통역까지 맡았던 전문가의 설명이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前 북한 외교관) : "이제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들 할아버지 때 아버지에게 했던 이야기들 자기끼리만 보는 문서들이 있는 거거든요. 그 문서에 대한 학습을 통해서 아, 이런 때는 이런 방법으로 장성택을 침으로서 이 위기를 돌파하고 나의 유일지배체제를 세워야겠다, 그때그때의 환경과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제8차 군수공업대회 개막식/12월 12일) : "두 자루의 권총으로부터 시작하여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한 전인미답의 장구한 행로는..."

북한 정권은 김정은이 김일성, 김정일의 유훈을 이어가며 결국 세계적 핵 강국이 됐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는 곧 김정은 세습 정권이 통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남조선 놈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못 살고 긴장되고 전투적으로 살아야 되고 이런 거를 계속 해서 주입시켜서 70년 동안 왔거든요. 그러니까 통일이라는 목표가 실현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김일성의 사상과 그 유언대로 아들 손자가 이어서 가는 그 형식이 계속 될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같은 유훈 정치는 김씨 일가의 독재 권력, 즉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일 뿐, 주변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데는 부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인터뷰> 정성장(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 "그러니까 김정일이 이렇게 하라, 라고 조언했지만 그 조언대로 현실은 반드시 가지 않을 수 있다, 뭐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거죠. 북한이 수소폭탄에다가 ICBM까지 완성한 다음에 남한하고 대화하자고 할 때 남한이 그걸 과연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이 고도화 되면 고도화 될수록 이제 국제적 고립은 심화되고 경제상황은 악화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정일 사망 이후 6년.

그가 넘긴 권력을 바탕으로 아들 김정은이 공포정치와 핵 질주를 노골화한 시간이기도 하다.

비록 김씨 3대 세습은 이어지고 있지만 김정일이 남긴 핵 개발 기술은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로 돌아왔고 장남을 비롯한 가계는 죽음과 숙청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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